당시의 사상과 종교계도 시대의 변화와 조류에 따르는 전환기 였으니 인도 당시는 철기시대에 해당하며 수 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통해 멸망할 것은 망하고 복속될 것은 복속되며 연합할 것은 연합하며 몇 개의 큰 나라로 나뉘어 통치되는 연방공화국 형태가 많았으니
석가 세존이 태어나신 카필라국은 히말라야 산록의 작은 나라고 큰 나라로 코살라국에 속하였으니 다른 강대국인 마가다국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에 속하는 작은 나라였으며 사상적으로는 보수 전통적인 베다를 중심으로 내려오던 전통인 진보 신흥의 자유 사상가들에 의해서 큰 변화의 기류가 형성 되었으니
전통적인 바라문과 새로운 사문과의 팽팽한 균형이 유지 되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을 통한 정복과 문물의 발달 교역의 원활함과 함께 엄청난 부를 축척하게 된 무사 계급과 새로운 상인들과의 이익과 교류가 잘 맞아 떨어 지면서 신흥 부자들은 자유 사상가와 사문을 지지하고 경유가 많아지고 무사계급은 전통적인 바라문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팽팽한 대립 가운데 교류가 있었으므로
카스트 계급간의 엄격했던 관계가 무너지고 혼선이 생기게 되었고 석가 세존같은 출중한 사문의 등장은 제사장 계급의 바라문이나 무사계급의 왕과 대신 무역과 장사로 부를 축척한 신흥부자들의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었으니 특히 석가 세존은 출신이 무사계급이기에 바라문 계급의 사람이 더 쉽게 가르침을 청하러 올 수 있는 여견이 되었으니 여러 가지의 시절 인연은 결국 계급, 종교, 사상의 활발한 교류 가운데 이루어진 실화에 가까운 경전으로 이해하고 보아도 될 것이다.
서론에 해당하는 설명문을 읽어보며 충분하게 이해가 될 것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을 하겠으나 당시의 상황이 사상과 문화의 교류가 많으면서 종교적 신앙의 자유도 많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많은 부를 축척한 바라문 계급의 원로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당시 종교계의 샛별 이며 스타중의 스타이신 석가 세존을 방문하고 예의를 갖추어 가르침을 청하고 세존께서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하는 형식이니 어찌보면 꼭 이름을 붙이자면
바라문의 역사, 바라문들이 옛날과 오늘같은 제목으로 당시 베다를 통해서 특별한 계급만 누리고 알던 바라문을 다른 종교의 리더인 석가 세존의 말씀을 통하여 설해지는 것이므로 바라문쪽의 지도자로 본다면 기분이 좋은 사건은 분명 아니지만 당시의 분위기로는 공개적인 모임이고 질의 응답이기 때문에 암묵적인 공인 상태에서 이루어진 자리로 보아도 좋을 듯 하며 석가 세존의 명망이 그 만큼 높기에 가능한 자리가 아니었을까 하며 요즘으로 비교하면 천주교의 원로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불교계의 가장 높은 종정스님을 찾아 가르침을 청하는 자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