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의 숲 '욥기'

이관순의 손편지 [14] 인문고전의 숲, 성경‘욥기’ 구약 가운데 한 권만 추천해 달라면 나는 ‘욥기’를 읽게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성경의 ‘욥기’는 기독교가 포용하고 있는 인문학의 보고다. 기독교는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 서양문명의 뼈대를 이루는 사상이 되었고, 성경은 그 사상의 토대를 제공했다. 종교나 문화권에 관계없이 유엔이 인정한 세계 200여 국가에 2300여 언어로 번역된 인류 최고의 슈퍼 베스트셀러이다.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성경을 인문의 숲으로 묘사했다. 특히 욥기는 “문학적으로 완벽하여 달리 어깨를 겨룰 만한 작품이 없다”고 했다. 독일 문학가 괴테가 쓴 ‘파우스트’의 기본 틀도 바로 욥기에서 따왔다. 파우스트는 문학, 음악, 미술, 철학, 종교 등 서양문화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또한 아놀드 토인비가 인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본 개념도 ‘욥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에 임하는 욥을 보면서 우수 땅에 사는 욥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고 많은 재물을 누리는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이를 시기한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 욥이 신실한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라며 험담했다. 급기야는 “욥의 재물을 모두 빼앗아 버리면 욥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니 그의 신실함을 시험해 보자고 제안했다. 하나님이 이를 승인하자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흥미 있는 진실게임이 시작되었다. 사탄은 욥의 재물은 물론 자식까지도 순식간에 다 앗아갔다. 그리고 그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극심한 고통과 고난이 몰려오면 좌절과 원망, 분노에 휩싸이는 것이 보통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욥은 “주시는 자도 하나님이시고 다시 가져가시는 자도 하나님이시라”며 믿음을 지켰다. 소중한 것을 몽땅 빼앗긴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참 신앙을 보인 것이다. 사탄은 물러나지 않았다. 두 번째 도전은 건강을 빼앗는 것이었다. 온 몸에 병이 든 욥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욥은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니 재앙도 받을 수 있다”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즈음, 소문을 듣고 욥의 세 친구(엘리바스, 빌닷, 소발)가 찾아왔다. 이들은 욥이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해 토론을 벌였고, 욥의 고난을 죄의 대가라며 인과응보론적 사고로 비판했다. ‘왜 악한 사람이 잘 되고, 착한 사람이 고통 받는가’라는 이 질문은 욥기의 대주제이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며, 죄 짓는 자가 흥하고 의로운 자가 더 아픔을 겪는다면 이보다 부당함도 없을 것이다. 의롭고 착한 사람이 받는 이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천국에 가서 보상을 받는다’는 말로 만족할 수 있을까? 더욱 이 문제가 난제인 것이 사람들은 자기의 인식과 경험의 틀로서 판단한다는 점이었다. 이렇듯 진실과 현실이 배치되는 상황은 누구도 만날 수 있다. 욥기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우리의 인식과 사고를 뛰어넘는 절대적인 믿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고난이 은혜요 축복’이라고?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에 찌든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교도 다니지 못했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의 학대는 일상이 되었다. 훗날 안데르센이 세계적인 동화작가가 되고, 명성을 얻은 후 스스로를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역경은 곧 축복이었어요. 못 생겼다고 놀림 받은 것이 ‘미운 오리새끼’를 쓰게 했고, 가난했으므로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지요.” 역경을 겪을 때는 고통스러웠지만, 먼 훗날 그 고난이 자신을 만들어준 은총이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고난이란 불청객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선악의 행위와 상관없이도... 욥기는 이런 비극적 상황과 마주할 때, 절망과 원망으로 매몰되지 말고 고난 뒤에 숨어 있는 신의 은총을 찾으라고 가르친다. 히브리 철학에서 ‘고난은 축복’이라고 말한다. ‘종의 기원’을 쓴 다윈도 ‘아픔은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고난의 최대 덕목은 좌절에서 희망으로 안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욥기는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다리를 놓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