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스아바바에서 멀어질수록 도시나 마을이 나타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공장 같은 것들이나 대규모로 농사 지을 만한 경작지들도 보이지 않는데
가끔씩 아슬아슬하리만치 짐을 한 가득 실은 커다란 트럭들이 가끔씩
우리가 탄 차를 지나쳐 아디스아바바 쪽으로 향한다,
덮개로 단단하게 포장해 놓은 화물들은 무엇이고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이지 동행하고 있는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전부 커피원두이고 카파에서부터 오는 것이란다,
잘은 모르지만 최소한 5톤 이상은 되어 보이는 큰 트럭들로
도로 폭도 좁고 굴곡도 많은데 저렇게 큰 트럭을 운전하려면
보통의 실력과 인내력으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게 다 원두라고 하니 이디오피아가 커피로 유명한 만큼 생산량도 어마 어마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도착을 해서 보니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국영 커피 농장의 규모가 엄청난 것은 물론이고
조그마한 땅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크건 작건 커피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러니 커피 생산량이 많을 수 밖에!
카파는 커피의 고향답게 커피를 마실 때 다도(茶道)처럼
영어로 커피 세레모니(Coffee Ceremony)라는 격식에 따라 마신다,
매번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고 특별한 날이거나 집에 손님이 왔거나 했을 때 하는 것으로
그곳에서는 어디를 가나 손님이었던 나는 커피 세레모니에 따라 카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세레모니’의 처음 순서는 ‘향’을 피우는 것이다,
향은 예로부터 제사나 종교행사 등 모양새는 달라도 동서양 모두 에서 사용되었다,
개인 위생이 썩 좋지 않았던 시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아무래도 안 좋은 냄새가 나기에
향을 피워 그 냄새를 없애기도 하고
또 실제적, 상징적으로 연기를 이용한 소독의 의미도 있었다,
음식을 훈제하는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연기의 항균 효과를 통해 음식의 장기보전이 가장 큰 목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땅에 있는 사람들의 바램을 조상이나 절대자에게 전달한다는 의미도 크다,
사람의 죽으면 영혼이 하늘 어딘가로 올라가고 절대자도 하늘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향을 피우니 커피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 특히 초대받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해서
뭔가 귀한 사람 대접을 받는 것 같은 느낌에 감사함이 생겨난다.
그 다음에는 작은 숯불 화로에다 커피 콩을 볶기 시작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어느 정도 로스팅을 하느냐에 따라 커피의 맛이 달라진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가장 적당한’ 로스팅의 정도가 있기도 하고
또 대중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맛’이 있기도 하지만
‘입 맛’이라는 것이 각자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볶을 것인지는 볶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여있는 사람들(커피를 마실 사람들)이 원두의 색을 보고 그때 그때 결정한다.
이렇게 로스팅이 끝나면 작은 절구를 이용해 가루를 내고
호리병처럼 입구가 좁은 주전자에 뜨거운물과 함께 넣고 녹차를 우려내듯 우려낸다.
커피의 진하기는 에스프레소 정도이고 잔도 작은 것을 사용하는데
가끔 손잡이가 없는 것은 딱 우리나라 녹차잔과 흡사하다,
특히나 한잔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서너 잔을 마시면서 새로 우려내는 동안 함께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이
잔 모양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우리의 ‘다도’와 별로 다르지 않다.
‘아디스아바바’쪽에서 국영 커피 농장을 가다 보면 그 전에 먼저 차(茶) 농장을 지나게 된다,
길에서 보면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농장 안에 따로 초등 학교, 병원, 종교 시설이 있을 정도로 어마 어마한 규모로
커피로 유명한 지역에서 대규모로 차를 재배 하고 있는 것이 의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차 나무’와 ‘커피 나무’는 자라는 환경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다만 한가지 큰 다른 점은
차나무는 어느 정도 영하의 날씨에도 견딜 수 있지만 커피 나무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좋은 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후가 서늘하면서 일교차가 크고
공중습도가 높은 ( 아침에 살짝 안개가 끼면 좋다고 한다) 지역이 최적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커피도 같은 조건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커피가 주로 생산되는 지역이 남미,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에서는 인도네시아,베트남등이다 보니 왠지 덥고 ‘쨍’한 날씨여야 할 것 같았다.
커피로 유명한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카파의 날씨는 적도 부근이라 그런지 햇살은 따갑지만 고도가 높아서 공기는 서늘하고 차가운,
그래서 해가 있는 낮에는 덥지만 밤이 되면 찬물로 샤워하는 것이 공포(?)스럽고
두꺼운 이불이 있어야만 잠을 잘 수 있는 우리나라의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국영 커피 농장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규모라서 살짝 놀랐고
또 이전에 내가 봤었던 커피 농장의 모습과 달라서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다.
전에 베트남 커피 농장에 가 본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내가 전에 봐왔던 전형적인 과수원의 모습처럼
많은 커피 나무들이 오와 열을 나란히 맞춰 자라고 있었고
TV나 사진에 봤던 커피 농장의 모습도 그랬었기에
그냥 ‘커피 농장도 일반 과수원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중간 중간에 커다란 나무들이 서있고 그 밑에 커피 나무들이 있는 것이
멀리서 보면 나 같은 사람은 커피농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은근 커다란 나무들이 많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쉐도우 트리”라고 해서
커피 나무가 그늘 밑 서늘한 곳에 자라야 원두의 맛이 더 좋아지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한단다.
커피 농장이 생기면서 큰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리기 때문에 야생 동물들,
특히 새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디오피아에서는 그런 위험성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렇게 커피 나무들이 커다란 나무들과 함께 있다 보니
제초제를 사용하기는 해도 나무에는 직접 농약을 쓸 수가 없단다,
중간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높고 큰 나무들에도 뿌려야 하니
어마 어마한 양이 필요하고 또 헬기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원두가 그렇게 하면서까지 농사를 지을만한 가격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대형 농장이 아닌 마을에 있는 소규모 자작농들은 비용 문제로 제초제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모두 유기농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나도 어릴 때 시골 농촌에 살았는데 그때만 해도 모든 먹거리들이 전부 유기농이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속도만큼
농약 사용도 빠르게 보편화 되었고 심지어 본인들이 먹을 작물들에다도 농약을 뿌릴 정도였다,
그때는 그 만큼 농약의 위험성을 잘 몰랐다, 어쩌면 잘 몰랐다기 보다는 숨겼을 수도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1662년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통해 농약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니
그 당시 우리나라 학자들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몰랐을 리 없다.
당시 산업화를 위한 저임금의 필요성과
그 저임금의 바탕이 되는 먹거리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일부러 농약의 위험성을 숨겼을 수도 있고
아니면 농약회사의 로비가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이제는 농약에 대한 위험성도 많이 알려졌고 유기농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제초제만 하더라도 누구든지 농사를 짓는다면
몇 시간 동안이나 땡볕아래서 허리 아프도록 김을 매기보다 제초제를 뿌리는 편리함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을 가끔 한다,
모든 것에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먹거리의 경우에는 그것이 우리의 건강이고 생명인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쉽게 살고 싶어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쉽게 돈을 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금 수저로 태어나거나 법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쉽게 돈 버는 방법은 없다,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천명이나 만 명중 한 명은 돈 벌고
나머지는 모두 쪽박(?)차는 방법인 경우가 많다,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천분일, 만분의 일에 희망은 걸기보다
적게 가지고도 행복할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행복한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꼭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행복감’ 혹은 ‘삶의 만족도’에 관련해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 붙이기에는
현재 우리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크다.
- 카파에 있는 국영 커피 농장 풍경들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데 우연히 찾아가게 된 ‘커피의 고향’
나는 그곳에서 커피에 대해서 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었다.
향을 피우며 숫 불에 원두를 볶는 사람들,
중간 중간 커다란 나무들이 여전히 자라고 있는 커피 농장,
자의든 타의든 유기농으로 커피 농사 짖고 있는 사람들,
인간의 기술이 발전 할수록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은 늘 어려운 숙제이며
그래서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너무나 쉬운 방법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욕심을 버리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더 편리한 생활을 누리려 할수록 자연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하고
결국 언젠가는 우린 인간들이 그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 해결책을 알고 있지만 욕심을 버리고 싶지 않기에
그리고 내 세대에는 그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모르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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