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 넓은 밀짚모자. 오래되어 보이지만 소중이 다루어진 듯 여전히 깔끔한 상태다. 손가락으로 쓸어보니 밀짚모자 특유의 까칠거리는 느낌이 손가락 끝에서 간지럽게 느껴진다. 먼지 같은 건 구석구석에도 보이지 않는다. 모자를 손에 올려 가만히 바라본다. 아, 엄마의 머리카락이다. 가느다란 짧은 검정 머리카락을 발견하곤 소중하게 밀짚단 사이에서 끄집어낸다. 여기에 있었다. 엄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로 불쑥 떠나버린 것이 아니였다. 엄마는 여기에 있었다. 이 오래된 모자에. 엄마는, 엄마의 마음은, 엄마의 영혼은 여기에 있었다. 아마도 오래 전부터 계속. 모자를 빙글거리며 돌리다가 내 머리에 썼다. 내 머리에 정확히 꼭 들어맞는 모자. 엄마의 내음이 나는 듯 하다.
아침에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엄마가 끓여뒀던 된장찌개. 목이 메여 먹을 수가 없다. 뚝배기의 뚜껑을 열어봤다가 다시 덮어놓는다. 눈물이 핑 돈다. 왜 엄마는 이렇게 힘겹게 세상을 살다 세상을 떠났을까. 된장 찌개의 냄새가 아직 내 주위를 감돈다.
모자를 깨끗이 닦아내고 내 옆에 둔 채로, 엄마의 앨범을 폈다. 얼른 잊어버리는게 좋다고 주위 사람들이 충고했지만 늘 엄마의 방을 치워낼 수 없었다. 엄마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웃으며,
"다녀왔다. 니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재료 사왔어."
라고 말할 것 같았다. 아, 앨범에 눈물이 떨어져버렸다. 서둘러 손으로 훔쳐냈다. 한 장 한 장, 엄마의 시간을 흘러보내다가 신혼여행 사진에서 눈길이 멈췄다. 아, 이 밀짚모자다. 모자 밑으로 그늘이 드리웠지만 엄마의 표정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보였다. 엄마가 팔짱을 끼고있는 남자는 아버지라는 인간. 그래, 아버지라는 인간이다. 이 때에는 둘이 너무 행복해보인다.
"어이, 당신. 지금 어디에 있어? 엄마는, 엄마는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준 모자 속으로 스며들어 갔어."
혼자서 가만히 중얼거려본다.
언제였더라. 그래, 그 때였다. 이 인간이 도박에 알코올중독에 흥청망청 빠져서는 엄마를 구타하던 나날들 중, 빚을 져놓고 혼자 종적을 감춘 그 날.
"엄마는 그 인간이 원망스럽지도 않아!?"
악에 받친 이 목소리는 내 것. 화가 나고 분해서 씩씩거리며 따졌는데, 눈물에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엉망인 상태로 초점없는 눈으로 날 가만히 응시하며 말하는 엄마.
"그러지마. 그 사람‥ 사실 착한 사람이야."
'그 사람 사실 착한 사람이야.'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온 지금에도 생생한 그 말. 그 때 엄마는 목소리로 답한 것이 아니라 눈물로 답했었다. 눈물로 말을 했었다.
앨범을 덮었다. 차마 더 이상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이렇게 행복한 얼굴, 이 때 이후로는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앨범을 꽂아놓으려고 드는 순간 편지봉투가 하나 떨어졌다.
납골당에서 그 좁은 자리에 나는 엄마와 아버지란 인간의 신혼여행 때의 사진을 액자에 끼워넣어 액자를 세워두고, 엄마의 밀짚모자와 편지봉투를 넣었다. 밀짚모자에는 여전히 엄마의 내음이 나는 것만 같다.
「여보, 당신은 어디에 있는건가요? 아직 대답이 곤란한 상황이라 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겠지요.
여보, 신혼여행 때 당신이 사준 밀짚모자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죽는 날까지 손을 잡자고 하셨지요. 아, 아직도 그 때의 당신 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요.
만약 함께 있지 못할 때에는 그 모자에 자신이 있을거라 장난스레 당신이 말했지요.
그래요, 여보. 만약 당신이 내가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한다면, 전 모자 속의 당신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요.
모자 속의 당신은 웃고 있을 것만 같네요.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보내지는 못합니다. 모자 속의 당신을 곁에 두고 썼으니 전해졌으리라 믿어요」
오늘 백일장에서 쓴 글입니다(......)
주제는 모자였구요(......)
미숙한 글 평 부탁드릴게요 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