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 03 (아르헨티나 vs 사우디)
참 대단한 경기를 봤다. 경기를 보며 '아름답다', '멋지다' 등의 표현을 하지만 내가 ‘대단하다’라는 말을 쓴 경우는 극히 드물다. 축구에서 자주 쓰는 말 중, '점유율은 숫자일 뿐이다.', '공은 둥글다', '축구는 감독 놀음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딱 맞는 경기가 어제 사우디와 아르헨티나 경기였다. 누구도 사우디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촉이 좋다는 도박계에서 아르헨티나의 배당율은 1.1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그냥 아르헨티나가 이기는 경기다. 그런 팀을 완벽하게 이겼다.
어제 경기는 전날 있었던 이란 경기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10분 만에 내준 페널티 킥 실점으로 경기는 아르헨티나가 대량 득점하는 것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사우디는 결코 흥분하지 않았다. 수비를 높게 올려 아르헨티나 공격수가 페널티 박스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다.
그리고 5-4-1 시스템을 유지하며 두 줄 수비 간격이 넓어야 15m를 넘지 않을 만큼 촘촘했고, 무엇보다 수비라인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는 이런 수비를 뚫으려고 소위 라인브레이크 시도했다. 전반 내내 오프사이드를 감수하면서 수비 뒷공간을 노렸다.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킬 패스로 골은 세 번이나 넣었지만 번번이 오프사이드 판정에 걸렸다. 그 중 한 번은 간발의 차이라 할 만큼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단단한 사우디 수비에 막혀 결국 전반은 아무런 소득 없이 1 : 0으로 마무리 됐다.
사우디가 채택한 높은 지역에서 수비라인을 형성하는 것은 발이 빠른 선수가 있는 경우는 매우 위험하다. 뒤에서 침투하는 발 빠른 선수를 놓치면 치명적이다. 그런데 어제 경기 내내 아르헨티나 선수들 중에 사우디 수비를 농락할만한 스피드를 가진 선수를 보지 못했다.
이런 약점을 감독이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후반전 3분 만에 넣은 사우디의 첫 번째 골은 사우디의 행운이었고, 아르헨티나에게는 재앙이었다. 아르헨티나도 첫 번째 골을 먹고 우왕좌왕하지 않았다면 두 번째 골까지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 첫 번째 골을 먹고 아르헨티나 수비진이 붕괴됐다.
사우디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5분 만에 두 번째 골까지 넣었다. 두 번째 골은 사우디 선수의 완벽한 개인 기량에 의한 골이다. 이후는 넣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기 싸움이었다. 마지막 몇 번의 아르헨티나 찬스는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이 선방으로 골키퍼가 결승골 주인공을 제치고 MOM(Man Of The Match)이 됐다. 사실 마지막 아르헨티나의 총공세에서 두 번의 선방이 오늘의 승리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결승골을 넣은 선수를 제치고 MOM이 된 것이다.
어제 경기 점유율 아르헨티나 64, 사우디 24%, 경합 12%다. 경합을 반반으로 나누면 7대 3의 경기다. 그리고 패스 610대 267 점유율을 그대로 반영한다. 패스 성공도 529대 190 이것은 더 심한 격차를 보인다.
이 통계는 결국 아르헨티나는 전진 없이 중원에서 패스를 돌리다가 끝났다는 말이고 사우디 수비의 완벽한 승리를 말한다.
어제 경기를 총평하자면 아르헨티나 공격에 스피드가 없었고, 사우디 팀플레이가 좋았고, 사우디 선수 개인기량이 아르헨티나 선수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승리의 기본적인 요인이었다.
팀플레이가 좋았던 것은 어제 사우디 선발 선수 11명 중 9명이 알 힐랄 소속이다. 수비형 미드필드가 아래로 내려와 5백을 형성하면 수비라인 전체가 알 힐랄 소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니 조직력이 좋지 않을 수 없다. 아르헨티나는 알힐랄 이란 단일 팀에게 진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축구는 감독 놀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경기였다. 아르헨티나의 약점을 파고든 수비전략이 주효했다. 아르헨티나는 10개의 오프사이드를 남발하면서 수비라인을 흩트리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어제 아르헨티나를 보면서 올 시즌 전북을 보는 듯했다. 전북 역시 스피드가 없어 공격이 날카롭지 못해 시즌 내내 고전했다. 겨우 2위를 했지만 내년에 팀 스피드를 올리지 못하면 올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우디가 오늘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16강을 너머 그 이상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상대팀 감독도 바보는 아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할 것이다. 오늘 경기를 보면 아르헨티나는 절치부심할 것이다.
오늘 경기로 아르헨티나가 16강에 먹구름이 꼈다. 멕시코는 첫 경기를 비겼다. 멕시코도 16강 진출을 하려면 아르헨티나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 다음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16강 진출을 위한 단두대 매치가 됐다. 이 경기 결과에 따라 아르헨티나의 조기 탈락이 결정될 수도 있다.
추신 1 : 에르베 르나르 사우디 감독은 벤투와 함께 우리 국가대표 감독후보로 올랐던 3명 중에 하나다. 당시 모르코 감독이었는데 우리나라에 오고 싶어 했지만 계약을 파기할 경우 줘야 하는 위약금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추신 2. 이 경기 MOM으로 선정된 수상사진이 재미있다. MOM 트로피의 스폰서는 버드와이저다. 사우디는 술을 금지하기 때문에 골키퍼 알 오와이스는 버드와이저 상표가 보이지 않도록 뒤로 돌려 찍었다.
추신 3 : 10시부터 경기는 덴마크와 튀니지의 경기였다. 전반만 봤다. 서로 이기려는 의지가 없는 하품만 나오는 경기였다. 그래서 그냥 잤다. 오늘 아침 보니 0 : 0으로 비겼다.
<경기하이라이트>
https://www.fifa.com/fifaplus/ko/watch/69siz461LuamUvMq1WhSf8
<FIFA공식경기통계>
https://www.fifa.com/fifaplus/ko/match-centre/match/17/255711/285063/400235461?country=KR&wtw-filter=ALL
첫댓글 사우디가 월드컵 역대급 이변을 만들어냈네요...
메시와 이별할 때가 왔는가 봅니다 ㅡㅡㅋ
경기 전체를 본 건 아니지만...
전반전 아르헨의 3골 오프사이드 판정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ㅋ
저도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을 보며 MOM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폰서인 버즈와이저가 카타르에 맥주를 공수했는데 못마시게 하는 바람에
대신 우승국가에 제공하겠다 하더군요
축구와 맥주가 어떤 관계인데...ㅋ
그 덕에 더욱 광고가 된 듯 합니다만...
사우디의 승리덕분에 왠지 우루과이전이 기대가 되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