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암산에서 바라본 가득봉
안보면 조부비고
보면 설미 어인 일가
무섭도 안컨마는
만나서는 못 대들고
떠나면 그리울 일만
앞서 걱정 하왜라
――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 1890~1957), 『백팔번뇌』의 ‘궁거워’ 제9수
주) 육당 최남선이 읊은 임은 우리에게는 산이 그러하다. ‘조부비’는 초조(焦燥), 민박(悶迫), ‘설’은 읽지 않음,
생소의 뜻이다.
▶ 산행일시 : 2021년 3월 21일(일), 흐림, 눈, 찬바람
▶ 산행인원 : 2명(메아리, 악수)
▶ 산행시간 : 7시간 54분
▶ 산행거리 : 도상 14.4km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타고 홍천에 가서(요금 7,400원), 현리 가는 시외버스 타고 미다리에서
내림(요금 6,200원)
▶ 올 때 : 현리에서 오는 시외버스를 와야리에서 타고 홍천에 와서(요금 5,200원), 홍천에서 시외버스 타고 동서
울터미널로 옴(요금 7,400원)
▶ 구간별 시간
06 : 4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0 - 홍천(08 : 00 미다리 경유 현리 가는 시외버스 탐)
08 : 40 - 미다리, 산행시작
09 : 17 - △673.0m봉
09 : 38 - 자작나무 숲
09 : 52 - 738.2m봉
10 : 04 - 임도
10 : 32 - 969.4m봉
11 : 07 - 가득봉(可得峰, △1,057.7m)
11 : 20 - 임도, 안부
11 : 30 - 1,030.9m봉
12 : 00 ~ 12 : 27 - 임도, 안부, 점심
12 : 58 - 1,090m봉, ┣자 영춘기맥 갈림길
13 : 11 - 백암산(白岩山, △1,097.1m)
13 : 27 - ┫자 갈림길
13 : 43 - 안부, ╋자 갈림길
14 : 30 - 884.8m봉
14 : 52 - △878.0m봉
15 : 05 - 880m봉
15 : 46 - 674.0m봉
16 : 23 - 도로, 솔밭교
16 : 34 - 와야리 버스정류장, 산행종료(17 : 28 홍천 가는 버스 탐)
18 : 02 - 홍천, 저녁(19 : 30 동서울 가는 버스 탐)
20 : 35 - 동서울터미널, 해산
2-1.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가득봉, 어론 1/25,000)
2-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백암산, 어론 1/25,000)
2-3.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가득봉, 어론 1/25,000)
▶ 가득봉(可得峰, △1,057.7m)
산꾼에게는 홍천에서 내촌과 와야리, 미다리, 방아다리 등을 경유하여 현리 가는 시외버스가 무척 고맙다. 도중의 버
스정류장 어디에 내려도 근처의 준봉들을 곧바로 오를 수 있다. 08시 버스 출발시간도 알맞다. 동서울에서 06시 40분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면 1시간 정도 걸리니 약간의 여유가 있어 홍천터미널에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편의점에서 물
이나 탁주 등도 살 수 있다.
오늘 아침 버스승객은 메아리 님과 나 둘뿐이다. 중간의 정류장에 타는 사람이 없어 직통으로 간다. 이 큰 버스를 대
절한 셈이다. 미다리(美橋)까지 41km, 택시를 탄다면 그 요금은 55,000원 정도 든다. 버스는 내촌(乃村), 와야리(瓦
野里)를 지나고 영춘(寧春)기맥의 준령인 아홉사리고개(아홉고개)를 넘는다. 이름 그대로 굽이굽이 구절양장인
고개다.
미다리. 지형도의 지명에는 미교(美橋)로 나온다. 내린천 상류로 ‘작은 다리가 많아 미교’라고 한다. 미다리는 휑한 들
판에 농가 서너 채만 눈에 띈다. 농가 마당을 지나서 내린천(상류라서 개울 수준이다)을 징검다리로 건너 옹벽을 오르
고 너른 빈 밭을 가로질러 산속에 든다. 덤불숲 누비다가 오래된 임도를 만난다. 어쩌면 옛적 가득봉 등로인 줄도 모
르겠다. 지주목 밑동이 썩었지만 밧줄 핸드레일이 있고, 막다른 골짜기에서 가파른 사면을 오를 때는 통나무계단 흔
적도 있다.
가득봉을 한두 번 오른 것은 아니지만 오를 때마다 새롭다. 등로를 달리하고 계절을 달리하면 또 다른 가득봉이다. 재
작년 겨울에는 첫눈을 맞으며 방아다리에서 그 동릉을 올랐다. 오늘은 미다리에서 그 남릉을 오른다. 대기가 무척 쌀
쌀하다. 손이 시리고 귀가 시리다. 때로는 아내 말도 들었어야 했다. 그렇게 홑옷차림으로 갔다가는 아마 혼쭐이 날
거라는 염려를 귓등으로 흘렸으니, 미리 말하자면, 온종일 오들오들 떨었다.
하늘은 금방 눈이라도 뿌릴 듯 우중충하더니만 그예 싸락눈 뿌리기 시작한다. 춘설이다. 그 눈발로 사방이 흐릿하고
어둑하다. 하긴 이런 순탄한 등로에 날씨라도 궂어야 산행하는 맛이 나지 않겠는가 하고 스스로 다독인다. 오래 된 송
전탑 운재로는 능선 마루금으로 났다. △673.0m봉. 운재로에 비켜 있어 잡목숲 헤치고 들른다. 삼각점은 ‘어론 464,
1985 복구’이다. 운재로는 약간 내린 안부에서 왼쪽 사면으로 방향 틀어 내리고 우리는 직등한다.
긴 오르막이다. 어둑하던 주위가 갑자기 환해진다. 자작나무 숲에 들어선 것이다. 화촉(樺燭)을 무수히 밝혔다. 장관
이다. 이 광경으로 해서 오늘 하루 산행의 보람은 충분할 것 같다. 자작나무(Betula platyphylla var. japonica
(Miq.) H. Hara)는 예로부터 쓸모가 많았다. 기름기가 있어 불을 밝혔고, 재질이 단단하여 팔만대장경판의 재료로
도 사용되었고, 껍질은 종이대용이나 갓을 만드는 데도 썼다. 『莊子』 (제28편 讓王 제10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
온다.
공자의 제자 원헌(原憲)이 살고 있는 집에 어느 날 역시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子貢)이 큰말이 끄는 수레(軒車)를 타
고 감색 속옷에다 흰색 겉옷을 입고 찾아왔는데, 수레가 좁은 뒷골목에 들어올 수가 없어서 걸어가서 원헌을 만났다.
이때 원헌은 머리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갓을 쓰고 뒤꿈치 없는 신을 신고 명아주지팡이를 짚고 문에 나가 마중
하였다.
(子貢 乘大馬 中紺而表素 軒車 不容巷 往見原憲 原憲 華冠縰履 杖藜而應門)
자공이 선생은 어찌 이리 병들어 보이십니까 하자, 원헌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말하고 도를 배우고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병든 것이라고 한다.”고 들었다며 자기는 가난할지언정 병든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은 들은
자공이 뒷걸음질 치며 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子貢曰 嘻 先生 何病 原憲 應之曰 憲 聞之無財 謂之貧 學而不能行 謂之病 今 憲貧也 非病也 子貢 逡巡而有愧色)
3. 등로 주변의 낙엽송 숲
4. 738.2m봉 오르는 길의 자작나무 숲
5. 자작나무 숲
6. 738.2m봉 왼쪽(서쪽) 사면이 온통 자작나무 숲이다
7. 눈발 날리고 하늘은 우중충하여 어둑하다
8. 찬바람 불어 상고대 서리꽃이 피었다
자작나무 숲 바로 옆에서 휴식한다. 이 가경을 안주 삼아 탁주 마신다. 자작나무 숲은 738.2m봉 서쪽 사면 전반에 걸
쳐 있다. 738.2m봉을 길게 내리고 산허리 도는 임도와 만난다. 이곳저곳 절개지가 흙 절벽이다. 나무뿌리 붙잡고 기
어오른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천지가 소란스럽다. 나뭇가지 훑는 바람소리에 귀가 멍멍해진다. 상고대 서리
꽃이 움튼다. 오를수록 등로 주변은 서리꽃이 화려하다. 산중화원 그 원로를 간다.
첨봉인 969.4m봉에서는 사면으로 바람 피해 휴식한다. 바람이 멎으면 천지가 적막하다.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
전에 의하면 이 산에 약초와 산채가 많이 난다 하여 가득봉이라 한다. 그런가 하고 가파른 사면을 누비며 오른다. 가
득봉. 사방에 키 큰 나무숲 둘러 조망은 없다. 삼각점은 2등이다. 어론 23, 1989 재설.
▶ 백암산(白岩山, △1,097.1m)
가득봉에서 나침반을 다시 한 번 들려다 보고 서진한다. 일목일초가 서리꽃 곱게 피웠다. 등로 살짝 벗어나 되똑하니
솟은 바위가 여느 때는 경점이었는데 오늘은 캄캄하다. 야트막한 안부는 임도가 지난다. 이 임도는 우리가 1,030.9m
봉과 993.5m봉을 넘어 내릴 안부와 만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로직등 한다. 산죽지대다. 눈에 젖은 산죽 숲이라 바
지자락이 금방 흠뻑 젖어 다리에 감긴다.
1,030.9m봉 넘고 왼쪽 사면은 벌목하여 밀지울 깊은 골짜기로 시야가 트인다. 993.5m봉에서 뒤돌아 바라보는
1,030.9m봉 정상 주변은 온통 하얀 서리꽃이다. 북사면 내리막은 빙판이다. 땅거죽만 녹았다. 쭉쭉 미끄러진다. 아
무렴 다치지 않도록 넘어질 일이다. 산죽 숲길이 애매하다. 발로 더듬어 간다. 완만하여 임도가 지나는 안부에 내려선
다. 바람 피해 점심자리 편다. 이런 날은 김밥 또는 떡 등의 행동식이 제격인데 습관대로 보온도시락을 싸왔다.
백암산 가는 길. 아홉사리고개에서 오는 영춘기맥과 함께 간다. 산죽 숲이 이어진다. 눈물(雪水)에 젖은 산죽 숲을 피
해 멀리 생사면으로 돌아 오르기를 반복한다. 춘설이 분분히 날린다. 얼굴 들어서 맞는다. 정지용의 춘설처럼 ‘먼 산
이 이마에 차라’다. 눈은 쌓이지 않고 바로 녹는다. 1,090m봉. ┣자 갈림길 오른쪽은 영춘기맥이 문내치 지나 가마봉
으로 간다. 산중에서 갈림길에만 서면 한참 망설이기 일쑤다. 갈 길을 몰라서가 아니다. ‘가지 않은 길’이 더 가고 싶어
서다. 그 길로 가면 이 길이 또한 그러할 텐데.
백암산 정상을 가기 전 왼쪽 산죽 숲을 헤쳐 벌목지대로 다가간다. 백암산 최고의 경점이다. 날이 맑으면 방태산은 물
론 오대산 연릉과 계방산까지 보이는데 오늘은 캄캄하다. 가득봉을 흐릿하게나마 보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백암산.
홍천군에서 화강암의 커다란 정상 표지석을 세웠다. 그 옆의 삼각점은 ‘어론 427, 2005 재설’이다. 어디로 내릴까?
이대로 가령폭포 쪽으로 내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백암산에서 가령폭포로 내려 백암교 앞 와야리 버스정류장까지 도상 4.2km이다. 1시간 30분이면 해찰하고도 넉넉
할 것이다. 그래서는 일당이 빠지지 않는다. 메아리 님은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플랜 B’를 준비했다. 백암산 정상에
서 서진하여 가족고개 쪽 능선을 타다가 가령쉼터로 내리자는 것. 여기는 도상 7.3km다. 덕순이는 만난다면 현리에
서 오는 와야리 버스시간 17시 25분께에 얼추 맞출 수 있다.
9. 앞의 골짜기는 밀지울로 이어진다
10. 등로 주변의 상고대
11. 벌목한 산등성이에 남겨둔 소나무 모수
12. 뒤돌아본 1,030.9m봉
13. 백암산, 왼쪽의 항공장애등 옆이 정상이다.
14. 백암산에서 바라본 가득봉
15. 아홉사리고개에서 오는 영춘기맥
밤까시 쪽에서 오는 등로라 잘났다. ┫자 갈림길. 직진은 여러 산행표지기를 몰고 가는 잘난 길이고, 왼쪽은 인적이 흐
릿하다. 지도 자세히 읽어 왼쪽으로 간다. 노란색의 국방부 경계표지와 감마로드 표지기가 안내한다. 골로 갈 듯이 가
파르게 떨어지다가 안부인 밤까시 갈림길에 이른다. 여러 산행표지기가 안내하는 직진은 돌아가지만 부드러운 길이
었다. 이정표에 ‘지방도 451(밤까시) 3.4km’이라는 갈림길을 지나면 인적도 산행표지기도 조용하다.
11년 전 이맘때 왔던 길이다. 그때는 답풍리에서 매봉, 백우산을 넘고 가족고개 지나 백암산을 왔었다. 강산이 변했음
은 당연하다. 낯선 길이다. 바람꽃이나 복수초가 피었을까 양지바른 사면을 쓸어보지만 빈 눈이다. 남쪽지방에는 이
미 얼레지, 깽깽이풀, 할미꽃 등이 한창이고, 지난주 캐이 님은 연인산에서 너도바람꽃을 부럽도록 보았기에 자못 기
대했는데 여기는 지배(地背)를 뚫을 듯 아무리 살펴도 푸른 새싹조차 보이지 않는다.
긴 오르막 끄트머리는 884.8m봉이다. 조금 더 간 880m에서 ┫자 능선이 분기한다. 생각보다 빨리 와버렸다. 직진하
는 가족고개 쪽 능선의 △878.0m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왕복 1.2km다. 부드러운 산길이다. 능선은 방화선처럼 트였
다. 이때는 눈 그치고 바람은 자고 봄날을 간다. 좌우사면 멀리까지 기웃거리며 간다. △878.0m봉. 키 큰 나무숲이 사
방에 빙 둘렀다. 삼각점은 ‘어론 310, 2005 복구’이다.
정상 주변은 숫제 쓰레기장이다. 빈 페트병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군인들인 그랬다. 군인들의 비닐 식량봉투와 함께
널려 있다. 웬만하면 산중에서 쓰레기를 줍는 메아리 님도 여기에서만큼은 포기한다. 880m봉으로 되돌아오고 남진
한다. 중간목표가 674.0m봉이다. 거기로 가는 능선을 꼭 붙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지도에 눈을 박고 가다가도 능
선을 지나쳐 내리다 깜짝 놀라 뒤돌아 오른다. 두 번이나 그런다.
가파르고 길게 내리뻗다가 잠시 주춤한 674.0m봉이다. 정상 한가운데 무덤이 있고, 주변의 나뭇가지에 산행표지기
세 장이 달려 있다. 만산동호회와 KBS 아침마당에 출연했고 18,651개째 산이라는 文政男, 10,000 산을 향한다는 金
信元의 그것이다. 이다음은 460.9m봉이다. 여기도 어렵다. 674.0m봉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서 내렸어야 했는
데 곧장 남진하여 절벽 비집었다가 골로 가고 수직사면을 트래버스 하여 능선 잡는다.
460.9m봉은 둘레길(?)이 났다. 좌우사면에 밧줄 핸드레일 달린 잘난 등로가 오간다. 우리는 직진한다. 잠시 꽃길을
간다. 진달래와 생강나무, 올괴불나무 꽃이다. 잘 다듬은 무덤 지나 농로로 내려서고 곧 솔밭교 앞 도로다. 도로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와야리 버스정류장이다. 와야리 유래를 쓴 안내판이 있다.
“오랜 옛날 이(李)씨 성을 가진 부자 12명이 기와집을 12채 짓고 살았는데 기와를 굽던 곳이므로 기와골이라 하고 기
와 와(瓦)자를 넣어 와야(瓦野)라 한다.”
홍천 가는 버스가 오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노느니 장독 깬다고 이것이 탈이다. 백암교 아래 개울로 내려가 버들개
지와 포말 이는 물 구경하다가 바위에 미끄러지며 풍덩 빠지고 정강이를 바위 모서리에 피나게 찧고 만다. 그전에 메
아리 님은 백암산을 내리던 중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면서 국방부 경계표지에 정강이를 세게 부딪쳐 역시 피가 났
다. 절룩거리며 바람막이 한 버스정류장에 들어가 조신하게 버스 기다린다.
16. 밤까시 갈림길 지난 등로 주변의 낙엽송 숲
17. 노송 숲도 지난다
18. 생강나무
19. 생강나무
20. 와야리 백암교 아래 수하천
21. 아기범부채
첫댓글 ㅎㅎ 무척 아팠겠습니다.
노느니 장독깬다는 표현이 첨 듣는 표현인데 재미있습니다^^
ㅎㅎ 온종일 추위에 고생많으셨습니다...그래도 3월말에 상고대꽃도 보고, 눈도 맞아보고, 홍천단골식당에서의 거시기주와 함께한 뒷풀이도 좋았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