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 5
한 번도 땡땡이 친 적이 없다는 남편이 알마티 문화를 탐방코자 용감히 실행에 옮겼다. 범생인
그가 변한 것이다. 모든 발표를 다 들어야 된다는 의무감이 줄어서 일까, 차기 연구회에 불참할 가능성이 높아서 일까, 지난 4일 동안 끊이지 않는 사람들과의 접촉에 지쳐서 일까, 이 모두 나이
탓일 거다.
여행지의 음악회를 기꺼이 찾아 즐기는 그가 공연기간에 빗나가 있는 체류를 애석해하며 시내관광지도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하나씩
선택했다. 하루 종일 서 있거나 걷는 일정이니 초장에 걸음을 아껴 힘을 비축해야 한다. 호텔에서 먼 미술관은 지하철로 간 다음 도보로 박물관을 거쳐 돌아오기로 했다.
알마티의 명물이 된 단 하나의 지하철은 아직도 건설 중인데 호텔 옆에 역이 있었다. 입구
계단을 내려갔다.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사통팔달 흐르는 통로를 잠시 지나니, 탁 트인 공간에 소련식의 챙이 높은 모자를 쓴 경비원이 우리를 감시하듯 앉아 있었다. 타러 온 승객은 우리 밖에 없었다. 가리키는 왼쪽 뒤에 매표소가
있었다. 물어볼 새도 없이 매표원이 종이에 600이라고 써서
보여주었다. 교환한 토큰을 넣으니 승강장 접근 자동문이 열렸다. 곧
이어 아주 깊숙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양 옆으로 붙어 있는 광고에 어쩜 그리 우리와 닮은
모델들인지 이상한 글자만 빼면 완전 우리나라 포스터였다. 서울보다 폭이 좁아 보이는 깨끗한 열차에는
몇 명만 서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벌떡 누군가가 일어났다.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청년 둘이 우리에게 양보한 것이다. 겸연쩍으면서도
신신했다. 이 곳에서도 노인우대사상이? 고려인의 영향일까?
전통 텐트 모형의 대형 서커스 공연장을 지나 무성한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 웅장한 건물이 국립 미술관이었다. 으레 소장품이 많지 않으리라는 지레짐작과는 달리 한없이 계속되었다. 23,000
점을 보유하고 있는 제일 큰 미술관인 줄 몰랐다. 2시간이 넘으니 다리가 아프고 시장기가
솟았다.
그림들이 의외로 강렬한 색채가 많았다. 태양 보는 날이 많아서일까 이유가 궁금하다. 거친 붓놀림이 역동적인 말과 기수의 생동감을 극대화한 마상도가 인상적이었다.
삭막한 황야에서 살아남고자 사투하는 유목민의 삶이 살짝 향수를 불러들이는 듯했다. 웬만한
여자들도 말을 잘 탄다는 카자흐이지만 “소녀의 납치”. “불행한 신부”가
마음을 울린다. 그 때나 이 때나 여전히 존재하는 힘없는 약자들. 속수무책으로
마음만 저리는 무력감. 염세주의자가 아니 될 수 없다. 엄청난
화폭에 노동 찬양을 목적으로 노동자들과 그들의 도구가 미화된 그림들이 큰 방의 사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주어진
주제만을 그려야 하는 공산주의 어용화가들의 운명이 새삼 안타깝다. 완전히 지쳐서 출구를 향하던 중, 지도자 동무들의 초대형 초상화들이 복도 양 면에 걸려 있었다. 훑으며
휙 지나가는 이 순간의 기쁨. 그 맛, 최고였다.
늦은 점심을 미술관 앞 정원, 분수가
뿜어 올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긴 의자에 앉아 먹었다. 아침 뷔페에 나온 빵과 월요일 장에서 사온 치즈로
만든 샌드위치였다. 한 낮의 뜨거운 열기가 갈 길을 재촉했다. 거리
구경도 할 겸 멀지 않은 국립 박물관까지 예정대로 걷기로 했다.
시청에서 경복궁에 이르는 대로처럼 넓은 대로변은 특별히 시선을 끄는
바가 없었다. 오전 피로에 뙤약볕에 식곤증에 커피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삼분의 일 거리쯤에서 들어간 커피점은 식당을 겸하고 있었다. 빈
식당 안에 차도르를 쓴 여주인이 말이 안 통하니 중학생 아들을 불렀다. 가리키는 개수대를 보니 그릇이
가득 쌓여 있었다. 단수라서 설거지도 못 하고 있다. 커피를
못 만든다. 냉장고 유리문 안에 진열된 아이스 티 밖에 없다고 한다.
쉬어 갈 요량으로 건물 끝 실외 양산 밑 의자에 자리잡고 마시고 있었다. 문득 삥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오븐이 바로 뒤에 있었다. 갓 구운
빵을 먹고 떠나자는 의견에 이구동성 순식간에 활기가 넘쳤다. 얼마 안 되어 주인이 와서 판을 꺼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잘 구워진 빵 십여 개가 진한 빵 냄새를 풍겼다. 군침이
돌았다. 손가락으로 달라했는데 또 아들을 불렀다. 그 나이에
그 정도 영어가 되는 것은 이 곳 영어교육이 좋다는 의미이고, 주문이행과 계산을 거뜬히 해 내고 만족스런
웃음을 짓는 그 아이 자신은 물론 아들 덕을 벌써 보는 부모는 얼마나 뿌듯할까! 속에 감자가 든 빵이었다. 맛이 최고였다.
그 정도의 충전으로 피곤한 몸이 원상복구 되지 않았다. 반짝 커피가 더 절실해졌다. 핑계 삼아 지난 일요일에 들른 공화국
광장에 이르러 지하로 내려갔다. 읽은 정보대로 극장, 식당, 카페, 유명 브랜드 매장을 갖춘 최신 상가 같았다. 느긋이 마냥 있다 저녁 먹고 가도 좋겠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볼까 용기를 내어 일어났다.
오전처럼 전시품이 많을까 봐 우려했더니 다행히 소규모였다. 단지 촬영금지가 유감이었다. 입구 정면 확 트이고 둥그스름한 대합실에 서기 전 5~6 세기로 추정되는 금제 투구와 금제 갑옷을 입은 황금 인간(golden
Man)이 전시되어 있었다. 같은
금 문화권에 속한다는 5~6 세기 신라 금관보다 천 년 앞선 유물인 것이다. 유목민 생활이 엿보이는 천막(yurt)이
설치되어 있었다. 작은 양탄자가 여기 저기 깔려 있고, 한
가운데 둥그런 식탁이, 구석엔 작은 침상이 있었다. 천막
지붕을 가로지르는 길고 넓은 띠들이 천정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처음부터 눈길을 끈 양탄자나 건축 장식의
복잡하고 독특한 문양이 띠에도 있었다. 이슬람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남녀
전통 의상, 장식품의 세공, 길쌈하는 여인들의 모형, 손바닥 크기의 지폐 등 흥미진진한 문화 맛보기였다. 극기 훈련 관광을 이번에도 해내었다는 자긍심이 서늘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골목길을 찾으며 돌아가는 길에서 나쁘지 않았다.
이튿날은 23시에 호텔을 나와 비행장으로
가는 일정이라 오전엔 쉬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대학원생이랑 근처 찾아 들어간 곳은 식당이라기보다는
밤에 술 마시며 안주 음식을 내놓는 바 같았다. 늘씬늘씬한 여자들이 나오는 비디오 음악이 대형 티브이를
통하여 흐르고 있었다. 칸막이 대신 등이 높은 긴 의자가 앞 좌석이 없는 듯 안락하고 오붓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예쁜 대학생 같은 여종업원이 주문을 받아 갔다. 데이트하기
딱 좋은 이 장소에서 꼬시려고 애쓰는 자는 누구이며 꼬심에 넘어갈 자는 누구인가 사랑이 변할 거라는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살고 보니 그것도 한 때인걸 왜 그렇게 아웅다웅 대물림 할까. 청춘이여
행복하든 불행하든 많이 즐기시라. 나와는 별세계, 잡스런
생각을 떨쳐 버리자. 수프와 구운 치즈 샐러드는 맛 있었다. 유리창문은
언제나 분위기 창출 일등 공신이다. 창가에 앉아 에어컨으로 시원한 실내 화분 사이로 뜨거운 바깥 나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여인, 익히 익힌 영화장면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최근 개방되었다는 모스코바 역을 보러 지하철을 탔다. 이번에도 누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어찌 그리 티가 날까! 밖으로 나오니 널찍한 도로에 산만한 건물이 외곽 분위기였다. 동네로
들어가니 흙길도 있었다. 연립주택은 낡아 보이고 넓은 맨 땅 운동장에서 햇빛에 그을린 애들이 몇이서
소리 지르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시내중심가와는 달리 후진국 수준이 느껴졌다. 허긴 시내 길거리에서 고물차가
심심찮게 다니고 오래된 우측 운전대 차를 두 개나 보고 놀랐었다. 운전석의 위치를 가리지 않고 중고차를
수입하던 가난했던 시절의 잔재가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행인이 손을 들고 있으면
지나가던 승용차가 멈추는 것이었다. 방향이 맞으면 태워주고 돈을 받는 것 같았다. 내릴 때 돈을 내는 사람도 몇 보았다. 반면 택시나 버스가 흔하지
않았다.
뙤약볕 때문인지 여행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만사 귀찮다 모드에 잠기려
했다. 이제까지의 가능한 많이 보기 욕망과 많이 다니기 원칙을 버리고 모처럼 호텔방에서 푹 쉬었다. 이 나이에 넘치면 그만큼 길어질 여행 후유증이 엄습하며 겁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댓글 여행기 너무 좋으네. 경위야!
고마워.
이 까막눈이 ...전철티켓인지 ..광고진지
구별 이나 할까 나 마나..
그래도 읽을수있는 그림하나가
맘을 기쁘게 해주네
그림들도 보던 그림과 차이가
참 많이있네
숲속 풍경화도 참 이색적이고
경위의 여행 기록기 참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어요.사진도 좋구요
그림이 한국것과 많이 비슷하네..
땡땡이...네가 옆에서 구경하고 다니는거 보니 클래스에 너무 흥미를 잃어 버린거 아냐? ㅎㅎ
저게 전철역이야? 모스코바의 전철역 같이 특이하고 아름다운 곳이 없던데...
오죽하면 관광에 지하철역이 포함 되어 있을가.. 의미도 좋고 아름답고...
너무 재미나게 잘 읽고 있어 ~ 그런데 다음날 비행장으로 간다고 ? 여행기 끝날가바 엄청 섭하네 ~
그런데 저 책 표지 "황금 천막에서 부르는 노래" 는 왜 여기 있어 ?
그 바로위 작품은 신 니꼴라이 화백 분위기네 ㅎㅎ 그분은 우즈베키스탄 인 인데 ~
그러니까 "아바이 "는 카자흐스탄 최고 시인이고 그의 작품, "황금 ..."이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어 있다네요. 그 중 한국어 번역이 대표로 전시되어 있어서... 무지 반가왔죠. 알마티 거리 이름은 유명인 이름을 따서 "아바이" 가, "고골"가, 등이 있었어유.
저 여인은 노숙인 ? ㅉㅉ
"소녀"였었어유. 근데 그 풍이 스페인 화가 murillo 가 연상되어서......
@경위 대단히 세그시허유...
그게 숭실대학에서 만든 문예 총서야.. 아마 한 교수가 번역한거 같아?
알마티 라는 나라는 처음 들어보는데, 볼것이 이렇게 많아?
그동안 올라온것도 차근히 못 읽었는데
하루 날 잡고, 잘 읽어야지
좋은 여행 축하해
손녀 실비가 컴의 g 빼 놓아서, g ㅎ 칠때 잘 해야해~~~ ㅎㅎㅎ
카자흐스탄의 대장정이 끝나면 후속편이 기다리고 대기하고 있겠지요? 여행지가 잡히지 않았으면 에필로그라도...
ㅎㅎㅎ 유섭이 물귀신 작전.. 괜찮네..
친구들 읽어주어 고맙고, 바쁜 중에도 답글 써 주어 더욱 고마워요~~~ 아무리 혼자만을 위해 쓴다 해도 역시 칭찬이 춤추게 하거든.. ㅎㅎ
1주 여행하고 1달 회상하며 살았네... 느긋이 쓰다보니 그냥 시간이 휙 ~ 작가들 마감시간에 쫒기면 굉장히 괴롭겠어....ㅎㅎ
원정 씨는 문장이 잘린다 했는데 왜 그렇까? 워드로 써서 복사 , 붙이기 한 건데....
여기서 ? 여기는 잘 보이는데 ~ ㅎㅎ
저기 노숙소녀 ? 는 발바닥이 닮았구먼 ~ ㅎㅎ
친구 덕에 . . .
고마우이 칭구
정말 수고하셨네요.
쓴사람의 노고가 늘 묻어 있었음에도, 나는 그져 짬짬이 드러와 읽으며,즐감하며,알타미라는곳이 이런곳이구나하며 지식도 늘이고 상상과 마치 나도 칭구와 함께 한듯 생생 했지요.이젠 여행기를 출간하셔도 될정도로 베테랑이 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