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읽기 / 모란꽃 이야기
모란꽃은 꽃 중의 왕(花中之王)이라고
일컫는 만큼 모양이 훌륭해서 부귀화(富貴花)라고도 부른다. 그림에
모란꽃이 있으면 “부귀”로 읽으면 된다. 거기에
해당화와 목련(木蓮, 玉蘭花)이 곁들여 있다면, 모란꽃의 부귀와 목련의
옥(玉)과 해당화의 당(堂)이 함께 읽혀서 부귀옥당(富貴玉堂,
귀댁에 부귀가 깃들기를…)으로 읽는다.
이 뜻을 위해서 목련은
4월, 모란은 5월, 해당화는 6월에 피는 생태적 사실은 무시되었다. 그러므로
모란꽃만 그려 놓고 부귀옥당이라고
쓴 그림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간혹
한식당 등에 걸어놓은 그림중에 그러한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모란꽃 그림에 나비를 그리지 않는다고 알고 있고, 그 이유가 모란꽃에는
향기가 없어서라고 하나, 주의 깊게 모란꽃을 관찰해 본 사람이라면
이 꽃에 향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당나라 위장(葦莊)의
백모란을 읊은 시에서 “지난밤 달은 물같이 밝아, 뜰에 오자 선뜻 오는
그윽한 향기(昨夜月明深似水 入門唯覺一庭香)”라 하며 모란의 향기를
상찬하였다. 분명히 모란꽃에는 향기도 있고, 벌과 나비도, 또 꽃등에도
가끔 날아 온다.
단, 모란이 피는 계절이 5월 초(양력 5월 5일부터
10일 경)이기 때문에 아직 벌 나비가 많은 때가 아니라서 모란꽃에 나비가
앉은 모습을 보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향기가 없다고 알고 있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선덕여왕의 영민했던 세 가지 일화(善德王 智機三事)의 내용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당나라 초에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빨강색, 자주색, 흰색의
세 가지 색이 있는 모란꽃 그림과 함께 그 종자를 한 되 씩 보냈는데,
이를 본 선덕여왕이 신하들에게 이 씨앗을 심으면 반드시 향기 없는
꽃이 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이 씨앗을 정원에 심어서 꽃을 피워
보았더니 과연 예언과 같았다는 것이다.
뒤에
신하들이 어떻게 이 일을 미리 알았느냐고 묻자 선덕여왕이 말하기를,
당 태종이 보낸 모란꽃 그림에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면서, 이것은 당 태종이 나에게 배우자가 없음을
조롱한 것이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선덕여왕이 남달리 총명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전에 석연찮은
생각이 먼저 든다. 당 태종은 동양의 알렉산더로서, 동양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왕으로 기록되는 사람이다.
그는 정치, 군사,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면에서도 뛰어난 소양과 안목이 있어서 성당시대(盛唐時代)를
재촉하여 당시대를 동양의 르네상스시대로 만든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조선 3대왕 태종도 이런 당 태종을 흠모하여 죽음에 임박하여는 이례적으로
묘호(廟號)을 태종으로 해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다.
이렇게 훌륭한
당대의 영웅이 조그만 신라국의 여왕이 결혼하지 않은 것을 조롱하기위하여
화가에게 나비를 빼고 그리라고 체신없는 주문을 했을 까는 생각해 볼
문제다.
당시에
이미 중국에는 모란꽃에 나비를
곁들여 그리지 않는 법식이 있었다. 왜냐하면 나비를 그려 넣게 되면
모란꽃이 부귀, 나비가 질수(老+至=질壽, 80세)를 뜻하기 때문에 부귀질수(富貴질壽,
80세가 되도록 부귀를 누리다)의 뜻이 되어 의미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힘들여 나비를 그려 가지고 그리지 않음만 못할 바에야 그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에 고양이를 함께 그릴 때는 나비도
그린다. 모란에 나비만을 그리지 않을 뿐, 모란과
고양이와 나비 이 셋을 함께 그리는 일은 흔하다는
말이다. 이 셋을 함께 그리면 모란꽃은 역시 부귀, 고양이는 모(老+毛=모,
70세), 나비는 질(老+至=질, 80세)이 되므로 부귀모질(富貴모질,
70~80세가 되도록 부귀를 누리다)의 뜻을 갖는다. 결국 오래도록
장수하며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고양이를 그리지 못할 사정이 있으면 나비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모란꽃에
바위만 넣어 배치하여 바위의 수(壽)와 함께 부귀수(富貴壽)의 뜻이
된다. 이를 더 좋은 문구가 되도록 하려면 모란꽃을 크게 그리고는 대부귀역수고(大富貴亦壽考,크게
부귀를 누리고 장수하여 천수를 다하다)로 화제를 붙이면 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모란에 나비만을 함께 배치하여 그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중국의
그림 그리는 법식을 선덕여왕이 잘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이 사실을 기록한 고려의 일연(一然)도 그림 읽기의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그대로 써 놓은 것 같다.
심지어 뒷부분에
당 태종이 그려 보낸 모란꽃 그림에 홍(紅), 자(紫), 백(白) 세 가지
꽃이 그려져 있었던 것은 신라국에 선덕·진덕·진성 세
여왕이 나올 것을 예측한 당 태종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라고 평한
것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또 문일평(文一平) 선생이 <화하만필(畵下漫筆)>에서
“한국의 화가들이 모란꽃을 그릴 때 나비를 그리지 않는 것은 선덕여왕의
영민함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논한 것은 필자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면
뜰에 심었더니 과연 선덕여왕의 말과 같이 향기 없는 꽃이 피었다는
부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당시
중국에는 원예술이 매우 발달하여 모란꽃의 변종만도 300여 가지나 되었다고
한다. 또한 원예에 대한 일화도 많다. 한 예를 들면, 문장가 한유(韓逾)가
어린 조카를 맡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조카는 통 공부에는
뜻이 없고 화초 가꾸기만을 즐기므로 급기야는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려 보내게 되었다.
하직 인사를 하고 난 조카가 마침
오월이었던지 뜰에 있는 모란꽃 봉오리를 만져 놓고 떠났는데 조카가
떠난 후 피어난 꽃잎에 한유가 어렸을 적 고향을 떠나올 때 지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믿기는 어렵지만 그 당시 원예술이 매우 발달했고 원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일화이다.
그런데
육종(育種)의 방법으로 옛날에는 교배에 의해 변종을 많이 만든
다음 기대에미치지 못하는 것은 도태시키는 “선택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꽃이 크고 화려한 것까지는 결합시켰는데 거기에 향기가 좋은
형질은 배합시키기까지는 못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향기 없는 꽃이
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당 태종
때에 개량된 크고 화려한 모란꽃 품종 중에 빨강, 보라, 흰색 세 가지를
마침 동방의 신라국의 여왕에게 부귀장수의 뜻을 가진 꽃그림과 함께
그 씨앗도 각각 한되씩 보내어 심도록 배려한 것을, 신라 쪽에서 그만
그림 읽는 법식을 모른 나머지 오해를 하게 된 모양이다. 잘 몰라서
일어난 일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모란꽃이 부귀를 뜻하므로
모란꽃에 장닭을
함께 그리면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부귀를 누리다”라는 뜻의 <부귀공명도(富貴功名圖)>가
된다. 모란이 부귀, 장닭이 공계(公鷄)이므로 “公”과 발음이 같은
“功”을, 울 명(鳴)과 발음이 같은 이름 명(名)을 빌어서 이렇게 읽는다.
이렇게
모란의 부귀라는 우의(寓意)와 읽는 소리를 결합하여 뜻을 구성한 것에
부귀평안(富貴平安)이 있다. 활짝 핀 모란꽃 가지 밑에 선으로 간략하게
병(甁)을 그린다. 병은 중국에서 평(平)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이 그림은
부귀평안(평안하게 살면서 부귀를 누리다)의 뜻을 지닌다.
부자가
되거나 신분이 높아지려면 편안하기 어려우며, 또 이것을 얻는다 해도
평안한 채로는 유지하기 어려울 텐데 서로 상반되는 부귀와 평안을 한
번에 누리고 싶은 희망에 이런 그림을 주고 받았던 것이다.
모란에
머리 흰 새를 곁들여 그리면 <부귀백두도(富貴白頭圖)>가
된다. 머리가 흰 새는 백두조(白頭鳥)이므로 이렇게 읽는 것이다. 백두가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백발을 나타내기도 하므로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부귀하다”의 뜻이 된다. 백두조는
반드시 두 마리를 그리는 것이 원칙이다.
부부가 모두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해로(偕老)하기를 뜻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부부가
해로하여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부귀를 누리다”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한 마리, 혹은 세 마리를 그리면 아무리 구도가 좋아도 의미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장수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하물며 부부간에해로하면서 노후를 맞는다는 것은
매우 복된 일 중의 하나이다.
서로
의지하여 가정을 꾸려가며 살다가 한 쪽이 죽게 되면 이에 따른 슬픔도
슬픔이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적 요인 중 하나가 크게 변한 것이므로
그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 그 이후의 생활이
불행해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오죽하면 “상처(喪妻)가 망처(亡處)”란
말까지 생겼겠는가?
부부간에 백년해로하는 것은 모든 부부의
소망이요 모든 자식들의 기원이었다. 따라서 이런 뜻의 그림도 있다.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백두조 한 쌍을 그리면 소나무(松)는 송(頌)과
발음이 같고, 대나무(竹)은 축(祝)과 발음이 같으며, 백두조는 백두(白頭)로서
합하면 송축백두(頌祝白頭)가
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부부간에 해로함을 축하하고 또 앞으로도
더욱 오래 살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이런 원리를 잘 아는 조지겸(趙之謙)이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구성으로 모란과
매화와 바위를 함께 그려서 “눈썹이
하얗게 세는 나이가 되도록 부귀하다(富貴眉壽)”의
뜻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창의적인 것으로 법식을 알기 때문에
이런 구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란꽃은 역시 부귀, 모란이 필 때
매화가 있을 리 없지만 매화의
“梅”가 눈썹 미(眉)와 중국에서 독음이 같고, 아래 놓은 바위가 “壽”를
나타내어 부귀를 기원하는 부귀미수(富貴眉壽)가 된다. 미수(眉壽)란
눈썹이 하얗게 되도록 늙은 나이를 말한다.
“梅”가
눈썹 미를 뜻하므로 매화 가지(梅梢)에
달이 걸려 있는 흔한 소재의 그림들은 “매화
가지 위에 달이 있다(梅梢上月)”와 같은 독음의 “눈썹 위에 즐거움이
떠나지 않다(眉梢上樂)”로
된다.
매화
그림은 달리 읽히기도 한다. 맨먼저 꽃이 피어
봄소식을 전하므로 춘선(春先)이라고
읽히기도 한다. 매화 가지에 까치가
앉아 있는 그림은 까치의 우의(寓意)의 기쁨과 함께 ‘봄을
맞아 맨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다(喜報春先)’가
된다. 그 기쁜 소식이 임금의 부름을 뜻하는지 아니면 보통의 기쁨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그림을 주고 받으며 이상(理想)과 희망(希望)을
다졌던 조선 선비들의 단아(端雅)한 자태가 눈에 보이는 듯 하다. -
동양화 읽는 법 중에서 / 조용진 교수(서울 교육대 미대 교수) -
※
퀴즈 : 위 그림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은 맞을까요?. 틀릴까요?..^_^*
|
첫댓글 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그래서 병풍에 그림은 꼭 모란![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7.gif)
이 있더라구요...예전에 수 놓으면 모란곷 수를 많이 했지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부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 틀립니다...
그림읽어주는여자라는 책 제목이 있잖아요 이것은 그림읽어주는 회장님으로 바꾸어야 되지 싶습니다 ㅎㅎ(조용진 교수는 눈에 안들어옴 ㅎㅎ)잘 읽었습니다 저의집 식탁위에 부귀를 상징한다고 해서 모란 액자가 있었는데 우리절 다니면서 바뀌었지요 회주스님 작품으로 ㅎㅎ
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그렇구나^^*... 좋아서 모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