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에 선 여인Christina Georgina Rossetti(1830-1894)
내가 죽거든 / 크리스티나 로제티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마셔요.머리맡에 장미 심어 꽃 피우지 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도 심지 말아요.
비를 맞고 이슬에 담뿍 젖어서
다만 푸른 풀만이 자라게 하셔요.
그리고 그대가 원한다면 나를 생각해줘요.
아니, 잊으시려면 잊어주셔요.
나는 나무 그늘을 보지 않겠고
비 내리는 것도 느끼지 않겠어요.
나이팅게일 새의 구슬픈 울음 소리도
나는 듣지 않으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또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누워 있어 꿈을 꾸면서
나는 그대를 생각하고 있으렵니다.
아니, 어쩌면 잊을지도 모릅니다.
*사이프러스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로서 그 나무가지는
비탄과 상장 (喪章), 그리고 죽음을 상징한다.
Who Has Seen the Wind?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나도 당신도 보지 못했어요 허나 나뭇잎 살랑거릴 때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있지요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허나 나무들 고개 숙일 때 당신도 나도 보지 못했어요 그 곁으로 바람이 지나가고 있지요
그녀는 제국주의 시대로 불리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글을 쓸 수 있기 전에 이미 시를 썼다는 그녀는 문학비평가 에드먼드 고세에 의해
'세계 여류 시인들의 선두에 거의 홀로 선 경이로운 여인'
이라는 찬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국의 문호다.
마리아의 모델로 그려진 크리스티나 로제티
The Girlhood of Mary Virgin, 1848-49/by Dante Gabriel Rossetti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아버지는 시인이었으며
오빠는 시인이자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이다.
크리스티나는 아버지와 오빠의 예술가적 자질을 이어받았고
영국교회 신자였던 어머니에게서 종교적 영향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생활고와 질병의 고통은
그녀의 작가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약혼이 불행한 결과로 끝난 다음부터는
영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 세상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오로지 어머니와 함께 조용한 생애를 보낸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두 살 터울의 오빠 가브리엘 로세티는
유명한 시인이자 라파엘 전파를 이끈 화가이다.
가브리엘 로제티가 그린 크리스티나의 흐트러짐 없는 용모는
금발에 하얀 피부를 지닌 지적인 여성 시인으로
머릿결은 잘 말아 올려졌거나 찰랑거리며 가지런히 늘어져 있다.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란 19세기 중엽 당시 영국의 '감성적이고 맥 빠진 예술'에 반발해서 일어난 예술 운동이다.
라파엘 이전처럼 자연에서 겸허하게 배우는 예술을 표방하며
미술뿐아니라 문학에까지 그들의 주장을 펼쳤다.
이들의 양식 속에는 과거와 현재, 전통주의와 근대성의 대립이라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진부한 주제에 처절한 아름다움의 옷을 입혀 중세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는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 세계에서 라파엘 전파의 운율을 읽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오빠의 친구들이자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이 크리스티나의 창백한 아름다움에서 세기말적 뮤즈의 환상을 그리는 동안, 로세티 자신은 오히려 병약하고 로맨틱한 여자들의 내면에 가득한 관능에 관한 시를 썼던 것이다.
Dante Gabriel Rossetti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 - died 1882)
Dante's Dream at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런던 출생. 이탈리아의 망명시인 R.가브리엘레(1783∼1854)의 아들,
시인 크리스티나 가브리엘 로제티의 오빠로
런던대학과 왕립 아카데미의 안틱 스쿨에서 수학했다.
1850년대에는 신화 ·성서 ·문학작품 등을 통하여 얻은 주제로
서정적인 수채화나 소묘(素描)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환상적 표현에 대한 흥미와 묘사기술의 부족으로
라파엘 전파 작가들에게 공통된 자연주의적 묘사를 피하였으므로
그 후 그 파에서 떠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였다.
후반기의 작품은 수채가 주(主)였으며 감각적 표현으로 기울어졌다.
1860년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과 결혼하였으나
2년 후에 그녀가 자살하자 사실상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만년에는 시작(詩作)에 몰두하였다.
작풍은 정열 ·색채감 ·중세적인 주제와 분위기 등을 특색으로 하고,
신비적이면서도 육감적인 시경(詩境)을 표출하였다.
Ophelia,1851-52/by John Everett Millais 밀레이
라파엘 전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이는
열두 종류의 식물과 꽃의 말로 오필리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오필리아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데이지 꽃은 순결을,
버드나무와 쐐기풀은 이루지 못할 사랑과 고통을 암시하고 있다.
"모든 것이 그녀의 눈과 더불어 끝났도다.
지옥도, 연옥도, 천국도."
햄릿의 연인이자 비련의 여주인공 오필리아.. 그 녀의 연인 햄릿에 의해 아버지 플로니어스가 살해당하고
햄릿이 영국으로 떠나자 그만 정신을 놓아버리고 만 그녀는
실성해서 들판을 헤매다 물에 빠져 죽는다....
한 남자를 뜨겁게 사랑한 죄밖에는 없는데...
그녀의 순수한 영혼은
비통했던 현실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꽃으로 만든 관을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고 기어오르다
심술궂은 가지는 그만 뿌러지고 말았다.
가여운 그녀는 화환과 함께
흐느끼는 시냇물 속으로 떨어져 떠내려간다.
지고의 여인은 소리도 지르지 않고
그저 꽃을 꼭 쥔 채 강물에 몸을 맡긴다.
이제 그녀는 강물이 되고 강물은 그녀가 된다.
그녀는 들풀이고 들풀은 그녀가 된다.
덤불과 이끼는 여인의 드레스 장식으로 번지고,
물빛은 그녀의 가냘프고 하얀 목덜미와
핏기 가신 뺨 주위를 맴돈다.
죽음만이 그녀의 안식처였을까.
오필리아Ophelia는 마치 꿈을 꾸며 즐기듯
천천히 자신의 무덤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죽음으로 변해가는 오필리아의 눈은
마치 자신이 거할 곳을 찾았다는 듯
슬픔을 건뎌 오히려 평온하다. 점차 무거워지는 눈꺼풀,
살포시 열려진 입과 위로 열려진 두 손,
죽음으로 다가가는 모든 몸짓이
이토록 지독히도 매혹적일 수 있는가.
...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의 모습을 화가들이 많이 그린 건
가장 슬프게 죽음을 택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리지'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그림 속의 모델은 단테 G. 로세티의 오랜 연인이자 라파엘 전파 회원 모두가 사랑했던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1829-1862)이다.
관능적인 입술, 비극적으로 내려앉은 눈꺼풀, 풍성하고 관능적인 붉은 머리를 갖춘
아름다운 모습은 모든 라파엘 전파 화가들을 사로잡았다.
시달은 1860년 단테 G. 로세티와 결혼하지만 야속한 운명의 장난인지
계속된 병치레와 사산, 남편의 외도 속에 슬픔과 질병으로 얼룩진 세월을 보내다
결국은 약물 과용으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비운의 여성이기도 하다.
Arthur's Tomb: The Last Meeting of Lancelot and Guinevere
첫댓글 어쩌면 조르바는 음악을 하루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중 클래식은 가슴속을 채워주는 그 무엇이었고 풍요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항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신적 사랑의 추구와 채워지지 않는 마음! 또한 세상 속에서 동시에 경험하며 살아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지휘도 내려놓고 교회 안에서 작은 것으로 목소리를 주님께 드려 기쁨을 구할 수 있었던 한해를 다시 접고,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만으로,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천상의 이미지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어집니다. 아직은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의 맑은 영혼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보살필 때라는 생각이 남아있어서 입니다.
밀레이의 '오필리아' 그림속엔 열두가지의 꽃이 나왔다고 해요. 오른손에 실국화와 데이지, 제비꽃 목걸이, 왼쪽위 버드나무가지, 미나리아제비, 쐐기풀,야생란, 팬지, 양귀비, 로즈메리, 물망초...보이시나요??..화가의 마음 속에는 또 하나의 시인이 내재되어 있다는 말을 다시 생각합니다.
첫댓글 어쩌면 조르바는 음악을 하루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중 클래식은 가슴속을 채워주는 그 무엇이었고 풍요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항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신적 사랑의 추구와 채워지지 않는 마음! 또한 세상 속에서 동시에 경험하며 살아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지휘도 내려놓고 교회 안에서 작은 것으로 목소리를 주님께 드려 기쁨을 구할 수 있었던 한해를 다시 접고,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만으로,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천상의 이미지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어집니다. 아직은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의 맑은 영혼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보살필 때라는 생각이 남아있어서 입니다.
음악이 없는 선생님의 삶은 생각할 수 가 없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간절하고 진지하신지...영혼이 맑은 선생님의 모습이 또한 노래소리에 그대로 묻어납니다.
선생님을 알게 해준 친구에게 감사했답니다. 선생님 목소리 상상하며 음악, 그림, 글 감상하고 갑니다. 꾸벅
그린..목소리나마 들어서 다행이예요..사진 속의 모습이랑 닮았어요..저는 '욕지도'에 다녀오면서 멀미때문에 많이 힘이들었어요..걱정을 했는데 다음날 들꽃모임 채비를 하니 가뿐히 나았답니다.정말 이상한 일이예요~..
'냉정과 열정 사이에 선 로제티'. 차가운 정도 뜨거운 정도 모두 정인 바, 시는 얼음장 보다 차갑고 불잉걸보다 뜨거워서 생사초탈의 전율이 있군요... 강물... 겨울홍시 같은 강물... 강물도 시인이에요...
밀레이의 '오필리아' 그림속엔 열두가지의 꽃이 나왔다고 해요. 오른손에 실국화와 데이지, 제비꽃 목걸이, 왼쪽위 버드나무가지, 미나리아제비, 쐐기풀,야생란, 팬지, 양귀비, 로즈메리, 물망초...보이시나요??..화가의 마음 속에는 또 하나의 시인이 내재되어 있다는 말을 다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