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부터 추워진답니다. 기온 변화에 조심하세요.
▶(이러쿵 벗)
오늘 광화문에 있는 가든플레이스 베니니에서 점심을 했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입구가 어수선해서 이상하다 했는데 조금 지나서 가카(MB)가 수행원들과 함께 들어오더라구요. 입구 근처 자리라서 눈이 마주쳤는데 가카가 웃으면서 아는 체를 해서 앉은 채로 그러나 약간은 예의를 갖추듯이 가볍게 목례를 했죠. 아마 오찬을 와대에서 안하고 외식하는가 봅니다.
그때부터 음식점 대부분의 역량이 가카에게로 가는 바람에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손님 식사 조달이 상당히 늦어졌습니다.그래도 대부분의 손님들은 불평을 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면서 식사를 마쳤고 우리도 가카니까 하고 이해를 했죠. 가카가 식사를 마치고 가면서 또 눈이 마주쳐서 서로 목례를 했죠. 이번에는 다리도 꼬고 등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채로. 그런데 가카가 오는 자리면 검문이 있거나 경호하는 사람이 식당 곳곳에 배치될 만도 한데 내가 보기에 경호하는 사람도 안팎을 합해서 10명도 되지 않았고 들락거리는 손님에 대한 어떠한 검색도 없었다는 거죠. 세상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카라는 존재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가카로 인해 약간 늦은 식사 진행에 대해 별로 불평을 하지 않는 손님들이나 가카라고 해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모습 모두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선진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카라고 해서 쫄지않는 국민, 쓸데없이 국민에게 군림하지 않는 가카,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문화...... 선진국이 되는 조건 중 하나 아닌가요 생각했습니다.
▶(이러쿵 벗)파란의 20대(3)
뉴 밀레니엄이라던 서기 2000년 어쩌다 보니 학과 학생회장이 돼 있었다.학업, 인격, 외모...뭐 하나 내세울 만한 부분이 고르게 없었고, 90년대 학생회장의 기본이라는 시위에는 스쳐 지나쳐 본 적도 없었다.
다만 아무도 입후보하지 않았다...그게 내가 학생회장이 된 이유였다.IMF 정국이었고, 모두들 공포감에 세뇌돼 도서관에 목줄이 묶여 있었다.게다가 1997년부터 학부제가 시행되며 학과로 들어오는 후배가 끊겼다.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은 말라 붙어 들어갔다.시골 출신인 나는 서울에 친구가 없었다.학과가 집이고, 과친구와 선후배가 가족이었다.내 코가 석자였지만, 내 가문의 명맥이 끊기는 순간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전학년 MT, 축제 주점, 영문인의 밤, 이 네 가지만 마치면 된다!
정확한 착각이었다.강제성이 없었기에 학생회비는 걷히지 않았고, 입대 전처럼 집행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행사를 진행할 때는 단순히 끼와 열정만으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사회는 그럭저럭 봤던 것 같다.하지만 난 애송이였다.체계적 기획과 재원 마련, 협력인원의 중요성을 절감했다.한 학번 후배였던 손도끼와 야동포터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도망쳐버렸을지도 모른다.사실 말이 학생회장이지 이건 뭐 머슴 중에서도 상머슴이었으니까~
우걱우걱 1년이 지나 임기를 마쳤다.내 깜냥으로는 참 벅찬 자리였다.2년 후배였던 메롱소년에게 회장자리를 넘기며, 미안한 마음이 참 컸다.그렇게 몇 년이 지나 2002년, 난 저렴한 학점과 살인면허(무면허)를 소유한 ‘컴맹 토익리스’로 학교를 떠났다.
그 동안 개그맨 6번, 성우 1번, 스포츠 캐스터 1번 떨어졌다.인터넷 소설 쓴다고 깐죽거리다가 사흘 동안 한 문단도 못 쓰고 포기한 적도 있다.3점이 안 되는 학점 탓에 어지간한 기업엔 지원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패배자의 길에 접어들 무렵 우연히 한 코스닥 기업 경영인께 인사 드릴 기회가 있었다.
“자넨 뭘 잘하나?”
“남들이 안 하는 걸 여러 가지 해봤습니다. 개그맨이랑 성우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재능을 얻었습니다. 목소리도 호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 저것 도전했지만 이룬 건 아무 것도 없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엔 수치스러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자네, 내 밑에서 ‘홍보’해보지 않겠나?”
가다가 멈추면 아니간 것만 못하다구? 아니, 거기가 어디든 간 만큼 이득이다!
그렇게 20대가 저물며 홍보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 To be continued...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2009년)
올가을에는 국내외에서 오랜만에 많은 발레를 구경했다. 얼마나 오랜만이냐 하니 그동안 세계의, 특히 한국의 발레가 문자 그대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사실을 뒤늦게야 눈을 비벼 보고 촌뜨기처럼 놀라 버린 것이다.
예전에는 볼쇼이 발레에서나 본, ‘중력을 초월한 듯한’ 그랑 즈테(큰 도약), 카브리올(재주넘기), 앙트르샤(제자리뛰기) 등 어려운 춤사위를 아무것도 아닌 듯 사뿐히 웃으면서 추어 대는 무용수를 이젠 다른 곳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유명한 음악 가문 출신인 베를린 필하모니의 전 예술감독 한스 폰 벤다옹이 생전에 내게 들려준 얘기가 생각났다. 천재 파가니니가 오늘날 태어난다면 그는 그저 괜찮은 바이올리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 될 거라는 얘기였다. 과학 기술과 마찬가지로 예술 기예도 시대와 더불어 장족의 진보를 한다는 시사로 들었다.
40여 년 전 유럽에서 처음 볼쇼이 발레를 구경했을 때 비평가들은 ‘혁명도 초월, 중력도 초월한’ 무용수들의 ‘하늘을 나는’ 기예에 찬사를 퍼부었다. 이런 찬사에 요즈음 나는 저항감을 느낀다. 왜냐 하니 우리는 그 뒤 예술 아닌 과학의 힘으로 ‘무중력’의 캡슐 공간을 만들어 냈고 그런데도 그 진공을 유영(遊泳)하는 우주인의 모습은 발레의 아름다움과는 인연이 멀다는 사실을 보았기에 말이다. 중력을 초월한 듯한 발레의 아름다움엔 중력이 있어야 된다. 철학자 칸트는 공기의 저항이 없는 진공에선 비둘기가 날 수도 없다고 적은 바 있다.
중력 있어야 발레가 아름다워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니 후보자와 그 진영에선 온갖 네거티브, 포지티브 선전이 연일 요란 소란하다. 초등학교 반장도 선거한다면 어른 뺨을 치는 온갖 꼼수가 동원된다. 하물며 국가 최고 권력을 노리는 대통령 선거가 조용히 다소곳이 진행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다른 나라의 선거판을 많이 구경 못 해서 선진국에선 어떻게 이 큰일을 치르는지 잘은 모른다. 그런대로 신문 잡지 방송 보도를 보면 정치가를 ‘품평’하는 데엔 나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영국이나 미국에선 정치가의 성 추문이 나면 그를 공론권(公論圈)에서 미주알고주알 따지지만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대륙의 나라에선 비교적 대범하게 넘어가는 것 같다. 물론 그쪽에도 성 추문을 대문짝만하게 취급하는 선정적인 황색신문이야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권위지’로 인정된 신문은 그런 스캔들을 보고도 못 본 척 눈감아 주는 것 같다.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의 성 추문이 일어났을 당시 독일 친구에게 견해를 물어봤다. “우리는 총리가 공인으로서 낮에 하는 일엔 관심이 있지만 개인으로서 밤에 하는 일엔 관심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번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선두를 달리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후보자의 재산과 관련한 의혹, 수사 과정에서의 위증 여부 등 도덕적인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왔다. 이른바 BBK 사건이다. 난시청석에 앉아 있는 일반 유권자에겐 갈수록 알아듣기 힘든 미궁으로 빠져 들어간 이 사건은 지난주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됨으로써 일단락됐다.
검찰의 발표 이전이나 이후나 1위를 달리는 그 후보의 지지도에는 별 변화가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론조사의 결과는 검찰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비율이 믿는다는 비율을 상회하고 문제 된 후보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 응답자가 ‘없다’고 본 비율보다 높게 나타난 점이다.
‘흠집 있어도 지지’ 의식 변화
이것을 우리나라 유권자의 주목할 만한 의식 변화라 볼 수는 없을까. 도덕적으로 흠집이 있는 후보자라도 지지하겠다는 의사는 단순히 실정을 거듭한 무능한 정부부터 우선 갈아 치워야겠다는 다급함 때문일까. 또는 선거판에 전과자를 내세워 네거티브 공세를 편 2002년 ‘병풍’의 학습효과 때문일까. 혹은 정치판이란 애당초 도덕적 흠집 없는 인사가 흰 비닐 가운을 뒤집어쓰고 활동하는 무균(無菌)의 작업장이 아니라는 걸 유권자들이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일까.
비둘기는 공기의 저항으로 난다는 칸트의 말을 한국적 지혜가 곰삭은 속담은 이렇게 표백하고 있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인터넷)
다산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위에 떨고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눠주어 따뜻하게 해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는 한 푼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해야 하고, ……”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은혜를 베풀어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나쁜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일가들의 환심을 얻는 일에 힘쓰되 마음속에 보답 받을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해라.…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라는 소리를 입 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런 말이 한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다산의 마음과 뜻이 참으로 깊고 넓습니다. 아무리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라도 약자를 도우려는 인정이 살아 있는 한 매서운 추위도 이길 수 있다는 신념, 그것이 바로 다산의 위대한 인간 사랑의 정신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 라고 여기며 서운한 생각을 용서의 마음으로 풀어버리면 남을 원망하는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충고까지 해주고 있음을 보면, 아버지의 넉넉한 마음이 아들들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인터넷)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말과 마법은 본래 하나다. 그리고 지금도 말은 가장 강력한 마력을 지닌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남긴 말. 이 표현을 위해 살다 간 사람 같습니다. 너무나 금쪽 같은 요약입니다. 말은 일방통행이 아니고, 서로의 교환이며 소통입니다. 그래야 의미가 있으며, 대부분은 일방적인 나만의 ‘말빨’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격조 있는 스피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상대를 의식해야 하며 상대에게 맞춰야 하며 그래서 상대가 내 말을 십분 이해하기까지 만들어야 하며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설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을 한 보람이 있는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말 한번 잘 했다” 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스피치에 대한 오류 중 하나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에만 신중을 기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정보 홍수시대입니다. 정보량이 2배 3배씩 매년 늘어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인지하기 전에 미리 모든 정보내용을 읽고 들어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시대 흐름의 특징은 바로 그 어느 때 보다도 언어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실제능력이나 성과. 노력의 흔적 등을 갖고 성공을 세우기 어려워졌습니다. 지식의 평준화를 인터넷이 이루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 혹은 전문영역에 대해 그것을 입을 통해 말로 표출해 낼 줄 알아야 제대로 된 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에 왔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야 말로 모든 외부세상이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주요 잣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말을 잘 해야겠다는 의지는 말을 하기 전에 가져야 할 기본 자세입니다. 이러한 의지 없이 타인에게 어떠한 접목능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이 수려한 말재주나 말재간, 혹은 언어적 수완이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선입견이 또한 말 잘하는 것에 대한 높은 벽을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상대방과의 올바른 소통을 위한 매체로서 말을 가장 우선시하면 좋을 것이다. 아니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만의 성벽을 쌓고 거기에서 나오는 나만의 스피치로 그 어떤 상대도 감동받지 못할 것입니다. 상대를 떠난 나만의 독백은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의사소통은 자기세계를 떠나 자신의 생각과 의도, 표현과 표출에 상대의 세계를 서로 맞추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매뉴얼로 대화할 수는 없는 동물입니다. 그만큼 인지능력과 소통능력이 컴퓨터를 훨씬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외우는 대화체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어째 아파 보인다든가 우울해 보인다든가 여러 형태의 모습을 접했을 때는 우리는 대뜸 다른 인사가 나오는 것이 정석입니다.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것은 오히려 코미디스럽습니다. 말이란 그런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어떤 제품설명서를 보듯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외국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 스피치를 잘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둘 다 흡족하게 갖춘 사람들도 있겠으나 대체로 말을 잘합니다. 외국어를 잘한다라고 할 때에는 그 언어 자체를 잘 쓴다는 의미이지 스피치를 잘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바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것입니다.
▶(유머)
3도 사투리 비교
표준어 : 돌아가셨습니다.
경상도 : 죽었다 아임니꺼.
전라도 : 죽어버렸어라.
충청도 : 갔슈.
표준어 :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경상도 : 내 좀 보이소.
전라도 : 아따 잠깐만 보더라고.
충청도 : 좀 봐유.
표준어 : 정말 시원합니다.
경상도 : 억수로 시원합니더.
전라도 : 겁나게 시원해버려라.
충청도 : 엄청 션해유.
표준어 : 어서 오십시오.
경상도 : 퍼뜩 오이소.
전라도 : 허벌나게 와버리랑께.
충청도 : 어여 와유.
표준어 : 괜찮습니다.
경상도 : 아니라예.
전라도 : 되써라.
충청도 : 됐슈.
아무리 그래도 충청도 말이 가장 빠르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도
다음 문장을 보면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표준어 : 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충청도 : 깐 겨, 안깐 겨?
그래도 인정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진짜 결정타를 날릴 수밖에...
표준어 : 당신은 개고기를 먹습니까?
충청도 : 개 혀?
첫댓글 이날이 가카생신날이셨다지요
17일엔 김정일의 사망소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