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령장을 가지고 꽃샘바람 스며드는 날에
논 한가운데 조그만 건물 바라보며 걸어 갈 때 웬지모를 눈물이 났었지
혼자 낯선 직장 초년생의 두려움이었을거야.
그러나 한 가족 같이 모두 반겨주었고
새로 왔다고 친목회장님이 낮에는 데리고 나가서 환영 짬봉을 사주셨지.
직원은 14명 여자는 둘. 다 남자. 요즘과는 정 반대였어.
2학년 2반을 맡았는데 1반은 교무주임반
3월초라 교무주임이 교육과정을 짠다고 교무실에서 1주일 간 일 하시면
합반을 해서 거의 120명을 우리 반에 빼꼭하게 모아 놓고
열변을 토하는데 어느날은 교감샘이 오셔서
"건강을 생각하세요"
하시며 창문을 열어 주셨지.
얼마후 30 살 노총각이 전근을 왔고
아이들 일기장에
'김선생님은 우리 선생님만 보면 웃는다' 뭐 이런 내용이 실린 적도 있었고.
경기해설을 이광제아나운서같이 잘하는 삽다리 총각도 있었는데
고향으로 발령나서 떠났는데
몇 년이 지난 후 그 삽다리 총각이 찾아왔다가 가서
좌표 운운 가로축, 세로축 하는 편지를 보냈기에
많은 사람 가운데 한 점에 불과한 만남이었다고 까칠한 답을 보낸 기억도 난다.
7명씩 편을 나누어 배구시합을 많이 했는데
주로 담배내기나 치약내기인데 목숨 걸고 해가 져서 공이 안 보일 때까지 했지.
나는 학교 다닐 때 배구서브 실격이라 방학 때
친구 남친이 눈 밭에서 가르쳐 줘서 겨우 B학점 맞은 실력이었지만 ...
직장에서 이웃 학교 공검초와 친목 배구시합을 가끔하면
돼지고기 두부 무 고추가루 많이 넣고 만든 찌개 한그릇씩 먹고 응원 많이 했지.
교장님이 출장가신 무두일이면 교무실은 오락실로 변해서
한쪽에선 바둑 한쪽에선 장기두고 우리는 오르간 앞에서 '클레멘타인'을 불렀지
그 땐 컴퓨터가 없던 참 여유롭고 낭만적이었던 시절.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행사로 늦게 퇴근 하는 날 10분을 걸어 나와 버스간이정류장에 도착
기다려도 버스가 안 오면 아무차나 손들고 탔지.
트럭도 탔는데 좁은 스커트를 입고 높은 트럭을 타려면 좀 힘들었지.
어떤 트럭기사는 라디오에서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운전대를 놓고 손벽을 치며 노래까지... 아찔!
그때는 왜 그리 간이 컸는지 모르겠다.
갈 때 울며 갔지만 3년후 그곳을 떠날때 울며 떠난 곳
그 때 가르친 제자가 몇년 전 스승의 날 부부가 찾아와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그 색시가 나와 모임 맴버여서 참 세상은 넓고도 좁음을 느꼈지.
날씨도 흐리고 해서 추억의 창고를 뒤적여 보았다.
첫정 준 직장이라 잊을 수 없나보다.
첫댓글 우리집도 이제 3대째 교사 집안이 되는군요. 동업자의 글이라 그런지 마음에 자알 와 닿는군요. 우리 마눌님은 현직때 동네 목욕탕을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답니다. 혹시 학생이나 학부모 만날까봐서... 심지어 시장에서 물건 값도 깎지 않았지요. 스승 ===> 아무나 하는게 아닙디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
마눌님이 교사였군요. 난도 동네 목욕탕 안가요. 이마트 가면 꼭 학부모나 아이들 만날 때가 있어요. 되도록이면 학구를 피해 전근을 가곤 했지요.
내가 정년 퇴직하던 2008년 말에, 33년을 채우고 명퇴를 했습니다. 둘이 함께 놀자고 퇴직도 함께 했는데, 요즘은 따로 놀게 되는군요. ㅎㅎㅎ
박영애선생님 초임의 좋은추억 감사해요 시리즈로 올려서 책하나만들면 어떨까요 계속수고좀 해주세요,ㅊㅋㅊㅋ^0^
좋은 글 잘보앗습니다. 찔레꽃 오늘은 조용하게 읽기만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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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리님 고마워! 쪽지 안 왔는데...그리고 댓글 지우지 마시와요. 소중한 언어들인데...
찔레꽃님 혹시 토마토 식초 만드는 방법 아세요
답글에 답을 할려니 칸이 없어 여기에 그냥 발효하면 안되는되요 과정이 있는데 제가알아보죠
모르는데요. 발효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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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모르겠고.. 승길님은 사흘 후에 지운댓는데 너무 과민한것 같고..그냥 둬~
정겨움이 가슴 뭉클하게 느껴옵니다.누구에게나 고히 간직했던 추억들이 있었지요...!?
그 시절에,그 직장엔 배구시합이 열병처럼 번졌었나봐요.양조장에 막걸리 한통을 주문하고,술값내기로 목숨을 걸다시피하며 딩굴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마땅히 할 놀이도 없었으니... 경기도는 한 학교에 남선생님이 한 두 명이라 희귀하고 배구팀이 안되지요.어쩌다 발야구했고.. 젊은 여선생님들은 운동장에 나가기 싫어하고..컴 나오고는 워낙 바쁘게 돌아가서 정신 없고 여유없고 그랬어요.
찔레꽃선생! 공검하면 나에게는 매우 정든 곳이기도하지요,왜냐구요 ? 40여년간의 공직생활을그곳에서 마무리했거든요, 퇴직당시에 공갈못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일때 어려움과기쁨이 동시에있었든시기였어요 , 지금은 공갈못 연꽃이 많이 어우려있지마는 2007년봄 당시에 한창 연꽃을 식재했답니다, 그 중심에 소생도 한몫했고요 , 지금도 공사가 한창이며 연꽃밭은 매우 장관 이랍니다, 언제 추억을 되살려 보심이 어떨까요? 첫 정 준 직장이라면.....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저처자야 라는 가사가 있듯이 ㅎㅎㅎ
공갈못 복원은 아주 중요하고 잘하신건데 그 중심에서 일했다니 고맙네요. 언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