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SKPj--tyiM?si=K5P5HiRd9zmYY2F8
(괴산 문경 희양산)
구산선문중 봉암사를 본찰로 송이가 많이 나는 희양산을 돌아 소백을 찾았겠다
괴산 문경 희양산 들렀을 때까지 그리 맑고 뜨겁던 날씨가 새도 넘기 힘들다는 조령터널을 넘자마자 장대비로 바뀌더군요
토요일밤 11시 40분에 소백산에 당도하여 야간등정을 저울질 해보았나니
건전지를 넉넉히 준비했건만 하늘은 잔뜩 흐리고 별이 하나도 없었다
빗방울도 시작하고 있어 자칫 내일 입산통제 되버릴까 걱정인대 산을 벗어나 통제되버리면 다시 들어올수 없을거라 산기슭 사륜구동이 닿는 막바지에 짱박혀 있었다
어둠속 익숙하지 않은 야간 혼산에는 뜻밖의 위험이 있을수 있어 약간의 두려움으로 망설이는 것이지 무서움 자체 때문에 주저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시로 내렸다 그첬다 젖은 일기에 한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헐떡헐떡 오르고 능선을 두루 걸어보니 고행을 통해 무엇을 얻는 것은 없었고 모든 생각으로부터 떠날뿐이더라
이산을 오르고 나면 작은 깨달음 이라도 얻어 작은성인 작은 어른이 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소백이다
두분의 초상중 한 분은 성서의 기록과 샘족의 남성유골들을 고고학적으로 분석검증한 실제 예수님을 BBC에서 재현한 모습입니다
구약시대 이집트를 떠난 유태인이 가나안에 이르렀던 때 베두인 페르시아인깉은 백인들이 유목민으로 살고 있던 지역이었다
다른 한 분은 오랜 수행과 단식으로 삭발을 했을리가 없어 머리카락이 치렁치렁 하고 깡마른 인종적으로는 지금의 프랑스인 내지 이란인 아리안족인 석가모니의 실제모습 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눈이 파랗고 피부가 흰 색목(샤카족) 아리안인으로 오랜 단식과 하루한끼만 먹었던 크샤트리아(왕, 왕족)일까요.?
세월은 참 무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어원을 거슬러 따져보면 구약시대엔 크리스트란 개념과 용어가 없었다가 소승불교가 지구적으로 널리 퍼졌던 헬레니즘을 지나고 케돌릭 천년도 지난 후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부터 켈빈과 루터의 케톨릭 개혁운동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구세주 라는 의미입니다
3500년 전 4성 계급중 크샤트리아(왕, 왕족) = 》교황청에서 성모 마리아님을 신앙의 주체로 오랜동안 지나왔던 이후에야 근대 기독교에서 공인된 크리스트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리스도(기름부음을 선택받은 왕)가 되었다가 = 》진리의 왕이 되었으며 => 가장 싱싱한 현대 한국어로는 인기절정의 주님이 된 것입니다 = 법의 왕 = 불 = 깨닳은 나(2568년째 동일하고 향후 변화 할 가능성 없습니다)
(탑파불교 중기불상)
(탑파불교 말기 내지 부파불교 시대의 불상)
눈 푸르고 깡마른 색목백인 이라는 뜻의 석가모니 본명은 싯다르타가 열반에 임해 이르길 자신을 보지말고 숭배하지 말고 형상을 본 떠 올리지 말고 오직 전해준 설법만이 진여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니 법을 보고 진여를 깨우치라 하셨던 것으로 인해 원시불교 수백년 동안 진신사리를 봉안한 무덤인 탑묘만 있었습니다
여시아문 시에 급 고독원 장자 누구 몇십 몇백 몇천 등 사부대중 불고 수보리.. 라고 모든 경문이 시작하는데요
"내가 보고 들은 말씀을 여러분에게 확인합니다 어느 그날 고독원 강당에서 장자 누구가 법회자리를 주선했었고 누구 누구 누구 등 몇 천명의 참석자들이 있었을 때 부처가 수보리에게 이렇게 설법을 했었는데 맞습니까"를 확인하여 전한다는 뜻입니다
세존 열반 직후 생전 오랜시간 부처와 함께 해오며 설법을 암기해왔던 오백나한 제자가 분명히 그랬었다고 이설없이 확인된 것만 다시 열명의 주요 10대제자 회의를 거쳐 틀림없이 그렇다는 것을 만장일치로 재확한 뒤 후세에 전할 정법으로 공표하여 참석대중 모두가 세번 암송하고 전승하도록 하였고 장례를 마친 직후 500나한들은 각각 최대한 멀리까지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전도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동서문명간 본격적인 정신사조의 교류가 일어났고 그것이 헬레니즘 시대의 시작이 되었으며 소승불교가 글로벌리 널리 퍼지면서 범인류적인 종교가 되었지만 곧 역사의 변혁을 지나오며 지역적 군웅의 할거를 따라 지역정서와 각양각색 신화들이 이합집산 각각 종교로써 체계를 갖춘 집단들이 되었습니다
소승불교 이전에는 제대로 체계를 갖춘 종교가 없었다고 할수있고 구약시대 어디에도 크리스트 라는 개념도 없었던 지역과 민족간 집단간 풍습의 공유수준 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소승불교가 범 세계적 종교였던 원시불교 당시 제대로 된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정법에 이설이 생겨나지 않도록 힌두 배다가 전승되온 과정처럼 250년 동안 세차례 각처의 불법전승자들이 밧지국 바야샬리에 모여 들어 그동안 외워왔던 불경을 확인 혼선을 점검하는 결집후 불설을 기록하려는 산스크리스트어가 발명되어 문자로 정착했습니다
각각의 경을 암기하는 불법전승자들은 대대로 후임자를 이을 때 각각의 경문을 암기함에 있어 앞에서부터 외우고 뒤에서부터 거꾸로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도록 외우게 했으므로 법문이 달라지는 것을 방지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2568년이 지난 지금에도 히말라야 부탄에서 전해져 온 것과 남쪽바다 건너 스리랑카에서 전해져 온 내용이 거의 같은 것이 불경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전쟁 대부분이 종교가 분파하며 발생해왔던 것과 달리 부디즘에서는 소승과 대승이 분파하고 교와 선이 대립했을 때에도 치열한 논리의 쟁투를 벌였을뿐 상대를 제압하려는 어떠한 무력의 행사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BC269년 아쇼카가 인도를 통일한 후 석가의 탑묘를 열어 인도각지에 그 진신을 분배하여 탑묘를 세우고 석주로 기념했던 탑파불교 시대가 되었습니다
석가의 유지를 받을어 어떠한 부처의 형상이나 조각도 조성하지 않았지만 아쇼카 대왕으로 부터 5만 곳의 마을중심 불탑근처에서 불경을 구전하는 연극공연을 생업으로 하던 사람들에게 대중들이 위대한 스승을 기념하고 느끼게 할 수 있는 조형물이 필요했고 세존의 유지를 어길수도 없었으므로 불따의 어떤 형상도 담지 않은 족적으로 대신하여 무불상을 조성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인물형 불상이 처음 생긴 곳은 제우스 신부터 각양각색 인물상과 동물상을 조각하는 것에 익숙한 전통을 갖고 있고 실제 부처의 진신 사리는 없어 대용이 필요했던 그리스 로마에서 만들어 모셔젔고 인도불교로 역수입 되었으나 오히려 탑파불교는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은 이유로 오랫동안 불상세우기를 거부했습니다
인도에서 인물형 불상이 조성된 시기는 원시불교를 지나고 사원불교보다 탑파의 불교연극 강사들의 발언권이 강해진 부파불교도 지나 대승 교파불교 때부터 이고 평원으로 이어진 유럽지역 보다 히말라야에 막혀 비교적 늦게 그리스 로마 에게해 아프가니스탄을 돌아 불교가 전래된 극동아시아의 경우 중국은 지역이 넓어 무불상불교부터 유불상까지 한반도에는 시초부터 유불상 불교가 들어왔습니다
본래의 석가는 위 사진상 한분처럼 아리안 백인이지만 그리스 로마에선 다비드상 처럼 터키 이란 스탄국가들은 스탄인들을 닮은 중국에선 중국인을 한반도에선 삼국인을 닮은 불상들로 만들어진 것이조
(위는 부디즘 원형 포대노인이 아니고 중국화 한 포대화상 이미지입니다 전에 인도식 포대노인 이미지가 다 사라져 버렸고 한국사찰들에서도 찾을수 없어 인도원형과 중국식 변형을 구분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초기부디즘 탑파중심일때 경서 중 포대노인에 대한 것이 있는데요 .
얼굴은 붉으며 수염이 무성하고 허연 옆머리만 있는 대머리 노인이 불룩한 아랫배를 내민채 과자와 놀이기구 같은 것을 가득 담은 커다란 포대를 등에 메고 다니며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다녔다는 비출가 거사에 관한 내용이 있어요
꼭 산타같은 인물이었조
그것이 현대 중국에서는 전통과 구태의 정신을 일소시키는 문화혁명 후 동북아 역사를 입맛대로 바꿔버리는 동북공정 및 중화주의에 의해 독자적인 포대화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양나라 때에 포대화상이 라는 노인이 있었는대 각종 도구와 물건들을 가득 담은 자루를 메고 다니며 아이들과 농부들에게 먹을 것과 선물 농기구 같은 것들을 나눠주고 다녔다 라고 각색해 적고 있습니다
2천여년을 수도없이 많은 사람들이 읽고 알고 있던 역사와 흔적들까지 모두 국가이익에 부합하도록 없애고 바꿔버린다는 것은 너무한 감이 있고요
서구에서 현대적 산타클로스의 시작은 다들 아시듯이 사실상 최근세 출현된 것이고 굳이 그 기원 이라고 설정한 것으로는 18세기말~19세기 초 핀란드의 한 시골마을 배불뚝 수염많은 노인이 붉은 옷을 입고 선물자루를 메고 다니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졌다 라는 내용이조
시기적으로 이미 쇼펜하우어 버틀란 럿셀 등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부디즘이 소개되고 우상의 황혼 적그리스도 권력에의 의지 니체 대 바그너 등의 목사님 아들 프리드리히 니체도 불교사상에 큰 영향을 받고 있을 때가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되었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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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의 처는 야소다라 공주 예수의 처는 마리아가 정식기록 소크라테스에게는 크산티페가 공자는 계씨부인과 이혼했다
맹자도 부인과 이혼하고 싶어 했다는대 이 못난 일생은 언제나 불러보랴 마이 피앙새~
도마(토마스)복음에 앞선 시대의 파피루스 기록이라는데...
예수님의 부인과 자녀들에 대해 서술한 기록이라 하고 어찌된 것이 어머니도 마리아 부인도 마리아 주요 여신도도 마리아시라네..(추후설명)
그나저나 이혼은 커녕 변변히 짝한번 못 만나보고 이래 저물어 가나 .. 댓글추세로 보아 이런 재미읎는 글 누군가 여성헨분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구나~!!
https://youtu.be/qSKPj--tyiM?si=K5P5HiRd9zmYY2F8
첫댓글 5시 24분 현제시각 주차장 까지는 아직도 4km를 더 하산해야 한다 한발짝 한발짝이 고행이다 무엇을 깨우처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각으로부터 떠난다 다행히 내리막만 있다
완료 전주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