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의 예언
(눅 24:13-35)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선지자의 예언이 기록된 성경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분류되어 있고, 이중 구약은 39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다시 ‘모세오경과 역사서와 시가서와 선지서’ 네 부분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만, 히브리어성경은 ‘모세오경과 선지서와 성문서’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자체의 증거에서는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계시에 있은 성경을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24:27)라고 하였고,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셨을 때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선지자의 예언에 의해 성경에 이미 오래 전에 기록된 예언되어 있는 것임을 언급하시는 것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24:44)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셨습니다. 이 성경은 모세를 비롯하여 모든 선지자들이 기록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보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하나님의 일인 신적인 사명의 수행을 위해 선지자직의 임무를 받은 자인데,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듣고 본 것을 예언하는 것을 통해 선언하도록 그의 백성에게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이런 면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입니다. 이 선지자는 달리 표현하면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어느 시대에서나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있은 하나님이 세운 예언자는 이방의 세상 나라에서 보는 예언자들과는 전혀 다른 예언자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예언자는 어떤 사람이나 또는 세상에 일어날 사건을 예언한다는 것인데, 예측하는 것에서입니다. 이 예언에는 ‘점성술’(참조. 마 2:1-2)과 신비주의자들의 ‘접신술’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예언가로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르네상스 시대인 16세기 초에 태어난 프랑스 의사이기도 한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입니다.
그는 유대인 출신의 흑사병 전문 의사였는데, 그런 그가 예언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1550년대에 들어 다음해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는 달력을 발간한 달력이 잘 맞는다고 유명해지며 예언자로 이름을 내게 된 데다가, 그가 지은 942편에 이르는 운을 맞춘 4행시를 백 편 단위(세기들, Centuries)로 묶은 시에 표현되고 있는 시적인 문구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생 동안 수많은 예언을 기록했으며 그 중 다수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라고 알려진 1555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레 프로페티스'(Les Prophéties)’에 수록되었는데, 이 시에 의한 묵상에 나타나고 있는 표현에는 거의 1,000개에 달하는 예언이 있는데 그 중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매우 구체적인 예언들이 있으며 또한 적중되었다고 봅니다.
1559년 프랑스 왕 앙리 2세가 마상 창경기 도중 사고로 사망할 것을 예언하였으며, 찰스 1세와 로드대주교와 크롬웰에 대해 예언하였으며, 1665년 런던의 페스트병(흑사병) 유행, 1666년 런던의 대화재, 나폴레옹의 등장과 몰락, 1789년에 있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에 의해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 스페인 필립2세의 통치와 흥망성쇠, 1995년 루이 파스퇴르가 신과 같은 명성을 얻는 인물이 될 것이나 불명예를 당할 것, 히틀러의 출현, 샤를 드 골의 세 번에 걸친 프랑스 집권,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도시가 겪은 원폭의 대재앙,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뉴욕의 911 테러 등이 그러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는 시적인 표현에 나타난 묘사를 그의 사후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450년에 이르는 동안 세계 곳곳에 있은 여러 사건들을 연관지어 예언이 적중한 것이라고 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다고 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암살당할 것이라는 등의 잘못된 해석을 내려 물의를 일으켰는가 하면, 1999년에 지구의 종말이 있을 것이라든가 하는 적중하지 않은 잘못된 예언에 있기도 하였으며, 이 예언은 20세기 후반 400년간 로마에 숨겨져 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새 예언서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곳에서는 이전과 전혀 다른 2012년으로 기술하고 있어 이전과 맞지 않는 예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의 선지자의 예언은 어느 개인에게 있을 일이나 세상에 일어날 재앙이 되는 대형의 사건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와 관련하여서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선지자들은 모든 시대에서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선지자로 불렸는데(창 20:7),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에 있으며 그분을 증거함에 있어온 자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아브라함만 아니라, 그 이전에 나오는 인물들인 아벨도 에녹도, 노아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의 활동을 하며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성경의 말씀을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린 선지자들이 있었으며, 예언의 글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예언과 함께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이적을 행한 선지자들 또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많이 활동하였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모두 그들이 살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족장시대 이후 이스라엘 왕정시대 이전에는 모세, 아론, 미리암, 여호수아, 드보라, 기드온 시대의 무명의 선지자들, 사무엘, 그리고 사무엘의 후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정 시대에서 분열왕국 이전에는 갓, 나단, 사독, 헤만, 아비야 등이 있었으며, 분열왕국 이후에는 잇도, 스마야, 아사랴, 하나니, 예후, 야하시엘, 엘리에셀, 엘리야, 엘리사, 미가야, 스가랴 같은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B.C. 9세기 이후 바벨론 포로기 시대를 거치며 성경을 기록한 대선지서 및 소선지서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선지자의 예언 사역
선지서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선지자에 의해 하나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가지신 뜻을 담은 메시지를 예언을 통해 전달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백성 중에서 택하여 세운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예언하여 이스라엘에 전달하게 하시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과 관련해서 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출애굽의 구원에 있게 하시고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신실히 이루어 가시는 창조주이시오 구속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김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나,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땅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는 본분을 지키지 않고 이방 민족이 행하는 우상숭배의 악한 죄에 있으므로 선지자들은 왕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백성들에게 이를 알리므로 죄악에 따른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저주를 알게 하시며 그들의 죄악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와 조상 때부터 대대로 맺음에 있는 언약의 계대적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으면서 살아계시고 참된 신이신 하나님만을 경외함에 있어야 할 것을 예언하는 것에서 말하였습니다. 선지서들은 그 예언과 그에 따라 있어 오고 또한 있을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는 십자가의 구속 사역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말해 주는 사건이 십자가에서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에 있은 두 제자와 동행하시며 말씀해 주신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27절)라고 하셨으며, 또한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신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44절)라고 하신 선지자의 모든 예언이 가리켜 온 일이 십자가에서 있은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예수께서 흘리신 피에 의하여 많은 사람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피에 의한 대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1:18-19)
보배로운 대속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교 곧 기독교이며, 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삶에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성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가 한 말인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다”(눅 23:41a)를 알고 있으며 “예수님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눅 24:41b)는 것을 알기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4:42)라고 구함에 있는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한 강도는 자신이 저지른 일로 그에 상응하는 죽음에 직면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음에는 사람의 마음과 행위의 선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심은 이것에 의하여 있게 되는 피로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언약을 맺으시는 것으로 있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마 26:28; 막 14:24). 이는 선지자가 예언해 온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에 있는 자는 단지 그것뿐인데 죄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이는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주는 원리로 세상 끝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진리가 됩니다. 그런 까닭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복음 선포가 주어집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생명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어떤지를 교회가 겪어온 역사에서 말해줍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 모두를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에서 십자가에 달린 자가 되어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그 피를 낙원을 약속한 한 강도에게도, 그리고 죄인의 괴수(딤전 1:15)인 바울에게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덮은 보배로운 피를 대하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고전 15:10)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죄인의 가장 앞에 있는 자신에게 피 뿌리심으로 구원을 받아야 할 모든 자에게 복음에 빚진 자가 되었음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에서입니다(롬 1:14).
그렇게 바울을 덮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온 의로운 피는 그 피에 의해 의로운 자가 된 또 한 사람이 흘리는 의로운 피에 의해서 계속하여 흐릅니다. 그리스도의 피에 있는 의에 의해서 의의 공급이 계속되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피는 죽은 식은 피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뜨거운 피입니다. 이 피가 생동하는 심정을 갖고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없애려고 아들을 보내셨음을 잘 알고서 그 아들 안에 거함에 있어 다시는 범죄하지 않으니 그리스도를 부인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자들마다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나타내신 사랑을 공급받아 믿음의 형제를 사랑함에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들어온 계명의 말씀입니다(요일 3:1-11).
선지자의 예언 사역을 잇는 그리스도인의 정신과 삶
선지자의 예언을 하며 그 기록을 하는 사역에 있은 삶을 살아간 것은 이를 사명으로 지고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경외심을 갖고 살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서는 그 일을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지니고 사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과 그의 백성들은 각자가 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들을 위해 보냄을 받은 선지자와 함께 하며 예언에 나타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서는 이 소명과 사명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는 특정한 사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 모두에게로 확대됩니다. 이는 선지자직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직과 제사장직 모두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성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어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발휘되는 삼직의 권한이 성도에 의해서 실행되기 때문입니다. 해서 성도는 왕이시오 대제사장이시오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그 일을 해 나감에 있어야 합니다.
‘희망가’를 복음송가로 개사한 ‘이 풍진 – 바람에 날리는 먼지요 티끌 - 세상을 만났으니’에서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우리 할 일이 무엇인가, 너의 할 일이 무엇인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형제여 서로 사랑하자”를 노래합니다. 이 형제의 사랑에 있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을 만나시고 그들에게 남기신 말씀인 대위임명령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하시고, 또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에 의해서 시작되어집니다.
선지자가 예언한 의의 길을 의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가셨습니다. 이 길을 주님이 홀로 가셨으며, 그 길의 끝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 고난의 종으로 달리셔서 그 길의 끝을 뚫어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그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십자가의 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유대를 통과하고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로 향했으며 서바나로 온 세상으로 사방에 들어섰습니다. 그 길 위에는 길마다 있는 동네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로 나서는 사람들이 걷고 뛰는 소리로 진동합니다. 그 길은 도시에도 농촌에도 어촌에도 각 골짜기마다 있는 오지에도 있습니다.
그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들은 어떤 심정으로 있겠는지요. 사도 요한이 본 환상 계시 그대로입니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감에 있습니다.
사명이란 복음송가에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을 나도 따라 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할 십자가 나도 따라 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주님 이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
라고 하였는데, 이 정신과 결심에 따른 각오와 희생의 헌신이 무엇에 의해서 노래되어지고 있는 것이겠는지요.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 머물게 되었을 때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주의 부르심을 받아 살아온 심장에서 박동하고 있는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18-35)
이러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바울이 유언적으로 말한 그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에 서린 주님과 주님이 맡기신 양떼에 가진 뜨거운 정신의 열정이 샘솟듯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심정에 있지 않으면 살 힘을 갖지를 못하고 요동치는 세상에 자신을 맥없이 놔두게 됩니다. 이에 항시 자신을 채근하여 살펴보며 주의 말씀으로 신앙을 바로 세우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겠습니다. (*)
▲이천우 목사
첫댓글 급한사정-쌀도 못사고 있습니다 공과금도 내야하는데 도와주세요,,
후원도 없습니다 후원으로 도와주셔서 용기를 주십시요...
카페지기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늘 어렵게 살아가는데
통신료 공과금 30만원과 치료비를 마련해야합니다
카페지기는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작은 나눔의 손길이 되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도와주신 분을 위해서 집사람 박경옥 전도사가 매일
기도해 드리고 있습니다.....
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 코리아 카페를 도와주실분을 기다리고 작정기도합니다 매월
자동이체 정기후원 회원님이 계셔야 카페를 운영 할 수 있습니다 공과금으로
30만원 병원약과 주사비가 30만원 40만원으로 먹을거라도 사야 삽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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