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추석이다. 예로부터 추석은 일년 중 가장 풍성하고 넉넉한 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배를 두들기던 날이 바로 추석 아니던가. 그런데 이번 추석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이리라. 그래서일까. 과자 봉투의 공기층은 갈수록 두터워만 간다. 과대 포장된 추석 선물이 또 기승을 부린다는 기사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과자봉투의 공기층이 두터워질수록, 선물의 포장이 과장되면 과장될수록 상대적으로 그 물건을 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값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원래 가격은 가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별 가치가 없는 물건도 있고, 반대로 헐값으로 살 수 있는 물건도 누군가에겐 매우 가치 있는 물건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일반적인 것과는 별 차이도 없는 상품에 높은 가격을 매겨놓고 장사하는 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그것을 사가는 사람도 끊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윤을 남기는 장사꾼이 그와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도 사지 않는다면, 물건을 예쁘게 포장해서 진열하는 수고를 낭비하는 것이므로.
따라서 문제는 '비싼 것=좋은 것' '예쁜 것=가치 있는 것' '유명한 것=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과 같은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다. 이와 같은 사고는 비단 추석 때만 고개를 든 것이 아니다. 허름한 아파트에 색칠을 다시 하고 유명 브랜드를 떡 하니 붙여 놨더니 가구당 몇 천 만원씩 오르고, 하도 옷이 팔리지 않아 심심풀이로 가격표 맨 끝자리에 동그라미 하나 더 붙여봤더니 날개 돋친 듯 팔리더라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 사회다.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을 경계한 사고는 노자에게서, 그리고 근대의 베이컨에게서 찾을 수 있다. 물론 두 사람의 실존적 맥락은 다르지만, 모두 거짓된 세상을 벗어버리고 참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첫 단추를 그릇된 인식에서 찾고자 했다.
노자가 생각하는 그릇된 인식이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 일체의 사고를 가리킨다. 그에 따르면 원래의 자연은 옳거나 좋거나 틀리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그저 그런 것일 뿐.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늘과 땅, 돌과 나무, 이것과 저것으로 구별하고, 나아가 이것은 좋은 것이고 저것은 나쁜 것이라고 평가하기에 많은 혼란과 다툼이 있게 된다고 했다. 원래 자연은 아름다움이나 추함과는 상관없다는데, 내가 아름답다고 우기며 강조하는 것은 그저 나 홀로 허공에 삽질하는 일이다.
알맹이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그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명품 로고가 달린 것은 좋은 아파트고 후진 상표를 달고 있는 것은 나쁜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값은 경쟁적으로 오르게 마련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비싼 것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후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쇼윈도우 상품의 동그라미는 계속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 결과리라.
베이컨은 근대 과학적 탐구방법의 정당성을 고민하던 철학가다. 그는 인간이 참된 세상이나 진리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헌데 이 감각적 경험이란 것은 사람들을 잘 속이는 '재주'를 지녔다고 봤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배부른 사람과 열흘을 굶은 사람이 느끼는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우락부락한 장정의 손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을 만나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손이라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곧은 막대기를 물속에 넣어서 보면 수면을 경계로 꺾여 보이는 것도 역시 감각적 경험의 '재주'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각적 경험을 근거로 드는 생각, 즉 인식은 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한다고 보기 어렵다. 감각적 경험으로 인해 편견과 선입견이 생기며, 그로 인해 올바른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근대 과학적 탐구방법에 있어서 이와 같은 왜곡은 첫 번째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베이컨은 이와 같은 경계를 우상(偶像)으로 비유해 표현한다.
어찌됐건 두 사람 모두 그릇된 인식과 편견에서 탈출할 것을 종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일본 과자처럼 아무리 과자 봉투가 화려해도 과자는 과자일 뿐 보석이 되지는 않는다. 과자를 다 먹고 나면 용도폐기의 대상일 뿐이다. 아무리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좋은 아파트라고 로고를 달아도 어디선 물이 새고, 어디선 소음이 크게 들린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정말로 중요한 건 비싼 값, 예쁜 포장 속에 들어 있는 것만이 명품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명품 딱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덕지덕지 붙인다고 내 삶이 명품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스스로가 명품이 되면 어떤 것을 걸쳐도, 어느 곳에 살아도, 무엇을 먹어도, 어떤 일을 해도 빛이 나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이 진정한 명품이 되는 세상,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