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스도 만차다. 팔봉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버스는 멈춘다. 2주만에 다시 보는 팔봉초교의 학교 건물 위의 시계는 9시 36분을 가르킨다. 동대문운동장공원역에서 출발한지 3시간 만에 도착이다. 이제 서산인데 여기에 오는데 이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이런 시간의 투자를 하지 않으면 구석구석을 다니기에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백두산 천지 여행은 비행기로 이용할 경우 4일이 소요되는데 실제 천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이틀에 걸쳐 2시간 30분 정도고 나머지는 이동시간에 소요된다. 그래도 누구나 이럴 때는 멀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버킷리스트에 포함되는 천지를 보기 위해서는 만사를 제쳐놓고 여행을 한다. 방방곡곡에는 멋진 곳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망설이게 된다. 코리아둘레길 4,500Km를 종주한다는 명분이나 목적이 뚜렸하지 않으면 지루해질 수 있는 이 길을 건너 뛰거나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결국엔 움직이지 않으면 볼 수 있는 것을 못 보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학교 담장 옆에 있는 77코스 안내판에 가서 QR코드를 인증하고 출발한다.
오늘 코스는 가로림만 중에서도 호미곶처럼 바다로 돌출된 곳을 걸으며 구도항까지 가고 다음 코스의 거리가 길기 때문에 약 3Km를 더 걸어서 으뜸말정류장까지 걷는다. 북쪽으로 길을 잡는다. 농촌길을 걷는다. 논과 밭이 펼쳐진다. 길가 풀 사이에 핀 연한 홍색의 메꽃에는 빗방울이 맺혀있지 않은데 가느랗고 길쭉한 풀잎에는 투명한 물방울들이 송이송이 맺혀있다. 이상한 일은 자연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이렇게 보여준다. 이곳은 조금 전까지 이슬비가 내렸다는 의미일까. 가로림만 제방 옆으로는 논이 다수 보이지만 낮은 경사면이 있는 길가에는 주로 밭이 보인다.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덮고 있다. 바다 건너 멀리까지 하늘은 우중충하다. 비 예보는 없는데 비가 내릴까?
작은 포크레인까지 동원하여 일가족이 모여 밭을 일구고 있다. 어떤 작물을 심을지 궁금하다. 논밭 너머로 지난번에 지났던 제방과 들판은 보이는데 팔봉산은 보이지 않는다. 팔봉초교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어도 보이는데 구름이 낮게 깔려서 산 정상부가 보이지 않는다. 장마철의 날씨는 변덕 때문에 알 수가 없다. 길은 가로림만과 인접한 논가로 접근한다. 좌측의 넓은 공터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는 개망초가 하얗게 흐드러지게 피었다. 몇 송이의 꽃을 꺽어 가까운 듯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 길가 경사진 언덕에 커다란 생강밭이 나온다. 볕짚위로 지난 주 보다 줄기가 좀 더 올라왔다. 볕짚이 있는 이랑의 줄이 반듯하게 잘 처리되어 시원하게 뻗어 있고 그 사이마다 고랑 또한 깊게 파여 있어서 왠만한 강수량에도 충분히 견딜 것 같다. 10월 중순 이후에 수확을 할 때는 대풍이 예상된다. 어느 집 마당에 활짝 핀 흰 백합이 탐스럽다. 농촌 마을을 지날 때 노란색, 분홍색 그리고 빨간색으로 변신을 하며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있다. 길가 옆으로 태양광 설치장이 보인다. 농사짓기 어려워 태양광으로 전환했는지는 몰라도 집 앞에 크게 설치해서 농촌의 풍광이 흉하다.
가로림만과 접해있는 언덕 밭에서 일손을 보고 있는 어르신이 계신다. 가까이에 청색의 기와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장으로 보인다. 생강이 자라고 있고 콩밭도 있고 다른 쪽에는 알 수 없는 작물이 심어져 있다. 꽤나 큰 밭이다. 어르신이 어디로 가는냐고 묻는다. 구도항에 간다고 하니 방향이 틀렸다고 한다. 걸어서 가는 중이라서 괜찮다고 하는데 갑자기 양파를 사라고 한다. 조금 남았는데 안팔려서 걱정이라고 한다. 보관이 쉽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언덕 길가에서 볼 때는 집과 밭이 바다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가족들이 집터에 별장을 짓는다면 풍광이 멋있어서 잘 어울리겠다. 지난 번에 걸었던 팔봉초교 앞의 제방부근에서 보았던 칠면초가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전경이 잘 들어오고 경사면에 펼쳐진 생강밭의 고랑들이 줄지어 길게 바다로 밀려가는 모습 또한 이쁘기만 하다. 고개를 오르는데 라이더 한 명이 지나간다. 아라메길을 라이딩하는 걸로 보인다. 라이딩을 나홀로 하는 모습에서 해파랑길을 홀로 걷는 내 모습이 스쳐간다.
고개를 넘을 즈음 자귀나무 줄기가 왠일인지 길가에 쓰러져 있다. 줄기 밑둥이 부러졌다. 강풍이 그랬는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분질런는지 알 수가 없지만 지금은 나뭇잎 사이사이로 아주 가느다란 수많은 선에 흰색과 분홍색의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우산 모양의 어여쁜 꽃들이 나뭇가지 마디 마다 피어 있다. 그냥 놔두면 말라 죽을 것이다. 최근에 자귀나무에게 무슨 연유가 있었을까. 서산아라메길 이정표가 보인다. 호리종점이 5.1Km남았다고 알려준다. 서산의 아라메길은 세 곳에 있다. 지난 번 경유한 삼길포항이 있는 삼길나루길과 지금 만나고 있는 가로림만에 돌출된 호리지역의 구도범머리길 그리고 10월 즈음에 걷게 될 해미읍성에서 개심사를 거쳐 마애여래삼존상까지 이어지는 천년미소길이다. 그 중 구도범머리길이 이번 서해랑길과 상당 부분 겹치는데 차이점은 구도범머리길이 대부분 해안길을 따라 구석구석 찾아가고 특히 주벅배전망대도 거친다는 것이다. 서해랑길은 이 전망대 600m 앞에서 무정차 상태로 통과한다.
조용한 농촌길을 걷는다. 밭 사이로 난 길은 직선이 아니라 낮은 각도로 굽어 돌아간다. 산자락에는 몇 채의 집들이 있고 그 아래 경사면과 둔덕에는 밭이 조성되어있다. 상당수가 생강밭이다. 길게 뻗은 몇 개의 이랑이 있는 밭에서 마을 어르신이 허리를 굽힌 채 고랑에서 새순이 난 작물을 손보고 있다. 볕짚이 없으니 생강은 아니고 다만 작물은 알아 볼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소나무가 높게 자란 마을이 나온다. 산자락을 타고 오르막을 오른다. 고개 부근의 소나무 몇 그루는 칡 덩쿨이 온 몸을 타고 상단 부근까지 접근했다. 자연생태계에서는 늘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칡 덩쿨을 제거하지 않으면 저 소나무는 몇년 내에 고사할 것이다. 그 옆의 어느 나무는 아예 통째로 덩쿨이 전체를 덮고 있으니 죽을 날도 멀지 않았다. 시골길을 계속해서 걷는다. 이른 시간도 아닌데 보이는 사람들은 없고 기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너무도 한산하다. 길은 농로따라 산불 흔적이 있는 산자락으로 직진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길은 묘하게도 우측으로 돌리고 덕송리 제방으로 인도한다. 둑 아래 옆길을 따라 편하게 갈수 있지만 그럴경우 우측으로 제방에 가려 답답할 것으로 생각되어 제방으로 올라간다.
아라메길 이정표 기둥에 남색의 서해랑길 스티커가 붙어 있으니 이 곳은 두개의 길이 함께하는 곳이다. 제방 위에 주민 일동 명의로 맛살 채취 금지 경고문이 세워져 있다. 맛조개를 말하는것 같다. 어릴 때는 많이 보았는데 오랫만에 생각나게 만든다. 만조 시간이 지난지 2시간 30분이 지나간다. 그에따라 갯벌이 어느정도 들어나고 있고 갯벌에도 구멍난 흔적이 지천이다. 하늘은 아직 검은 구름이 낮게 자리잡고 있지만 가시거리는 좋아서 멀리도 잘 보인다. 가로림만을 바라본다. 바다 건너 땅이 보이지만 가로림만이 시작되는 만대항이나 벌말항은 아닐 것이다. 그곳은 너무 멀기도 하지만 근처에 있는 호리항과 고파도 그리고 왕산포구가 바다 시야를 가로막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방길은 다닌 흔적이 적어서 잡초 세상이지만 덩쿨들이 난무하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걷는다. 제방 끝에 아라메길에서 만든 호덕간쉼터가 있다. 먼지가 너무 쌓여서 앉아서 쉬기는 곤란해서 아라메길 안내판만 살펴본다. 호리항을 지나 갯벌체험장을 경유하면 북쪽으로 바다와 맞닿은 곳을 범머리로 표기하고 있고 다시 주벅배전망대를 지나 구도항까지 연결된다. 그래서 아라메길은 이 길을 구도범머리길로 명명한 것을 알게된다. 그런데 쉼터 이름에 들어간 호덕간은 무엇을 의미할까. 안내판에는 호덕간사지라는 명칭은 있으나 어떤 내용인지는 설명이 없다.
고요한 숲길을 잠시 걷자니 논보다는 밭이 나오고 바다를 보며 걷는다. 노란 플라스틱 수조가 보이는 커다란 밭에는 연녹색의 작은 작물이 올라오고 있는데 아는 바는 없다. 그러나 밭에는 작물 사이로 밭갈이 때 만들어진 다양한 선이 보여서 눈길을 끈다. 좌측으로 오르며 경사면을 바라보니 밭갈이를 끝낸 이곳은 작물은 없고 대신 직선과 곡선의 골이 파여 있어서 시각효과를 내고 있다. 순간 크롭 서클(Crop Circle)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스친다. 외국의 거대한 문양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언뜻 그 생각이 떠오른다. 골에는 바퀴자국은 안 보이는데 어떤 방식으로 문양 선들이 만들어졌을지 궁금해진다. 조경 시설도 잘 갖추고 있는 어느 업체 앞을 지나치는데 표지석은 있으나 업체명은 적혀있지 않다. 조금 전에 보았던 커다란 문양 밭은 이곳에서 경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덕을 올라가니 길은 우측으로 급히 꺾어 나간다. 길 좌측 공터에는 칡 덩굴이 점령했다. 어쩐 일로 토지를 놀리고 있을까. 고개 아래 산비탈 쪽으로는 근사한 집들이 모여 있다. 호1리 마을이고 바다도 가까이에 있다. 흑염소 한마리가 묶여 있다. 사람이 다가갈 때 마다 피하느라 묶여 있는 목이 꽤나 아프겠다. 그나저나 다른 놈들은 어디에 있을까. 계속 호리종점으로 안내하는 아라메길 이정표를 보며 내려가는데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서 윤승한 선배님이 잠시 휴식을 즐기고 있다. 어쩐 일로 후미에 있느냐고 물으니 조금 전까지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고 한다. 산자락을 따라 걸으며 제방에 다시 올라선다.
가로림만이 다시 펼쳐지지만 서해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앞쪽으로 호리항 앞에 있는 쌍섬과 고파도와 분점도 그리고 조도 등이 중간에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갯벌도 조금 더 드러나고 있다. 제방 난간 안쪽 아래에 누군가가 참외를 심어놔서 줄기가 바닥으로 뻗어가고 있고 작고 앙증맞은 노란 꽃까지 피우고 있는데 그 옆에는 포동한 녹색의 열매가 작지만 커가고 있다. 덩쿨이 난간으로 쉽게 타고 올라가도록 지지대까지 군데군데 걸쳐 놓았다. 제방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지 않아서 참외가 잘 자랄 것으로 보이고 그 옆에는 참깨까지 있으니 가성비가 대단한 곳이다. 이것은 해마다 여기에 기르고 있다고 봐야겠다.
제방이 끝나는 곳에서 선두 일행들이 간식을 들고 있다. 장 대장, 안 회장님, 조민행/이석길 선배님등이 함께하고 있다. 윤승한 선배님이 달콤한 닭강장을 꺼내면서 위스키 병을 보여준다. 한잔 받아 마시는데 아주 독하여 조금 마시다가 잔을 내려 놓는다. 젊을 때 마셨던 나폴레옹이라는 위스키가 소환된다. 하늘은 흐리지만 다행이도 비 내릴 조짐은 아니 보인다. 쌍도가 바로 앞에 있고 바닷물이 빠지니까 모래톱을 따라서 두 섬은 연결된다. 낚시배도 몇 척 떠 있고 바다 건너 맞은편은 안도와 왕산포구가 있다. 지난 코스에서 지나 온 왕산저수지 부근이다. 호리항의 선착장으로 좀 더 이동했으면 하지만 이미 일행들은 모두 떠난 뒤라서 마을택시 승강장에게 안녕하고 출발한다. 서산의 마을택시는 시내버스 타는 정류장까지 1Km 이상 걷는 이곳 호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외부인들은 이용할 수 없다.
주택가로 들어간다. 정원 시설이 잘 꾸며진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자귀나무 꽃은 지고 있는 중이라 꽃들이 너절하고 거무스름한 점들이 꽃잎에 찍혀 있는 기개 있는 참나리가 위풍당당하다. 어느새 일년이 돌아 나리의 세상이 다시 돌아왔다. 나이먹은 만큼 시간은 과속으로 달려가는 유수같은 세월이다. 마을이 제법 운치가 있다. 길가에는 희고 보랏빛의 도라지 꽃이 줄줄이 피면서 마을 입성을 환영해 주고 있다. 논밭 너머에는 조금 전에 지나온 산자락이 보이며 낮은 먹구름이 덮고 있다. 우측으로 마을 길을 오른다. 일반적인 농촌 마을 풍경이 아니다. 펜션 단지로 보인다. 꽤나 넓게 자리잡고 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아라메길의 이정표에는 호리종점이 400m남았다. 계속 펜션 길을 걷는다. 아라메길 이정표는 구도항 7Km로 표시되어 있다. 호리종점이 사라졌다. 종점을 알지 못한 채 지나쳤나보다. 어느 펜션 집 앞 뜰에는 진홍색의 범부채꽃이 유혹한다. 눈길이 아니갈 수 없다.
다양한 형태의 펜션을 지난다. 정원의 조경이 아름답게 잘 가꾸고 있다. 커다란 무궁화 나무에 분홍색이 꽃들이 활짝 웃고 있고 그 앞에 자귀나무의 꽃들도 마지막 안간힘을 쏟고 있다. 솔창팬션 정원을 둘러보면 노란 백합꽃이 은은한 미소로 눈길을 당기고 있고 가로림만의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보인다. 가로림만과 접해 있는 호리의 북쪽은 이렇게 펜션단지가 멋지게 자리잡고 있다. 바다로 돌출된 땅의 제일 끝부분에 있어서 조용하기 그지 없다. 몇 일 머물다 가도 좋겠다. 바다가 잘 보이는 길을 걷자니 건너편으로 길게 뻗어내린 산자락이 있다. 범머리라고 불리는 곳이다. 펜션가를 지나 더 가야 한다. 갯벌 위에 만들어진 길을 따라 바다쪽으로 가로지르는 트럭이 보인다. 방조제를 만들 때 드나드는 차량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무슨 이유인지 궁금하다. 하늘 일부분이 푸른 색이 약간 감돈다. 날씨가 개인다는 징조일까. 좁은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간다.
잠시 후에 조금전에 보았던 갯벌을 지나가던 차량이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해안가로 다가간다. 바다 멀리 고파도가 위치하고 있고 그쪽으로 길이 나 있다. 초입에 자갈들을 잘게 부셔 만든 더미가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계속 갯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목적이 무엇일지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좌측으로 좀더 가까워진 범머리가 보인다. 그러고보니 이곳이 호랑이의 입속인지 모를 일이다. 범머리 맞은 편인 우측에도 바다로 길게 이어진 산자락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런가 아니면 바다쪽에서 보일까. 어느 방향이든 지금으로서는 그 모양을 볼 수는 없다. 갯벌체험장이 보이지만 그대로 범머리 자락으로 길을 따라 오른다. 숲속에 길을 내었다. 지나온 곳을 바라보니 산자락 나무 숲 한 쪽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펜션들이 멋있게 보인다. 그곳을 지나면서 느낀 것이지만 머울고 싶은 곳이다. 중간에 낚시대를 매고 가는 동네 어르신이 있어서 갯벌에 트럭이 다니는 이유를 물어본다. 고파도 사이에 바지락양식장이 있다고 한다. 거리가 4Km 정도 되기에 걸어서 가기에는 무리라서 썰물 때 차량으로 이동하기 위한 길을 몇 년째 만들고 있다고 한다. 고파도는 바지락과 굴이 유명하다.
구도항으로 가는 해안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고갯길에 서 있다. 이곳에서 해안가 대신에 숲길을 따른다면 범머리에 해당하는 산자락 끝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서해랑길을 따른다. 언덕을 내려가며 시야가 터진 우측으로 아름다운 전경이 다가온다. 갯벌과 작은섬 그리고 제방 앞의 작은 카페가 마음을 흔든다. 호리항 부터 가끔 길가에서 보였던 카페 호리의 길 안내판이 이곳을 가르킨 것이다. 카페 앞의 좁은 길을 따라 승용차 세 대가 움직인다. 카페를 바라보기만 해도 창가에 앉아 가로림만의 바다를 바라보며 스무디 한 잔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길은 그곳으로 가지 않기에 마음만 잠시 들렸다 나온다. 간조 시간이 약 2시간 반 정도 남았으니 바닷물이 그만큼 밀려갔고 그 자리를 갯벌이 차지하고 수면위로 드러났다. 그러나 날이 더워서 그런지 갯벌에서 일하거나 체험하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카페 호리를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서산아라메길은 이 길을 따라 카페 호리를 지나 해안가를 따라가며 주벅배전망대를 거쳐 바닷길을 걸으며 구도항으로 간다. 그런 점에서 서해랑길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아라메길은 밑물 때는 걷기 어렵기 때문에 이 점을 고려하여 숲과 들판을 연결한 듯하다. 잠시 마을 길을 걷는다. 제방 위에 홀로 고요히 서 있는 카페호리와 갯벌이 한없이 펼쳐진 가로림만을 보며 오르막길을 따라 숲길로 들어선다. 한참을 걷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난다. 김영수 님이다. 왠일로 뒤에서 올까. 카페호리 쪽으로 길을 잘못 들어 갔다가 빠져 나오는 길이라고 한다. 언덕배기에서 해안까지 잠시 내려갔다 올라왔을테니 알바에 조금 지쳐 보인다. 교회 수양관 입구가 보이는 길목의 어느 밭을 보고 김영수님은 다가간다. 쇠비름나물을 채취한다고 한다.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걷는다. 경사면에는 일정하게 골이 줄지어 있는 생강 밭이 있고 무엇인지는 파악이 어려우나 녹색으로 도배된 밭도 보인다. 그 뒤로 바다에 접한 곳에는 양식장의 수차가 흰물결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다가 길은 우측으로 갑자기 꺽어진다. 자주보이던 서산시의 안내판은 보이지 않고 정해석님이 선두에서 만들어준 안내 방향 표지가 길을 유도한다.
다시 근사한 펜션들이 보인다. 바다가 가깝고 조용한 마을이라서 자리잡을 만하다. 길은 바닷가로 내려간다. 하늘에는 다소 옅은 먹구름 사이로 푸른 창공이 나타나고 햇빛이 따갑다. 노을빛캠핑장 앞에 오니 가지나 감자꽃과 비슷한 도깨비가지꽃이 군락으로 피어 있다. 생태계를 교란 시키는 외래 식물이다. 이놈들이 제거되지 않고 이런 곳에서 꽃피고 사는 것이 요상하다. 바닷가에 작은 8각정자가 있고 일행들이 쉬고 있다. 해변에서 조금 전에 지나온 펜션길을 돌아보니 일상의 농촌 풍경이 아니라 외곽의 전원 풍경이다. 언덕 위에 있는 펜션의 창가에서는 바다와 일몰이 잘 보이겠다. 제방 위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굴과 바지락의 종패를 살포하였으니 채집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당연한 말씀. 맞은편의 산자락에 나무데크가 보이는 곳이 주벅배전망대라고 막독 팀장이 전한다. 그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출발한다.
아라메길은 지금같은 썰물 때는 해안가로 진입하여 약 1Km를 걸으면 주벅배전망대를 경유하지만 서해랑길은 덕골방조제를 따라 내륙으로 걷는다. 하늘엔 어쩐일로 뭉게구름이 풍성하여 걷는 지루함에 약간 흥을 돋군다. 가로림만은 갯벌이 워낙 멀리 뻗어나가서 할미섬의 자취는 살짝 알려 주지만 바닷물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제방이 끝나면 야산으로 진입한다. 약간 트인 곳에서 바라보니 뭉게구름과 어울리는 농촌풍광이 가슴 가득 담긴다. 모처럼 보는 전원 전경이다. 산길이지만 골이 깊지않아 걷는데 더위 말고는 특별히 어려움은 없다. 등산로 옆 공간에 안 회장님, 성 선배님 그리고 후미에서 가끔 보는 분 등이 간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성 선배님이 요청하여서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네 분의 사진을 남긴다. 산길은 그리 오래 가지 않고 임도가 나온다. 그곳에서 직진하면 구도항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가면 주벅배전망대를 경유한다. 뛰따라 오던 오늘 처음 나온 여성 세 분은 구도항으로 직접 간다고 하여 안 회장님, 면사포님과 함께 해안가로 간다. 주차장을 지나면 길이 두 곳인데 일단 좌측의 길을 따른다. 대나무 터널길이 나오는데 녹음이 좀 더 우거지면 누구나 걷고 싶은 길이 될 수 있을까. 거리는 짧아서 금방 도착한다. 해안가로 나무데크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따라가며 우측의 계단을 약간 오르면 배 모양의 2층 주벅배전망대가 기다린다.
일행들은 점심 식사가 진행중이다. 가장자리에 앉아 간단히 가져온 빵으로 식사를 한다. 단체 사진을 남기고 먼저온 일행들이 자리를 뜰 때 윤승한 선배님께 부탁하여 전망대 기념 사진을 남긴다. 바다를 바라본다. 건너 편에 붉은 지붕으로 장식한 새섬리조트가 훤히 보이고 그 앞에 작은 섬인 새섬이 있다. 좌측 앞에는 주벅녀와 용난둠벙이 붙어있고 우측으로 약간 떨어져서 할미섬이 자리하고 있다. 둠벙은 물이 고인 웅덩이를 말하는데 갯벌이 있을 곳에 커다란 둥근 모양에 바닷물이 가득 고여 있고 뭔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니 용이 하늘로 올라 갔다는 전설로 불리만하여 용난둠벙이 되었다. 제주 추자도에도 나바론 절벽 끝에 용둠벙이 있어서 용이 승천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할미섬은 조금 전에 제방을 걸으며 갯벌위에 살짝 솟구친 바위 흔적을 보았기에 그나마 알아 본다. 모처럼 바다는 푸른 하늘과 뭉게 구름이 합작하며 멋진 풍광을 보여주니 다시한번 용이 솟구칠 만하다. 용은 비올 때만 승천하나?
서해랑길로 되돌아가서 숲 길로 들어선다. 윤승한 선배님과 함께 걷는다. 길은 평평하고 편하다. 우럴목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 나갈 때 입구의 폭이 좁아서 우럴우럴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숲속의 길에서는 해안가가 거의 보이는 않기에 그런 느낌을 갖을 수 없으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쉼터가 있는 곳에도 해안과 연관이 있는 마구할미터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온다. 여기서는 숲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데 아무튼 이름은 잘 짓고 있다. 다시 보이는 안내판을 보면 이 야산이 돌이산이라고 한다. 산 아래에 우럴목과 마구할미 바위가 있다고 적혀있으니 이즈음에서야 이곳에 신화가 깃든 이유가 약간은 이해된다. 아라메길의 이정표를 보니 구도항이 2.2Km 남았다. 야산을 내려오면 작은 제방길이 나온다. 갯벌 멀리 구도항도 조금 보인다. 제방 위에는 고부레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제방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산자락이 고양이 머리를 닮아서 명명되었는데 지형을 보아서는 느낌이 오지 않지만 지도앱의 스카이뷰를 보면 약간은 비숫하다.
일행분들이 8각정자에서 쉬고 있다. 잠시 앉아 있다가 먼저 자리를 뜬다. 길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선배들이라서 걱정없고 구도항에 당도하기 전에 앞서갈 것이니 부담이 없다. 호랑이와 떡파는 소녀상의 조형물이 해안가에 있다. 떡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소녀 앞에서 호랑이가 오른 손을 뻗으며 떡 하나 달라고 하는 모습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 한 닢을 손에 주면 호리2구 마을 주민들이 성금으로 고이 쓰겠다는 의미이다. 범의 손바닥이 평평해서 지폐는 바람에 날아갈 것이니 동전만 가능하다. 조형물 앞에는 옻샘이 있다. 해변에서 솟아나는 물은 짜지 않은 담수다. 우물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물을 떠서 직접 물을 마셔봐야 하는데 그냥 지나친다.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다시 야산을 넘는다. 금방 작은 도로가 나오고 산양포를 거치면 호2리 마을회관과 연결된 도로로 진입한다. 바다와 근접한 해안도로다. 어느 승용차가 멈추더니 주벅배전망대 가는 길을 묻는다. 낚시꾼으로 보이지는 않고 관광객으로 보이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는 중이다. 장소를 지나쳐 왔기에 뒤로 돌아 찾아가야 한다고 했지만 머뭇거린다. 우리들은 걸어왔기에 설명이 곤란하다고 했다. 네비게이션에 위치가 나오지 않는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잘 찾아 갔을 것으로 믿는다.
우측으로 갯벌이 펼쳐진다. 도로와 숲길을 따라가면 포구가 보인다. 호리 지명답게 호랑이 두 마리가 서 있으면서 가로림만 범머리길을 알리는 안내문을 들고 있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일행들과 사진 몇 장을 남기고 구도항으로 들어간다. 슈퍼 앞에 76코스 안내판이 서 있다. QR 코드를 찍고 스탬프를 획득한다. 선두 일행 중 일부는 슈퍼 그늘막에 모여 맥주로 갈증을 풀며 쉬고 있다. 이번 코스는 일단 여기서 끝낸다. 오늘 걸은 거리는 13Km이고 다음 75코스는 약 21Km다. 그래서 장거리의 코스 부담을 다소 줄이고자 도내교가 있는 으뜸말정류장까지 약 3Km를 더 걷기로 한다.
다시 걷는 일행들은 많지 않다. 조민행 선배님 일행분과 장 대장 그리고 안 회장님이 걷는다. 먼저 제방을 따른다. 좌측으로 커다란 양식장이 나온다. 수차가 돌면서 하얀 물결을 일으키면서 산소를 공급하고 있다. 대하양식장이다. 물이 빠진 구도항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구도항에 들어왔을 때 주변을 못보고 코스 안내판으로 곧장 온 것이 생각난다. 다음에 구도항에서 출발하지 않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그리 큰 포구아 아니라서 제방에서도 어느 정도 파악이된다. 제방 끝에는 숲 길과 해안가길이 있다. 안 화장님은 좌측의 숲길로 이미 들어갔고 장 대장은 해안가로 가자고 한다. 막상 해안은 암석과 작은 자갈 등으로 인해 걷기가 다소 불편하여 숲길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면 길은 산자락을 넘어 제방에서 다시 만나고 양식장이 계속 나타난다. 갯벌 중간에 섬이 하나 솟아있다. 덤섬이다. 오리가 물속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니다. 제방은 잡풀로 무성하다. 길은 잠시 산길로 들어섰다가 금방 제방과 다시 이어진다. 산자락에는 근사한 펜션이 모여있다. 펜션 앞이 녹색의 논 들판이 있고 푸른 하늘이 위에서 받쳐주니 자연속에 갇히고 자연에 동화되는 느낌이 든다.
제방은 가로림만으로 튀어 나온 곶이 끝나는 지점이면서 내륙으로 땅이 들어가는 만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바다 맞은 편이 폭이 좁다보니 덤섬 주변으로 갯벌이 광활히 펼쳐진다. 거기다가 하늘엔 하얀 구름이 점점 모여드니 풍광이 살아난다. 안내 표지판은 현재의 제방이 물구지방조제로 알려준다. 제방 옆으로 몇 개의 펜션을 지나치면 634지방도로를 만나는 곳에 작은 8각정자가 있고 앞서가던 일행들이 쉬고 있고 있다. 후미에서 도착하면 선두에서는 자리를 비워준다. 도로 옆으로 제방을 따르는 길은 마침 구름을 벗어난 햇빛을 받고 걸어야 한다. 그런 불편함은 있지만 구름이 빚어낸 풍광은 이만저만 멋진 것이 아니다. 좌측 너머로 팔봉산이 햇빛을 받으며 산세를 뽐내고 있다. 계속 산 주변을 맴돌고 있다. 도로 좌측은 물이 가득 차 있고 우측은 갯벌이 한참을 뻗어간다. 서산시에서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알린다. 이제부터는 태안군으로 지역이 바뀐다. 가로림만 입구에 있는 만대항부터 학암포와 신두리, 만리포와 몽산포, 청포대에서 당암포구까지 약 10개의 코스를 경유한다. 충남의 다른 지역보다 오래 걷는 것은 태안군이 서쪽 끝에 있어서 그만큼 해변이 길기 때문이다. 태안이 끝나면 간월도를 지날때 다시 서산시를 잠시 경유한 후에 궁리항이 있는 홍성군으로 넘어간다.
모처럼 멋지게 연출하는 하늘의 풍광을 벗삼아 걷다보니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는 제방길을 힘들지 않게 걷는다. 그러면 제방이 끝나는 곳에서 좌측으로 634지방도로 굴다리를 통과한다. 팔봉산에서 흘러 내려운 물줄기가 조금 전에 걸어온 제방에 의해 만들어진 솔감저수지 옆으로 걷는다. 고수부지에는 수초와 잡초로 뒤범벅이지만 그 뒤쪽 너머에는 팔봉산이 지긋이 위엄을 갖추고 있다. 저수지 둑방에 차량을 주차하고 수초 옆에 파라솔을 세우고 낚시하는 꾼이 두 명 있다. 걸치대에는 낚시대가 8개 걸려있고 한 명은 물속에서 어항을 들어올리고 있다. 어느 어리숙한 놈이 어항속으로 들어갔을까. 길은 저수지를 따라 계속 가지않고 산자락을 타고 우측으로 꺾어진다. 구도항에서 2.6Km 걸었다고 태안군의 안내판은 말해준다. 안 회장님과 함께 걷는다. 길가 우측에 보이는 밭에는 생강과 콩 이외에 새로 보이는 농작물이 있다. 이것은 알아본다. 당근이다. 한 이랑만 심었지만 서산에서는 처음보는 것 같다.
안 회장님이 오르막 길가 옆 수풀에 닭장을 유심히 바라본다. 병아리 한 마리가 닭장 밖에서 입구를 찾지 못해 철망을 왔다갔다 하며 삐약거리고 있고 닭장 속의 어미 닭도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뱀과 같은 나쁜 놈만 없으면 잠시 후에 주인장이 잘 처리할 것이다. 금방 도로가 나온다. 도로변에는 도내2리에서 설치한 태양광 설치 결산 반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 옆의 으뜸말정류장에서 버스가 대기중이다. 여기가 634번 지방도로 위를 지나가는 도내교가 있는 곳이다. 오늘 트레킹은 여기서 종료한다. 당초 목적지인 구도항에서 약 3Km를 좀 더 걸었으니 다음 코스에서는 그만큼 가볍게 걸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