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연간집 원고
(시 5편, 수필 1편, 작가 프로필)
1. 공 일
추 영 호
나방이 껍데기
방충망에 붙어 있다
언제부터 붙어있었는지
창틀의 먼지를 털어 내는 날
바쁘다는 핑계로
항상 그 자리에 놓인 가구
뒤편 후미진 곳으로 숨어들어
시나브로 쌓인 세월의 잔해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털어내야 하는 일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비듬도, 흉터의 딱지도
내가 싫어 떠난 나의 일부
떠나버린 사랑에 대하여
덜 아문 상처에 대하여
날아 가버린 나방에 대하여
조문弔問을 한다
삶은 거르지도 못하면서
빈껍데기만을 매달고 있는
방충망에 묵은 나를 터는
오늘은 공일空日.
2. 사랑의 촉수
추 영 호
내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더라도
알아볼 수 있다고
많은 사람 속에 섞여 있더라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속내를 알 수 있다고
여자에게는 그런 촉수가 있다고
그렇게 말한 것뿐인데, 그 순간
가슴에 별똥별 하나 떨어지고
한 줄기 섬광이
모천을 찾아가는 연어처럼
거칠게 물살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휑해진 내 정수리에 아직도
촉수가 돋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 천지에 길을 묻다
추 영 호
천지天池에 올라 땅을 볼 수 있음은
발아래 구름이 있기 때문이요
천지에 올라 하늘을 볼 수 있음은
백설이 나를 구름 위로 띄웠음이라
백세白世에 찍힌 홀씨 하나
운무는 휩싸고 바람은 내치려는데
그래도 내게 천지를 허락함은
백두白頭의 자손임을 인정함이리라
우주 만상의 조화가 그러하듯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쓸쓸해지거늘
먼 듯 가까운 듯, 찬 듯 비운 듯
흰옷 두른 봉우리 넉넉히 모여 앉아
어깨를 비비며 천지를 품었어라
천지에서 솟은 물은 낙포洛布를 이루며
남으로 남으로 흘러 초목을 적시는데
인간이 외면함은 도리가 아니거늘
질린 자작나무숲은 하얗게 떨고 있고
지열은 *70년을 지글지글 끓고 있네
세상사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했거늘
남풍은 언제쯤 백두에 오를는지
외 둘러 온 먼 길은 언제쯤 트일는지
천지에 올라 그 길을 묻노라.
* 올해로 분단 70년
2015. 3. 28.
백두산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4. 도문강을 그리며
추 영 호
·
도문강*을 지나며 새를 보았다. 새는 경계를 날고, 바람과 구름은 새를 쫒아 흐르고 있었다. 한달음이면 건널 수 있는 강, 강이라 부르기엔 너무 초라한, 경계라고 하기엔 너무 헐거운, 그것은 황톳물에 싸여 흘러가는 묵은 덩어리였다. 하늘과 땅과 강은 한 장의 지적부地籍簿. 누가 경계를 그었는지, 차라리 모두가 새가 되길 원했다.
길조吉鳥가 아니라도 좋다. 까마귀의 부리로라도 깨고 싶은 침묵, 극소량의 산소로 고도를 기다리는 황량한 들판. 갈대바람에 봄은 떨고, 흙먼지로 한限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 날개 짓이면 족히 허물 수 있는 경계의 안과 밖, 경계의 밖에 선 나는 행운아 일뿐이다. 동토凍土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너는 죽지뼈 하나라도 두고 와야 한다.
도문은 동토를 엿볼 수 있는 곳, 천지天池에서 밀려 온 유빙은 황톳물에 씻겨 여기서 굽이치다 동해로 떠날 것이다. 동해는 또 한 장의 지적부, 경계는 바다에서 섞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강은 유리알처럼 투명해 질것인가?
사진에 담아 온 도문강-! 새는 아직도 경계를 날고 있는지? 죽지뼈는 하나라도 두고 왔는지? 황톳물은 유빙에 씻겨 얼마나 맑아 졌는지? 동토의 갈대는 잎을 피웠는지? 동해는 푸르게 섞여 경계를 허물고 있는지? 돌아와 그리니 허망하고, 슬프고, 황망할 뿐이다.
2015. 3. 29. 두만강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도문강 ; 북, 중 경계지역에 위치한 강.
중국 연길시에 속하며 북한의
남양시와 마주하고있다
5. 5월 연가
추 영 호
또 한 잎, 꽃이 지네
동행은 영원할 수 없다는 듯
꽃잎은 살포시 땅위로 내려앉고
가지에 남은 꽃들은 이별을 준비하네
바람과 구름은 잠시 발을 멈추고
한 하늘을 닫으며 애도하네
또 한 잎, 잎이 피네
동행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꽃 진자리 살포시 새잎은 올라앉고
가지에 물오른 잎들은 만남을 준비하네
바람과 구름은 잠시 발을 멈추고
한 하늘을 열며 축복하네
*비발디의 바이올린 선율로
한 하늘이 닫히고 한 하늘이 열리네
익어가는 대지는 푸른 햇살을 발산하고
*사계四季는 서서히 격정으로 차오르네
5월은 이별과 만남이 공존하는 무대
사랑이 가는 자리 또 사랑이 피어나네.
-2015. 6 대한민국문화예술진흥회
언론문학 대상 수상작
* 비발디[Antonio Vivaldi]
이탈리아 출신의 바이올린 거장
이며 작곡가. 대표곡 : 사계四季
/수필/ 쫑-파티 하던 날
추 영 호
쫑-파티를 하잔다. 소를 기른다며 고향으로 내려간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그동안 몇 차례 만나기도 하고 수시로 카톡을 주고받은 사이라 별일 없이 잘 지낸 줄 알았는데 웬 쫑-파티란 말인가? 의아스러워 전화했더니 그렇게 됐다며 얼굴이라도 볼 겸 내려오란다.
다른 일정이 있어 약속시간 보다 좀 늦게 도착했더니 우사 앞에 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있는 야외용 그릴을 둘러싸고 낮 선 사람들이 대여섯 모여 있었다. 근방에서 소를 기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들이 소주잔을 돌리느라 분위기는 벌써 파티답게? 들떠 있었다.
소처럼 듬직했던 내 친구-! 퇴직금에 빚을 보태서 시작했는데 5년을 겨우 채우고 접게 되었다며 하늘을 보고 허허 웃는다. 그렁그렁한 눈, 깊어진 주름살, 굽어진 어깨, 못 본 사이 소를 많이 닮아 버렸다. 많이도 소를 사랑했나 보다.
얼큰해진 이웃 사람들은 잘 접었다고 위로의 말을 하는데 너스레 같지는 않았다. 중국과의 F.T.A로 일차 산업은 이미 끝장났으니 접는 것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용기 있는 결단을 한 친구가 오히려 부럽다고 했다. ‘그래, 용기 있는 결단이지-’웅얼웅얼 혼잣말을 하며 소주잔을 훌쩍 들이키는 친구의 눈에 물기가 고였다 사라진다. 그런 친구의 얼굴 위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외삼촌의 얼굴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국민학교 5학년 때쯤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방학을 하면 시골 외할머니 집에 가곤 했는데 외갓집에는 소가 두 마리 있었다. 외삼촌은 6‧25 때 다리를 다쳐 심하게 저시면서도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소먹이는 일을 하셨다. 여름에는 소를 끌고 밖으로 나가셨고, 겨울에는 외양간 옆 아궁이에서 소죽을 끓이는 일이었다.
그해 여름, 동생과 함께 외갓집 대문을 들어서니 외양간 앞에 삼촌을 비롯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 인사를 해도 건성으로 아는 체를 할 뿐 예전처럼 반겨주지도 않았다. 나는 머뭇머뭇 눈치를 보면서 사람들 틈으로 외양간을 들여다보았다. 외양간에는 황소 한 마리가 옆으로 누워, 입에서 하얀 거품을 흘리고 있었다. 큰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도 보였다. 나는 무서워서 얼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방으로 들어오신 할머니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누렁이가 아프단다' 하셨다. 밤에도 삼촌은 외양간에 계셨다.
이튿날 아침, 소 울음소리가 심해 나가보니 삼촌이 이웃집 아저씨와 함께 뭔가를 소에게 먹이고 있었다. 소는 먹지 않으려고 머리를 휘젓고 있었고 삼촌과 아저씨는 소 입에 막대를 끼워 놓고 고무통 속에 있는 것을 풀잎에 싸서 억지로 먹이는 중이었다. 고무통 속을 들여다보고 나는 기겁을 했다. 뱀이었다. 내가 방으로 뛰어 들어가니 할머니는 "괜찮다, 물뱀이란다.”하셨다. 소가 아프면 낙지를 먹이면 낫는데 낙지가 없어 물뱀을 먹인다고 하셨다. 그 후 나는 외양간 근처도 가지 못했다.
삼촌은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줄 곳 외양간에 계셨고, 누렁이가 끝내 죽었다는 얘기를 집에 돌아온 며칠 후에 들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삼촌은 틀림없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낙지를 잡아 왔을 것이다. 삼촌에게는 누렁이가 가족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가까운 혈육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텅 빈 소 막, 분변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소 발자국에 아직 온기가 느껴졌다, 메케한 냄새는 오히려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본디 사명을 잃은 것들은 도살장이 목적지지, 지가 농사를 지어야지.” 언제 따라왔는지 등 뒤에서 친구가 말했다.
“F.T.A라는 것도 그렇잖아? 우리 같은 족속은 안중에도 없으니까. 소 머리통이 단단해서 망정이지 원숭이처럼 약했더라면 야만스러워야 상류계급인 줄 아는 무리가 산채로 골을 파먹겠다고 설쳐댔을 테니까.” 친구의 눈이 붉어져 있었다.
취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밑바닥에서 끌어 올리는 듯한, 평소에는 잘 들어보지 못한 친구의 가라앉은 음성이 가슴을 때렸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차분한 성격의 친구가 사회운동가들이나 할 만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언젠가 소줏집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끌려가는 소들은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고 했다. 그리고 남은 소들은 합창하듯 길게 운다고 했다. 설마? 소들이 뭘 알려고? 내가 반문했더니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시간이 지나면 잊을 거고, 잘 삭힌 볏짚 몇 덩이 던져주면 금방 온순해질 것을-”이라고 말했다. 그때도 친구의 말에 이상한 전율을 느꼈었다. 소 때문에 친구의 성품이 변했다고 느낀 것만은 아니었다.
소에 대한 친구의 애정은 단순히 사업적인 면이나 가축이라는 면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였고, 단언할 순 없지만, 하급 공무원으로 반평생을 바친 회한과 절망이 지금 한꺼번에 뒤엉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황은 소 쓸개에 병病이 생긴 덩어리이다. 병이 병을 고치는 약이 되는 셈인데 소 때문이라면 친구의 응어리도 우황으로 풀어줄 수는 없을까?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풀어질까? 다리를 절뚝거리며 애쓰시던 외삼촌의 모습이 친구의 모습과 겹치면서 마음이 아리고 심란해졌다.
선반 밑에 한 움큼씩 싼 검은 비닐봉지들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몫으로 나눈 고깃덩어리일 것이다. 선반 위에는 댕그라니 소머리가 올려 져 있는데 아까부터 우릴 보고 있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흥건한 쫑-파티를 보고 있었다. -完
추 영 호
⦗프로필⦘
아호 : 봉암鳳岩
출생 : 전남(완도). 현 거주 : 광주광역시
한울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대한민국문화예술진흥회 언론문학대상 수상
사) 국제문화예술교류진흥회 회원
한국문인협회(강진문협, 완도문협) 회원
전남대학교 문예창작 동인
저서 : 여행 작가誌, 완도, 강진문학 同人誌,
生의 美學과 명시 등 다수 공저
첫댓글 그저 아름다이 바라 볼수만 없는 강,,도문강,,,,
새 한마리 죽찌뼈 하나라도 묻고 오길 바라는 간절함에 애가 녹는 듯 합니다
시대마다 급물살에 스러지는 민초들,,,,,,,,
배 두드리는건 알아도 그 서름 나몰라라 하는 거꾸로 서 있는 인간들,,,,
비발디의 연주에 하늘이 닫히고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하시는 추선생님은 음악에 심취하실 줄 아는,
시의 무아경을 아시는 진정한 음악인이요, 시인이십니다. 그런 감성이 부럽습니다. 귀한 시에 한참
머물다 갑니다. 늘 평안하세요.
강선생님, 장목사님 반갑습니다~ 이 더위에 잘 계시는 지요? 피서는 다녀 오셨는지요?
전 이번 주 방콕입니다`~끄적거려놓은 글이나 정리해 볼까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한시간도 못 버팁니다. 머리가 멍하고 졸리고~ 근데 일일히 댓글로 격려해 주시는 두분~ 존경스럽습니다~ 따라가려 해도 못 미칩니다.
우리 민족의 정기가 서려있는 백두산 천지 시를 읽고 내가 직접 보고 심취하는 것 같았습니다 본인도 기회있으면 가볼 생각 입니다 좋은시 많이 감상 하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더위가 한창입니다~문용희씨가 자유게시판에 올려놓은 백두산 사진을 보니 백두산은 여름에 가야 제맛일 것 같습니다~된 여름 잘 보내세요-!
비우려고 애써도 체워지고
털어내려고 안간힘을 다해도
쌓인것은 어인일입니까.?
좋은글 감상잘했습니다.
떠난 것들은 내가 싫어서 따났겠지요~ 싫어서 떠난것들 붙들고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하루쯤 없는 날로치고 이부자리 털듯 맑은 날 골라 털 털 털어냅시다요~ 쌓이면 또 털고~~~발길 감사합니다
떠나버린 사랑에 대하여, 덜 아문 상처에 대하여 .. 절절한 사랑 가슴에 스밉니다. 그리움이 있어 아프지만, 그래도 그리움을 바라 볼 수 있어 행복하십니다.
선배님 글을 감상 하노라면 모든 글들에서 진정함이 사뭇치게 묻어 있음을 봅니다...
귀한 글들 잘 감상하였습니다~^^
민들레님, 야도님~! 찾아주신 발길에 행운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글 쓰기가 점점 어려워 짐을 느낀답니다~드러내다보면 조잡해지고, 감추다 보면 의미가 모호해지고~~배우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시고 겪없는 지적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