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 무엇보다 걷기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에게 걷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을까마는 바람 산산하고 매혹적인 햇살 속으로 떠나는 발길에 이 계절은 보너스다. 도심을 벗어나 산길에서 타박타박 걷는 동안 쌓였던 시름도, 복잡하기만 했던 갈등도 바람결에 날아가고 나면 마음도 몸도 공기처럼 맑아진다. 영주에는 어머니의 넉넉한 치맛자락처럼 여행자의 마음을 푸근하게 감싸주는 소백산 12자락길이 있다. 열두 자락을 차근차근 걸어볼 생각에 가슴이 뛴다. 사람의 기운을 살려준다는 소백산, 그 산자락으로 접어드는 세 번째 자락 길, 죽령 옛길로 가는 것이 걷기의 시작이다
1. 이야기를 따라 걷는 즐거움, 영주의 다섯 가지 자락(自樂)길 소백산을 돌아가는 400리의 12자락 길은 소백산 둘레의 충북, 경북, 강원도 3개 도와 영주, 단양, 영월, 봉화 등 4개 시 군의 170㎦를 잇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영주와 단양 구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백산의 열두 자락 길은 모두 저마다의 볼거리와 사연을 담아 테마 별로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다. 소수서원과 선비 길을 통과하며 죽계 옆으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선비들의 삶의 흔적을 돌아보는 1자락 길은 선비길, 구곡길, 달밭길로 가족 여행객에게 가장 인기 높은 자락길이다. [왼쪽/오른쪽] 소백산 1자락길 / 소백산 2자락길 (사진제공:영주시청 관광산업과) 소백산 자락길 중에서 유일하게 기차역이 통과하는 코스로 열차를 이용한 탐방객이 걷기에 알맞은 2자락길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어 봄에는 사과 꽃, 가을에는 빨간 사과를 볼 수 있고 전국 유일한 유황온천인 풍기 온천을 체험하는 길이다. 금계바위와 금계 저수지 풍광을 보며 걷는 학교길, 인삼밭을 따라 걷는 승지길, 과수원과 풍기온천, 찰방역 터를 잇는 방천길이 있다. [왼쪽/오른쪽] 소백산 11자락길 / 소백산 12자락길 (사진제공:영주시청 관광산업과) 전설의 죽령옛길을 걸을 수 있는 3자락 길과 부석사를 감상하고 올망길과 수변길, 과수원 길에서 영주 사과를 만나는 11자락 길이 있다. 그리고 자작나무가 많아서 자작재라고 불리는 고개를 넘어가는, 단종과 금성대군의 한이 서려 있다는 12자락길이 있다. 2011년에는 소백산 12자락길이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했다. 소백산 아름다운 열 두 자락 길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느껴진다.
소재지영주문화연구회문의전화054)633-5636홈페이지http://www.sanjarak.or.kr/
2. 하늘, 바람, 나무, 사람으로 이어지는 죽령 옛길 소백산 역을 지나 빨간 사과가 크리스마스 나무처럼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을 지나고 나면 초록 넝쿨이 터널을 이루는 죽령 옛길이 시작된다. 푸른 숲이 어찌나 두터운지 대낮에도 어둑어둑한 숲길을 약 2.8km, 한 시간가량을 걸어야 한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수십 년 동안 인적이 끊어져 숲과 덩굴에 묻혀 있던 산길을 복원한 옛길이다. 소백산 역에서 죽령주막까지 이르는 죽령 옛길은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고갯길이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경사가 완만하고 걷기에 무난한 길이다. 소백산역(희방사역)에서 출발하여 느티쟁이 주막 터를 지나고 주점 터에서 죽령 마루로 이르는 길이다. [왼쪽/오른쪽] 죽령옛길이 시작되는 소백산역 / 죽령옛길 예로부터 죽령을 아흔아홉 굽이에 내리막 30리 오르막 30리라고 했다. 한양과 경상도를 이어주는 최단 경로인 탓에 사람들은 고생스러워도 이 험준한 고개를 넘어다녔다.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연결하며 수려한 계곡과 울창한 수목 터널이 이어지는 옛길은 소백산의 능선과 어우러져 천연의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국토해양부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역사를 따라가는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한 명승지 제30호이기도 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에 처음 죽령을 열었다고 하니 2천 여년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죽령옛길
[왼쪽/오른쪽] 옛길을 걷다 만나는 나무 정승 / 죽령옛길 죽령(竹嶺·689m)은 대숲고개라는 의미가 있는데 죽령에는 대나무가 없고 소나무도 드물다. 졸참나무,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등 활엽수가 많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158년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죽령길을 만들고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죽령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옛길은 1910년대까지만 해도 사시사철 번잡했던 길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는 선비, 생계를 위해 봇짐과 행상을 지고 힘든 길을 재촉하던 보부상, 새로 부임한 지역으로 오가던 관리 등 다양한 목적을 갖고 숨 가쁘게 걸었던 선인들의 천 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길이다. 그래서 옛길 곳곳에는 목을 축이고 허기를 달래는 주막과 떡집, 짚신가게 그리고 먹고 잘 수 있는 객점과 마방이 성업을 이루었다. 당시 4개의 큰 주막거리가 있었는데 소백산 역 앞 무쇠다리 주막거리, 과수원 끝에 있는 느티정 주막거리, 죽령 정상의 고갯마루 주막거리가 있었고 옛길을 오르다 만나는 주점 주막거리가 그곳이다. 지금은 돌무덤의 흔적들이 그곳을 짐작하게 한다.
소재지소백산 국립공원, 경북 영주시, 충북단양군 일대문의전화054)638-6196홈페이지http://sobaek.knps.or.kr/대중교통풍기역 버스정류장 25(죽령)번 버스 승차. 수철 버스정류장 하차. 약 6분 도보
3. 죽령주막의 막걸리 한 잔에 노래 한 자락 소백산 제2 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지점의 해발 689m, 죽령 고갯마루에 도착하면 유일하게 서있는 죽령주막의 고소한 파전 냄새가 지친 발걸음을 반갑게 맞아준다. 옛길을 1시간쯤 걸으면서 죽령주막의 시원한 막걸리를 생각하면 발걸음도 빨라진다. 죽령주막 세월을 느끼게 하는 죽령주막의 토속적인 외관이 정겹다. 가게 옆으로 보이는 수십 개의 장독대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이 부지런한 살림을 짐작하게 해준다. 점심을 놓친 일행을 위해 산채정식을, 목이 타는 일행을 위해서는 주인장이 직접 담근다는 인삼막걸리를 시킨다. 지금도 요리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열정의 주인장이 차려주는 밥상은 철마다 직접 채취해서 담근다는 장아찌만으로 한 상 그득하다. 두릅, 매실, 산뽕잎, 산초, 곰취, 명이, 당귀, 가죽, 며느리밥풀꽃 장아찌에 더덕 무침, 능이버섯 무침, 노각 무침 등 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게 하는 반찬들이 정성스레 담겨서 푸짐하다. 15년 동안 한결같은 손맛으로 죽령주막을 지켜온 그녀의 밥상에는 연둣빛 파전도 노란 치자 빛 녹두전도 대충 나오는 것이 없다. [왼쪽/오른쪽] 죽령주막의 산채정식 / 죽령주막의 부추전과 인삼막걸리 [왼쪽/오른쪽] 산채나물 비빔밥 / 죽령주막의 바삭한 녹두전 산채비빔밥에 들어가는 고추장도 간 소고기와 견과류를 넣어 고소하게 볶아서 나오니 비빔밥이 한결 맛깔스럽다. 선선한 가을이면 시작한다는 뜨끈한 사골 우거지 국밥도 기대된다. 향긋한 인삼막걸리 한 잔과 파전으로 넉넉해진 발걸음이 내려가는 옛길로 느긋하게 접어들면 오래된 노랫가락도 한 소절 저절로 흘러나온다.
소재지경북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 2316문의전화054)638-6151대중교통죽령옛길 시작점인 소백산역에서 죽령주막까지 1시간 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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