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엄마 시칠리아에 가신다는데, 내일."
이모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교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5월 8일의 밤을 잊지 못한다. 이모가 했던 저 한 마디 문장 때문이었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 내 옆에 있던 시집, 내 뒤에 있던 쿠션을 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성이 안 찰 것 같으니 그릇이라도 깨고 싶었다. 아버지께 전화해서 그분이 나에게 늘 그랬듯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었다. 나는 왜 그런 마음이 들까? 부모님은 시칠리아에 갈 정도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가 도합 다섯 번의 육아 휴직을 하면서 애를 키우면서 우리 가정의 잔고는 닳아가고 있다. 신혼 때는 하지 않던 걱정, 예를 들면 제주도 비행기 푯값 걱정, 투숙할 호텔의 가격 걱정 같은 것들을 하며 조심스럽게 여행할지 말지를 생각한다. 부모님이 여유 있는 것과 내가 여유 없는 것의 상관 관계는 만들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왜 비교하며 화를 내고 있는가? 이렇게 살고 있는 내게 여유가 넘치는 부모님들은 항상 돈으로 마음을 표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남편이 성심당에 들러 산 밤 만주, 남편이 처가에 들러 눈이 어두우신 부모님을 위해 청소기 헤드의 먼지를 차근차근 제거하는 일 따위는 너무 우습게 보셨기 때문이다. 내가 본가에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얼굴부터 찌푸리셨던 아버지, 나는 그분 앞에서 언제나 어딘가 모자란 사람 행세를 해야만 했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모질게 뭐라고 하시거나 사위를 불러 훈계를 해야만 속이 편하신 분이었다. 그러다가도 아버지 생각보다 많은 돈을 안겨드리면 목소리는 금방 순해졌고 부드러워져 이 고비를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해드리지 않아도 시칠리아 여행을 가실 수 있는 분들이 왜 자식들에게는 그렇게 뭘 받으려고 하셨을까. 나는 사실 높임법을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난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높임법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조씨 남자, 그는 화가 나면 딸을 고속도로 갓길에 내려놓는 사람이었다. 그 몹쓸 습관은 내가 둘째 아들을 몸에서 키우고 있던 2016년 때에도 버리지 못했다. 조씨는 추석 때 내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묻혀있는 교회 묘로 인사를 드리자고 한 참이었다. 나는 점점 숨이 가쁘고 아무 때나 몸이 더운 데다 조씨와 한 차를 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변명을 해 보았다. "저런 썅년. 자기 몸만 알고. 뭐 저렇게 유세냐." 조씨의 거친 말은 나를 굼뜨게나마 움직이게 만들었다. 한 손에는 카시트에 타기 싫어하면서 찡찡거리는 은이의 손을 잡았다. 예상대로였다. 은이는 카시트에 앉히자 찡찡거림이 커졌다. 아이가 갑갑할 것 아니냐고 조씨가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묵묵히 카시트의 5점 벨트를 몸에 맞춰 조여서 맸다. 아이는 계속 찡찡거렸다. 나는 못 들은 척 무시하면서 정면만 바라볼 뿐이었다. 조씨의 뒷모습을 보니 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카시트는 태우고 안 태우고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을 위해서 아이에게 신생아 때부터 채우기를 의무화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와 함께 차를 탈 때 아이는 조용했으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차를 타면 찡찡거린다는 것을 내 모르는 바 아니었다. 은이가 계속 화를 내면 벨트를 풀어 차 뒤에서 놀게 놔두었던 조씨였다. 조씨는 대전에서 금산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내게 명령했다.
"카시트 풀어."
나도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순간 그 차에 탄 할아버지, 어머니가 내게 몸을 돌렸다.
"안 된다고요."
그러자 조씨의 그 몹쓸 습관이 나왔다.
"이년아 너 당장 네 딸 데리고 차에서 내려."
나는 핸드폰조차 너무 무겁게 느껴져 집에 두고 온 상태였다. 주머니에는 은이 몫으로 누군가 넣어준 돈 20000원만 들어 있었다. 그 말을 들었으니 싹싹 빌고 차를 계속 타고 가야했건만, 나는 조씨에게 용서를 빌고 싶지도 그에게 웃음을 주기도 싫었다. 썅놈의 새끼, 나는 임신했단 말이다. 속으로 이 말을 주억주억 삼키며 은이를 카시트에서 빼고 은이를 먼저 내리게 했다. 할아버지가 조용히 내게 말했다.
"주님께 기도해라. 네 사악함을."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이 이후에 이런 모진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직이 터져나온 말.
"입 닥쳐요, 할아버지."
차는 나를 두고 금산으로 빠졌다. 금산에서 대전 방향으로 내려오는 동안 다행히 갓길로 운전하는 차가 없어 살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은이는 걷고 싶지 않아했다. 나는 힘이 쭉 빠진 두 팔을 은이에게 둘러 인도에서부터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추석 당일이어서 거리를 다니는 택시가 없었다. 몇 번이가 도로를 휘휘 둘러봐도 핸드폰 없이 주머니에 20000원이 전부인 거지같은 아줌마를 태워줄 자비로운 차는 없어 보였다. 나와 상의 없이 나를 낳아 놓고 내 첫 월급을 마음대로 쓴 사람. 서너 살 때부터 나를 죽어라고 팼으면서 그 죄책감을 덜고 싶어 덜덜 떨며 우는 나를 다시 끄집어내 내가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거니 앞으로 착하게 살라는 말을 하면서 2차 가해를 하던 모진 사람. 자기들이 낳아놓고 "내 고향은 인큐베이터~"라는 노래를 쉬지 않고 불러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알 수 없는 사람. 마침내 결혼할 때는 왜 집은 안 해주냐며 내게 따져놓고 아들에게는 서울에 전세 자금을 대 준 사람. 나는 이 모든 생각을 하면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딸은 "엄마...우디 마...엄마...우디 마...웅얼웅얼" 이러며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왜 지금 길바닥에서 임신한 몸으로 울고 있어야 하는가. 왜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가만히 있는가. 이 모든 상황에서 그를 제압할 사람은 왜 아무도 없는가. 그 자는 왜 꼭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내 영혼까지 털고 나를 괴롭히는가. 이 모든 생각이 가을 뙤약볕에서 무르익어 내 머리를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나를 살린 사람은 딸이었다. 오동통한 손가락이 내 뺨에 닿고 그 다음에 부드러운 볼이 내 정수리에 닿았을 때 나는 그만 살겠다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려는 내 충동을 제지할 수 있었다. 은이는 나를 살리는 존재다. 나는 은이의 밥을 챙기면서 내 밥을 챙기게 됐고, 살고 싶지 않을 때 은이가 자는 모습을 보며 하루를 또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은이는 고속도로가 인도로 바뀌는 지점에서 내 죽음을 지연시켰다.
추석이니 일 그만 하려는지 <예약> 불을 켜고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흰색 택시 한 대가 갑자기 유턴을 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내 앞에 선다.
"거, 무슨 일이요? 차에 일단 탑시다."
나는 은이를 무릎에 태우고 택시 안에서도 계속 울었다.
"집이 어디요? 무슨 일이요?"
"목동이요. 더샵 아파트요. 무슨 일인지는...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죄송해요."
기나긴 침묵 속에서 금산 가는 길로부터 빠져나왔다.
"애가 안쓰럽지도 않소. 엄마가 강해져야지."
다른 때 같으면 너무 화가 날 말이었지만 그가 날 모른 척하지 않고 구해줬다는 것이 기뻐 그냥 고맙다는 인사만 했다.
"네. 약해지지 않을게요. 고맙습니다."
택시비는 30000원이 나왔다. 아저씨께 20000원을 드리고 문 앞에서 잠시만 기다리시라 했다. 모자란 10000원을 가지고 나올 테니 기다리시라고 하면서 생수 하나를 슈퍼에서 꾸어 왔다. 드시면서 기다리시랬더니 아저씨는 손사래를 친다.
"고 애가 불쌍해서 데려다준거요. 돈 받을 생각 없었는데 20000원이나 받았소. 갑니다."
나는 꼬깃꼬깃했던 지폐가 펴지는 순간을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 보듯 물끄러미 보았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조씨가 내 원가족이라는 것이 부끄러웠고, 택시비를 다 내지 못해서 창피했던 것이다. 눈물이 계속 허벅지에 떨어졌다.
"나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소. 빨리 가야 됩니다. 내리소."
나는 은이를 데리고 무사히 집으로 도착했다.
지나가는 택시 기사보다 인정 없이 굴었던 우리 집 난폭한 사자같던 조씨, 그는 이후로도 한 번 그 일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그 자식의 행동 때문에 뱃속의 둘째가 위축됐는지 배가 뭉치고 계속 온 몸이 저렸다. 그는 내 몸이 괜찮았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내가 연락을 끊으니 분해서 내 직장을 찾아왔다. 지그시 나를 째려보면서 잘 지내냐 묻지 않고 "너는 딸년이나 돼서 아비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냐?'고 물었다. 궁금하지 않다. 그가 날 언제든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살아있고 싶었다. 내가 만든 가족이 먹을 밥을 평안하게 짓고 저녁놀 보면서 산책할 수 있는 삶을 계속 살고 싶었을 뿐 그가 궁금한 적은 없었다. 그는 언제나 내가 맞을 짓을 해서 맞는 것이라고, 욕 먹을 짓을 해서 욕 먹는 것이라고, 언제나 월급은 부모에게 바쳐야 하는 것이라고 나를 다그쳤다. 나는 끝내 그 말에 속지 않았다. 아이들의 할아버지를 뺏는 것이 아닌지 잠시 걱정했으나 나는 그런 압제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 내 딸이 할아버지로부터 겪으면 안 될 일을 겪을까 하여 내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도 그 새끼가 내게 남긴 상처로 나는 약을 먹고 지낸다. 그렇지만 나는 인큐베이터에서 태어났다고 놀림받아야 되는 사람도, 눈치 없는 멍청이도 아니다. 무엇보다 맞을 만한 사람도 아니다. 나는 사랑을 품고 사랑이 자라는 것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을 키워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에게 끝까지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내 가족을, 내 품위를 그자로부터 지켜낼 것이다.
첫댓글 주황글 잘 읽었어요 상황묘사가 맘이 아팠어요. 어떤 순간은 나를 모르는 타인의 친절이 나를 구하기도 하죠. 표현중 '인큐베이터 에서 태어난 병신' 은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을것 같아요. 인큐베이터에 있었던 주황을 놀리는 표현이었던 건가요? 조금 이해가 안되서 질문드려요
맞아요. 조씨는 화가 나면 저에게 그렇게 말을 했어요. 그렇지만 고쳐야겠어요. 글은 남는 거니까요.
인큐베이터는 좋은 곳이예요^^ 제 아이는 이른둥이로 아주 작게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세달을 지냈답니다. 인큐베이터가 아녔음 아마 죽었을꺼예요.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곳이지요.
저는 늘 아이를 보며 건강하고 똑똑하게 자랄까. 걱정이 많았는데 주황처럼 똑똑한 교사도 인큐베이터 출신이라니 저는 오히려 힘이 납니다^^ 제 아이도 주황처럼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될수있겠죠. 주황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이렇게 연결되네요..힘을 얻었어요.. 감사해요. 내일 봐요 ^^
마지막에 품위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이 오래 남아요. 어떤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게 어렵지만 꿋꿋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제게도 필요한 거 같아요.
주황이 써내려간 기억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 무어라 댓글을 달기가 주저되었어요. 우리의 글쓰기 수업이 끝나도 저는 조씨로부터 꿋꿋이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주황을 오랫동안 떠올리며 응원할 거에요. . (그리고 주황에 빙의해서 혼자 속으로 비속어는 좀 뱉었어요..)
전에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건 힘들다고 했던 주황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씨 남자는 왜 이렇게 딸에게 가혹했던 걸까요?
주황의 글은 항상 온도가 높아요. 다 읽고 나면 마음을 좀 식혀야 해요. 글을 참 잘 쓴다는 제 감상평입니다.
가족과 품위를 지키려는 주황을 항상 응원할게요.^^
그 사람이 왜 좋은지 딱히 이유를 알수없지만. 저는 주황이 좋아요. 우리와 공유한 글은 충격적이고 마음 아픈 내용도 많았지만. 그걸 들려주는 말투. 이야기.눈빛. 이런걸 좋아하나 봅니다. 주황님은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받을 만한 셀럽이니까요. 아버지 참 나빠요. 저도 아내와 싸울때는 운전할때 과격한 생각도 하지만. 다혈질. 육하는 성격 저도 무서워요 / 주황님 시간이 흘렀어도 상처가 말끔해질수는 없겠죠. 우린 모두 다 소중한 존재잖아요. 특히 난 그 사실을 내가 제일 스스로 그렇게 자꾸 되뇌어요. 이따 만나요
1번째 문단에서 '부모님이 시칠리아 가는데 주황은 왜 화가 났을까?' 질문을 안고 보다가 1번째 문단 마지막 줄에서 아. 그렇구나. 했어요.
2번째 문단은 공포 영화 보듯 마음 졸이며 보듯 봤어요. 조씨의 너무나 익숙한 베이는 말, 비난, 욕과 은이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들리는 것 같아요.
3번째 문단에서 '그 때 나를 살린 사람은 딸이었다. 오동통한 손가락이 내 뺨에 닿고 그 다음에 부드러운 볼이 내 정수리에 닿았을 때 나는 그만 살겠다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려는 내 충동을 제지할 수 있었다. 은이는 나를 살리는 존재다.'를 보니 아 주황이 왜 은이에게 편지를 썼는지 이해가 되요. 딸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하지만 나를 살린 은인에게 쓰는 편지였네요.
마지막 문단에서 연락을 끊으니 직장을 찾아오다니..."너는 딸년이나 돼서 아비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라니...! 조씨는 지독하게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네요. 나작주가 원가족으로부터 훨훨 날아갔으면, 은이와 행복했으면!
흰색 택시 기사님의 선행과 그분의 말투, 그리고 글의 마지막 문장에서 해방감,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다짐에 대한 공감과 응원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위로, 치유의 힘이 있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