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신선둘레길+신선자락길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에서 여름을 나다
지리산에는 지리산둘레길을 빼고도 가볍게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여럿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반선에서 뱀사골을 따라 천년송이 있는 와운마을까지 다녀오는 지리산 신선길이다.
지리산 신선길은 수려한 계곡과 비교적 완만한 경사에 천년송의 아름다움까지 구경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거리도 짧아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장점까지 갖췄다.
지리산 신선길이 인기를 누리면서 주변에 만들어진 길이 지리산 신선둘레길과 신선자락길이다.
신선둘레길은 바래봉 자락 산길을 따라 팔랑마을을 거쳐 바래봉까지(1코스) 오르거나
팔랑마을에서 내령마을로 매려와 계곡 옆 도로를 따라 달궁마을까지(2코스) 걷는 길이다.
신선자락길은 뱀사골계곡과 달궁계곡이 만나 덩치를 키운 만수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신선둘레길 1코스는 장항마을에서 출발하여 원천마을을 거쳐 팔랑마을에서 지리산 주능선으로 올라 바래봉까지 이어지지만
가볍게 걷는 트레킹 코스로는 부담이 있고, 2코스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하기에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선둘레길 1코스 일부와 신선자락길을 연결하여 걷는다.
신선둘레길과 신선자락길을 연계하면 바래봉 자락 숲길과 만수천 계곡길을 이어서 걸을 수 있다.
거리도 10km로 한나절 정도에 걸을 수 있어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코스가 된다.
신선둘레길은 지리산둘레길 3코스가 지나는 장항마을에서 시작되지만 우리는 원천마을에서부터 걷기로 한다.
장항마을에서 원천마을까지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고,
원천마을에 주차를 해놓으면 신선자락길까지 걷고 나서 출발지점으로 회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원시 산내면소재지에서 뱀사골‧달궁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첫 번째로 만나는 마을이 원천마을이다.
원천마을은 만수천을 사이에 두고 삼화마을을 마주보고 있다.
원천마을주차장에 도착하니 지리산 신선둘레길을 알리는 표지판과 목장승 두 개가 길안내를 해준다.
오늘 우리는 신선둘레길을 먼저 걷고 팔랑마을에서 만수천으로 내려와 신선자락길을 걸을 예정이다.
뱀사골로 가는 초입에 있는 원천마을은 해발 350m에 자리한 산촌마을이다. 땅속에 돌이 많아 집집마다 돌담을 쌓았다.
골목길을 따라 걷는데 높지 않은 돌담이 정겹게 느껴지고, 돌담에는 담쟁이가 덮여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돌담 옆에서는 배롱나무가 붉게 꽃을 피워 산촌마을의 여름을 예쁘게 꾸며준다.
돌담 안쪽에서 고개를 내민 해바라기가 길손에게도 함박웃음을 지어준다.
원천마을 뒤쪽에서 수령 4백년이 넘은 소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소나무를 ‘외톨 솔 백이’라 부르는데,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선녀들이 마을 온천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다가
옥황상제에게 들켜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소나무로 변하여 배배 꼬인 형태를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신선둘레길은 골목길을 따라 가다가 마을 뒤편 농로로 이어진다. 마을 주변에는 사과밭이 많다.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주먹 크기의 풋사과가 풍요로움을 전해준다.
발고도가 높은 이곳 산내면과 인근 인월면, 아영면 일대에서는 사과가 많이 재배된다.
마을 뒤편 언덕길로 올라가자 원천마을은 물론 남원시 산내면 일대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사방이 지리산과 삼봉산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내면은 해발 3백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로 분지를 이루고 있다.
산속에 둘러싸여 산내(山內)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을 뒤편 밭길을 걷다가 숲속 임도로 들어서자 조그마한 사각정자가 쉬었다 가라 한다.
정자를 지나면서부터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포근한 임도가 이어진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여름날이지만 숲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산허리를 돌고 돌아가는 임도는 두 세 사람이 나란히 걷기 좋은 흙길이다.
게다가 붉은 줄기를 한 울창한 적송 숲이 그윽한 향기까지 내뿜어준다.
곰재에 도착하자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길손을 맞이한다. 이곳 지형이 곰이 하늘을 쳐다보고 누워있는 형상이라 곰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곰재에는 크고 웅장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소나무의 모양도 곰을 닮아 곰솔이라 부른다.
언제부턴가 이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이 소나무에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소원성취의 곰솔로 여겨졌다.
곰재에서 숲길을 따라가 걷다가 깊은 산속 옹달샘을 만난다. 샘물을 한 모금 마시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이러한 샘에 전설이 없을 리 없다. 지리산 산신령이 인간세상을 살피다가 세상 사람들이 욕망에 사로잡혀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 후 천왕봉으로 가다가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물을 발견하고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나니 인간세상의 모든 탄식이 사라지며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져 이 물이 진짜 참된 물이구나 하여 그 때부터 ‘참샘’이라 불렀다고 한다.
참샘을 지나면서부터 숲길이 점차 가팔라진다. 나무 사이로 지리산 반야봉이 보이기도 한다.
바래봉 남동쪽 비탈을 돌아 팔랑마을로 가려면 여러 개의 고개를 넘는다.
이런 고개들은 옛날 화전민들이 감자, 고구마, 약초 등을 재배하거나 채취하여 지게로 운반하면서 넘었던 ‘울고 넘던 눈물고개’였다.
가파른 고개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넘으면서 흘렸을 화전민들의 눈물과 탄식이 스며있다.
길은 점차 한 사람 걸을 수 있는 산길로 좁아지고, 그동안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던 숲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공존하는 숲으로 바뀐다.
하늘을 가린 숲은 여름 날씨에도 청량한 기운이 느껴진다.
인공적인 소리라고는 들리지 않는 원시적인 숲속에서 우리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가 된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을 빠져나오자 깊은 산골짜기에 조그마한 마을이 있다. 팔랑마을이다.
마을 앞 골짜기 너머로 지리산 주능선 삼각고지에서 북쪽으로 뻗은 삼정산 능선이 바라보일 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늘마저도 좁게 보이는 팔랑마을은 외부세계와는 동떨어진 별천지다.
팔랑마을은 1800년경 화전민들이 들어와 살면서 최초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해발 600m 산비탈에 자리한 팔랑마을은 10여 가구가 민박과 고사리 농사 등을 지으며 살고 있다.
지리산 오지마을 중에서도 최고의 오지마을이다. 버스도 택배도 오지 않는다.
팔랑마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2백년이 넘은 억새집이다. 억새집은 언젠가 바래봉을 가면서 들렀던 기억이 있고,
EBS <한국기행>에서 방영될 때 관심있게 본 적이 있다. ‘지리산 억새집’은 억새로 지붕을 얹은 집이다.
이 집에는 올해로 76살 된 김채옥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다.
억새집은 바래봉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에게는 토종닭을 시켜서 먹거나 막걸리 한 잔 하던 추억이 서린 집이다.
억새집은 매년 가을 억새지붕을 이어준다.
팔랑마을은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으로 가는 가장 짧은 코스다.
지리산 신선둘레길 1코스는 이 마을에서 팔랑치로 올라 바래봉까지 가는 길로 주능선은 봄철이면 철쭉동산이 된다.
우리는 팔랑마을에서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산비탈을 굽이굽이 돌아 내령마을로 내려온다.
포장도로지만 거의 차량통행이 없어 도로 전체를 독차지하며 걷는다.
계곡가에 자리한 내령마을에 도착하니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람들로 북적인다.
내령마을 앞으로 뱀사골 입구, 달궁마을, 정령치 또는 성삼재로 통하는 도로가 지난다.
만수천 계곡에서는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피서객들은 계곡가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물속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여름 낮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로변 폭포가든 옆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선다. 지리산에는 수많은 골짜기와 계곡이 실핏줄처럼 뻗어있다.
주능선에 가까운 고지대에서 솟아오른 조그마한 샘이 실개천이 되어 흐르다가 점점 수량을 불려 계곡이 되고 하천이 된다.
와운골이 뱀사골계곡으로 합류하고, 심원계곡이 여러 골짜기의 물을 끌어들여 달궁계곡으로 이름을 바꾼다.
뱀사골계곡과 달궁계곡은 반선마을에서 만나 만수천이 된다.
만수천은 산골짜기를 빠져나가 남원시 산내면소재지에서 인월 쪽에서 흘러오는 람천을 만나 이름을 반납한다.
만수천 물줄기는 수많은 산자락을 돌고 돌아 내령마을 앞에 이르렀다.
지리산 여러 골짜기에서 내려온 물이 모인 만수천은 맑고 투명하다. 맑은 물은 반들반들한 바위를 넘고 넘어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바위를 넘어 흘러가던 물은 종종 소나 담을 만나 쉬었다 간다. 내령마을 앞 검푸른 색을 띤 흑담(潭)이라 불리는 웅덩이도 그중 하나다.
흑담은 아기자기한 바위와 푸르른 소나무에 둘러싸여 신선한 느낌을 준다.
만수천 계곡을 건너가니 ‘지리산 신선자락길’이라 쓰인 이정표가 길안내를 해준다. 신선자락길은 계곡 옆 숲길을 따라 이어진다.
만수천 물길이 굽이돌면 길도 굽이돌고, 반듯하게 흐르면 길도 반듯하게 이어진다.
오늘 날씨가 상당히 무더운데 물소리를 들으며 그늘진 숲길을 걷다보니 오히려 시원한 기운이 느껴진다.
계곡을 건널 수 있도록 놓인 징검다리는 소박하고 정겹다.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물소리의 율동에 맞춰 발걸음을 옮긴다.
계곡 건너편 도로변 산자락에 산신바위라 불리는 기암절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바위는 내령마을 아래 300m 지점에 있는데, 산신령이 노는 곳이라 하여 영대(靈臺)라 불렀다.
이리하여 산신바위 안쪽 마을은 내령(內靈)마을, 바깥쪽 마을은 외령(外靈)마을이다.
맑고 투명한 물속에서 작은 돌과 자갈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비췬다. 물가에서는 노랗게 핀 원추리가 맑은 물과 어울려 청순미를 드러낸다.
모난 데라고는 한 치도 없는 바위들은 수많은 세월이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온갖 시련을 견디며 살다보면 나이 예순이 되어 귀가 순해진다.
60세를 상징하는 이순(耳順)이라는 말과 계곡의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닮았다.
만수천 하류로 내려갈수록 기괴한 모양의 바위들이 눈길을 끈다.
청회색 바위에는 하얀 줄무늬가 균일하지 않게 그어져 불규칙적인 층리를 이루고 있다.
이 일대는 “선캄브리아기의 지리산편마암복합체인 흑운모편마암과 반려암의 경계지역”이란다.
암석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 지질학적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바위인 것만은 사실이다.
경사진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면서 수많은 물보라를 만들어낸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위는 안으로 파여 수십 개의 돌확 모양의 홈이 생겼다.
한 줄기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바위 아래쪽으로는 길게 소(沼)를 이루어 물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많은 어린이들이 물놀이 하느라 정신이 없다.
삼화마을 근처 바위 절벽에 ‘蘇東瀑布(소동폭포)’는 한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소동폭포가 있다.
신선자락길은 삼화마을에서 끝나고 삼화교라는 다리를 건너면 오늘 트레킹 출발지인 원천마을주차장이 나온다.
만수천 물에 발을 담근다.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4시간 동안 걸었던 발의 피곤함이 스르르 사라지고 뜨거워진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티없이 맑은 물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2022. 7. 17)
*여행쪽지
-지리산 신선둘레길은 바래봉 동남쪽 비탈 숲길을 따라 팔랑마을을 거쳐 바래봉까지(1코스) 오르거나 팔랑마을에서 내령마을로 매려와 계곡 옆 도로를 따라 달궁마을까지(2코스) 걷는 길이다. 지리산 신선자락길은 뱀사골계곡과 달궁계곡이 만나 덩치를 키운 만수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신선둘레길 1코스 일부와 신선자락길을 연결하면 바래봉 비탈 숲길과 만수천 계곡길을 이어서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신선둘레길+신선자락길 연계코스 : 원천마을→팔랑마을→내령마을→만수천→삼화마을→원천마을(원점회귀)
-거리, 소요시간 : 10km, 4시간 소요
-난이도 : 신선둘레길(어려움), 신선자락길(보통)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원천마을주차장(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로 1507)
-주변에는 식당이 많다. 뱀사골 입구 반선마을에 있는 일출산채식당(010-6206-6861)의 산채정식은 지리산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과 주변에서 재배한 야채로 요리하여 담백하고 정갈한 맛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