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서해교전 당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 김종선(32·사진 왼쪽)씨는 18일 리언 러포트 사령관을 만난 뒤 “고맙다는 말을 전해 마음의 짐을 벗은 듯하다”고 말했다. 그녀가 본보가 주최한 러포트 사령관 초청 네티즌 토론회에 패널 신청을 했던 이유는 단 한가지. 러포트 사령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서해교전 직후 돕겠다며 떠들석하게 나섰다 이내 연락을 끊은 시민단체와 달리 러포트 사령관은 남편의 장례식은 물론 1주기때도 편지를 보내는 등 관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국 사람들은 물론 한국 국방부도 잊고 있는 서해교전을 주한미군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다”면서 “당사자에겐 아직도 생생한데 사람들은 너무 빨리 잊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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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서해 교전때 해군 참수리 357호정의 조타장이었던 한 중사는 교전 당시 실종됐다가 사건 발생 41일만인 8월9일 인양된 참수리호 조타실에서 발견됐다.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혼인신고만 하고 시작한 결혼생활 8개월만이었다. 그 사건은 그녀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슬픔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던 그녀는 힘을 추스린 뒤 전사자 가족들과 함께 ‘서해교전전사자 추모본부회’를 운영하며 기념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 보스턴에서 열린 ‘센트럴 매사추세츠주 한국전 참전기념탑’ 제막식 현장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잘한다고 박수쳐주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 자꾸 지나간 일을 들추냐며 타박하는 사람들, 요즘처럼 사람들이 쉽게 잊는 시대에 서해교전을 사람들이 기억하기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밤마다 잠 못 이루며 ‘왜 내가 여기까지 왔을까’ 혼자 생각할 때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40여일만에 총상을 입은 채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남편 모습이 생각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을 기억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한 일을 기억해달라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왜 목숨을 바치면서 나라를 지켜야하는지, 나라가 왜 중요한지 조금이나마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남편을 기리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입시에 도전,한국 사이버 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에 입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젊은 사람들과 자주 만나다보면 아무래도 추모사업회에 도움이 될만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시작한 일. “이제 남편의 2주기를 준비해야죠, 올해는 젊은 사람들이 남편이 한 일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도록 의미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싶습니다.” 김나래기자 narae@kmib.co.kr
>> 이것을 보신 한 분의...글입니다. <<
우선 상당한 안도감을 느꼇다. 미군은 끝까지 떠나지 않고 한국을 지켜줄것이라 약속하였다.
상당히 적대적인 질문들에도 인자하게 대답해주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미군과 시민들 사이에 대화가 부족하여 많은 오해가 있다고 하였는데 정말 옮은 말이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내가 가장 감명받은 것은 러포트 장군의 군인정신이다.
어제 신병훈련소에서 수류탄 훈련중 사망한 두 장병을 애도하는 그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훈련중 사망한 한.미장병들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가지고 다니며 언제나 그
들의 희생을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망스
러웠다.
이름없는 타국 장병들의 죽음도 그 죽음이 의무를 다하다 죽은 의로운 것이었다면 기억해주
고 생각해주는 그정신이 미군을 세계최강으로 만드는 원동력일거라 생각한다.
미국은 6.25때 북한에서 숨진 미군들의 유해를 송환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 북한과 협상하고
많은 유해들이 자국으로 돌아왔다.
반면 국군포로들은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은채 북한을 스스로 탈출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중
국을 떠돌고 있다.
노무현이 미국에 갔을때 라이스 안보보좌관이 서해교전때 숨진 당신나라 군인들의 이름을 아
냐고 물었을때 우리 대통령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사고로 죽은 여중생들의 이름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북한의 사주에 놀아나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자신들의 군인은 기억하지 않는 나라.....
우리는 지켜야만 한다.
어떻게 지킨 자유인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6.25때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사라져 갔는가...
자유를 지키는 사람들이 이 땅에 더 많아지길 빈다.
.....................이상 입니다......................
저도 반성 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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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국 한국전 찹전 용사 탑에보면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것이 아니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 알기에는... 러포트는 별로 신뢰감이 안가서요...-_-;; 흐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미군 별로 믿을게 못 될 것 같네요... 장병이나 중간급 지휘관 - 정치에 영향을 받지않고 명령에 영향을 받는 - 들은 상당히 믿을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4성 정도 되고 정치에 민감한 장성들과 미국측 NSC 애들은 절대 믿어서는 안될 거라는... 믿다가 공연히 도끼에 발등찍히고 울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암튼 그런 것을 떠나서 확실한 것은 우리군이나 지도자 모두 정신차려야 할 듯... 국가적 차원에서 그들을 기념 안하는 것도 그렇고...
더 문제인 것은 지금 나온 고 한상국 중사님의 경우도 애도해야 하지만 그전에 손가락 네 개 잘린 사병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 안하고 있다는 것... 간부 사관이야 직업으로써 자신의 의지로 직접 군인의 길을 택했고 작고하신터라 아픔은 주변 사람들의 몫이 되겠지만
그 사병의 경우는 의무병으로 들어갔다 장애인이 되어 평생을 힘들게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이야기를 안하고 있죠... 솔직히 비교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쪽에 더 신경이 쓰이네요...사병이라 보상도 미미할테고 연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의가사 제대에 장애로 직장도 구하기 힘들텐데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군에서 제 후임 한놈도 60트럭에 치여 다리에 철심박고 의가사 제대 했는데 그 때 해준 것이 보훈 병원에서 치료해 준것과 부대에서 같은 포대원들이 성금 걷은 것... 평생을 절뚝거리며 살아야 할텐데...
지금은 나아졌겠지만 그런 부분에 제대로 좀 신경 좀 썼으면 합니다.. 원하지도 않은 군대에 원하지도 않은 상처... 말로만 떠들게 아니라 - 그거라도 해주면 다행이지만 - 실질적으로 보상이 좀 되게 말입니다... 갑자기 씁쓸해 지네요...-_-;;
우리정부는 잊어가지만 최소한 그는 잊지 않고 있다는게 더 의미있는게 아닌가요?
지금 중요한 것은 국가가 우리에게 충성과 애국을 요구할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생명을 다해 나라를 지킬준비가 되어있느네 말입니다.
우리가 필히 챙겼어야 하는 것을 다른 이들이 챙겨주는..쩝, 그나저나 제국(?)의 저력은 자본과 기술이 아닌 "기본"에 충실한 것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우리의 고귀한(?) 지도자들은 반성해야함이..홀대와 핍박속에서도 민초들은 이 나라에 애정을 가지고 언제나 소중한 모든 것을 수호할 의지가 있기에. 아직
35사단 김중위와 함께 희생당한 훈련병의 처우가 어떻게 될 지 궁금해지는군요...사단장 장으로 치뤄지는 걸로 끝일지....-_-......정작 수류탄맞고 산화해야 할 족속들은 따로 있는데 말이죠..........;; 이런 기사 볼 때마다 여의도에 있는 초록색 지붕위로 집중포사격을 하고 싶다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