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5 민족대축전]() -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 본대회가 2005년 8월 15일 장충동 장충체육관에서 남북 당국대표들과 남, 북, 해외대표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광복60돌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의 둘째 날인 15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의 크고 작은 집회가 열렸다. 보수·진보단체들이 각기 집회를 열어 광복 60돌을 기념하면서 시내 전역에서 하루 종일 구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보수단체들은 이날 ‘한미동맹 강화’ 등을 주장한 반면, 진보단체들의 집회에서는 ‘반전·반미’ 구호로 맞섰다. 경찰은 대학로 29개 중대, 광화문 15개 중대, 서울역 9개 중대 등 5000여명을 행사장 주변에 배치했으나 우려하던 보수·진보단체 간 충돌이 없었다. 반핵반김 국민협의회 회원 2000여명은 오후 3시부터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광복 60주년 자유통일 국민대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전날 북한 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일을 두고 “과연 그들이 자격이 있느냐”며 “민족의 분단을 가져온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고, 국내에 있는 친북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대표 정순희씨가 “정부차원의 대북지원은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싸워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읽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집회 중간 중간 ‘친북세력 북한으로 추방하자’ ‘6·25 망각하면 6·25가 다시 온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 회원 2500여명은 낮 12시부터 서울역 앞 광장에서 ‘광복60주년 자유통일 국민대회’를 열어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남북한의 이단세력이 서울을 무대로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인하려는 굿판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애국 시민들이 총단결해 좌익세력을 몰아내자”고 말했다. 이들은 또 국가의 정통성 수호를 위한 행동강령으로 ‘헌법을 위반한 6·15 선언 폐기 및 관련자 처벌’, ‘대북 전력송전 반대’, ‘북한인권 개선’ 등을 주장했다. 집회 도중 한 참석자가 무대 쪽으로 뛰어나와 인공기를 불 태우려고 했으나 “위법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이날 집회에는 전날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린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주변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를 나눠주다 저지당한 것에 항의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편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 회원 200여명은 오후 1시부터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태평양전쟁 희생자 위령제’를 열었다. 이들은 종로를 거쳐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했다. 진보단체들의 모임인 전국민중연대·통일연대는 오전 10시 30분 대학로에서 1만 2000여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반전평화 자주통일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집회 참석자들은 낮 12시 10분쯤부터 종로5가를 거쳐 종각까지 약 2.5㎞의 거리 행진을 했다. 8·15 광복을 상징하는 815명의 풍물패들이 앞장선 가운데, 참석자들은 대형 한반도기를 비롯해 푸른색·분홍색 등 삼각 깃발을 들고 넘실대는 파도의 모습을 나타냈다.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상징하는 모형배와 ‘통일815’ 열차 조형물도 거리행진에 등장했다. 한편 ‘8·15민족대축전’의 첫날인 14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북측 대표단을 환영하는 단체의 집회와 이를 반대하는 단체들의 집회가 각각 열렸다. 그러나 우려됐던 양측의 충돌은 없었다. 총 56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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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 광화문 1865년 원형으로 복원, 개문식(開門式) | 2005년 | 남북 이산가족 첫 화상상봉 | 2003년 | 조오련, 한강 600여리(250km) 열흘 만에 종단 성공 | 2001년 |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8·15 공동행사`에 참석한 일부 남측 대표단, 북한의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에 참배해 물의 | 2001년 | 북한에서 개최된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8·15 공동행사`에 참석한 남측 대표단, 북한 통일탑 개·폐막식 행사에 참석해 파문 | 2000년 | 남북 이산가족 200명 서울-평양에서 50년 만에 혈육 상봉(-18일) | 2000년 | 북한 민항기 50년 만에 한국에 첫 취항 | 1998년 | 이란 성지순례단, 18년 만에 처음으로 양국 국경선을 통해 이라크를 방문 | 1998년 | 북아일랜드 폭탄테러로 30년 만에 최대 유혈참극 발생 | 1998년 | 정부, 건국 50주년 맞아 총 7천7명 특별사면·복권·가석방 | 1997년 | 뮤지컬 `명성황후` 국내 공연사상 최초로 뉴욕 공연 | 1996년 | 일본 행동파 지성 마루야마 마사오 사망 | 1995년 |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시작, 중앙돔 상부 첨탑 철거 | 1989년 | 이내창군 의문사 | 1989년 | 임수경양과 문규현 신부, 전대협 대표로 평양축전에 참가한 후 판문점 통해 귀환 | 1987년 | 독립기념관 개관 | 1983년 | 독립기념관 천안에서 기공 | 1979년 | 캄보디아 헹 삼린 정권, 폴 포트 정권 4년동안 300만명이 학살되고 사원 2800개소가 파괴됐다고 발표 | 1975년 | 방글라데시 군부쿠데타 | 1974년 |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 1974년 | 새마을호 운행 개시 | 1974년 |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 1971년 | 바레인, 영국으로부터 독립 | 1970년 | 남산 1호터널 개통 | 1970년 | 김용섭, ‘조선후기농업사연구’ 출간 | 1970년 | 박정희 대통령, 남북통일. 8·15선언 발표 | 1970년 | 병무청 발족 | 1969년 | 우드스톡 축제 | 1968년 | 정치활동 정화법 시효만료 | 1966년 | 새돈 500원권 유통 | 1966년 | 나트랑에 주월(駐越)야전사령부 신설 | 1961년 | 농업협동조합 발족 | 1961년 | 동독 군인 콘라트 슈만, 서독으로 탈출 | 1960년 | 콩고, 프랑스로부터 독립 | 1954년 | 전국 댄스홀 폐쇄령 | 1953년 | 정부, 서울환도를 선포 | 1953년 | `Korea Republic(現-코리아 헤럴드)` 창간 | 1952년 | 네델란드 인도네시아 서이리안 조약 조인 | 1949년 | 헝가리 인민공화국 선언 | 1948년 | 한글맞춤법통일안 발표 | 1948년 | 하지중장 군정폐지 발표 | 1948년 |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 | 1947년 | 인도공화국 수립(초대 수상 네루) | 1946년 | 서울특별자유시 헌장 제정 | 1945년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 | 1945년 | 프랑스 페탕원수에 사형 결정 | 1945년 | 대한민국, 일제에서 해방 | 1926년 | 시인 박인환 출생 | 1923년 | 독일 바이마르에서 바우하우스전 개최 | 1917년 | 레닌 `국가와 혁명` 완성 | 1914년 | 파나마 운하 개통 | 1888년 | `아라비아 로렌스`로 알려진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 출생 | 1771년 | 영국 계관시인 월터 스코트 출생 | 1769년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출생 | 423년 | 서로마 제국의 황제(393-423) 호노리우스 사망 | 32년 | 신라, 한가위의 가배(嘉排) 놀이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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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8월 16일대우그룹 채권단, 대우그룹과 재무구조개선 수정약정 체결 ![대우그룹 채권단, 대우그룹과 재무구조개선 수정약정 체결]() - 대우그룹 구조조정안이 발표된 1999년 8월 16일 대우 직원들이 착잡한 표정으로 그룹본사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자산기준 재계2위의 대우그룹이 30여년에 걸친 화려한 성장신화를 1999년 8월 16일부로 마감하게 됐다. 32년전 대우실업이라는 중소업체로 출발, 한 세대안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그룹 중 하나로 부상한 대우그룹은 제3공화국 이래 한국경제를 지배해왔던 성장모델의 상징적 존재였다. 대우그룹 채권단은 이날 대우 계열사를 지난 6월 현재 25개사에서 연내에 6개사로 줄이는 대우 구조조정 방안을 확정, 대우그룹과 재무구조개선 수정약정을 체결했다. 채권단은 매달 구조조정 실적을 점검,실적이 부진하면 담보주식을 처분하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회사정리 절차에 넣는 등 강력하게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권단은 대우증권과 서울투신운용, 대우전자, 대우중공업 조선부문 등은 계열분리한 뒤 매각하기로 했다. (주)대우 건설부문은 계열분리 후 외자유치를 하거나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대우그룹은 대우자동차, 대우차판매, 대우캐피탈, 대우통신 자동차부품부문 등 자동차 관련 4개사와 자동차 해외판매를 맡을 (주)대우 무역부문, 대우중공업 기계부문 등 6개사로 축소됐다. 채권단은 수정약정에 각 계열사별 계열분리와 매각 시한을 명시하고 대우측이 이를 준수하지 못하면 현금화하기 쉬운 담보부터 처분하기로 했다. 총 34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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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양용은, PGA챔피언십 우승 아시아인 메이저대회 첫 제패 | 2004년 | 미국 전설적 사진작가 칼 마이단스 별세 | 1992년 | 남북예술단, 제1회 통일예술제 사할린서 개최 | 1986년 | 민중민주당 창당 | 1982년 | 전두환 대통령 아프리카 4국 순방 등정 | 1980년 | 최규하 대통령 하야 | 1977년 |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 1972년 | 문교부, 기초한자 1800자 확정 | 1968년 | 미국 최초의 다핵탄두미사일 포세이돈과 대륙간탄도탄 미니트맨3 발사에 성공 | 1966년 |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한 제네바협약 국내에서 발효 | 1961년 |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 창립 | 1960년 | 키프러스공화국 독립 | 1960년 | 국회, 장면 국무총리 인준 | 1949년 | 미국 여류소설가 마가렛 미첼 교통사고로 사망 | 1949년 | 한국 세계보건기구(WHO)가입 | 1948년 | 미군정청(美軍政廳) 대한민국정부에 정권이양 | 1948년 | 미국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 사망 | 1948년 | 베이브 루스 사망 | 1946년 | 서울시, `서울자유시`로 경기도로부터 독립 | 1946년 | 일본 경제단체총연합(경단련) 창립 | 1929년 | 블라디보스톡서 제2회 범태평양노동조합회의 개최 | 1925년 |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 개봉 | 1924년 | 런던회의, 도즈안 조인 | 1918년 | 일제, 곡류수용령 공포 | 1914년 | 경원선(용산~원산) 개통 | 1913년 | 메나햄 베긴 이스라엘 수상 출생 | 1910년 | 데라우치 일본 통감,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한일합병 조약안 제시하고 수락 독촉 | 1904년 | 이용구, 진보회 조직 | 1895년 | 나가사키, 부산간 해저전선완성 | 1886년 | 힌두교 성자 라마크리슈나 사망 | 1845년 | 1908년 최초로 컬러 사진 감광판을 만든 프랑스의 물리학자 리프만 출생 | 1657년 | 송시열, 시정18조 상소 | 1645년 | 프랑스의 모랄리스트 장 드 라브뤼예르 출생 | 1428년 | 조선, 월식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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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8월 17일삼성,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4타자 연속홈런 ![삼성,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4타자 연속홈런]() - 삼성의 이승엽 선수가 17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쳐내며 호세를 제치고 홈런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다.
삼성이 17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 fn.com 프로야구 한화와의 홈 경기에서 사상 첫 네 타자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이승엽은 연타석 홈런을 때려 이 부문 단독 선두에 나섰다. ‘릴레이 축포’의 서막도 연 것도 그였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3회 1사 상황에서 상대 선발 한용덕의 시속 136㎞짜리 낮은 직구를 강타,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를 쐈다. 다음 타자 마르티네스는 한용덕의 슬러이더를 반대쪽 펜스에 꽂는 랑데부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자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인 바에르가도 좌측 관중석에 공을 선물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해영이 좌월 한 점 홈런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지금까지 3타자 연속 홈런이 열한 번 나왔을 뿐 4타자 연속 홈런은 처음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세 번뿐이었다. 일본엔 5타자 연속 홈런(1회)이 최고 기록. 삼성 선수들과 팬들이 열광하는 사이, 홈런 뭇매를 맞으며 대기록의 제물이 된 한화 한용덕은 마운드에서 내려가야 했다. 투수는 바뀌었지만 삼성의 홈런쇼는 계속됐다. 이승엽은 그라운드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5회 선두타자로 나와 한화 구원 투수 신재웅으로부터 1점짜리 우중월 홈런을 날렸다. 29호. 롯데 호세(28개)를 제치고 8일 만에 홈런 선두 자리를 되찾게 만든 한방이었다. 삼성이 8대3으로 승리. 삼성 선발 임창용은 6과3분의1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 12번째 승리를 안으며 LG 신윤호와 함께 다승 공동선두로 나섰다. 총 48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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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 한국 춤 맥 이어온 한국무용가 지희영 별세 | 2010년 | 한화 류현진, 29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 2009년 | 세계육상선수권, 우사인 볼트 남자 100m 세계신기록 | 2005년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 강제철수 | 2005년 | 일본인 13인 참회의 마라톤 | 2005년 | 노무현 대통령 8.15 민족대축전 참가차 서울을 방문 중인 북측 대표단 일행 접견 | 2001년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등 언론사 대주주 3명 구속 | 1999년 | 미국-러시아, 전략무기회담 재개 | 1999년 | 터키, 7.8규모의 강진으로 1만3000명 사망, 3만여명 이상 매몰 | 1998년 | 미국 스포츠 칼럼니스트 짐 머레이 별세 | 1998년 | 러시아, 루블화표시 외채에 대해 90일간 모라토리엄을 선언 | 1998년 | 클린턴 미 대통령,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 시인하며 대국민 사과 성명 발표 | 1997년 | 학술원 회원 동완씨 별세 | 1995년 | 경제학자 박현채 별세 | 1992년 | 정부, 하노이에 베트남주재 한국연락대표부 개설 | 1988년 | 파키스탄의 대통령 자아 울 하크 사망 | 1987년 | 루돌프 헤스 전(前) 나치 부총통 감옥에서 사망 | 1986년 | 서독 올림픽위원회,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부상품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를 손기정씨에게 반환 | 1985년 | ‘민중교육’ 창간호 내용이 문제돼 실천문학사 주간 송기원과 교사 2명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 1984년 | 인도서 반(反)간디 유혈시위. 11명 사망 | 1983년 |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과 상업은행 김동겸대리 구속 | 1981년 | 스리랑카 전국에 비상사태 선포 | 1978년 | 필리핀 민다나오섬 지진. 8천여명 사상 | 1975년 |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의문사 | 1969년 | 독일 물리학자 슈테른 사망 | 1967년 | 중국, 광주(廣州)서 제43군 반란 | 1967년 | 제1회 한국기자상 시상 | 1964년 | 한국기자협회 창립 | 1962년 | 반혁명 음모사건 관련 혐의로 장면 불구속 기소 | 1960년 | 가봉, 프랑스로부터 독립 | 1955년 | 한국인의 대일왕래 금지, 8.18대일무역 정지 | 1945년 | 인도네시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 1945년 | 프랑스 페탕원수 무기징역 | 1943년 | 퀘벡 회담 개최 | 1933년 | 조선금융조합 연합회령 공포 | 1928년 | 중국-독일, 통상조약 조인 | 1927년 | 제등실(사이토마코토) 제5대 총독에 재임명 | 1924년 | 조선노동당 결성 | 1910년 | 유인석, 이범윤 등 연해주교포, 합방 반대투쟁 전개 | 1906년 | 칠레의 바르파라이소 대지진, 수천명 사상 | 1901년 | 서울시내 전등 시점식(始點式) 거행 | 1896년 | 연호(年號)를 건양(建陽)에서 광무(光武)로 고침 | 1894년 | 흐루시초프 출생 | 1887년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통치자 카를1세 출생 | 1883년 | 서울에 신식인쇄소 박문국(博文局) 설치 | 1807년 | 로버트 풀턴, 최초의 증기선 `클레몬트호` 시운전 성공 | 1800년 | 벨기에의 독립을 가져다준 1830년 벨기에 혁명의 지도자 로지에 출생 | 1786년 | 프러시아 프리드리히 대제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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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8월 18일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 타결 이후 정상화 첫날 국내선 공짜 운항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 타결 이후 정상화 첫날 국내선 공짜 운항]() - 아시아나 항공.
아시아나항공이 국내선 운항 재개 기념으로 18일 하루 동안 공짜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행사를 열기로 하자 대부분의 해당 노선 예약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 아시아나항공은 16일 오전 “불편을 겪은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하루 동안 무료탑승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지자마자 예약이 폭주했고 오후 3시쯤엔 해당 노선 전체에서 표가 동이 났다. ‘공짜 비행기’ 대상은 제주 출발·도착 항공편을 제외한 국내선 전 노선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또 19일부터 21일까지는 같은 노선 이용객들에게 운임의 30%를 깎아줬다. 이미 표를 산 승객도 발권처에서 할인금액만큼 환불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총 38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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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미국 명(名)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 타계 | 2009년 | 김대중 전(前) 대통령 서거 | 2005년 | 중국-러시아, 사상 첫 합동군사훈련 | 2005년 | 남북농업협력위원회 제1차회의(개성 2005.8.18~19) | 2004년 | 한국축구 2004아테네올림픽서 56년만에 8강 진출 | 2004년 | ‘영화음악의 거장’ 엘머 번스타인 별세 | 2003년 | 라이베리아, 정부-반군 평화협정 체결 - 내전 4년 만에 종료 | 2002년 | 북한 주민 21명, 어선을 타고 서해 공유상을 경유해 귀순 | 2001년 | 필리핀 호텔 화재로 70명 사망 | 1999년 | 경남 고성군 마암면서 1억년전 유충화석 발견 | 1998년 | 김종필 제31대 국무총리 취임 | 1998년 | 콘택트 렌즈 발명한 체코의 발명가 오토 비흐테를 사망 | 1994년 | 종이 크로마토그래피를 개발한 영국의 싱 사망. 1952년 노벨화학상 수상 | 1990년 | 체신부, sbs 주파수를 `폴 VHF 6`으로 결정, 공보처에 통보 | 1984년 | 가칭 신민주당 창당 발기대회 | 1983년 | 서울지법, 중국기 납치범 실형선고 | 1982년 | 이스라엘군, PLO의 베이루트 철수위해 점령지 철수 개시 | 1980년 | 이라크, 시리아대사관원에 추방령 | 1976년 |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 1972년 | 남북회담용 직통전화 20회선 개통 | 1971년 | 서울대 문리대 교수들, 대학자율화 등 요구 | 1966년 | 홍위병 100만명 집회 | 1955년 | 한국, 일본과 경제관계 단절 | 1950년 | 정부, 부산으로 이전 | 1949년 | 중앙선 죽령터널 열차사고 | 1946년 | 국제학생연맹 창립총회, 프라하에서 열림 | 1945년 | 일본 괴뢰국 만주국 해체, 국왕 부의(溥儀) 소련 억류 | 1940년 | 미국 캐나다 공동방위조약 성립 | 1940년 | 크라이슬러사(社)의 설립자 크라이슬러 사망 | 1940년 | 조각가 김복진 사망 | 1934년 | 독일 국민투표, 총통에 히틀러 선출 | 1930년 | 시인 신동엽 출생 | 1907년 | 제2인터내셔널 제7회대회 슈투트가르트대회 개최 | 1902년 | `일본도덕론`(1887)을 저술한 니시무라 시게키 사망 | 1850년 | 프랑스 작가 발자크 사망 | 1598년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사망 | 1503년 | 교황 알렉산드르 6세 사망 | 1227년 | 징기스칸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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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8월 19일삼성전자 차세대 반도체 64메가 P램 세계 첫 개발 ![삼성전자 차세대 반도체 64메가 P램 세계 첫 개발]() - 삼성전자 P램.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64메가비트 P(Phase Change)램 기술 및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고 19일 밝혔다. P램이란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원판에 신물질을 추가, D램의 빠른 정보처리속도와 플래시메모리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날아가지 않는 특성을 가진 차세대 반도체다. 업계에선 P램이 수년 안에 460억달러(55조원·2004년) 규모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모두 P램 연구작업을 벌여 왔으며, 64메가 시제품 개발은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이 제품은 기존 반도체 생산설비로도 제조할 수 있고, 제조공정도 메모리반도체보다 단순하기 때문에 원가경쟁력이 우수하다. 아울러 2.5V 저전압 동작과 ▲쓰기속도 120나노초(ns) 및 읽기속도 60ns ▲플래시메모리 대비 1000배 이상의 내구성 ▲85도에서 2년 이상 데이터보존 등의 특성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6년부터 본격 양산에 돌입했다. 총 40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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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 통독(統獨) 기반 ‘동방정책’ 설계자 에곤 바 별세 | 2005년 | 태평양전쟁희생자 유골인도식(부산 영락공원) | 2003년 |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유엔 본부 폭탄테러, 24명 사망 100여명 부상 | 1999년 | 유고 최대 규모 반정부 시위 | 1998년 | 시인 원희석씨 별세 | 1997년 | 북한 경수로 착공 | 1994년 | 노벨 화학상과 평화상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 박사 타계 | 1993년 | 초고속정보통신망 기본계획 수립 | 1993년 | 국회,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승인 | 1991년 | 한민족과학기술자학술대회 개막(중국 연길), 남북한및 해외동포 등 관계자 300며명 참석 | 1991년 | 소련 공산당 보수파, 쿠데타 시도 | 1989년 | 동독시민, 헝가리 경유해 오스트리아 탈출 러시 | 1988년 | 서경원 의원 밀입북(8.19~8.21) | 1987년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발족 | 1982년 | 국방부, 북한주민 이현주 귀순을 발표 | 1980년 | 국보위, 사학 운영쇄신책 발표 | 1980년 | 사우디아라비아 여객기 리야드에 불시착 폭발. 301명 사망 | 1979년 | 소련 우주선 소유즈 34호, 우주체재 175일 기록세우고 귀환 | 1969년 | 사단법인 흥사단 설립 | 1964년 | 한국, 국제의원연맹(IPU) 가맹 | 1960년 | 소련 개 2마리 태운 인공위성선 2호 발사 | 1960년 | 장면, 제2공화국 총리에 피선 | 1954년 | 이탈리아 총리(1945-53) 데 가스페리 사망 | 1953년 | 이란 `親팔레비` 쿠데타 | 1947년 | 대동청년단 결성 | 1946년 | 미국 제42대 대통령 빌 클리턴 출생 | 1939년 | 독일 소련 통상협정, 베를린서 조인 | 1938년 | 장개석, 공산당계 단체에 해산명령 | 1936년 |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 사망 | 1911년 | 프랑스-일본, 통상항해조약 조인 | 1907년 | 독립운동가 이남규 사망 | 1907년 | 대한자강회(大韓自彊會)에 해산령 | 1904년 | 일본군, 여순(旅順) 총공격 개시 | 1883년 |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 출생 | 1878년 | 필리핀 연방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케손 출생 | 1839년 | 프랑스의 루이 다게르, 사진기의 원리 공개 | 1819년 | 증기기관 발명가 제임스 와트 사망 | 1662년 |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 사망 | 1631년 | 영국의 시인, 문학비평가 드라이든 출생 | 1270년 | 삼별초, 진도 도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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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8월 20일체신부,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대한텔레콤 선정 ![체신부,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대한텔레콤 선정]() - 선경의 제2이동통신 포기권 소식이 알려진 1992년 8월 24일 이동통신 사업을 추진해 온 서울 서초동 서광빌딩 9층 선경그룹 경영기획실에는 포기 여부를 묻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6공 최대의 이권사업으로 갖가지 시비와 논란 속에 관심을 끌었던 제2이동통신 이동전화 사업권이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에 돌아갔다. 체신부는 20일 선경, 코오롱, 포철 등 3개 그룹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이동전화사업 신규허가 신청자에 대한 2차 심사결과를 발표, 선경이 지배주주로 참여한 대한텔레콤이 최고점수를 획득해 사업자로 최종선정됐다고 밝혔다. 무선호출 부문 신규사업자로는 수도권의 서울이동통신(지배주주 단암산업)과 나래이동통신(삼보컴퓨터)을 비롯, 전국 9개 사업권역별로 모두 10개 법인이 선정됐다. 체신부는 특정지역(서울)의 통신망 건설능력과 전기통신 발전을 위한 계획을 주로 평가한 2차 심사 결과 선경이 1만점 만점중 8천3백88점을 받았으며, 포철이 7천4백96점, 코오롱이 7천99점을 각각 얻었다고 밝혔다. 모두 36개 항목에 걸친 최종심사에서 선경의 대한텔레콤은 외국 참여업체와의 기술협력 계획 분야에서만 코오롱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뿐 나머지 35개 항목에서는 모두 최고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8월 27일 선경그룹은 논란을 빚어온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포기하겠다고 공식발표했다. 이동전화 주사업자로 선정된 대한텔레콤의 손길승 사장(선경그룹 경영기획실장 겸임)은 선경그룹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동통신 사업권 포기를 선언한데 이어 체신부에 대한텔레콤 명의로 이동전화사업 추진포기 통고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20일 체신부의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이후 야기된 여론 악화와 여권 내 분열 등 사태가 대한텔레콤의 사업권 포기로 완전히 수습되었다. 총 38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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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 삼미 초대 감독 박현식씨 별세 | 2000년 | 동티모르 독립운동지도자 구스마오 민족해방군 총사령관직에서 사임 | 1996년 | 한국 고전문학의 대가 장덕순씨 별세 | 1995년 | 방송인 김경태씨 별세 | 1993년 | 경부고속철도의 차종이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로 결정 | 1993년 | 제1차 대학수학능력시험 | 1988년 | 이란-이라크 정전 발효 | 1984년 | 유엔, 이디오피아 기아사태 보고 | 1979년 | 한국-나우르 국교 수립 | 1977년 | 연극배우 추송웅,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초연 | 1977년 | 원자력발전소 가동 | 1976년 | 비동맹회의, 콜롬보선언 채택 | 1971년 | 남북적십자 연락관 분단 26년 만에 첫 대면 | 1969년 | 박정희 대통령 미국 방문 | 1968년 | 체코 프라하의 봄 | 1964년 | 조선일보 주관, 납북인사 송환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완결 | 1963년 | 서울교외선 개통 | 1960년 | 세네갈, 프랑스로부터 독립 | 1955년 | 프랑스령 모로코-알제리서 폭동 | 1953년 | 소련 수소폭탄 첫 실험 성공을 발표 | 1949년 | 니카라과 대한민국 승인 | 1948년 | 국제난민기구(IRO) 발족 | 1945년 | 소련군, 원산 상륙 | 1940년 | 쌀배급제 실시(출하. 판매 금지) | 1940년 |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 피살 | 1940년 | 중국 8로군 40만 출격작전 개시 | 1919년 | 총독부 관제(官制) 개정 | 1915년 | 독일의 의학자 에를리히 사망 | 1911년 | 포르투갈, 신헌법 제정 | 1909년 | 터키, 불가리아의 독립을 승인 | 1906년 | 쿠바에서 반란 | 1905년 | 손문, 일본 동경에서 중국혁명동맹회 결성 | 1904년 | 친일단체 일진회 창립 | 1904년 | 송병준 윤시병 등 유신회(維新會) 조직 | 1901년 | 경부선 기공, 북부기공식(영등포). 9.21일 부산 초양에서 남부기공식 | 1901년 | 195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탈리아의 시인 콰시모도 출생 | 1833년 | 미국의 제23대 대통령 해리슨 출생 | 1031년 | 강감찬 장군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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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8월 21일임시정부, 상해판(版) 독립신문 창간 ![임시정부, 상해판(版) 독립신문 창간]() - 1919년 8월 21일 창간된 ‘상해판(版)독립신문’ 창간호.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우리 근·현대사에서 ‘독립신문’의 제호를 사용한 신문은 많다. 서재필과 개화파가 창간한 독립신문(1896년), 장기영 등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한 독립신문(1919년), 광복 후 서울에서 발간된 독립신문(1945년), 1919년 8월 21일에 임시정부가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기관지로 발간한 ‘상해판(版) 독립신문’ 등이다. ‘상해판 독립신문’은 상하이에 망명 중인 독립지사들이 자신들의 공동관심사와 독립운동 관련 소식을 모아 발행하던 등사판 신문 ‘우리 소식’을 모태로 출발했다. 사장 겸 주필은 이광수가, 편집국장은 주요한이 맡아 타블로이드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주 3회 발행을 원칙으로 했다. 상하이에 한글 활자가 없어 성경에서 한글을 오려내 자모를 만들 만큼 제작환경이 열악했지만 일제를 통렬하게 비판할 때는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재정난과 일제의 간접적인 탄압으로 1925년 9월, 189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할 때까지 ‘獨立’ ‘獨立新聞’ ‘독립신문’으로 제호가 3번 바뀌었다. 총 28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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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세계육상선수권, 우사인 볼트 남자 200m 세계신기록으로 우승 | 2009년 | 그리스 산불 비상사태 | 2003년 | 2003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 | 1986년 | 구 중앙청 청사를 개조한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 1985년 | 한국, 국제이동위성기구 가입 | 1983년 | 필리핀 야당 지도자 아키노 피살 | 1982년 |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레바논 철수 개시 | 1981년 | 경제기획원,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1980년 |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전두환 장군을 국가원수로 추대하기로 결정 | 1976년 | 청계천 하수처리장 준공 | 1970년 | 추풍령서 고속버스 추락. 25명 사망 | 1964년 |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팔미로 톨리아티 사망 | 1959년 | 하와이, 미 합중국의 50번째 주(州)로 편입 | 1949년 | 서독 점령군, 군정 종식 | 1944년 | 덤버튼 오크스 회의 개최 | 1943년 | 덴마크의 사실주의 작가 폰토피단 사망 - 1917년 노벨문학상 수상 | 1937년 | 중국-소련 불가침조약 조인 | 1919년 | 안창호 등 임정기관지 `독립` 창간 | 1912년 | 총포화약류 취췌(取締)령 공포 | 1911년 | 파리 루브르 박물관서 모나리자 도난 | 1909년 | 도수(屠獸)규제 반포 | 1903년 | 일본 정부, 한만(韓滿)보호 기본타협안을 러시아 정부에 제시 | 1875년 | 일본 군함 강화도 등에 침입, 약탈, 살육 | 1838년 | 독일 시인 샤미소 사망 | 1798년 |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 출생 | 1789년 | 프랑스 수학자 오귀스탱 루이 코시 출생 | 1741년 |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작곡 | 1545년 | 을사사화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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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 도난 발표]()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발표한 1911년 8월 22일은 모나리자에게는 오히려 제2의 생일이 됐다. 그때까지 모나리자는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신문들이 루브르의 관리소홀을 질타하고 한편으로는 연일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자 관심이 모나리자에게 세간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됐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그런 명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자신들이 ‘라 조콩드’라고 부르는 모나리자의 미소도 새롭게 알게 됐다. 경찰은 피카소를 혐의 선상에 올리면서까지 철저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진척이 없었다. 시간도 어느덧 2년이 흘러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점차 잊혀져갈 무렵, 우연한 기회에 범인이 잡힌다. 페루지아라는 이탈리아 화가가 피렌체 우피지 미술관에 그림을 10만달러에 팔려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페루지아는 모나리자가 탄생지 이탈리아에 있지않고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에 격분해 그림을 훔쳤다고 강변했지만, 사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왕 프랑수아1세에게 돈을 받고 팔아 넘긴 그림이다. 지난해 모나리자는 500살 생일을 맞았다. 총 42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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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 아프가니스탄 파병 공병.의료지원 다산(6진).동의부대(8진) 환송식(경기도 성남 육군종합행정) | 2004년 | 노르웨이 뭉크박물관에서 뭉크의 ‘절규’ 도난 | 2004년 | 영화음악가 한상기씨 별세 | 2004년 | 체코 ‘프라하의 봄’ 주역 경제학자 오타 시크 사망 | 2003년 | 미셸 위, 캐나다 남자 프로골프인 베이밀스오픈 출전 | 2000년 | 북한-일본 국교정상회담 | 1999년 | 사우디아라비아 파이잘왕자 심장마비로 사망 | 1997년 | 산업표준화법 개정돼 KS표시 허가제도가 인증제도로 전환 | 1994년 | 집권 제도혁명당의 에르네스토 세디요가 멕시코 대통령에 당선 | 1992년 | 대만 단교선언, 대한 무역 우대조치 철회 | 1991년 | 한국-알바니아 국교 수립 | 1990년 | 한국-니카라과, 국교 수립 | 1987년 | 서울시내버스 총파업 | 1984년 | 미국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 후보 지명 | 1984년 | 강도-강간 19회 가정파괴범에 사형 구형 | 1981년 | 자유중국(대만) 여객기 공중 폭발. 110명 사망 | 1980년 | 전두환 대장 예편(豫編) | 1974년 | 신민당 당수에 김영삼 선출 | 1969년 | 언론인 천리구 김동성 사망 | 1966년 | 아시아개발은행(ADB)발족 | 1965년 | 서울 지방 고교-대학생 등 1만여명, 비준(批准) 무효화 데모 | 1963년 | `모리스`자동차를 처음 생산한 영국의 너필드 사망 | 1957년 | 간첩 김정제 검거 | 1950년 | 국민병(國民兵) 소집 개시 | 1949년 | 반민특위 폐지안 국회 통과 | 1946년 | 국립서울대학교 신설 | 1937년 | 서울에 등화관제 실시 | 1922년 | 영국 조각가 토마스 브록 사망 | 1922년 | 아일랜드자유국 정부 수반 마이클 콜린스 피살 | 1918년 | 미주의 각종 부인단체, 대한여자애국단으로 통합 | 1911년 | 조선교육령 공포 | 1910년 | 한일합병조약 조인 | 1904년 | 중국 등소평 출생 | 1904년 | 한일 외국인 고문용빙(顧問傭聘)에 관한 협정서 조인 (제1차 한일협약) | 1903년 | 영국 보수당 정치지도자 솔즈베리 사망 | 1902년 | 레니 리펜슈탈 출생 | 1883년 |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 사망(구력-8.22/신력-9.03) | 1881년 | 영국, 아일랜드 토지법 성립 | 1864년 | 국제적십자 조약 성립 | 1862년 |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 출생 | 1860년 | 텔레비전의 주사원리를 발견한 독일의 니프코브 출생 | 1374년 | 환자(宦者) 최만생(崔萬生) 등, 공민왕 살해, 우왕 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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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죄송 합니다 ~~ ~
역시공부 잘 했습니다... 감사드리며, 편안한 저녁시간되세요~^
너무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19일 사건 이런 기업 자랑스럽지 않나, 해체해 내가 하면 되것 갓치만...두고 봅시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