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읽는 밤
정경화
벽과 벽 그 틈새로 살들이 발사된다
높지도 낮지도 않는 그 보법 그대로다
처서의 문저에 꽂힌 저 따끔한 전율들
빈 촉에 묻은 것이 과연 울음뿐일까
고요의 봉기이며 어둠의 노역인가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천만 가지 답이다
별과 별 사이사이 여전히 쏟아진다
암시도 반전도 없는 저들만의 으뜸화음,
서늘한 달빛을 보챈 내 시위를 거둔다
유나 킴*
정경화
팽이꽃 한 송이가 얼음에서 싹이 텄네
저 홀로 일으킨 바람 회오리로 돌아치며
햇살도 그림자도 없는 빙점 아래 자라났네
음악이 미끄러지면 숨과 숨 멈추었네
얼렸던 눈물 만 섬 사각사각 오려내며
하얗게 꽃피운 미소, 온 세상을 밝혔네
어느 새 학의 나래 그 가벼운 깃날들이
번개를 가로 질러 천둥과도 빙그르르
천상의 어깨를 너머 태극하늘 열었네
* 김연아
그림자 백서 .5
정경화
부서진 기와 모아
탑을 쌓는 한 사람
와르르 무너져도
쌓고 또 쌓는 사람,
그 틈새 자갈돌 고아
채워가는 또 한 사람
그림자 백서 6
정경화
그의 낫, 지나간 길
땀내가 흥건하다
잡초의 질긴 뼈와
욕망을 솎아낸 자리,
샅샅이
쓸어 담지만
내겐 멀다 그 내음
그림자 백서 .7
정경화
돋을볕 오기도 전
날마다 울려주는
똑같은 잔소리도
가슴 한켠 알림입니다
부스스 뒤척이다가도
화들짝 깨어나는
그림자 백서 .8
정경화
그대 넓은 꽃밭은 빈틈없이 꽉 찼군요
과꽃, 깽깽이풀꽃, 부용화, 수국까지
이제사 꿈틀거리는 내 자리는 없을까요
좀 늦게 피겠지만 오래 남아 있겠다고
필 때 볻 시들 때 더 진한 향 품겠다고
또렷한 씨방울 익혀 담장 아래 비집어요
- 《시와소금》2021. 겨울호
ㅡㅡㅡㅡ정경화 시인ㅡㅡㅡㅡ
* 1961년 대구 출생
*2000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원촌리 겨울」, 농민신문 신춘문예 「모과」 각각 당선.
* 《시조21》 편집장 맡음, 한결시조동인 회장
* 2005년 이호우·이영도 문학기념회 사무국장,<민병도 갤러리>관장.
* 시조집 『풀잎』(동학사), 『시간연못』(목원예원).
현대시조 100인선집 『무무무 걸어나오고』(고요아침).
『편백나무 침대』(목원예원), 『눈물값』(목원예원), 단시조선집 『시 한 숟갈 별 한 사발』,
*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발간지원금, 2007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문예진흥기금,
* 2015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집 발간지원금, 2020년 경북 지원금, 2021년 경북문화재단 지원금 받음,
* 2019년 대구문학 올해의 작품상 수상 (수상작 「세컨하우스」)
* 대구문학 작가상 수상 (수상집 『편백나무 침대』), 대구시조문학상 수상 (수상작 「신미인도」)
* 2022년 (사)청도문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