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등 목포는 대중가요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도시다. 덕분에 어르신들에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친근한 여행지이기도 하다. 길고 매서웠던 겨울바람이 지나간 유달산 아랫자락엔 어느새 붉은 동백과 매화가 하나둘 봉우리를 터트린다. 이맘때 바람에 살랑거리는 목포 앞바다를 가로질러 가슴 설레는 봄마중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삼학도에서 카누체험을 즐기는 어르신들
봄바다를 달리다, 삼학도 카누체험
세 마리의 학이 섬이 되었다는 삼학도에는 유달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한 젊은 장수가 자신을 흠모하던 세 여인이 학이 된 것을 모르고 활을 쏘아 죽였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까운 역사를 되짚어보아도 국유지인 삼학도가 일본인에게 불법으로 매입되는가 하면,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채석장으로 사용되며 마구잡이로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 때문인지 대중가요 속 삼학도 역시 ‘파도가 깊이 스며’ 들고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애절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체험 전 안전교육과 이론강습
그러나 예전의 인상만으로 지금의 삼학도를 찾는다면 상당한 괴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별과 설움의 공간이었던 세 개의 섬은 이미 뭍으로 변했고, 이들 사이로 흐르는 인공수로 주변으로는 가벼운 옷차림의 주민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긴다. 어린이바다과학관과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도 자리해 아이들과 나들이를 즐기는 가족들의 정겨운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가수 이난영의 이름을 딴 공원 표지판만이 구슬픈 ‘목포의 눈물’을 기억할 뿐이다.
전문가와 함께 체험하는 어르신
옛 삼학도에 대한 아쉬움도 잠시, 어르신들은 구불구불 멋스런 인공수로를 가로지르는 카누체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양쪽 끝이 버선코처럼 살짝 올라간 길쭉한 배를 일컫는 카누는 최근 강이나 아름다운 호수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수상레포츠다. 속도감을 즐기는 수상스키나 래프팅과 달리 카누는 잔잔한 물살 위를 천천히 노를 저으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때문에 어르신들도 부담 없이 즐겨볼 수 있다. 특히 삼학도 카누체험은 중삼학도와 소삼학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약 40여분의 비교적 짧은 코스에, 물살의 변화가 적은 인공수로를 활용하기 때문에 카누를 처음 경험하는 어르신들에게 적당하다. 또 체력이 약한 어르신들은 해양전문가가 동승해 안전하게 체험을 마칠 수 있도록 돕는다.
잔잔한 봄바다를 가로지르는 카누
10여분의 간단한 안전교육과 노를 젓는 법, 방향을 바꾸는 법에 대한 강습이 이뤄지고 드디어 4인승 카누에 몸을 실었다. 처음엔 서투른 노질에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했지만, 전문가의 도움으로 금세 적응을 마치고 봄바다를 가로지르며 힘차게 속도를 낸다. 카누 위에서 바라보니 날개를 가득 펼친 어미학처럼 삼학도의 품이 따스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안전하고 즐거운 카누체험
풍경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갓바위문화타운
목포를 대표하는 절경 중 하나인 갓바위는 이름 그대로 갓을 쓴 사람의 형상을 꼭 닮아 눈길을 사로잡는다. 누군가 조각한 것이라 해도 믿음직한 갓바위의 이 기묘한 형태는 오랜 세월 파도와 안개에 깎이고 다듬어진 결과라고 하니 신비롭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다.
갓바위 관람을 위한 해상보도교
바닷가 절벽에 자리한 탓에 과거엔 배를 타야 만날 수 있었던 갓바위지만 지금은 바다 위에 길을 놓아 누구든 쉽게 그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갓을 쓴 사람 형상의 갓바위
관광객들이 몰려들면 덩달아 갈매기들도 무리지어 찾아와 마치 유람선을 탄 것처럼 정다운 풍경이 연출된다.
관광객을 반기는 갈매기떼
갓바위 주변으로는 목포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목포문예역사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남농기념관, 목포문학관, 옥공예전시관, 해양유물전시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밀집해 풍성한 볼거리를 챙길 수 있다. 하나하나 알차게 꾸며져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 좋지만, 시간이나 체력이 여의치 않다면 어르신들에겐 남농기념관과 목포문학관을 추천한다.
입암산 봉우리와 어우러진 남농기념관
갓바위문화타운으로 불리는 이 일대의 도로명은 남농로로, 남농은 목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동양화가 허건의 호다. 그는 진도 운림산방의 주인인 소치 허련의 손자이자 그 화풍을 이어받은 미산 허형의 아들로, 이들을 가리켜 ‘운림산방 3대’로 부를 만큼 한국남종화의 명문으로 꼽힌다. 남농기념관은 허건 선생이 사재로 건립한 미술관으로, 추사 김정희가 ‘해동 제일인자’라고 극찬했던 허련의 작품을 비롯해 남종문인화를 대표하는 명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허씨 3대의 작품이 전시된 기념관
시설이 다소 노후하여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동양화 특유의 묵직한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또 정갈하게 다듬어진 정원과 기념관 뒤편에 자리한 입암산과의 어우러짐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남농이 평생에 걸쳐 수집했다는 수석들은 근처 목포문예역사관에 상시전시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함께 둘러봐도 좋겠다.
동양화의 매력이 넘치는 남농기념관
목포문학관은 극작가인 김우진과 차범석, 여성작가인 박화성과 문학평론가 김현 등 목포가 배출한 문학가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목포문학관 전경
특히 차범석은 드라마 <전원일기>의 초기 대본을 맡았던 작가라 어르신들에게도 친근한 이름이다.
차범석의 대표작 포스터전시
문학관 내에는 이들 작가의 생애와 대표작, 그리고 집필실 등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고 1층과 2층을 잇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어르신들이 편리하게 돌아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 전시관
문학관 2층에선 갓바위문화타운이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도 있다.
문학관 2층에서 보는 갓바위문화타운
흥이 넘치는 목포의 밤, 남진야시장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며 197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가수 남진은 지금도 열성적인 오빠부대를 몰고 다닐 만큼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목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님 오신 목포항’, ‘목포항에서’ 등 고향인 목포를 배경으로 한 노래도 여러 곡 발표했다.
남진야시장 입구의 남진 조형물
이 같은 애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목포에선 지난 2015년 산정동 자유시장에 새롭게 조성한 야시장에 남진의 이름을 붙였다. 유명인의 이름을 딴 전국 최초이자 유일의 남진야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남진 초상
입구엔 친근한 얼굴의 남진 조형물이 세워졌고, DJ박스에선 방문객들의 신청곡을 재치 있는 멘트와 함께 틀어줘 절로 흥이 난다.
신청곡을 틀어주는 DJ박스
귀에 익숙한 트로트가 나올 땐 상인들도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야시장 특유의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목포여행에서 남진야시장 방문을 가장 기대했다는 어르신들은 남진이란 공통분모 하나만으로 다른 관광객들과 금세 어우러지며 서로 막걸리를 기울였다.
남진의 팬이라 더 즐거운 관광객
야시장하면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곳에선 목포라는 지역적 특색을 그대로 반영한 홍어삼합과 매콤달콤한 홍어무침, 낙지호롱구이 등 이색 먹거리가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남진야시장 홍어회
판매대 사이사이에 테이블이 놓여 있어 먹거리를 구입해 현장에서 신나는 음악과 함께 편하게 맛볼 수 있다.
즉석에서 구워주는 낙지호롱구이
굽이굽이 이야기를 품은 유달산
예부터 영달산이라 하여 영혼이 극락세계로 가기 전에 지나는 산이라고 여겼던 유달산은 목포 사람들에게 단순한 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목포 시내 어디서든 고개만 들면 그 웅장한 기암괴석이 첩첩이 펼쳐져 굉장히 높고 험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오르려 하면 높이 228.3m의 비교적 유순한 산자락이다.
군량미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노적봉
목포 사람들은 노적봉에서 유달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일등바위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를 즐겨 오르는데, 일부 능선을 따라 가파른 계단과 바위를 가로지르는 구간들이 있어 어르신들에겐 다소 힘겹게 느껴질 수 있다. 노적봉에서 오포대가 자리한 대학루까지만 올라도 목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니 유달산의 매력을 즐기려는 어르신들에겐 이 코스를 추천한다.
유달산 자락의 이순신 장군 동상
노적봉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엉으로 바위를 덮어 멀리서 보면 마치 군량미를 가득 쌓아둔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덕분에 왜군들이 싸우려는 의지가 꺾였고, 이 같은 장군의 지혜를 기억하기 위해 이순신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오포대가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간직한 오포대
오포대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과 30여분의 시차가 있는 것을 무시하고 일본 기준의 정오에 포를 쏘아 알렸다는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드는 유적이지만 바로 옆 대학루에서 바라보는 짙푸른 목포 앞바다에서 잠시나마 위로를 얻는다.
대학루에서 바라본 목포 시내
유달산 이등바위 아래 자리한 조각공원도 어르신들이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기 좋은 코스다.
유달산조각공원의 입구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조각공원으로 알려진 이곳은 목포의 자연과 사람을 주제로 한 40여점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는데, 완만한 비탈을 따라 자리한 덕분에 작품 너머로 목포 시내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동백나무와 매화나무도 다수 심어져 있어 목포의 봄을 즐기기에 좋다.
목포 도심을 품고있는 조각품
유달산조각공원 바로 아래엔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반겨주는 목원동 감성벽화마을과 멋스런 한옥게스트하우스들이 자리한 북교동 한옥거리가 이어진다.
목원동 감성벽화마을
특히 북교동 지역은 앞서 갓바위문화타운에서 만났던 김우진과 차범석 등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이기도 해서 예술적 정취를 즐기며 하룻밤 쉬어가기에 좋은 공간이다.
북교동의 한옥게스트하우스
유달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마을 풍경을 조금 더 살펴보고 싶다면 보리마당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노적봉과 대학루가 한눈에 들어오고, 언덕을 따라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과거 뱃사람들이 모여 살던 다순구미마을이 발아래 펼쳐진다.
다순구미마을이 발아래 펼쳐지는 보리마당
늘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동네라 하여 지금도 온금동으로 불리는 이곳엔 근대산업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조선내화의 옛 목포공장도 자리해 풍성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보리마당에서 보는 해안가
‘목포의 눈물’을 더듬어 걷다, 목포근대역사관·이훈동정원
1897년 목포항 개항과 함께 밀려들어온 일본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잔혹한 수탈과 억압을 일삼는다. 지금의 목포역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도 형성되었는데, 당시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사용되었던 건물은 현재 목포근대역사관 1, 2관으로 바뀌어 목포의 과거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일본영사관이었던 목포근대역사관 본관
근대역사관 1관에는 문화해설사가 항상 상주해, 11시 이후 5명 이상의 인원이 요청할 경우엔 언제라도 해설과 함께 관람이 가능하다.
해설사가 전하는 근대 목포 이야기
특히 목포근대역사관 뒤편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조성된 방공호가 자리해 어르신들이 흥미롭게 둘러보기에 충분하다.
독립운동 체험존/태평양전쟁 당시 조성된 방공호
이 일대엔 일본인들이 지은 적산가옥들이 다수 남아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카페로 활용되고 있어 걸음을 쉬어가기 좋다.
적산가옥을 활용한 카페 /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목포근대역사관 근처에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일본식 정원인 이훈동정원이 자리해 볼거리를 더한다.
봄 빛 가득한 이훈동정원 / 정원 너머로 보이는 유달산
개인정원으로는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다양한 수목과 뒤편으로 보이는 유달산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한가로운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봄을 알리는 동백꽃 / 성옥기념관 입구 전경
이훈동은 다순구미에 자리한 조선내화의 창업자로, 자신의 정원은 물론 ‘운림산방 3대’의 작품을 비롯한 귀한 그림들로 가득한 성옥기념관을 일반인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게살비빔밥 / 낙지비빔밥
여행정보
추천 여행 코스(당일 코스)
유달산 → 목포근대역사관·이훈동정원 → 갓바위 → 남진야시장
추천 여행 코스(1박 2일 코스)
첫째 날: 삼학도 카누체험 → 갓바위문화타운 → 남진야시장 둘째 날: 유달산 → 목포근대역사관·이훈동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