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길의 아름다움에 취해서일까? 이달 말까지 소백산 일정을 끝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쫓겨서일까? 좋은 일에도 끝은 있기 마련이고, 아린 끝도 있기 마련이다. 지난 13일 밤 경북 문경 농암이란 곳에서 하룻밤을 잔 뒤 다음날 새벽 일찍 늘재를 출발해 청화산과 조항산, 대야산을 거쳐 장성봉과 악휘봉, 은티 마을까지 이를 계획이었다. 이렇게 하면 부처님 오신 날인 15일 봉암사를 거느린 희양산을 거쳐 백화산과 황학산을 통과해 이화령에 이르고 16일 주흘산 옆을 거쳐 소백산 들머리까지 이를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13일 오전부터 고민고민했다. 늘재에 이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중 오후 5시 50분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는 농암행 버스에 올라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 늘재에 이르는 방안이 가장 효율적이란 결론이 내려졌다. 어차피 대간 길을 타면 이르게 될 문경새재 주변 산세를 미리 눈에 익힐 요량도 있었다. 농암개인택시(054-571-3200)에 전화를 걸어 다음날 새벽 5시에 깨워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건국대 충주캠퍼스를 통과한 버스는 문경시와 가은읍을 들른 뒤 농암에 이르렀다. 충주에 이르면서부터 산세가 완연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월악산과 주휼산 자락임이 분명하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이 신기했다. 밤 8시 40분쯤 농암정류장에 내렸는데 전화로 예약한 농암모텔(054-571-8603)은 650m정도 밤길을 걸어야 했다. 카드로 4만원을 결제했다. 이 모텔은 라이브 카페를 겸하고 있어 누군가 밤새 술에 취해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늘재 2.4km 청화산 4.6km 조항산 4.2km 밀재 1.1km 대야산 1.3km 촛대봉 0.5km 불란치재 3km 주차장(17.1km, 10시간 20분)
14일 새벽 5시 30분 늘재(해발 고도 380m)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기사님이 무척 무뚝뚝했는데 택시비 3만 5000원을 받고 비타 500 한 병을 건넨다. 이 근방 택시 기사님들의 대간꾼 특별 대우인 셈이다.
길게 늘어진 고개란 뜻으로 경북 상주시 화북면과 충북 괴산군 청천면을 이으며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 된다. 사흘 전 속리산 쪽으로 남진하면서 위용을 확인한 청화산(984m)을 오른다. 이 산은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뒤에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에 용유동에 임해 있다. 앞뒷면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고 극찬한 곳이다. 오를수록 지나친 말이 아니구나 깨닫는다.
정상까지 네 군데 조망점이 나오는데 첫 번째가 논란의 정국기원단이다. 마침 동틀 무렵의 속리산 연봉이 똑바로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와 같은 한자 '정국'을 쓰는 바람에 일본을 찬양하는 무리가 조성한 것이 아닌가 의심 받았는데 건너편에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을 펼친 상주시) 화북면 노인회와 화북면 유도회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 일본과 관련된 것으로 오해하지 말고 훼손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전하고 있다.
첫 조망점은 570m, 그 뒤 750m, 870m, 정상으로 이어진다. 고도를 높일수록 속리산 연봉들이 같은 높이쯤으로, 나아가 발 아래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정상에 이를 때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 원래 늘재부터 은티마을까지는 23km로 '백두대간을 그리다'와 상당수 대간꾼들이 중간에 밀재에서 한 번 끊고 이틀 일정으로 잡는다. 늘재부터 밀재까지는 11km, 밀재부터 은티재까지 12km인데 대야산 구간이 워낙 험해 그렇게 잡는 것인데 난 일년 중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개방하는(당일에야 알아보니 올해는 미리 2주 전부터 개방하고 있었다) 희양산 정상을 밟겠다는 허튼 욕심(산행은 금지) 때문에 이틀 일정을 하루에 끝내겠다고 조바심을 치고 있었다.
청화산 정상에 이르기 전만 해도 속리보다 낫다는 생각에 빠졌는데 정상을 밟은 뒤 베이글과 사과, 오렌지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본 뒤쪽 경관도 감탄을 자아낸다. 정상 아래 삼거리에서 뻗어나간 시루봉(876m) 자락과 앞쪽에 떡 버틴 조항산(951m)이 펼쳐낸 자락 아래 궁기리가 포근히 내려앉아 있다. 궁기리는 견훤이 성터를 잡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새의 목이란 뜻을 갖는 조항산까지 4.3km인데 안부와 암릉 길이 교차하는데도 안온한 길이 이어진다. 아침 9시 55분 정상에 이르렀다.
돌아보니 갈령과 늘재 사이 남북으로 긴 타원형 분지가 도장산, 속리산, 두로봉, 청화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눈에 봐도 소의 뱃속처럼 편안하게 보인다. 해서 우복동천이라 하고 정감록에 십승지지 중 으뜸이라고 한다.
정상을 내려선 지 5분도 안돼 건너편 대야산 자락이 보인다. 위쪽은 수려한 능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중간중간 땜질한 곳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보면 자연 경관인가 싶은데 채석장 등 개발 흔적을 애써 지우려는 것이다.
30분 만에 1.2km 떨어진 고모치에 이르렀다. 10m 아래 고모샘에서 물병을 채웠다. 조금 더 오르면 889m 지점이 통시바위 갈림길이다. 마귀할미 통시바위와 둔덕산(969m)으로 이어져 가은읍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이다. 그 통시바위 아래가 고모치 광산이 있던 곳이다.
곰
12시 13분 밀재가 나온다. 벌의 목 고개란 뜻이다. 이곳에서 참치김밥을 들었다. 이곳은 속리산국립공원이 관리하는 곳으로 안전 설비와 데크, 계단 등이 잘 갖춰져 있어 평일인데도 산행객들이 꽤 있었다. 거북바위와 코끼리바위, 코브라바위 등을 구경하느라 올라가는 일이 힘든지 몰랐다.
1시에 대야산 정상(상대봉 931m)을 발아래 뒀다. 속리산국립공원은 월영대~밀재~대야산만 개방하고 대야산~피아골~월영대도 막는 것은 물론, 대야산~촛대봉~곰넘이봉~버리미기재~장성봉까지 대간 길을 모두 막고 있었다. 사실상 괴산군 연풍면 은티재에서 악휘봉(845m)과 반대쪽 희양산(실은 정상에 오를 수도 없고 자락을 스쳐 지나는 것만)으로 등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9회차에 속리산 비법정 탐방로를 탔던 차에 대야산 정상 뒤부터도 알바를 뛰기로 했다. 그런데 시작점을 찾지 못해 책을 펼쳤더니 표지판 뒤 난간을 넘어가라고 돼 있었다. 난간을 넘어간 뒤 곧바로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표지판 뒤 난간을 넘었어야 했는데 그만 정상석 뒤 난간을 넘고 말았다. 뒤쪽에 산객들이 올라오길래 그들의 눈을 피할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두른 탓일까? 상당한 높이의 바위 위에서 아래 높이를 착각했다. 생각보다 많이 내려갔고, 착지한 뒤 튀어올랐는데 벨트를 채우지 않은 배낭이 한쪽으로 쏠리며 몸이 공중제비를 했다. 그리고 내려서는 양쪽 모두 바위가 있었다. 왼쪽 바위에는 왼다리가, 오른쪽 바위에는 오른쪽 가슴을 부딪쳤다. 오른 가슴에 타박증이 상당했고, 무엇보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5분을 가만 앉아 숨을 가다듬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곧바로 정상으로 다시 올라와 119를 불렀어야 했다. 법정 탐방로에서 넘어졌다고 거짓말이라도 했으면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스스로에 화도 나고 정상에 산객들도 있어 눈치가 보이기도 해서 계속 내려갔는데 아! 벼랑이었다.
이때야 비로소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았음을 깨달았다. 왼쪽 하산 길이 눈에 들어왔다. 수평으로 50m를 옮겨야 했는데 이곳 역시 벼랑 위였다. 나무 둥걸에 발을 올리고 철쭉 같은 연약한 식물의 가지라도 붙들고 사투를 벌인 끝에 비로소 길다운 길을 찾았다.
안심하긴 일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찔한 벼랑이 나왔는데 첫 번째, 저유명한 대야산 수직 암벽은 잘 통과했다. 상당히 긴 구간인데 침착하게 잘 대처한 편이었다. 두 번째는 20m쯤 되는 미끄러운 내리막이었다. 안전장구를 다 철거했는지 흔적만 남아 있었다. 다 내려왔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발을 내딛는 순간,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 아래가 깊게 쓸렸다. 세 번째 사고는 낙엽에 미끄러지면서 온몸을 굴렀다.
이렇게 만신창이 몸으로 촛대재를 거쳐 촛대봉(668m)에 이르렀다. 그리고 불란치재에 내려섰다. 불란치재 양쪽으로 산행금지 푯말이 세워져 있는데 버리미기재에서 오는 방향으로는 "귀하께서는 비법정 탐방로(버리미기재~대야산) 불법산행을 진행 중입니다. 이 탐방로는 백두대간 구간으로 삵, 담비 등 멸종위기 동물이 서식 보호 중이며 특히 암릉구간이 많아 안전을 위해 산행을 금지하오니 즉시 하산해주시기 바랍니다"고 당부하고 있었다. 반대 쪽에는 대야산~촛대봉~버리미기재~장성봉이 금지돼 있고 대야산 정상에는 로프 등 안전시설을 일제히 철거하였으므로(2020. 6.1) 현재 위치에서 되돌아가시기 바랍니다"고 엄히 경고하고 있었다.
부상도 심하고 암릉 구간에서 더 이상 헤맬 수도 없어서 하산하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오른편 블란치골로 내려가면 주차장이 나오는 것으로 안내돼 있었다. 블란치재는 양쪽에 대야산과 장성봉이 가로막아 한겨울 찬바람에도 포근하다고 해 불한령이라 불리다 블란치재로 불렸다고 한다. 3km쯤인 것 같았다. 꽤 널찍한 임도 비슷한 길을 한 시간쯤 터덜터덜 걸어 내려와 가은택시(054-571-5789) 불러 급히 전화로 예약한 가은 본가모텔에서 일찍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모텔 5만원, 택시비 1만 7700원.
가은택시 기사님은 세금 열심히 냈으면서 119 부르지 그랬느냐고 대놓고 타박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버리미기재로 태워줄 수 있겠느냐는 내 부탁을 듣고 언잖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내일 아침 일어나면 더 아플 것이라며 혹시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점촌 방면 마지막 버스를 타고 문경제일병원 응급실을 찾으라고 친절히 안내했다.
다음날 새벽 3시쯤부터 아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짐을 싸서 택시를 부를까 고민하다 나중에는 봉암사 구경만이라도 하자 싶었다. 그래서 사찰 홈페이지 찾았더니 산행은 결단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25년 전인가 봤던 봉암사 경내를 인파와 함께 보는 것은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
가은읍에서 아침 8시 첫 버스로 문경제일병원에 도착, X레이를 찍었다. 심재훈 주치의는 갈비뼈 7번과 8번, 9번이 부러져 출혈도 있고 무엇보다 폐가 쪼그라들어 서울행 버스 안에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갈비 쪽에 구멍을 내 공기와 피를 빼내면서 사설 구급차를 타고 서울 병원으로 가는 것이 가장 낫겠다고 권한다. 고민하다 아내와 상의해 조언에 따르기로 했다.
철저하지 못한 준비와 서두름이 사고로 연결됐다. 역시 단독 산행이 갖는 위험도 가중됐다. 원래 더위에 지칠까 싶어 6월부터 8월까지 대간 길을 쉴 작정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부상 때문에 앞당겨지게 됐다. 쉬면서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려 한다.
사설 구급차로 "삐뽀삐뽀" 하며 서울로 오는 길에 대야산에서 20년 전쯤 멈춰진 채석장 개발이 다시 추진된다는 헤럴드경제 기사를 봤다. 대야산으로 향하는 도중 발파음이나 기계 굉음을 들은 것 같은데 이것과 관련 있는지 모르겠다. 대야산 정상 부근에 안전장비를 철거하면서까지 등산을 금지해 백두대간을 보호하려는 국립공원이 채석장 개발을 허가해 주민들과 산행객, 동식물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방치하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산 중턱에 땜빵이?” 백두대간 나무 밀더니…뭘 하는 거야? [지구, 뭐래?]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