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775 - 인생에게
기저 질환자인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죽는다는 불안감이야 쉽게 떨쳐버릴 수 있겠어? 하지만 나의 가장 큰 고질병은 잘 놀고 싶은 욕망이 늘 체력보다, 이미 앓고 있는 물리적 병보다 더 강하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기타를 연습하고, 그래서 오늘도 시랍시고 끌적이고, 그래서 오늘도 습관적으로 책을 읽고, 그래서 오늘도 기다린다네. 혹시 누가 놀러 가자고 전화 오지 않을까. 물론, 전화 한 통 없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혹시 누가 놀러 가자고 할까 휴대 폰도 이름 그대로 늘 휴대하고 있다네. 왜 먼저 놀러 가자고 하진 않느냐고 묻는다면 별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야, 인생에게 집착했던 내가 수많은 인생 중의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것. 정말 다행이야. 중증의 암 투병에서 걸어 나왔고, 운이 좋아 좋은 의사를 만났고, 운이 좋아 의지할 사람도 있었지. 다행이야. 내가 나의 인생을 오독誤讀하고, 스스로 소외되었다는 것조차 묵묵히 견뎌준 인생. 비록 사랑할 시간은 적고, 비록 사소한 일이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었다는 것.
마추 삐추의 山頂 / 빠블로 네루다 / 민용태 번역(끝)
9
천체의 독수리, 안개가 자라는 포도원.
잃어버린 이성, 눈먼 반달 모양의 칼.
별 박힌 허리띠, 거룩한 빵.
폭포수 층계, 거대한 눈동자.
삼각의 내의, 돌의 꽃가루.
광석 뱀, 돌 장미.
묻혀진 배, 돌의 셈.
달의 말, 돌의 빛.
적도의 병대, 돌의 증기.
최종의 기하학, 돌 책.
섬광 사이에서 빚어진 북.
물에 잠긴 시간이 쌓여서 된 緣石.
손가락으로 부드러워진 성벽.
깃털이 난무하는 지붕.
거울더미, 폭풍의 가지.
담장이덩굴이 쓰러뜨린 왕자.
성난 발톱의 정부.
산기슭에 머물고 있는 폭풍.
파란 옥의 움직이지 않는 폭포.
잠든 이들의 어버이스러운 종소리.
정복 당한 눈(雪)의 목에 씌워진 칼.
자신의 동상 위에 누운 쇠.
꼭 닫힌 채 들어갈 수 없는 계절.
푸마의 손, 피투성이 바위.
눈의 논란에 갓 쓴 탑.
손가락과 뿌리로 추켜올린 밤.
안개의 창, 굳어진 비둘기.
밤의 식물, 우뢰 석상.
태초의 산맥, 바다의 지붕.
잃어버린 독수리의 건축.
하늘의 끈, 정상의 벌.
피 흘리는 위치, 만들어진 별.
광석 거품, 수정 달.
안데스의 애인, 성당 나무.
소금 가지, 검은 날개의 벚나무.
눈 덮인 치아, 차거운 우뢰.
할퀸 달, 위협하는 돌.
추위의 머리칼, 대기의 행동.
손의 화산, 어두운 폭포.
은색 파도, 시간의 행방.
10
돌위의 돌, 인간, 어디에 있었던가?
대기 속의 대기, 인간, 어디에 있었던가?
시간 속의 시간, 인간, 어디에 있었던가?
너도 역시 미완성 인간의 부서진 조각이었는가?
오늘의 거리로, 발자취로,
죽은 가을 낙엽 위로
영혼을 무덤까지 따라가며 짓이기던
빈 독수리의 한 파편이었는가?
불쌍한 손, 발, 불쌍한 생명 ----
축제날 만국기 위에
떨어지는 빗발처럼, 너에게
풀려 떨어지는 빛의 날들은
그 어두운 이파리 이파리를
빈 입 안에 넣어주었는가?
배고픔, 인간의 산호림,
배고픔, 은밀한 식물, 나뭇군들의 뿌리,
배고픔이여, 너는 너의 절벽의 선을 넘어
이 허물어져내린 높은 탑까지 올라왔던 것이냐?
나는 너에게 묻는다, 길이 소금이여,
내게 보여 다오, 숟가락을, 내게 젓가락 하나로,
돌의 꽃술들을 갉아먹게 해 다오, 건축이여,
내가 허공에 닿을 때까지 대기의 계단을 모두 올라가
내부를 후벼 파서 인간을 만지게 하라.
마추 삐추여, 너는
돌에 돌들을 올려 놓고, 바닥엔 누더기를 깔았는가?
석탄 위에 석탄을 붓고, 밑바닥에 눈물을 깔았는가?
황금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 떨리는 붉은 핏방울을 묻었는가?
네가 묻은 종을 내게 되돌려 다오!
온 빵을 파헤쳐 빈한했던 자의 그 꽝꽝한 빵을 끌어내 다오
그 노예의 옷을 보여 다오, 그리고 그의 창문을.
살았을 때 어떻게 잠들었는가를 이야기해 다오.
그의 잠은 어떠했는지, 축성공사에 지친
검은 구멍 같은, 반쯤 눈감은,
곤하게 코를 골던 그의 자는 모습을 이야기해 다오.
성벽, 성벽! 그의 잠 위에
돌로 쌓아올린 층층의 무게가 내려앉을 때
달 아래이련 듯 돌 밑에서 곯아떨어질 때
그는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좀 해 다오.
고대 아메리카여, 물에 빠져 죽은 연인이여
너의 손가락들도,
밀림을 벗어나 높은 신들의 허공을 향할 때,
광휘와 영광의 찬연한 깃발 아래
북소리와 창들의 우렁찬 우뢰소리 섞일 때,
너의 그 손가락들도,
추상의 장미와 추위의 선이
햇곡식의 피나는 가슴을
광휘의 옷감이 될 때까지, 그 딱딱한 빈 웅덩이까지
날라갔던 것이냐?
땅 밑에 묻힌 아메리카요, 너도, 너도 역시
그 맨 밑바닥에,
그 쓰라린 내장 속에,
독수리처럼 배고픔을 간직했던 것이냐?
11
혼미한 광휘 속으로
돌의 밤 속으로, 내 손을 집어넣게 하라
그리고, 천 년을 갇혀 있는 새,
잊혀진 자의 그 오랜 심장이
내 속에 고동치게 하라!
이 행복은 바다보다 넓어라
그러나 잊게 하라, 오늘 이 나의 크낙한 행복을.
인간은 바다보다, 그 섬들보다 넓기에,
깊은 심연 같은 그 속에 빠져, 그 맨 밑바닥으로부터
물에 잠긴 진리와 그 은밀한 샘물을
한아름 안고 나와야 한다.
잊게 하라, 크낙한 돌이여, 그 강력한 부피,
시간을 초월한 크기, 벌집으로 만든 돌들.
그리고 그 많은 병대로부터, 내 오늘은
고행에 찌든 옷과 가혹한 피의 능선 위로
손을 돌리게 하라.
붉은 날개의 커다란 박쥐 같은 성난 콘도르 독수리가
날아가며 나의 관자놀이를 후려칠 때,
그 살육의 깃털이 폭풍처럼
경사진 돌 계단의 어두운 먼지를 쓸어갈 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이미 그 날쌘 짐승이 아니다
내가 보는 것은 눈먼 발갈퀴의 역사가 아니다
내가 보는 것은 그 옛 사랑, 옛 시종이거나
들판에서 감든 이, 내가 보는 것은 하나의 몸뚱아리,
천의 몸뚱아리, 한 사람, 천의 여자,
석상의 무거운 돌과 함께
비와 밤으로 까맣게 된, 검은 운명 아래 부대끼는:
돌 쪼는 기사 환, 위라꼬차의 아들이여,
추위를 먹고 살던 환, 파란 별의 아들이여,
맨발의 청년 환, 파란 옥의 손자여,
올라와 나와 함께 태어나자, 형제여.
12
올라와 나와 함께 태어나자, 형제여.
내게 손을 다오, 그 깊은
너의 고통이 뿌려진 그곳으로부터
바위 밑바닥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땅 밑의 시간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굳어진 너의 목소리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구멍 뚫린 너의 눈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땅 밑으로부터 날 봐 다오,
농부여, 방직공이여, 말없는 목동이여:
사나운 고슴도치를 길들이던 친구여:
일어나는 발판을 만드는 미장이여:
안데스의 눈물을 길러오는 물장수여:
손가락이 다 뭉개진 보석공이여:
씨앗 속에 떨고 있는 농부여:
네가 벼른 점토 속에 녹아버린 도자기공이여:
이 새로운 삶의 잔에
땅에 묻힌 너희 오랜 고통을 가져오라.
너희 피, 너희 이랑을 보여 달라,
말해 다오, 여기 내 벌 받고 죽었노라고
보석이 빛이 안 나서, 아니면 땅이
제때에 돌이나 곡식을 주지 않아서 그랬노라고,
그대들이 떨어져 죽은 돌을 가리켜 다오.
그리고 그대들을 처형시킨 그 통나무를
그 오랜 부싯돌을 켜 다오,
그 오랜 램프를, 몇 세기 두고 상처에 붙어 있는
그 채찍을 보여 다오,
그리고 피묻은 광휘로 빛나는 그 도끼들을
나는 그대들의 죽은 입을 통해 말하려 왔다.
흙 사이로 모두들
흐트러진 그 조용한 입술들을 모아 다오
그리고 밑바닥으로부터 내게 말을 해 다오 이 길고 긴 밤이 지새도록,
내가 너희 속에 돛을 내린 것처럼,
내게 모든 걸 이야기해 다오, 사슬 사슬마다
줄거리 줄거리마다, 그리고 차근차근,
숨겨 놓은 칼을 갈아,
내 가슴과 내 손에 쥐어다오
노란 광휘의 강물 같은
묻혀 있던 호랑이의 강물 같은
그리고 날 울게 해다오, 시간이 가도, 날이 가도, 해가 가도.
그 눈먼 세월들을, 별의 세기들을 울게 해 다오.
내게 침묵을 다오, 물을 다오, 희망을 다오.
내게 투쟁을 다오, 화산을 다오.
너희 몸들에 내 몸을 자석처럼 붙여 다오.
나의 핏줄과 나의 입으로 와 다오.
나의 말과 나의 피로 말 좀 해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