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감성

[해천 송해영]

1213 <자연에서 감성>

자연인으로 자연에서 생활이 13년째가 시작되고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햇수를 셈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변해가는 걸 느끼면서 셈하여 본다. 그간 강산이 변한다는 듯이 생활 터전이 많이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개념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예도 있어서 오래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변한 것인가. 아니면 나이를 먹으면 다 그렇게 될까. 과연 자연에서 얼마나 되었다고 이럴까 하면서 자연생활을 셈하여 본다.

자연에서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묘목으로 심었던 벚나무가 자라서 고목이 되어 그간 봄날이면 꽃 대궐이라는 감성으로 지내곤 했는데 이제는 너무 높게 자라 절반으로 잘라야 할 정도가 되어 꽃 대궐이 더 웅장하고 좋기는 해도 현실적으로는 걱정스러움이 없지 않다. 너무 큰 나무를 절반으로 자른다는 게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어서 하는 생각이다. 위험하기도 한 한편 사실 톱질한다는 게 여간 마음이 안 좋아 보고만 지내고 있다.

이른 봄날이면 꽃 대궐로 오월이 되면 연둣빛 세상으로 숲을 이루면서 그 배경으로 화려한 영산홍에 이어 작약꽃의 향연은 여기 초당원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라고 하지만 여름날로 접어들면 자연의 선물이라고 하는 붉은 열매들의 향연에 일찍부터 풍성하고 달콤한 자연에 빠지게 된다. 달콤한 건 꼭 먹어봐야 하는 게 아니고 보고 있어도 눈을 감아도 그야말로 별세계를 느낀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이 자연에서 음악이 종일 흘러나오는 것은 눈을 감아도 달콤하다는 말이다. 사실 노래가 아니고 개그 콩트가 잠깐 나올 때면 웃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여름날은 울창한 숲에서 쉬어가는 날들이 어느 피서지를 부러워할 것인가. 사실 지하수를 올해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너무 찬 것을 마시는 건 좋지 않다는 건강정보에 지하수를 마시게 되었는데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그렇다고 냉장고만큼 차지 않아 좋다.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 마신다는 기분 자체도 달라서 지하수를 마시게 되었는데 겨울은 겨울대로 지하수는 차지 않고 미적지근하게 마시기 부담이 없어 참 좋다는 걸 지하수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왜 이제야 마시나 결국 십 년이 지나서 자연에 동화되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그간에는 생수를 사서 먹었는데 그것은 아마 우리의 생활문화에서 오는 버릇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왠지 시원찮은 기분이어서 말이다.

이제는 자연에 동화되듯이 지하수를 마시고 종일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또 하나 특별한 감성을 느끼게 되는 게 있는데 사실 노래가 없으면 여간 흘러가는 시간이 좀 딱딱한 기분이 들어서 일부러 노래를 틀려 일하다가도 방에 가서 틀고 나오기도 한다. 확실히 일하면서 음악이 있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겠지만 저절로 흥이 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일손이 지루하거나 힘들게 하는 걸 반감시켜 주니 좋다.

여름날 개인 피서지를 즐기는 곳으로 수풀 속 원두막에서 낮잠을 즐기는 건 그렇다고 해도 자연의 선물을 한 바구니 옆에 놓고 먹는 기분은 인간은 자연이야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걸 어쩌겠는가. 그렇게 여름날을 보내고 풍성한 가을맞이 하지만 이미 가을의 절기가 들어가기 전부터 초록빛 바다에 붉은 배를 띄우는 고추 수확은 풍성한 가을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해 농사의 풍작 신호처럼 붉은 배는 커진다.

가을날에는 농작물 거두는 일거리가 봄날의 밭갈이와는 다른 기분인 것은 봄날의 밭갈이는 줄기차게 밭 전체를 대작의 그림으로 만든다는 생각에 일손을 놀리지만, 가을에는 풍작과 흉작의 판가름에 씁쓸한 기분이 교차하는 건 불가피한 사정이다. 올해는 고추 농사가 그런대로 풍작의 반열로 평가할 수 있어서 가을 농사 수확의 시작은 좋은 셈이었다. 몇 차례를 붉은 배를 띄우면서 태양초를 잘 만들었으니 말이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가을 수확으로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김장 채소의 수확이다. 가능하면 추워지기 전에 한다고 김장을 일찍 입동 들어서자마자 하는데 올해는 모종을 세 번 하면서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지만 자연 그대로 재배가 된 것인데 김장하기에는 딱 좋은 정도로 수확이 되었다. 어쩌면 겨울의 월동 준비로는 제일 큰 대소가의 큰일이었으니 그것 챙겨주고 겨울을 맞으며 또 하나의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다.

작년 겨울에 시작했지만, 붓글씨 연습을 그때하고 올겨울 하려니 지난날의 연습은 도루묵이 되어 다시금 도전하는 셈이다. 겨울은 눈이 쌓이면 겨울왕국으로 혼자서 누리기에 가득한 마음이지만 여름날이나 겨울이나 나만의 왕국을 누리는 기분이 좋다고 자주 하는 말인데 노래가 있어 더욱 좋다는 말이지만 노래에 꽂혀서 여름날에 말했지만, 자연의 선물을 먹고 보고 눈을 감아도 한 맺힌 음악을 들으며 자연의 감성에 휩싸인다.

그런데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노래가 흘러나오면 차례대로 나오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무작위로 곡이 흘러나오는데 재미있는 건 노래의 모음을 지인별로 모아서 대체로 특별한 차이는 없더라도 조금은 노래의 전체적인 흐름이 다른 때가 있다. 그러나저러나 그 노래 속에 가사를 따라가 보면 울컥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지난날에는 그런 노래에 그러려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다. 할 정도지만 지금은 듣는 감정이 다르다.

멜로디와 함께 금방 지나가는 가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에 와 박히는 걸 느끼는 건 이상할 정도인데 문제는 슬프고 한 맺힌 그런 대목에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는 먹먹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러나 할 정도로 생각이 드는데 내가 무슨 이산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애 고아로 자란 형편도 아닌 어지간히 사는 집안에 5남매의 막내로 우리 세대로서는 잘살아온 처지인데도 왜 그런가 말이다.

지금 자연에서 혼자서 생활하는 게 이면에 외롭고 고독하고 혼자라는 이유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것과는 다른 환경이고 평소에 외롭고 고독하고 적적할 틈도 없으면서 왜 이런 감성에 가슴이 미어지는가 말이다. 어쩌면 글을 쓰고 작가적인 감성에 젖는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면 도대체 왜 이런가. 나이가 들면 다 그런가. 무작위로 나오는 노래에 어쩌다가 꽂히면 이런 감성으로 목이 멘다.

도대체 무슨 노래길래 그러냐고 하겠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이야 옛노래로 치부하겠지만 아직 칠순의 내 나이에는 충분히 노래의 시대를 연상할 수가 있어서 가슴이 멘다. 사실 노래 제목도 잘 모르지만 ‘금순아 어디를 가고 — 나는 국제시장 장사치란다.’ 하는 대목에서 그리워하는 마음도 그렇지만 현실의 극명한 표현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노래에 그렇게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그것들이 너무 좋기도 하고 그대로의 감성을 받아들이니 말이다.

하나의 노래를 예를 들어서 그렇지 또 다른 노래도 그렇다. 어쩌면 우리 겨레라고 할지 우리 국민의 정서인지 모르지만 한 맺힌 이별의 장면을 그린 노래에는 여간 목이 멘다. 이 노래는 무교동 술집에서 앉아서 흐늘거리던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슬픈 노래도 아닌데 왜 지금은 목이 메는 감정을 잡는가 발이다. ‘꽃피는 동백섬에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지금에 자연에서 듣는 기분이 그 노래 속 주인공처럼 느끼니 왜 이런가 말이다.

치열한 인생 여정에서 이런 노랫말 따라 주인공이 되어볼 사이가 없어서였을까. 어떻게 보면 자연에서 한가하게 빠져있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한가한 처지는 아니다. 바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손놀림과 머리를 굴린다고 해도 흘러서 다가오는 노랫말 따라 흥얼대지는 않아도 노래 속의 주인공이 되듯이 기분이 좌우되는 생활이 너무 좋아서다. 그런데 밝고 좋은 노래에는 별 반응이 없는데 왜 한 맺히듯 한 노래에 반응이 격한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자연에서 감성이 치열한 세상 속의 감성과는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굳이 나쁠 건 없지만 혹시나 인상에 한 맺힌 모습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될 때도 있다. 혼자서 있다고 해도 마누라가 들쭉날쭉은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가고 막 돌이 지난 외손주의 혼자서 샤워하는 그것이나 장난감 상자에 챙겨 넣고 들고 다니는 의외의 모습의 동영상을 보는 즐거움에 그다지 한 맺힌 생활도 아니면서 자연의 감성이라고 할 수밖에…….

자연에서 감성 수필을 이미지와 함께 요약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