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홍이표 목사를 포함한 네 사람이 동아시아 삼국의 기독교발전과정에 대해 쓴 것이다. 첫 번째는 근대성과 한국개신교, 두 번째는 기독교와 한국 근대의 구상, 세 번째는 중국의 근대화와 기독교, 네 번째는 일본 근대사회의 형성과 기독교다. 네 번째는 페친인 홍이표 목사가 썼다. 내가 중국 기독교에는 관심이 없어 중국에 대한 것은 넘어갔다. 일본기독교에 대해선 예전부터 조금 보고 들은 것이 있고 일본이란 특수성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이 책은 각각이 다른 주제이므로 관통하는 이야기 거리는 없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것 중 몇 가지 관심 가는 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란 말이 어떤 과정으로 정착됐는가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나라에서 한자로는 ‘천주天主’, ‘천부天父’로도 불리고 있다. 요샌 잘 쓰지 않지만 예전엔 가톨릭을 ‘천주교’로 더 많이 불렀다. 그러나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순수한 한글로 유일신인 여호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서 나온 것이다.
첫 번째 장을 쓴 옥성득은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이라고 첫 번째로 표기한 사람은 만주에서 한글 성경을 번역한 로스였다. 만주에서 도교의 상제(옥황상제)에서 의해 최고신과 유일신의 흔적을 발견하고 1882년 발간한 누가‧요한복음서에서 ‘하느님’을 사용했다. 이후 1883년부터는 하나님으로 표기를 바꿨는데 이것은 도교의 상제보다는 한국 사람들이 믿고 기도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고려해 하늘+님의 성격을 가진 ‘하나님’으로 바꿨다.
두 번째 단계는 서울선교사들이 ‘神’과 ‘天主’를 배격하고 ‘하ᄂᆞ님’을 사용했다고 한다. 신이 귀신의 뜻이 있어 포기하고 로스의 하나님을 수용하되 서울식 표기인 ‘하ᄂᆞ님'을 체택한 것이다. 1895년에서 1904년까지 ’천주냐 하ᄂᆞ님이냐‘를 가지고 논쟁을 했는데 게일이 하늘(天)과 한(大)과 한(一)을 찾아내고 헐버트가 단군신화에서 환인과 환웅, 웅녀를 삼위일체설과 유사함을 제기하자 ’하ᄂᆞ님‘으로 정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하ᄂᆞ님이 하나님으로 정착하게 되는 단계다. 하ᄂᆞ님으로 정착하는 단계에서 개정철자법이 논의됐는데 게일, 주시경, 윤치호 등이 ‘아래ㆍ’를 없앤 맞춤법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으로 정착된 것이다. 네 번째는 대종교가 하나님을 기독교에서 도용했다는 소송이 있었다. 이것에 대해 옥성득은 대종교가 주장하는 것은 하느님 즉 하늘님이고 하나님은 기독교가 새롭게 만든 개념으로 오히려 대종교가 기독교 개념을 빌려간 것이라 했다.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의 엄밀성과 이해의 명료성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유일신 개념인 ‘GOD/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번역한 것은 엄밀성과 명료성을 다 완벽하게 충족한 최고의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단어를 이끌어낸 로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여담을 더한다면 내가 어렸을 때 읽은 성경책에는 하나님이 ‘ᄒᆞ나님’으로 표기 했다. 그 성경책이 A4용지보다 컸으니 노안이 온 노인들이 보던 성경이다. 기억으로 해방 이후 출간된 성경으로 아는데 그때까지도 ‘아래 ㆍ’가 사용되고 있었다.
다음으로 소개할 내용은 타 문화의 몰이해가 가져오는 폐해에 대한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적 관점에서 동양을 보는 방식을 ‘오리엔탈리즘’이란 말로 규정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 자부심에서 나오는 동양 비하의 관점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우리도 조금 먹고 살만해지자 동남아나 아프리카를 한국판 오리엔탈리즘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흑인을 ‘토인土人’이고 많이 불렀다. 홍이표목사 글에서 토인은 서양에서 근대화되지 못한 사람들을 부를 때 부르던 말을 일본이 ‘토인’으로 번역해 부르던 것이라 한다. 즉 토인은 비문명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그러나 문화란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가 보지 상대방과 생활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문화의 우열을 따진다는 것이 바보같은 짓이라 생각한다. 우열을 따지는 것은 그들의 역사와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조선에서 선교활동한 선교사가 40년 후 자기의 오류를 고백한 말을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전제한다.
나는 한국에 올 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교도이며, 예배할 때 나무와 돌에 절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고대 문명, 높은 수준의 문화, 다양한 예술 능력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다. 그들의 세련됨, 타고난 위엄, 자존심, 겸손을 배우지 못했다. 사실 내가 무식한 자였다. ‧‧‧‧‧ 한국인은 인생의 아주 많은 분야에서 매우 앞서 있다. 그는 우리의 존경과 감사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애니 엘리어스/Personal Recollections of Early Days in Korea/1934)
지금 우리도 다른 나라에 대해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늘 돌아봐야 한다.
‘기독교와 한국 근대의 구상’에서는 한국기독교에 영향을 미친 세 갈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갈레는 미국을 통해 들어온 서북 기독교로 자아 개조 민족주의를 싹틔웠고 이 갈레가 해방 후 반공주의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미국에 경도되는 중심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갈레는 캐나다와 독일에 영향을 받은 중도사민주의노선이다. 이들은 한신그룹을 형성했고, 기독교장로회(기장)으로 분리됐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김재준 목사가 한국신학대학의 전신인 조선신학대학을 설립하여 한신그룹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설립해 활동했다.
세 번째 갈레는 일본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그룹으로 무교회주의 반국가주의노선을 주장하는 김교신, 함석헌, 양인성, 류석동, 정상훈, 송두용 등으로 ‘성서그룹’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는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였다. 우치무라는 반군국주의, 반자본주의적인 사람으로 미국교회를 통한 자본주의의 침투를 반대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 네 번째 부분은 페친이 쓴 것으로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 역할에 대한 것이다. 일본기독교는 참 특이하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천주교가 들어온 나라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여러 다이묘들 중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처럼 천주교신자가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철저하게 천주교를 배제해서 천주교도 일본에 뿌리박지 못했다. 이후 들어온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기독교 신자가 1%도 안 된다. 이 책에서는 0.5~6%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전체로 70만 명 정도다.
실제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기독교가 전파된 나라에서 이런 정도로 신자가 적은 나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저자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천황을 신으로 추앙하고 국가주의로 치닫게 한 신도神道와의 경쟁에서 밀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페리 제독의 흑선이 일본을 위협한 후 일본은 우리나라 동도서기東道西器,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과 같은 뜻인 화혼양재和魂洋才를 내세우며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로의 편입을 목표로 했다.
이런 과정에서 화혼和魂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재래종교를 발전시켰다고 했다. 이 기초를 만든 사람이 모토오리와 그의 제자인 히라타였다. 그 둘은 복고신도의 체계에 황국우월론을 더해 막부 말 존왕양이尊王攘夷 이론적 배경을 만들었다. 그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은 기독교의 유일신에 대항해 다신교였던 일본에서 천황을 살아있는 유일신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그 결과 기독교가 설자리가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결과론으로만 본다면 일본은 화혼和魂과 양재洋才를 구분하는데 성공한 나라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편협함으로 귀결됐다. 자기들만이 선민이라는 내지인內地人의 개념을 만들어 냈고,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탈아입구에 성공한 나라라는 자부심이 더해져 타자와 구분하게 하여 융화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나는 이런 것보다는 왜 일본에서 기독교가 성공하지 못했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이것에 대해 홍이표 목사의 분석에 주목한다. 저자는 일본 초기 기독교인이 대부분 학식이 풍부한 사무라이 계급출신이었다는 것이 한계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번역한 초기 성경이 지나치게 난해해 학식이 일정수준에 오르지 못하면 기독교에 진입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조선은 식자층보다는 중인이나 여성들에게 먼저 파고들었고, 성경번역도 한자를 배제한 순 한글로 번역한 것이 기독교를 쉽게 접하게 한 것이라 했다. 그것이 기독교의 대중화를 이끌어 냈다고 한다. 이미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이란 단어도 우리가 익숙한 개념에서 추출한 것이다. 이런 노력이 기독교를 쉽게 접하게 한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본다면 초기 성경번역자인 로스가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한 것이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독교 성공을 이끌어 낸 것이다.
첫댓글 흥미로운 주제네요.
근데 요약이 너무 훌륭해서 다 읽은 듯합니다^^
그래도 읽어 보겠습니다.
검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