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무늬애저녁나방
사전의 숲에서 ‘애저녁’을 찾다가
그 숲 그늘에 소복이 앉아있는
나방 떼를 발견했다
진달래가는나방 곧은띠비단명나방 떠들썩짤름나방
네눈은빛애기자나방 날개물결가지나방 머루박각시나방
흰무늬애저녁나방 노랑목저녁나방 은무늬밤나방
제 이름일랑 무심히
아무도 다녀간 흔적 없는 곳,
백 년인들 나는 나방 이름을 다 외울 수 없겠지만
나방은 천 년의 잠에 들어 미동이 없다
누가 잃어버린 지도거나 암호거나
날개마다 다 다른 미로들
추상화 한 점씩이 거기에 있다
나방은 나비목 나방아목이라서
나방은 나비가 아니므로 나비가 아니다
번데기가 변하여 아蛾가 되는데
날개를 위로 접으면 호접胡蝶이고
날개를 드리우면 아蛾라고 한다
아蛾는 비로드 같고 부드러워 보이고
어떤 큰 것은 무섭다
죽은 듯이 엎드린 너는 시절을 벼리는 맹인 검객,
저 잠을 깨우다가는
온통 날개 가루를 뒤집어쓰고 내 눈이 멀겠다
종이의 숲을 덮고 조용히 돌아 나오니
사전도 두 날개로 드리워져 있다
너는 두껍고무거운언어의집사각나방
나는 적막에 앉아 자주
두무언집사각나방 날개를 뒤적이는
독거반백무늬애저녁나방,
먼 어둠 속으로
돌아올 길 없이 날아가는
―계간 《문예바다》 202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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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윤수 /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파온』 『그리고, 라는 저녁 무렵』. 현재 대구 경화여고 문예창작 특별반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