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다. 새벽에 일찍 눈을 뜨니 아직 어둡다. 투표 통지표와 신분증을 챙겨 동수원초등학교 제5투표소로 향했다.
5시 50분, 투표소 앞에 나 홀로 줄을 섰다. 아무래도 투표율이 떨어질 모양이다. 10분을 기다려 제일 먼저 투표를 마쳤다. 이른 아침에 투표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 든 어른들이다. 쉰 세대의 어른들이 나라의 장래를 더 걱정하는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와 복분자 한 병과 인절미 도시락을 배낭에 넣었다. 오늘은 충청북도 제천시 금수산 자락에 딸린 까치성산(작성산)을 찾아가는 날이다.
7시 30분경, 약속 장소로 나갔다. 오늘 산행에는 어형, 이형, 심형, 조형이 참가하였다. 박달재 휴게소에 내려 곰탕과 다슬기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10시 30분경, 일행은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에 도착하였다. 무암골 입구에 위치한 봉명암(鳳鳴巖)을 지나 드라마 세트장 앞에 주차하였다. 느티나무를 지나니 작성산의 명물인 배바위(船岩)가 눈에 들어온다. 아침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배바위는 커다란 암벽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른 등산가 허영호를 비롯한 제천지역의 산꾼들이 즐겨 찾는 암벽 훈련장이다.
11시경, 무암골을 걸어올라 무암사(霧巖寺)에 이르렀다. 무암사는 신라 때의 고승 의상대사가 터를 잡아 세운 사찰이다. 최초에는 무림사(霧林寺) 또는 우암사(牛巖寺)로 불렸으나 어느 때인가 무암사로 바뀌었다.
사찰의 이름이 무암사인 까닭은 동산의 바위에 유래한다. 동산의 바위 암봉은 기이하게도 구름 안개가 자욱하면 뚜렷이 나타난다. 구름 안개가 암봉의 뒤를 돌아 빠져 나가면서 바위는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무암사를 둘러보고 소의 부도를 찾았다. 무암사 뒤편에는 승려의 부도 옆에 소의 부도가 있어 이채롭다. 이곳에 소의 부도가 세워진 것은 사찰 건립에 힘쓴 소의 설화에서 시작된다.
의상대사가 절을 세울 터를 찾아 무암골로 들어섰다. 계곡에 길을 내고 절을 세울 재목을 베어 모았다. 그 때 홀연히 소 한 마리가 의상대사 앞에 나타났다. 대사가 이를 보고 한 가지 생각이 있어 소의 등에 사찰 지을 재목을 실어 주었다. 그러자 재목을 짊어진 소는 계곡을 따라 올라 지금의 무암사터에 부려 놓았다. 소는 무암사를 다 짓도록 부지런히 재목을 실어 날랐다. 대들보가 올라가고 사찰이 완성되자 재목을 실어 나르기에 지친 소는 쓰러져 죽었다. 의상대사가 이를 안타까이 여겨 화장하였더니 소의 몸에서 사리가 나왔다. 대사가 이를 소중하게 여겨 사찰 부근에 소의 부도를 세웠다.
화강암을 대충 다듬어 세운 소의 부도는 150cm 크기의 원통형이다. 부도에는 어떤 글자나 아무런 장식도 없다. 그런데 소의 부도 뒤편 3부 능선에 쇠뿔바위가 있어 신기하다. 쇠뿔바위의 모습은 영락없는 소의 형상이다. 쇠뿔바위에는 밧줄도 매어 있어 그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불가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은 소와 사자와 코끼리다. 소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는 가축으로 이른 바 5덕을 가진 동물이다. 소는 살아서 우유를 주고 거름을 주고 일손을 덜어 주고 죽어서 고기를 주고 가죽을 준다. 성인의 풍모인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전형이다. 그래서 사찰의 벽화에는 종종 흰 소가 그려진다.
사자는 불경과 불상과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의 상징이다. 마귀나 사악한 잡신을 물리치는 벽사의 대상이다. 그런가하면 코끼리는 절대적인 힘의 상징이다. 불경이나 불상을 실어 나르던 가축이어서 농가와 불가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짐승이다.
12시경, 일행은 작성산의 주능선에 올라섰다. 능선에 올라서니 소나무 몇 그루가 일행을 맞이한다. 삭풍에 오히려 청청한 아름드리 소나무의 자태가 아름답다. 능선에 놓인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청풍호가 하얗게 빛난다. 청풍호반의 한 가운데에 봉황처럼 날아오르는 비봉산도 보인다.
능선에는 산돼지가 훑고 지나간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멧돼지는 떡갈나무 잎사귀가 떨어져 내린 눈밭을 뒤집어 놓았다. 아마 낙엽 밑에 구르는 도토리를 찾아 먹은 듯하다. 눈 위에 찍힌 족발의 크기로 보아 놈은 200kg은 실히 나갈 것이다.
해발 771m의 작은 봉우리에 올랐다. 작성산을 알리는 표지석이 놓여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표지석은 분명 정상을 알리는 표석이 아니다. 제천시가 작성산을 시의 영역에 두고 싶어 단양군의 군계에 세운 표지로 보인다.
12시 30분경, 일행은 까치성산의 정상을 알리는 또 다른 표석을 만났다. 산 아래의 단양군민이 세운 것이 분명한 표석이다. 표석에는 까치산(鵲城山), 해발 848m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에는 해발 830m 작성산(까치성산)으로 표기되어 있어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다.
정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먼저 붉은 빛깔의 복분자주를 일행과 나누어 마셨다. 이어 김밥 5줄과 구운 달걀 다섯 개를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1시경, 새목재를 지났다. 까치성산의 목 부위에 해당하는 고개다. 새목재에 부는 겨울바람이 제법 차갑다. 청풍호에서 무암골로 불어드는 골바람인 까닭이다. 이곳에 풍력발전기 몇 대 세우면 산 아래 마을에 필요한 전력은 충분할 것이다.
2시경, 눈이 내려 쌓인 비탈길을 올라 동산(東山) 정상에 이르렀다. 해발 896m의 동산 표지석이 하얀 눈밭에 까만 오석으로 빛난다. 정상을 지나 계속 직진하면 능선은 갑오고개와 경계하는 금수산에 닿는다.
마을 사람들은 한자 표기의 작성산과 동산을 한글 이름인 까치성산과 성산으로 부른다. 까치성산에는 까치둥지처럼 둥근 작성산성이 있고 동산에는 견제산성과 작은 동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작성산성은 임진왜란이나 구한말 일제 침략기에 세워진 산성으로 보인다. 작성산성에 전하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옛날 우리나라의 임금이 이 산에 들어와 궁궐을 짓고 살았다. 어느 날 아침, 임금이 동쪽 바위를 가리키며 신하들에게 명했다. 저 봉우리에 까치가 앉을 것이니 무조건 활을 쏘아 죽이라고 하였다. 어느 날 신하들이 바위 봉우리에 앉은 까치를 쏘아 죽였다. 그 까치가 바로 왜왕이었다.」
이 설화는 구한말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제천 의병의 이야기로 해석된다. AD 1895년 고종 23년,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가 왜인에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벌어졌다. 이에 스승 안승우가 의병을 일으키자 제자 홍사구는 스승을 보좌하여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왜군과 접전을 벌이던 의병 홍사구는 중과부족으로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다. 이 일로 미루어 보면 작성산성 설화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임금은 고종을 지칭하고, 신하는 조선 의병을 가리키며, 동쪽 바위에 앉은 까치는 왜왕을 지칭한다. 동(東)자를 파자하면 일본(日本)이다.
2시 30분경, 일행은 해발 825m봉에 이르렀다. 봉우리에 오르자 하얗게 빛나는 금수산 영봉과 코끝처럼 솟은 망덕봉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으로 내려 달리는 소나무 가득한 신선봉, 용아릉 능선이 아름답다.
3시 30분경, 남근석이 송이버섯처럼 솟은 능선으로 내려섰다. 눈이 내려 쌓인 가파른 바위 능선이 미끄럽다. 자칫 미끄러지면 크게 부상을 당할 것이기에 능선에 걸린 밧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남근석 바위에 이르렀다. 4m나 되는 남근석의 위용이 장관이다. 남근석과 기념 촬영도 하고 남근석을 안고 희희낙락하는 일행의 표정이 사뭇 즐겁다. 남근석의 주인은 아마도 장군바위 능선에 놓인 장군의 것이리라. 잠시 투구를 벗어놓고 쉬는 장군의 물건이리라. 맞은 편 능선에 여근석도 있다하니 음양이 조화롭다.
남근석에 서서보니 작성산 배바위가 한 폭의 그림으로 눈에 들어온다. 푸른 청풍호반에 떠가는 배 바위, 장군을 태우고 온 낙타 바위, 투구를 벗고 쉬는 장군 바위, 남근석과 여근석, 애기바위가 하나의 이야기로 들어선다.
오후 4시경, 무암골로 내려서는데 어디선가 까치(鵲)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는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잘못 들었는가? 의심하였으나 분명하다. 이곳은 둥근 석성이 있는 까치성산이요, 대들보와 같은 용마루가 있는 힘찬 동산이다.
문득 새 대통령에 당선될 인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번 선거에는 장군의 결단력을 가진 분이 당선하리라. 물의 이미지를 가진 지혜로운 분이 당선하리라. 토목과 축성을 상징하는 소와 같은 인물이 당선되리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이미지를 가진 선장이 당선되리라. 큰 인물은 산천의 정기와 시대를 타고 난다하더니 정말 그러한가보다. 작성산과 동산과 청풍호가 만드는 이미지가 그러하다. 머지않아 이곳 제천시 청풍면은 한반도 대운하의 중심지가 되리라.
무암재를 돌아 나와 봉명암 어귀에 위치한 금수산 송어 횟집으로 들어섰다. 살빛이 붉은 송어회 2kg을 주문하였다. 심형이 가져온 금빛 Imperial을 새 대통령 당선 축하주로 미리 나누어 마셨다.
첫댓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