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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로 전해지는 월봉산 전설
김은의
우리나라 남쪽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에는 ‘월봉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어. 창평 사람들은 월봉산 골짜기에 ‘상월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공부에 힘썼는데, 이 골짜기에는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와.
전설에 따르면 ‘월봉산에서 나물 한 접시에 냉수 한 그릇을 먹고 어린 아이를 둥게둥게 어르면 참정치를 한다.’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상월정에서 공부하며 이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썼어. 하지만 아무리 공부해도 수수께끼를 풀고 참정치를 실현하는 정치가가 없었대. 이 전설은 이야기로만 전해질뿐 어느 책에도 나와 있지 않으니까, 책만 읽어서는 그 깊은 뜻을 알 수 없었던 거야.
진국은 어렸을 때부터 월봉산 전설을 듣고 자랐어. 할아버지가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무진장 애썼지만, 결국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거든.
“반드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수수께끼를 풀고 어진 정치를 펼치거라!”
할아버지는 진국의 손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했어. 진국은 주먹을 불끈 쥐고 공부를 시작했지. 형편이 어려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하루도 쉬지 않았어.
그러기를 10년, 결국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전라 감사가 된 거야. 감사란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벼슬이지.
진국은 감사로 나아가기 전에,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월봉산에 올랐어. 월봉산은 큰 산은 아니지만 수풀이 제법 우거졌어. 참나무는 하늘 높이 가지를 뻗었고, 소나무는 한 아름도 더 되어 보였지. 곳곳에 약초들과 버섯, 산나물들이 있었어.
진국은 수수께끼에 나오는 산나물 한 접시를 생각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봤어. 그러다가 취나물을 발견한 거야. 취나물은 산나물 가운데 으뜸으로 깨끗하고 습기가 조금 있는 산에서 자라. 진국이 어렸을 때 어머니는 이 취나물을 뜯어 반찬도 하고 때로는 장에 내다 팔아 생활에 보태기도 했지.
진국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취나물 잎을 뜯어 입에 넣었어. 그런데 밍밍하기만 할뿐 아무 맛도 안 나는 거야. 진국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 번 취나물 잎을 뜯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어. 역시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어.
“이상하다. 왜 아무 맛도 안 날까?”
진국이 알고 있는 취나물은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하고 개운한 맛이 있었어. 참기름이라도 한 방울 들어간 때에는 고소하기까지 했지. 그런데 방금 먹어본 취나물은 그런 맛이 아니었어. 그저 싱싱한 풀을 뜯어 먹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풀과 나물의 차이는 뭘까? 취나물의 진짜 맛은 어떻게 해서 나는 거지?’
진국은 참나무 아래 앉아 쉬면서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 ‘취나물, 취나물······.’ 마음속으로 수백 번 읊조려 보기도 했고. 하지만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어.
‘그렇다면 직접 만들어 먹어보는 수밖에.’
진국은 취나물을 뜯어가지고 월봉산을 내려왔어. 월봉산 아래 용수리 마을에는 진국이 아짐이라 부르며 따르던 어머니 친구가 살았어. 진국은 그 아짐 집을 찾아갔지. 아짐은 진국의 손을 잡고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어.
“감사라니, 참말로 장하구만.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으까잉.”
“그러게 말입니다······.”
진국은 어머니 생각에 잠시 숙연해졌지만 곧 뜯어온 취나물을 꺼내놓고 부탁했어.
“아짐, 취나물 좀 만들어주시겠어요?”
“만들어주고말고. 공부도 잘하드만 취나물도 깨끗하고 부드러운 걸로만 잘도 뜯었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당께.”
아짐은 칭찬을 늘어놓으며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뚝딱 취나물을 무쳐가지고 나왔어. 진국은 떨리는 마음으로 취나물을 맛보았지. 취나물은 어머니가 해주던 딱 그 맛이었어.
“아짐, 참말로 맛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맛을 내셨습니까?”
아짐이 부끄럽다는 듯 낯을 붉히며 대답했어.
“워매, 맛있당께 좋네. 암 것도 없어서 그냥 집에 있는 양념만 넣고 조물조물 무쳤는디.”
“집에 있는 양념이라고요?”
“잉, 나물에는 양념이 들어가야 맛이 나제. 아무리 싱싱하고 깨끗한 나물이라 해도 나물만으로는 아무 맛도 없어.”
“맞아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거지요.”
진국이 맞장구를 치자 아짐이 말했어.
“나물은 양념 맛이여. 소금, 깨소금, 참기름, 마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라도 빠지면 요 맛이 안 나. 양념이 취나물을 살려준다고나 할까? 맛도 색깔도 향기도 완전히 다른 양념들이 모여 취나물을 살려분당께.”
“아짐, 바로 그거예요! 고맙습니다.”
진국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아짐이 깜짝 놀라 물었어.
“뭔 말이당가?”
“나물을 정치라고 보면 수수께끼가 풀려요.”
진국은 눈을 감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어.
“취나물이 감사인 저라면 양념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각각의 개성을 가진 독특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일을 해내는 것이 참다운 정치고요.”
“아이고머니나, 워치케 그런 생각을 했디야? 긍께, 취나물 하나로는 제 맛이 안 나는 것 맹키로 감사 혼자서는 제 맛을 낼 수 없다 그 말이제?”
“예, 감사 혼자서는 이 고장 정치를 못하는 법이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라는 것이지요.”
진국의 말에 아짐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어.
“아이고, 참말로 대단하네, 역시 큰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만.”
진국은 아짐과 함께 취나물 한 접시를 맛있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안녕히 계십시오. 잘 먹었습니다.”
진국이 인사하자 아짐도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지.
“잘 가고, 언제라도 취나물이 먹고 싶으먼 또 와. 월봉산에는 취나물이 널렸응께.”
진국은 월봉산을 올려다보았어.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지. 산나물 한 접시에 그런 큰 뜻이 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그런데 어쩐다, 벌써 해가 지고 있으니······.”
진국은 잠시 망설였어. 하지만 다시 월봉산을 향해 돌아섰지. 내친 김에 빨리 두 번째 수수께끼를 풀고 싶었던 거야.
상월정 가까이 이르렀을 때는 벌써 달이 떴어. 상월정 옆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지. 마침 목이 말랐던 진국은 물을 마시려고 두 손을 모아 물을 떴어.
그때였어.
“저 맑은 물이 나를 보고 있거늘, 내가 어찌······.”
진국은 무슨 소린가 궁금하여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어.
“아, 저 하늘이 나를 보고 있거늘, 내가 어찌······.”
어떤 사람이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앉았다 안절부절못하는 거야. 갓을 쓴 것이 선비처럼 보였지. 선비는 허리를 숙여 물속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한 번 중얼거렸어.
“저 맑은 물이 나를 보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남의 생명을······.”
그러더니 하늘을 한 번 쳐다봐. 그러고는 또다시 중얼거리는 거야.
“아, 저 하늘이 나를 보고 있거늘, 내 배를 채우려고, 남의 생명을 어찌······.”
선비는 허리를 굽히고 물을 떠서 꿀꺽꿀꺽 삼켰지. 그러고는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거야. 무척이나 배가 고픈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어.
진국이 선비를 불렀어.
“여, 여보시오.”
선비가 진국을 보았어.
“왜 그러시오?”
“실례가 되는 줄은 알지만, 선비님의 행동이 하도 이상하여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진국의 말에 선비가 대답했어.
“먼 길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목이 말라 잠시 쉬었습니다. 그런데 수풀 바로 옆에 새알이 있지 뭡니까?”
선비가 가리키는 곳을 살펴보니, 과연 물가 옆 수풀에 새알이 있는 거야. 탱자만한 새알은 거뭇거뭇한 점들이 박혀 있었지. 진국은 너무나 궁금하여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지.
“그래서요?”
“마침 배도 고프고 하여, 손이 저절로 새알 쪽으로 갔는데······.”
선비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말을 이었어.
“막 허리를 구부려 새알을 집으려고 하는 순간, 맑은 물에 달이 비치는 겁니다.”
“달이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셨군요.”
“네, 달이 비치는 것이 무서워서 몸을 돌려 달을 안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물에 별이 떠 있는 겁니다.”
선비는 한숨을 푹 내쉬었어.
“하늘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또 물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데 어찌 새알을 훔칠 수 있겠습니까? 굶어 죽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 일은 못하겠습니다.”
진국은 선비의 손을 꼭 잡았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비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국을 보았지.
“그 마음 알겠습니다. 저렇게 맑은 물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내가 어찌 새알을 훔칠 수 있으리오? 저 하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내가 어찌 새알을 훔칠 수 있으리오? 그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진국이 감탄을 하자, 선비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어.
“누구나 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진국은 오랫동안 맑은 물을 들여다보았지. 과연 하늘의 달도, 별도, 구름도, 모두 물속에 그대로 비쳐 보였어. 어둡기는 했지만 진국의 얼굴 또한 그대로 비춰 주었지.
잠시 후, 진국은 무릎을 쳤어.
“바로 그거야. 찬물 한 그릇은 바로 깨끗한 사람이었던 거야. 저 선비처럼 새알을 훔칠 수 없는 사람! 청렴하고, 결백한 사람, 순수한 사람을 말하는 거지. 이 월봉산 상월정에 흐르는 깨끗한 물처럼 양심에 비추어서 걸릴 것이 없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로구나.”
선비는 진국의 깊은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오래도록 고개를 끄덕였어.
“벼슬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더욱 청렴결백하여야겠지요.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선비는 길을 떠났어. 이렇게 해서 진국은 두 가지 수수께끼를 풀었어.
어느 새 동쪽하늘에 해가 떠오르고 있었지. 하지만 세 번째 수수께끼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어.
진국은 아쉬웠지만 월봉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 월봉산에는 산나물이 있고, 맑은 물은 있지만 어린 애는 없으니까.
생각에 잠겨 마을로 내려오는데, 마을 입구에서 젊은 새댁이 어린 아이를 혼내고 있는 거야. 새댁은 단단히 화가 났어.
“뚝, 뚝, 뚝 그치지 못할까?”
새댁은 어린 아이를 윽박질렀어. 어린 아이는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더욱 큰 소리로 울어댔지.
“으앙앙앙앙~”
“이 녀석이, 조금 더 혼이 나야 하겠군!”
새댁은 화가 나서 어린 아이 엉덩이 찰싹찰싹 때렸어.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고. 새댁은 휴우, 한숨을 쉬었어. 아이는 더욱 서럽게 울어대고.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았지.
그때였어. 삐그덕 대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나왔어.
“아가, 아기를 이리 다오.”
할머니가 새댁에게 말했어.
“어머니라고 무슨 방법이 있겠어라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새댁은 할머니에게 아이를 넘겼어. 할머니가 아이를 안았지. 그러고는 둥게둥게 어르는 거야.
“둥게둥게 우리 아기. 뭐가 그리 힘드실꼬?”
할머니가 아기를 부드럽게 쓸어주고, 가만가만 흔들어주었어. 그러고는 둥게둥게 어르면서 노래를 불렀지.
“금을 준들 너를 사랴, 은을 준들 너를 사랴. 우리 아기 예쁜 아기······.”
그러자 아기가 그만 까르륵 웃는 거야. 할머니 얼굴에도 자연스레 웃음이 번져 나왔지.
“아기는 이렇게 보는 것이여.”
할머니가 새댁에게 말했어.
“윽박지르거나 때린다고 되는 게 아니지. 그보다는 살살 달래주고, 토닥여주는 거야.”
“예에.”
새댁 얼굴이 빨개졌어.
“애가 원하는 것도 들어 줄라고 애를 써야지. 어린 것처럼 보여도 다 생각은 있는 법인께.”
할머니는 방긋방긋 웃는 아기를 새댁 품에 안겨 주었어.
“네, 어머니!”
새댁도 이번에는 정성스레 아기를 꼭 안았지. 진국은 정신이 번쩍 들었어.
“아, 그거였구나!”
드디어 월봉산 전설의 세 번째 수수께끼를 푼 거야. 아기는 윽박지르고, 때린다고 울음을 그치는 게 아니란 거지. 바로 “둥게둥게 우리 아기, 뭐가 그리 힘드실꼬?” 하고 얼러야 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아이는 바로 백성이로군! 그러니 백성도 아기를 달래는 것처럼 제 뜻을 받아주고, 아끼고 사랑하라는 뜻이야.”
진국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어.
“아, 이제는 그동안 깨달은 것을 실천하는 일만 남았어. 반드시 어진 정치를 펼치리라.”
진국은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졌어.
감사가 된 진국이 어느 날 서리에게 귀 떨어진 동전 한 닢을 주면서 말했어.
“이 엽전을 가지고 대장간에 가서 떨어진 귀퉁이를 땜질하여 오너라.”
그런데 대장간에 다녀온 서리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이 동전을 땜질하는 데는 엽전 세 닢이 든다 하옵니다.”
“그래서 그냥 가져왔느냐?”
감사가 물었지.
“네에, 이 동전은 한 닢인데, 땜질하는데 세 닢을 주면 두 닢이 손해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감사가 고개를 끄덕였어.
“으음, 그렇기도 하겠구나. 그러나 세 닢을 주고라도 땜질을 하여 쓰면 내 돈 한 푼도 살리면서 나라 돈도 한 푼 살리는 것 아니겠느냐?”
감사의 말에도 서리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어. 두 푼을 손해 보면서 땜질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감사가 서리의 마음을 알아채고 물었어.
“귀퉁이가 떨어졌다고 내가 이 한 푼을 버린다면 국가적으로는 어떻게 되겠느냐?”
“한 푼이 없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그래서 땜질을 하라는 것이다. 돌고 돌아 돈이라고 한다지 않느냐? 내가 세 푼을 대장간에 주면 대장장이는 일거리가 생겨서 좋고, 나라에는 한 푼이 살아있어서 좋은 것이니라. 그러니 어서 가서 돈을 때워 오너라.”
서리는 감사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는 감탄을 하며 대장간으로 달려갔어.
“네, 그럼 세 푼을 주고 한 푼을 때워 오겠습니다.”
감사가 이런 마음으로 고을을 다스려서일까? 고을 사람들 역시 욕심 부리지 않고, 가진 것을 나눌 줄 알았지.
어떤 부자가 나무다리를 지나가다가 잘못하여 동전 한 푼을 개울에 빠뜨리고 말았지. 부자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개울로 들어갔어.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몰려들었지.
“뭣 찾아요?”
“여기에 돈이 떨어졌는데 보이지가 않는구나.”
부자의 말에 아이들이 냇물로 뛰어들었어.
“우리가 찾아드릴게요.”
“그래, 고맙구나. 돈을 찾아주는 아이에게는 수고비를 주겠다.”
아이들은 첨벙대며 물속을 뒤졌지. 드디어 한 아이가 엽전 한 닢을 찾았어.
“와아, 찾았다.”
엽전을 찾은 아이가 아주 자랑스럽게 손을 들었어. 부자는 아주 기뻐하며 아이들을 둘러보았어. 그러고는 엽전을 찾은 아이뿐 아니라 함께 엽전을 찾느라 애를 쓴 모든 아이들에게 엽전 한 닢씩을 나눠주었지.
그러자 똘똘하게 생긴 한 아이가 앞으로 썩 나서 묻는 거야.
“찾은 돈은 겨우 한 닢인데, 우리에게 준 돈은 열 닢이지 않습니까?”
엽전을 받는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
“한 닢 찾고, 열 닢을 내주면 아홉 닢이 손해이지 않나요?”
부자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어.
“그렇지,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준 돈은 언제나 살아 있는 돈이고, 이 개울에 빠진 한 닢은 찾지 않으면 죽은 돈이 아니냐? 죽은 돈을 살려서 잘 쓰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우와~”
아이들이 감탄을 했어. 그러자 부자가 한 마디 덧붙였지.
“이건 내 스스로 깨달은 게 아니고, 우리 고을 감사님의 뜻이니라.”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너도나도 부자에게 받은 한 닢을 도로 내놓는 거야.
“우리도 그냥 재미로 한 일이니, 수고비는 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부자는 고개를 흔들었지.
“아니다. 주는 돈은 받아서 잘 쓰고,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은 일 아니겠느냐?”
아이들이 좋아라, 한 것은 당연하지. 감사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 고을 저 고을로 퍼져나갔고. 감사가 다스린 고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어. 그런데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뒷이야기가 있어. 이 진국 감사는 호랑이도 그 어진 마음을 알아주었대. 무슨 얘기냐고? 잘 들어봐.
어느 날 진국 감사가 고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밤늦게 산길을 지나가게 되었어. 그런데 그만 호랑이와 딱 마주쳤다지 뭐야.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어디로 피할 곳도 없었대.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호랑이가 앞발을 딱 꿇고 앉더니 진국을 한 번 우러러보았다가 고개를 숙이더라는 거야. 그러기를 세 번 하고는 제 갈 길을 가는 거지.
“저 호랑이가 왜 저러는 것이냐?”
진국이 부하들에게 물었어. 부하들 중 영특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 대답했어.
“저 호랑이도 이 고장 호랑인데 어찌 감사님의 은혜를 입지 않았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부하들도 목소리를 맞춰 말하는 거야.
“맞습니다. 저 호랑이도 감사님의 어진 마음을 아는 것이옵니다.”
진국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대.
“고맙구나. 그저 내가 이 고장에 감사로 있는 동안 월봉산 전설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호랑이마저 내 마음을 알아준다니, 고맙고 또 고맙구나.”
진국은 그 후 더욱 훌륭한 정치를 펼쳤지.
우리나라 저 아래 남쪽 담양 땅에 있는 월봉산, 한 번 가보고 싶지 않니?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지냈으니, 지금까지 남아있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낡은 대나무 푯말이 하나 서 있다는데······.
<벼슬을 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법이 세 가지 있으니, 산나물과 같은 조화와 찬물 한 그릇 같은 청렴과 아이를 어르는 것과 같은 사랑이다.> (끝)
김은의
약력
1965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습니다.
제7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기획팀 날개달린연필로 제1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 제2회 송순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상상력 천재 기찬이> <비굴이 아니라 굴비옵니다> <오늘도 당신의 통장에 8만 64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놀이의 영웅> <떡볶이 주세요> <콩만이는 못 말려!> 등이 있습니다.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463번길 80 밤가시 건영빌라 105-103
전화
010-4045-7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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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가 살고 있는 월봉산 자락 용수리도 자랑스럽고 월봉산은 더 멋지구요.
뜻깊은 역사와 전설 음미 잘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