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 오순절 후 두 번째 주일
https://cafe.daum.net/znzdkzkepal/1qvN/1044 김진성
https://cafe.daum.net/rnjstlgur/9oZ8/213 권시혁
예배로 부름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히 10:22; 요 4:24)
예배 기원
창조주 하나님! 지난 한 주간도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광야 같은 험한 길을 걸을 때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의 발을 견고하게 붙들어 주셨던 주님,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여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뒤로 하고 믿음으로 예배하러 나온 저희에게 다시 한 번 큰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성령 충만하게 하셔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믿음의 제사를 드리게 하옵소서.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이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가 되기를 바라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이 주일의 찬송
346장 – 369장 (분투와 승리, 기도와 간구)
고백의 기도
성도들이 회개하는 것을 멸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크신 은혜를 의지하여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저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소홀히 하며 예배자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희는 이웃들이 당하는 고난을 못 본체하고 그들의 아픔과 눈물에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주여!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에 죄를 짓지만 저희는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저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고백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사함의 확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0602 하나님은 아말렉의 전술을 심판하신다. 삼상15:1-9.
☞ 마음 문을 열고
신록의 계절 6월입니다. 6월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을 기리기 위해 호국 보훈의 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6월은 6.25전쟁이라는 아픔이 있는 달입니다. 3년의 전쟁 기간 한반도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3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중에 민간인 희생자만 남북을 통틀어 220만 명이 넘습니다. 74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양측의 사상자는 수십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은 상대방의 영토를 확보하려는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2023년 10월 7일 공격은 고대 암흑기의 전쟁을 연상케 했습니다. 약탈자는 영토나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인질을 잡기 위해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그들은 젊은 여성들을 살해했고, 노인들을 거리에서 납치했으며, 심지어 자녀들과 함께 있는 가족을 살해하고 불태웠습니다. 하마스가 쓴 전술은 성경에 나오는 아말렉의 전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 성경이 말하는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진멸 명령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15:1).
그것은 아말렉에 대한 진멸의 심판이었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뒤처져 있는 여인들과 어린아이를 공격한 죄를 범한 족속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고(신 25:19) 500년이라는 긴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자, 진멸의 심판을 시행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이 같은 명령을 주신 것은 다시 한번 그에게 순종의 기회를 부여하시는 은총이요, 동시에 마지막 테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즉 이 명령의 핵심은 승리 여부가 아니라 철저한 진멸 여부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만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과 얼마나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시금석이기도 합니다.
아말렉 진멸의 명령을 받은 사울은 군사들을 매복시킨 후에 먼저 겐 사람들에게 피신을 명했습니다. 겐 사람들은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의 가족과 친지들로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들입니다(6).
드디어 아말렉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내용은 단지 7-8절에 짧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아말렉에 대한 승리 자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결정은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울이 그들을 진멸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아각을 살려두었습니다.
타국의 왕을 자기의 포로로 두는 것은 자신의 승리를 오랫동안 부각시키기 위한 주변 국가들의 풍습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사울은 탐심에 사로잡혀 좋은 것과 기름진 것은 모두 남겨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순종을 보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셨음에도, 사울은 마지막 기회까지 놓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이것을 안 사무엘은 근심하며 밤을 새워 사울을 위해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사무엘에게 처음 들린 소리는 사울이 갈멜로 가서 자기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왜 사울로 인해 후회하셨는지를 느끼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자마자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라고 하며 득의양양했고,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며 자기의 승리를 과시했습니다.
사무엘은 ‘내 귀에 들리는 저 양과 소의 소리는 어찌된 것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울은 그것은 자기가 아니라 백성들이 남긴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는, 그것도 여호와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남겨 둔 것이라고 거짓말을 둘러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시 한번 다른 것들은 다 죽여 없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자기 기준으로 말씀을 제한하고 자기 이론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에 둡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속여,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이처럼 아말렉은 사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2. 아말렉에 대한 여호와의 저주
모세가 아론과 훌의 손을 잡고 언덕에 앉아 있는 동안 여호수아는 아래 계곡에서 적을 물리쳤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여호와가 맹세했습니다. “‘주님의 깃발을 높이 들어라. 주님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실 것이다’ 하고 외쳤다.” (출17:16절).
여호와는 아말렉에 대한 기억이 하늘 아래에서 아예 지워질 때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했습니다(14절). 여호와는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완전히 멸망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삼상 15:1-3) 사울은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고 엄청난 약탈을 일삼지는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길갈에서 아각을 쳐부수지만, 그럼에도 아말렉 사람들은 살아남았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에서 유배 생활을 마무리할 무렵,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에 있는 다윗의 진영을 공격하고 여자들과 어린이들을 납치하고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아말렉의 약탈자들을 쫓아내고 그의 아내와 자녀와 재산을 되찾은 것이었습니다(30:1-20). 400명이 다윗의 손을 피해서 탈출했고(30:17), 아말렉은 또다시 살아남아 훗날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자신의 맹세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악당은 사울 왕과 싸웠던 왕의 후손인 “아각 사람” 하만입니다(에 3:1, 8:3).
에스더는 교묘하게 하만을 함정에 빠뜨렸고, 주님(이름은 밝혀지지 않음)이 모든 사건을 뒤에서 조율했고, 그 결과 하만이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만든 교수대에서 그 자신이 죽게 됩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아말렉에 대한 마지막 언급입니다. 여호와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잊혀진 민족이 된 아말렉은 이제 단지 성경에서만 기억될 뿐입니다.
고대 세계에는 사악한 민족이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아시리아 민족의 잔인성은 악명 높았고, 가나안 족속들은 여호와의 진멸 명령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는 왜 하필이면 아말렉을 특별히 적대하여 지목했을까요?
3. 전쟁 중인 아말렉
아말렉은 약자를 공격하는 데에 특화된 민족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아말렉의 정체를 상기시켰습니다. “그들은 당신들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에, 길에서 당신들을 만나, 당신들 뒤에 처진 사람들을 모조리 쳐 죽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신 25:18).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사울과 싸우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을 때 아말렉 침략자들이 시글락을 공격했는데, 거기에는 오로지 여자들과 아이들만 있었습니다. (삼상 30:2-3).
하만은 포로로 잡혀간 유대 민족을 멸절하고자 아하수에로 제국의 힘을 모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말렉 민족은 단지 잔인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고아, 과부, 나그네, 기타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거듭 지시했습니다.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이스라엘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않는 자”(신 27:19)를 향한 저주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선지자들은 약한 자들을 학대하는 이스라엘과 지도자들을 비난했습니다. (사 1:17)
아말렉 민족에 의한 여성과 어린이의 “민간인 피해”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선택된 성읍에서 시행했던 남자, 여자, 어린이, 동물을 죽이는 문제에서 금지령을 전혀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남자가 사라진 뒤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 여리고와 아이, 호르마 성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견고한 성읍들을 공격하여 함락시켰고 그 모두를 연기와 불로 여호와께 바쳤습니다.
그에 반해서 아말렉 사람들은 특히 여성과 어린이, 약한 자들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아말렉은 반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인류를 향한 여호와의 목적에 정반대되는 생활 방식과 가치관, 군사 전술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4. 아말렉의 메아리
하마스는 아말렉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하마스가 지금 여호와의 금지와 저주 아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똑같은 것도 아닙니다.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이 그리스도인이며, 많은 무슬림 팔레스타인은 하마스와 폭력에 반대합니다. 하마스를 아말렉과 비교하는 게 대량 학살의 정당화 또는 암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2023년 10월 7일에 하마스는 아말렉의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하마스가 아말렉처럼 싸우는 유일한 테러 집단은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테러 단체는 여성과 어린이를 방패로 삼았습니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주의자들은 여성을 자살폭탄 테러범으로 활용했고, 보코하람은 어린이를 “인간 폭탄”으로 악용했으며, 아프가니스탄 테러리스트들은 산부인과 병동에서 임산부와 아기를 살해했습니다. 하마스에 대응하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방식을 모방할 위험이 있습니다.
아말렉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여전히 폭력적인 사람들, 특히 무력한 사람들을 죽이는 악한 이들을 파괴하기로 결심하신 분이십니다. 아말렉 민족뿐 아니라 피를 흘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주님은 의인을 가려내시고, 악인과 폭력배를 진심으로 미워하십니다.” (시 11:5).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여섯 가지 것 중에는 다음이 있습니다. (잠 6:17-18)에 보면
“교만한 눈과 거짓말하는 혀와 무죄한 사람을 피 흘리게 하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꾸미는 마음과 악한 일을 저지르려고 치닫는 발”이라고 말씀합니다.
☞ 갈무리
정의를 위한 기도
예수님은 쇠 지팡이를 손에 들고 다스리시며 세상 나라들을 질그릇같이 깨뜨리십니다. (계 2:27). 그는 하마스의 아말렉 사람들뿐 아니라 폭력을 사랑하고 자비를 미워하는 모든 원수를 그의 발아래로 끌어들일 것입니다.
때때로 예수님은 폭력적인 사람들을 개종시킴으로써 패배시킵니다. 또 어떤 때는 아예 그들을 멸망시키심으로써 패배를 안깁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그에게 그렇게 하시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정의와 악인에 대한 심판을 위한 기도로 가득한 기도서이자 찬송가인 시편이 있습니다.
지금은 저주하는 시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아말렉인이 하늘 아래에서 제거되어 정의로운 세상이 되도록 해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