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름밤 이야기
慧松 김 순 희
무더위가 수그러들 무렵이면 마당에는 화로에 쑥을 태우는 모깃불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다.
할머니는 어린 우리들이 모기에 물릴 세라 직접 쑥을 한 다발 베어 오시거나, 아버지가 베어다 놓은 쑥을 가져와서
모깃불을 놓아주시는 것이다. 열기가 후끈후끈 달아오른 방은 아직 덥기 때문에 모기장을 쳐놓고 방문을 활짝 열어 둔 채로 시원해질 때까지 밖에서 자연 바람을 쐬며 기다려야 밤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이 모두 짚으로 엮은 덕석 위에서 모기를 쫓으며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외양간의 소도 고단한 하루를 잊고 자리에 눕는다. 풋풋한 풀을 먹고 난 소에게도 풋풋한 풀 이불을 깔아주면 기분이 좋은 듯 꼬리를 두어 번 흔들고는 편안한 자세로 되새김질을 하다가 잠에 들기도 한다. 시골 집에서 소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라서 외양간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그리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늘 풍겨오는 냄새에 모두 익숙해서 자주 외양간을 청소해주면 그만인 것이다.
어느 새 마당에 한기가 스며들면 시원한 공기가 얼굴에 닿아 기분이 좋아지고, 미처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할머니가 덮어주시는 홑이불을 덮고 베개를 베고 누우면 짙은 감색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한 눈에 다 보인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여름밤의 별들은 무수히 많아 마치 누워있는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지 않을까? 막연히 사람들이 죽으면 저 하늘 위에 별이 될 거라는 추측을 하며 혼자 그렇게 믿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옛날 옛적 사람들이 모여 저렇게 반짝이며 살아가고 있을 거란 생각에 한 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아마도 동화 속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믿었듯이, 하늘의 일부도 내 마음에 가득했으므로 조금도 의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별별 상상들을 하며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들곤 했다.
누군가 나를 번쩍 들어올려 방으로 옮기는 것을 느끼고 잠이 깰 때도 있지만 가끔은 잠에 깊이 빠진 듯 자는 흉내를 내곤 했는데, 그건 아버지나 엄마의 품이 따뜻했고, 번쩍 들어올려져 땅에서 떨어진 느낌이 은근히 재미있었기 때문에 눈을 감은 채로 행복한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진짜로 깊은 잠에 빠져서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다.
여름밤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똥벌레들이 꽁지에 불빛을 달고 마치 별처럼 깜빡이며 이리저리 하늘을 날아다닌다. 전깃불도 없는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저 반딧불이는 꼭 한 번 만져보고 싶은 멋진 생명체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벗었던 옷을 휙 하늘로 날려 보기도 하고, 고무신을 던져보지만 쉽게 잡히질 않는다.
그렇게 애를 태우다가 매미채로 낚아채면 그 아름다운 반딧불이가 내 손에 들어온다. 잠을 잘 수가 없다. 개똥벌레 냄새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고, 마냥 바라보고 있으면, 빛을 내는 이 작은 생명체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하얀 박꽃을 따서 그 안에 개똥벌레를 넣고는 꽃을 꼭 붙잡아야 개똥벌레가 도망가지 않는다고 일러주셨다. 반딧불이가 담긴 박꽃등이 주변을 환하게 비춰주니까 정말 환상적인 아름다운 빛이 되었다. 도저히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렇게 반딧불이 불빛을 즐기다가 박꽃등을 손에 쥔 채 그대로 잠이 든다. 반딧불이는 밤새 박꽃등을 비췄으리라.
여름이면 늘 곁에 있던 누렁이 황소도 할머니의 모깃불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안타깝게도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별이 쏟아지는 밤'은 못 본 지 수십 년이 되었다. 어디에서 별을 볼 수 있는지 인터넷을 검색하고 날짜를 잡아서 찾아가야 하고, 더구나 날이 맑아야만 볼 수 있다는 게 참 아쉽다.
더구나 개똥벌레의 은은한 불빛도 사라져 볼 수가 없지 않은가? 해가 지면 수만 개의 불빛이 시내를 온통 보석처럼 만들고 마는 요즈음이지만, 개똥벌레 박꽃등처럼 정겹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요즈음에 해가 지고 난 '밤하늘의 별을 세는 일'은 너무나 안타깝다. 어떤 날은 대여섯 개, 어떤 날은 열서너 개 밖에 별을 볼 수 없으니 슬프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문명이 발전해서 편한 생활을 즐기는 댓가로 마음의 별을 잃어버린 건 커다란 손실이다. 그런 마음을 찾으려 배낭을 메고, 차를 몰아서 문명에서 먼 곳을 찾아가고 싶다. 별이 쏟아지는 제주 바닷가에서 손주들과 여름밤 하늘을 함께 바라볼 올 여름방학을 상상해 본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아기자기 함께 지낸 여름밤의 추억들이 오래오래 내 가슴에서 반짝이는 것처럼, 우리 손주들의 마음 속에도 평생 반짝일 아름다운 한여름밤의 추억이 남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먼 훗날에 우리 손주들도 그 여름밤이 참 행복했노라 오래 기억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글을 맺는다. <끝>
첫댓글 웬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
왠지 자꾸만 그리워지는 풍경들입니다. 밤하늘의 별도 개똥 벌레도 살아갈수록 그리운게
혹시 내가 '별에서 온 그대' 중 한 사람인가.....?
생각하며 미소 지어 봅니다. 아무튼 그런 시골 밤을 찾아서 파주 어느 곳에서, 늦은 밤 별 구경을
하고 오렵니다. 이것도 나의 버킷리스트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