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의 번호를 부르자 훤칠한 이마에 콧날이 오뚝하고 눈이 맑은 청년이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띠고 다가온다. 일자로 꼭 다문 입술에서 의지가 강함을 알겠다. 보통 키에 공부만 파고드는 책상물림답지 않게 어깨를 딱 펴고 걸음걸이가 당당하여 귀공자의 풍모가 여실하다. 아직 남아있는 반감과 호기심이 뒤섞이는 묘한 기분이었다. 공부래 봐야 교과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외골수로 전공만 딥다 판 백면서생과는 거리가 있는 듯 보인다. 먼저 준수가 운을 뗀다. “무슨 전공이에요?” “피아노요.” “연습 많이 해야 되죠?” “피아노를 잘 아시나 봐요?” “많이랄 건 없고 약간 주워들은 풍월은 있죠.” “피아노 곡 중 무슨 곡을 좋아하세요?” “쇼팽이 좋은데 즉흥환상곡이나 빗방울요.” “어머, 음악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그 정도면 대단한 건가요?” “그럼요, 원래 법대생들은 관료적이고 정서라곤 삭막하잖아요. 체육이나 예술방면에는 눈을 딱 감은 공부벌레들 아녜요? 진정한 교양인이라면 르네상스인 정도는 못되더라도 학교공부나 전공에만 매달리지 말고 폭이 넓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잘난 척하고 콧대 높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S대법대생을 골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방 되게 얻어맞았네. 이거 만나자마자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호호, 죄송해요. 우리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거죠. 좋아하는 곡이라야 소녀의 기도 정도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중학생 수준정도로 봤나요?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라고 할까 하다가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고 할까봐 조심했죠.” 실없는 몇 마디 끝에 기어이 장난기가 동하여 골탕 먹일 작정을 했다. 그보다도 이 사람의 인문학적 소양을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더 많았는지 모르겠다. “요즘 무슨 책을 읽으세요? 역시 딱딱한 법률책?” 초면인데 묻는 말이 도전적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답한다. “아뇨. 토마스 벌핀치의 The Age of Fable을 읽고 있어요. 그리스 로마신화인데 제대로 된 우리말 번역본이 있으면 쉽고 빠를 텐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원서로 읽고 있어요. 워낙 유명한 명저라서 영어공부도 할 겸 오히려 잘됐죠.” 그리스 로마 신화야 귓등으로라도 들어서 알지만 듣도 보도 못한 책을 원서로 읽다니. 그것도 영어로 된 유명한 명저라고? 의외의 대답에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문학 지망생답게 정숙은 스스로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다고 자부했던 터였다. 폭넓은 독서를 통하여 세계문화와 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길렀다고 믿었다. 그런데 자신과는 한 차원 다른 세계에 사는 괴물을 만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아니 섣불리 말문을 열기가 두려웠다. 공부밖에 모르는 샌님을 상대로 대화를 리드하다가 여차하면 물이나 실컷 먹이고 도망칠 작정이었는데 초장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여 별 생각 없이 흔히 묻는 지나는 말로 생각하고 “고등학교는 경기에요?” 준수가 듣자하니 당돌하고 공격적인 질문만 퍼붓는다. 약간은 졸렬하기까지 하다. “아뇨.” “그럼 서울?” “경기 서울만 학굔가?” 준수가 약간은 발끈한 투로 맞받았다. “어머 죄송해요. 그 학교는 지방명문학교 아니면 으레 경기 서울 출신이라고들 해서……. 지방학교는 아닌 것 같고 해서요.” “D고교 아세요?” “아, 그 기독교학교 말이죠? 잘 알아요.” “어떻게요?” “친척 오빠가 거기 나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무척 잘했는데 부모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서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무조건 거길 가라고 하는 바람에 거길 갔대요. 댁도 역시 그런 비슷한 사연인가요?” “아뇨, 경기 떨어져서 갔어요.” “어머, 죄송해요. 아픈 델 건드렸나 봐요.” “아니에요. 첨에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랄까 낙방한 자책감 같은 게 있었죠. 하지만 차츰 지나면서 한국 최고의 학교에서 기독교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경기보다야 하는 생각에 출신고교를 묻는 바람에 그에 대한 반발심에서 준수가 빈정거린다고 정숙은 넘겨짚었다. 그래서 아까와는 반대로 준수가 괜히 겉멋을 부리느라 그리스 로마신화를 들먹이며 현학적인 대답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내친김에 더 강하게 공격해보았다. “기독교교육이라면 그 학교 말고도 미션스쿨이 쌔고 버렸잖아요.” 미팅에서 처음 만난 처지에, 더구나 무식하다고 무시한 음대 여학생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의사라고는 추호도 없는 준수였다. 그러나 대화의 방향이 묘하게 꼬여 들어간다. 의도적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몰라도 이 여자는 처음 만난 청춘남녀가 흔히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자꾸 상대방을 건드려 차원을 높여가는 마술이 있는 듯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늪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준수는 상대방이 알아듣건 말건 재밌건 말건 지루하건 말건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렇긴 해요. 그러나 다른 학교에선 찾아볼 수 없는, 콕집어서 말 할 수 없는, 독특한 뭔가가 있어요. 외국인 선교사나 자본가 또는 지주의 돈으로 쉽게 세운 학교가 아니라 해방 후, 이북에서 적수공권으로 피난 나온 독실한 신앙인들이 오로지 정성만으로 눈물겹게 세운 학교에요. 선생님들도 신앙은 물론 피난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거친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교육에 대한 열정과 제자 사랑이 남달랐어요. 다른 학교가 흉내 낼 수 없는 경건한 기독교교육을 통하여 서양철학에 눈을 뜨게 됐죠. 흔히 서양철학의 뿌리는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는데 맞긴 맞아요.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를 해석하고 발전시킨 게 기독교에요. 수많은 천재들이 기독교와 서양철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켰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교부철학의 시조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시기독교에 플라톤철학의 옷을 입혀 기독교를 체계적인 논리로 정립해요.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스콜라철학은 교부철학에 비해서 합리주의적 가치가 강조되는 기독교철학이라고 할 수 있죠. 중세 초기를 기독교의 초월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정신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정신이 공존하는 시대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그 중심에 스콜라철학이 있고 스콜라철학의 정점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어요. 교부 철학이 플라톤적이라면 스콜라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후대의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 모든 서양철학이 여기에 기초를 두고 있죠. 대입학원이나 다름없는 다른 학교라면 어림없는 교육이었어요.” 처음 만난 꽃과 나비의 대화치곤 고약하다. 그런데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혹 이범선이라는 소설가 아세요?” “알아요. 오발탄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으신 분. 나도 읽었어요. 오발탄은 영화로도 나왔죠?” “국어선생님이었어요. 문학반 활동을 하면서 그분 영향과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글도 글이지만 인품이 워낙 훌륭해서 모두들 존경했죠.” “문학반도 했어요?” “선생님의 권유로 어찌어찌하다가 학교신문기자에 교지 편집도 해봤죠.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 사람은 좀 특이한 사람이구나. 정숙의 상식으로는 문학과 법학은 어쩐지 궁합이 맞지 않은 듯한데. “모교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하시네요.” “자기 모교를 사랑하지 않거나 자부심이 없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뚝별나기로는 농고나 공고가 아닌 담에야 화초원예와 목공을 정규과정으로 가르친 인문계 고교는 아마 없을 걸요? 우이동이나 태릉 등 근교까지 나가서 부엽토를 구해다가 우리가 학교변소에서 푼 똥을 섞어 정성스레 기른 국화를 가을이면 전시회를 열었죠.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유명한 국화전시회인데 해마다 덕수궁에서 하는 것 못지않아요. 땀으로 피워낸 국화 한 송이는 성취감은 물론 자부심마저 갖게 해요. 전인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똥 푸고 거름 주고 삽질 못질 톱질 대패질을 배웠어요. 미술의 홍종명선생님은 국전 추천작가에 심사위원이고 음악의 김두완선생님은 한국 기독교음악의 촉망 받는 작곡가죠.” 자기가 먹던 우물에 침 뱉지 않고 이처럼 자랑스런 애교심을 가진 사람의 심성이 어떨지는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모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곁에서 보기에도 너무 좋네요.” 그의 모교 자랑은 허세가 아니라 진정에서 우러나온 뜨거운 단심이었다. “그건 그렇고 댁에서는 어느 학교?” “S여고요.” “그 구왕실재단 고궁 입장료로 운영하는 학교 말이죠?” “비꼬긴. 경기냐고 묻는 바람에 삐쳤나 봐요?”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고. 우리 때 고문 선생님이 그 학교에서 오셨어요. 별명이 고물상인데 수업 중에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뒷벽이나 천정을 쳐다보고 수업하시던 생각이 나네요.” “여학교에서는 학생과 잘못 눈을 마주쳤다가는 바로 스캔들이에요. 그분 경상도 억양이 심하지만 실력은 있었죠. 경상도 사나이 티를 내느라 여자교장이라고 우습게 봤는지 교장에게 대들다가 짤렸다는 소문이었어요. 결국 그 학교로 갔군요.” 아카시아동산의 아카시아 꽃그늘 아래서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꽃비에 흠뻑 적시며 사춘기시절의 꿈이 영글어갔다는 준수의 눈빛은 그리움이었다. 그의 모교사랑은 꿈과 추억의 향연이었다. 쇼팽/빗방울 전주곡-Martha Argerich, Pinao |
첫댓글 이 범선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인연은없지만정말 鶴 같은분이었다고 기억되는데---
학마을 사람들 단편집이
이사다니면서 없어져서-- 한번더 읽고 싶다.
처음 만난 여학생한테 학교자랑이 좀 심한거 아닌가?
하긴 할 얘기가 없으니까 학교자랑으로라도 시간을 때워야되니까!!
인문계 학교에 목공반 화예반 전기반이라는게 있었다니 아마 당시만 해도 사회에
빨리 적응시키려는 학교교육방침은 뛰어났다고 봐야하는거 같다.
다른 학과는 몰라도 문학 미술 음악을 가르치는 예능방면의 교사들은
지금의 대학교수와 비견할 정도였던거 같다.
할 얘기가 아무리 없더라도 자기가 다니는 학교자랑 일변도로 가다가는
정숙이가 학교공부 핑계로 만남을 피하고 얼마 안가서 빵꾸나는거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범선 홍종명 선생님 참 훌륭한 스승이었는데...그리고 원예반의 국화전시회가 생각난다. 그런데 정숙이가 준수를 잘 못 건드린 것 아닌가? 음대생의 콧대와 법대생의 자존심 대결이 기대된다.
청춘남여의 첫 만남에서 아무리 콧대가 높아도 정숙의 태도가 너무 도발적이다.
반면 준수는 왜 그리 진지한지 부담스럽기 까지 하다. S여고 S법대생은 대화도
S자 같이 꼬여야 뭔가 마음이 흡족한가? 첫 대화는 그렇다치고 다음이 궁금하다.
난 예전에 이런 멋진 연애 한번 못했을까 아쉬워 해본다 . 나에겐 그시절 일순위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것이 전부였으니 ...... 잘 있었습니다.이더위에 수고 많소이다. 샬롬 ~~~
우리의 '준수'가 정말 준수한 청년이군요. 그동안 잠시 알라스카를 다녀왔습니다. 태고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거대한 땅을 본 그 감격이 그대로 '준수'라는 청년의 때묻지않은 늠름한 모습에서 느끼게 됩니다. 전인교육을 받은 늠름한 청년의 love story가 정말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