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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따세 2010년 겨울 도서 목록의 서평들입니다.
< 문학 > - 12종
『서쪽 마녀가 죽었다』, 나시키 가호 지음, 비룡소 (중1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5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중학교 1학년생인 마이는 학교를 쉬고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러나 마이의 외할머니는 여러모로 다른 일본의 외할머니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영국에서 온 서쪽마녀였던 것. 더구나 외할머니의 할머니도 마녀였다. 마녀의 계보가 할머니에게서 손녀에게로 전해지는 것이라면 이제 마이가 새로운 마녀가 되어야 할 차례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마이에게 설명하는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동화 속의 마녀와는 거리가 있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 자연의 품 안에서 겸손할 줄 아는 자연의 딸,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문제를 극복해나갈 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 바로 외할머니가 말하는 마녀다.
마녀에 대해 너무 거창하게 말한 것 같지만 마이가 수행하는 마녀수업은 소소하기 그지없다. 외할머니와 같이 집안을 청소하고, 잼을 만들며 나무와 풀과 꽃들의 이름을 익히는 정도. 그러나 소박한 일상 속에서 마이가 아팠던 마음의 상처들은 점차 치유되어 간다.
이 소설은 중학생 마이의 성장담이지만 문명 속에서 왜소해지고 있는 어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정보의 산"과 "팩스의 강" 속에서 살아가는 마이의 아빠와 자신의 일에 열중하느라 딸에게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던 마이의 엄마는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전형이다. 서쪽 마녀는 이렇게 서로의 진정한 관계를 잃고 각자의 견고한 자아 속에 갇혀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안타까워한다. 서쪽 마녀는 우리에게 자연의 소중함, 살아 숨 쉬는 것들의 아름다움, 건강한 먹거리 그리고 영혼에 대한 믿음을 가르친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그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하필 서쪽 마녀였을까? 우리가 자연과 공동체적 삶의 방식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바로 서구화 때문이 아닌가? 참고로 마이의 외할머니 집안이 일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서구화가 시작된 메이지 유신 시대부터다. 서쪽 사람들이 일본에서 본 동쪽의 아름다움은 무엇이었을까? 서쪽마녀의 시모(始母)는 본래 동쪽마녀가 아니었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다.
- 부천소명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김면수 (yanaros@gmail.com)
『우리들의 최악의 여름』, 사소 요코 지음, 우리교육 (중1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4,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5
지루하고 답답한 장마가 지나가자 푹푹 찌는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불볕더위를 잊기 위해 아이들은 위험하지만 무척 재미있는 ‘계단 뛰어내리기’ 게임을 하게 됩니다. 구리다 반 아이들과 시합 도중 계단에서 굴러 크게 다친 모모이는 구리다와 함께 여름방학 내내 수영장 청소라는 벌을 받게 됩니다. 씩씩한 모모이가 친구들에게 비밀로 하는 이야기가 한 가지 있습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유명한 사립 중학교에 진학했다가 학교 적응에 실패해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형 토오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이혼한 부모를 둔 구리다를 두고 ‘가정파탄’이라 부르는 친구들에게 자기네 집도 시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사에 긍정적인 구리다 역시 들을 수 있지만 들으려하지 않는 여동생 노조미가 있음을 알게 된 모모이는 어떤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마침내 서로 친구가 됩니다. 모모이의 형 토오루는 어린 노조미를 돌보게 되면서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갖게 됩니다. 넷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면서 이제부터 화단이나 화분에서 자라는 연약한 꽃이 아니라 길 가에 한 줌의 흙이라도 찾아내서 돋아나는 잡초처럼 세상에 당당히 맞설 것을 다짐합니다. 긴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선생님의 특별한 배려로 단 둘이 수영장을 쓰게 된 모모이와 구리다가 수영장 속으로 다이빙해 가듯이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꿈도 다시 푸르게 자라났으면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일본은 시골 학교에까지 수영장이 있구나’ 싶어 무척 부러웠습니다. 이제 저도 아이들의 가슴을 적셔 줄 무언가를 찾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 경문고등학교 역사교사 박범철 (parkbch@hanmail.net)
『가족입니까』, 김해원 지음, 바람의아이들 (중2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4, 확장성 4, 복합성 3
핸드폰 광고를 찍기 위해 모인 엄마, 아빠, 아들, 딸. 광고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이 네 명의 사람은 각각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르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 네 명의 인물이 각각 다른 작가의 품에서 태어나 때로는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먼저 아빠 역할의 출판사 사장 박동화씨. 그는 집에 들어가도 바깥으로만 도는 아내와 딸 때문에 하루도 집이 편안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이들과 대화하기를 원하는 이 시대의 외로운 아버지상이다. 엄마 역할의 일 욕심 가득한 노처녀 안지나 팀장. 혼자 사는 딸에게 바치는 엄마의 관심이 구속처럼 느껴졌지만 광고촬영을 계기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조금 나이 많은 딸이다. 마지막으로 딸과 아들 역할의 예린이와 재형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조종하는 엄마로부터 벗어나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가고 노력하려는 예린이와 쌍둥이 형제와 비교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반항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재형이는 십 대 아들딸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안지나 팀장 이야기에서는 (나이 차이는 조금 나지만^^) 지금 내 이야기로 착각하고 말았으며, 예린이와 재형이 이야기에서는 부모님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는 제자들 모습이 하나둘 떠올랐고, 박동화 아저씨 이야기에서는 저녁에 큰 식탁에 혼자 앉아 한 술 뜨는 아버지 모습이 연상되었다. ‘내 얘기인데? 내 딸, 내 아들이잖아? 내 남편이랑 똑같아. 우리 아빠도 이런데.’라며 무릎을 탁 치는 또 다른 이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가족이기에 더 기쁘고 슬픈, 가족이기 때문에 더 상처주고 상처받는 우리네 가족이야기.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정의내릴 수 있는 책읽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 경기 광주중앙고등학교 국어교사 지현남 (edu_start@naver.com)
『시튼 탐정 동물기』, 야나기 코지 지음, 루비박스 (중2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5
오싹오싹 공포의 기운만 감도는 추리소설들에 식상한 학생들, 동물들의 생태에 관심은 있지만 딱딱한 과학책에는 손이 가지 않는 학생들, 그리고 어릴 적 읽은『시튼 동물기』를 색다른 버전으로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학생들이라면 이 책과의 만남이 신선하게 다가올 것입니다.(저희 반에서 동물에 관심 있는 남학생과 추리소설에 미친 남학생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지요!)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시튼 동물기』를 살짝 비틀어, 여든이 넘은 노인이 된 시튼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형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가볍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고, 깊이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본능적 감각에 충실한 동물들과 함께 장대하게 펼쳐진 자연과도 만날 수 있답니다.
시튼 씨는 어린 시절 자신의 동물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읽은 기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동물들의 습성 덕분에 해결한 사건들을 펼쳐내는 것이지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고 어둠을 싫어하는 까마귀의 습성으로 부인의 보석 도둑을 찾은 이야기, 어릴 적 냄새를 잊지 않는 동물의 습성으로 보험금을 노린 한 가족의 살인을 들통 나게 한 하늘다람쥐 이야기, 스컹크를 이용해 스파이를 알아낸 이야기 등 모든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동물들의 습성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이해였습니다.
물론 이 책이 본격 추리소설처럼 완벽한 추리과정을 지닌 것도 아니고, 동물의 생태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이 가득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시튼 씨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풀어가는 제법 탄탄한 추리과정과 반전의 묘미도 있고, 자연과 어우러져 동물적 본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야생동물들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또한 동물보다도 못한 인내심과 동물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인간의 모습들을 보면서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긴 겨울 방학, 다음 학년 준비에 지칠 때마다 책 속의 사건 하나씩과 만나보면 무거워진 머리가 가벼워질 거예요. 참! 저처럼 『시튼동물기』를 읽지 못한 사람은 학자 시튼이 엮은 시튼동물기가 궁금해져 도서관으로 달려갈지도 모르겠네요.
- 양일고등학교 국어교사 이수정 (sjjina@naver.com)
『합★체』, 박지리 지음, 사계절 (중3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4
몇 년 전 개그맨 이수근이 외쳤던 “키 컸으면”을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다. 청소년들은 거의 키에 대한 불안과 열망이 있다고 한다. 뭐,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들조차 키에 대한 아쉬움이나 열망은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난쟁이 아버지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출발하는데 그의 쌍둥이 아들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합과 체는 키가 작아 고민하는 평범한 청소년이다. 키가 작아 시무룩한 합과 체에게 키가 클 수 있다고 말해 준 단 한 사람은 동네 뒷산의 약수도사였다. 심지어 그는 키 크는 비법을 알려주기까지 하는데 그 정체불명의 도사 말을 믿고 둘은 계룡산으로 수련하러 간다. (어른에게 허락받지 않고 떠났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가출일거다.) 동굴에서 가부좌를 틀고 손을 마주 잡은 채 합체! 합체! 외치지를 않나, 제자리 뛰기를 합체! 합체! 하면서 천 번씩 하지 않나, 아무튼 도사가 일러준 비법대로 한 달 가까이 버텼으나 키는 조금도 크지 않았다.
대신에 합과 체는 계룡산을 휘젓고 다니며 인생에서 쏘아 올릴 공을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공이 가져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쏘아 올리고픈 공, 각자만의 진짜 공은 무엇이며 그 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쌍둥이 합, 체는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끊임없는 시도가 가능하기에 공은 공이고, 그 공은 어김없이 튀어 오르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공의 그 성질을 알고 있다면 누구나 젊음일 것이라고 합과 체는 가르쳐 주었다. 그 공은 이제 글을 읽는 당신의 공이 되었고 공에 대한 성찰은 당신에게 넘어 왔다.
그리고 계룡산의 합체! 합체! 수련을 통해 그들이 배운 또 하나는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대’의 가치를 배우기는 참 어려운데 아무튼 대단한 쌍둥이들이다.
- 창곡중학교 국어교사 허소혜 (ssoi0605@hanmail.net)
『다이브 1,2』, 모리 에토 지음, 까멜레옹 (중3부터)
충실성 5,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5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를 부모로 둔 요이치, 천재 다이빙 선수였던 할아버지를 둔 시부키, 다이아몬드의 눈동자를 가진 도모키……. 초반에 이들의 화려한 스펙을 들여다보면서 ‘또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야!’라는 생각에 시큰둥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후반으로 갈수록 농구에 소질을 발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료, 1등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목표를 정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레이지, 고소공포증으로 다이빙대에는 오르지도 못하지만 다이빙을 사랑하는 사치야의 이야기가 덧입혀지면서 청소년들의 다양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요이치, 시부키, 도모키의 'Final stage'가 공중에 떠 있는 1.4초였다면 앞서 전개되는 다양한 스토리들은 마치 10미터 다이빙대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올라가야만 하는 길고 긴 다이빙대 계단과 같은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이브 1,2』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부모와 교사의 입장에서도 많은 감동을 주는 작품입니다. 우선 도모키의 이야기를 통해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손길이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사치야를 통해 “두더지에게 하늘을 날게 하지 말아야 하고, 양에게 사냥을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뱀에게 등을 긁으란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후지타니 코치를 통해 “숫자로는 나타낼 수 없는 한 명 한 명의 성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몸은 머리든 근육이든 최소한 100번은 연습해야 완벽하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백조처럼 우아한 자태로 뛰어 내리기 위해 다이빙대에서 하루에도 100번을 뛰어 내리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새털 같은 날들을 고통의 시간들’로 채우는 이들의 ‘새파란’ 열정에 뛰어들어 볼 것을 권합니다.
- 가람초등학교 사서교사 김은정 (haeggot8@naver.com)
『난 네가 싫어』, 케이트 맥카프리 지음, 다른 (중3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4, 복합성 4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인터넷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니홈피나 블로그, 트위터 등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방식도 점점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문화가 확대되고 다양해지는 만큼 그로 인한 폐해도 심각해지고 있다.
몇 달 전, 여론을 뜨겁게 달군 가수 타블로의 학력 의혹 사건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익명성을 가장한 사이버 폭력의 잔인함이었다. 사실 닉네임 속에 숨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고 악성 댓글을 달아 타인에게 참을 수 없는 정신적 피해를 준 건 비단 타블로 사건 뿐만은 아니다. 어른들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난 네가 싫어』는 이런 사이버 폭력에 의해 고통 받는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이다. 너무나 평범한 삶을 살던 주인공 아발론은 전학을 가면서 사이버 폭력에 시달리게 되고,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친구 마샬도 사이버 폭력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인터넷을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닌 일들이 조작되고, 부풀려져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타인을 공격하는 모습은 사실적이다 못해 섬뜩하다. 십대 청소년들의 심리를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추리적인 기법으로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과 거기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동안 청소년들의 왕따 문제를 다룬 작품들은 많았지만 인터넷 문화와 결합하여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왕따 문제와 더불어 요즘 청소년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인터넷 매체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 산본고등학교 국어교사 이진희 (mist0406@hanmail.net)
『열아홉의 프리킥』, 줄리 A 스완슨 지음, 뜨인돌 (중3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4, 복합성 4
영화나 문학에서 죽음은 낯선 소재가 아닙니다. 그건 아마 우리네 삶이 결국엔 죽음으로 완성되기 때문일 겁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은 늘 낯설고, 우리에게 아픈 상처를 남깁니다. 이런 주제를 다룬 책들이 여러 권 추천 도서에 올라와 있는 줄을 알면서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죽음을 맞이하는 가족의 모습이 진솔하게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길 소망하는 레아. 올림픽 대비 청소년 대표 축구팀에 뽑혀 공중 부양하듯 기분 좋은 날, 마중 나오신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갑자기 날아온 커브볼처럼 가족을 뒤흔든 이 현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희망은 솟아나는 법, 아버지를 위해 인삼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레아의 모습은 여느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키워왔던 꿈의 실현이 코앞에 있을 때 왜 하필 아버지가 아프신지, 공평치 못한 인생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아픈 아버지가 안쓰럽지만 축구 선발전에도 가고 싶은 레아의 마음을 이기적이라고 욕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레아는 지금 삶의 골대 정면에 서 있습니다. 축구장에서는 시원스럽게 나왔던 프리킥이 삶에서는 어렵기만 합니다. 물러설 수 없는 운명의 골대 앞에서 레아는 주저하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혼자라고 느끼지만 레아의 옆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레아와 함께 힘껏 공을 차보지 않을래요? 지금 책장을 펴고 말이에요.
- 부명고등학교 문학교사 정혜선 (modiglia@hanmail.net)
『빵과 장미』, 캐서린 패터슨 지음, 문학동네 (고1부터)
충실성 5,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4
아빠, 엄마가 회사 파업에 참여하거나 시민 집회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 갈등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을 때,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에 빠져 있으며 무엇을 염려하고 어떻게 행동할까? 또 부모님에게 벌어진 일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때론 함께 겪으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빵과 장미』라는 아리따운 제목의 책은 이런 의문들에 답을 주는 책이다.
100년 전 미국에서 일어났던 한 도시의 파업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월급을 깎지 말아달라는 파업에 온 마음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엄마, 그리고 그 위험한 일에 엄마가 참여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모범생 딸 로사!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키고픈 엄마의 열정과 침착하고 반듯한 로사의 아름다운 글씨가 만나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라고 하는 멋진 구호가 탄생한다. 엄마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하루하루 살얼음 밟듯 살아가는 로사는 급기야 동네 아이들과 함께 버몬트로 보내지게 되는데, 다행히도 그 곳은 안전하고 먹을 것이 풍족한 곳이다. 로사는 버몬트에서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빵’과 ‘장미’ 모두를 경험하게 된다.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제이크와 버몬트의 노인이다. 아빠로부터 받은 거라곤 매자국과 처참한 임종 밖에 없었던 소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버몬트의 노인! 제이크는 노인 부부와 함께 지내면서 따뜻하게 먹을 수 있게 되고, 노인이 차가운 돌에 새긴 살아있는 듯한 꽃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제이크는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빵과 장미! 그것은 아이들이 갈등과 모순에 찬 세상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이다. 집집마다 구수한 빵굽는 냄새가 하굣길의 아이들을 손짓하여 부르고, 창문마다 터져 나오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족의 따스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면 세상에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아이들은 비로소 행복할 것이다.
- 영원중학교 국어교사 서영미 (symheart@hanmail.net)
『껍질을 벗겨라』, 조앤 바우어 지음, 시공사 (고1부터)
충실성 5,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4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이어 제 4부라고 부른다. 언론 본연의 역할이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기에 언론의 자유와 정의로움의 여부가 그 사회의 만주주의를 평가하는 주요한 척도가 된다. 이 책은 미국 뉴욕 주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유령 소동을 통해 이러한 언론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헐값에 땅을 사들여 돈이 되는 유령 테마 파크를 짓기 위해 거대 부동산 개발 업체가 지역 언론을 사주하여 벌이는 유령 소동을 막아내기 위해 학교 신문 기자들이 펼치는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거대한 권력 앞에 지방 소도시 농장주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고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하지만 진실만을 보도하는 '껍질'이라는 신문을 통해 마침내 거대한 광고주를 등에 업은 지역 언론을 밀어내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고향땅을 지키기 위한 위대한 승리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학교 신문 기자 힐디 비들이 전직 신문기자 베이커를 통해 진실만을 보도하는 진짜 기자로 태어나는 과정에 있다.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올곧은 기자로 탄생하는 과정을 통해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심과 기자가 지녀야하는 정신을 잘 전해주고 있다.
그동안 직업세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성장소설들은 적지 않았지만 이 책만큼 직업인의 윤리의식을 청소년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작품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껍질을 벗겨라』를 통해 학생들이 정보 과잉시대에 가장 빠른 정보를 전해주는 신문이 좋은 신문이 아니라 가장 정확히 바른 보도를 할 수 있는 신문이 비로소 신뢰받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기 바란다.
- 경문고등학교 역사교사 박범철 (parkbch@hanmail.net)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 이익 지음, 돌베개 (고1부터)
충실성 5,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5
이익의 『성호사설』. 수업시간에 많이 들어본 이 작품을 실제로 접하기는 처음입니다. 조선 영조 때 이익이 평소에 지은 글을 모아 엮은 책으로 천지(天地)ㆍ만물(萬物)ㆍ인사(人事)ㆍ경사(經史)ㆍ시문(詩文) 따위의 부문으로 나누었으며, 30권 30책의 방대한 분량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방대한 분량 중에서 엄선하여 엮어낸 것이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입니다.
『星湖僿說』에서 ‘僿’는 잘게 부수다, 성의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선집이기에 잡스러운 이야기는 걸러내고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펼쳐 나갑니다. 그 먼 옛날에 이토록 다양한 서적들을 언급하며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이익의 글들을 보며 우리 시대의 최대 이슈인 “논술”을 떠올렸습니다. 오래 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의 모범답안을 모아 펴냈던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를 읽었을 때의 부러움이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로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표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느낄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용기를 불어 넣어 줄 것 같습니다. 또한 책의 제목에 걸맞게 병아리나 꿀벌에서부터 천문 역법, 천주교 교리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체계적이고 높은 식견을 가진 이익에 대하여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각주를 이용한 편역자의 상세한 해설이 고전에 대한 부담을 줄여 줍니다. 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 금방 읽을 수 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들입니다.
- 가람초등학교 사서교사 김은정 (haeggot8@naver.com)
『마르셀로의 특별한 세계』, 프란시스코 X. 스토크 지음, 보물창고 (고2부터)
충실성 5,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5
마르셀로라는 이름의 고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시선을 갖고 있다. 그는 또래의 그 어느 아이들에 비해, 아니 이 세상을 ‘효과적’으로 살아가는 여느 어른들 누구보다도 내면적이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나무의 열매를 먹고 나서 자기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왜 부끄러워했나요?”라고 묻고, “어떻게 섹스가 나쁘게 쓰일 수 있는지” 물으며, “이렇게 고통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사유한다. 그렇게 순수하면서도 내면적인 눈으로 거침없이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다.
그런데 이 아이는 낯선 곳에 지도가 없으면 혼자 걷지 못하고, 억양 변화를 주지 못하고 말하며, 사람들의 말과 표정, 단어의 은유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곤란을 느낀다.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는 데에는 장애가 있는 것이다. 그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자, 이쯤 되면 우리는 마르셀로를 장애인이라고 부르며 한 수 낮춰 대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와 조금 다른 인식 체계를 가진 친구로 대해야 할까? 교사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져봄직하다.
특수학교에 다니며 세상과 관습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꾸준히 익혀온 마르셀로는 고2 마지막 방학에 아버지가 다니는 법률회사의 우편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현실 세계’의 원리와 부딪쳐 무사히 적응해내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시작하게 된 우편실 생활은 그러나 뜻밖의 도전들에 부닥치게 되고, 마르셀로는 혼란을 느끼고 갈등하면서도 훌륭히 극복해낸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마르셀로의 고민과 혼란을 따라가면서 사랑의 의미, 정의의 의미, 선택한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꿈을 새롭게 발견한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다.
- 의정부공업고등학교 국어교사 김미경 (deepsky11@hanmail.net)
< 인문 ․ 사회 > - 7종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 이남석 지음, 사계절 (중1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4, 복합성 4
수업 시간에 『운영전』을 가르친 적이 있다. 『운영전』은 궁녀 운영과 김진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담은 고전 소설이다. 궁궐에 갇혀 임금의 여자로 살아야 하는 궁녀지만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아마 사랑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려고 한 것을 아니었을까?
과거나 현재나 사랑은 우리에게 늘 큰 화두다. 청소년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해 주는 노래, 영화, 드라마에서 사랑 이야기가 빠지면 재미가 없다. 연예인을 보면 열광하고,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학생을 보면 사랑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그런데 막상 사랑에 대해 가르치라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으레 뻔한 말을 하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다. 그저 어른이 되면 다 안다는 어른들의 말만 들었을 뿐이다.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에는 십대가 알고 싶은 사랑과 성에 관한 책이다. 사랑과 성에 관한 12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쓴 책이다. 사랑에 호기심 많은 중학생의 입장에서 글을 서술하고 있어서 학생이 읽으면 공감할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관해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있어서 성인이 읽어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사랑을 하고 싶거나 사랑을 하고 있는 누구나 읽을 볼 만한 책이다.
덧)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사랑을 만드는 비법도 소개되어 있으니 끝까지 읽어보시길…….
- 창문여자중학교 국어교사 조영수 (notshy0120@paran.com)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 탁석산 지음, 창비 (중2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4,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4
나는 초등학생 때 막연하게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물리 수업에 흥미가 많아서 물리학을 전공하려고 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꿈이 급격하게 바뀐다. 적성 검사 결과 과학 분야가 나와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게 문과를 선택하라는 부모의 권유도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나는 책으로 둘러싸인 연구실에서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꿈꾸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때까지 지금처럼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과 서로 교감하는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은 별로 없었다.
이 책을 쓴 탁석산 선생님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진로에 대해 고민한다. 그 분은 명문대 자연계열에 합격한 후 적성에 맞지 않아 대학을 자퇴한다. 군대를 다녀온 후 고미술을 전공하려 했으나 내신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포기한다. 그리고 영어를 전공하지만 졸업할 때까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 후 철학과 대학원을 진학한 후에야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말한다.
탁석산 선생님이 쓴 이 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탁석산 선생님답게 명쾌하고 뛰어난 감각으로 직업과 진로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진로를 정하는 데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할 것이다.
직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은 평생 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지금처럼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고, 평균 연령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 가지 직업을 끝까지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 이 책을 보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고등학교 진학 지도를 하면서 이 책을 학생에게 권해주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 창문여자중학교 국어교사 조영수 (notshy0120@paran.com)
『덤벼라 빈곤』, 유아사 마코토 지음, 찰리북 (중3부터)
충실성 5,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4
덤벼라, 빈곤! 책 제목 치곤 보기 드물게 씩씩하다. 어떻게 빈곤을 이겨낸다는 걸까? 언뜻 제목만 보면 이 험한 세상에서 경제적 빈곤을 이기고 살아남는 무슨 생존 비법이라도 담겨있는 책 같다. 『덤벼라 빈곤』이 빈곤에 대해 하이킥을 날리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하이 킥은 빈곤 그 자체 보다 우리가 흔히 갖는 빈곤에 대한 선입견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통쾌하다.
지은이 유아사 마코토는 빈곤의 원인을 의자 뺏기 놀이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 10명의 사람이 8개의 의자 주위를 돌다가 노래가 끝나면 빨리 앉는 게임. 그래서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을 “느리니까, 자심감이 없어서” 등의 자기 책임론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 현대 일본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정말 능력이 없고 게을러서 일까? 지은이는 이번에 두 번째의 의자 뺏기 게임을 제안한다. 살아남은 8명의 사람에게 이번에는 6개의 의자를……. 자, 이번에도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만이 의자에 앉을 수 있을까? 여기서 마코토는 기회의 평등이 잘 보장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사회에서 흔히 부모의 부, 지위, 외모 등, 태어날 때부터의 밑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지적한다. 따라서 빈곤의 사슬에 빠진 사람들이 빈곤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은 자기 책임론이 아니라 NO라고 말 할 수 있는 자아에서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저자가 모든 빈곤과 불행의 원인을 사회 구조의 잘못 탓으로 돌리는 극단적 사고의 소유자가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은이는 동경대 대학원에서 순탄하게 공부하다가 뜻한 바 있어 빈곤 퇴치 활동에 뛰어든 사회 활동가, 상담과 소통을 중심으로 한 그의 빈민 운동은 사회적으로 큰 반응을 일으켰고 민주당 정부의 사회 정책 수립에 자문 역할까지 맡았으니. 그 사고와 행동이 융숭 깊은 이라 할 만하다.
사회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사람들을 조직하고 용기를 주며, 소통을 나누고, 주어진 법과 제도를 활용해야 하는가를 조곤조곤 알려주는 뒷부분에서 지은이가 실은 이론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를 개선하려는 실천형 사회 운동가임을 알 수 있다. 책 뒷머리에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대학 강사, 우석훈 선생의 해제가 신뢰감을 준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은이는 진심으로 이런 눈빛을 던졌다는데,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우석훈 선생의 지적, 정말 귀 기울일 만한 말이다. 이 책은 사회 현상을 구조적으로 들여다보고, 그 원인과 대안을 모색할 때, 건조한 이론보다 뜨거운 진정성과 순수한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깨닫게 한다.
- 숭문중학교 사회교사 백택현 (enhae-55@hanmail.net)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1,2』, 한호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중3부터)
충실성 4, 가독성 4, 진실성 4, 대표성 5, 확장성 4, 복합성 5
신화가 현대에 어떻게 살아 있는지 수많은 사진과 일러스트, 이야기들을 서로 얽어 쓴 새로운 형식의 그리스·로마 신화 탐색 기행서다. 미술 디자이너인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며 서구 곳곳에 뿌려진 그리스·로마 신화의 흔적을 찾고 이를 사진으로 찍거나 직접 그림으로 그려내 책으로 쉽게 제시해 주었다. 덕분에 무심히 넘어갔을 서구 문화의 곳곳과 일상의 틈과 짬을 부담 없이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을 그저 서구의 문화와 일상을 그리스·로마 신화와 평면적으로 연결하는 정도로 본다면 곤란하다.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만의 입심을 발휘하여 아는 것 많은 이웃집 아저씨의 왕수다처럼 풀어내고 스핑크스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서구의 풍경 속에 나타나는지 사진들을 드민다.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서양은 물론 우리나라에까지 자리 잡은 신화의 현주소를 찬찬히 만끽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왕년의 베스트셀러였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의 저자답게 틈나는 대로 관련되는 영어 표현들도 담아내고 있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부담 없이 보고 읽으며 서양의 일상과 문화 속에 숨어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새롭고 깊게 읽어갈 수 있다. 신화와 삶, 문화 사이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그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따져보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행서와 인문서를 가볍고 부담 없이 잘 묶어냈다.
- 숭문고등학교 국어교사 허병두 (wisefree@empas.com)
『그들이 위험하다』, 존 팰프리, 우르스 가서 지음, 갤리온 (고1부터)
충실성 4, 가독성 4, 진실성 4, 대표성 5, 확장성 4, 복합성 5
“청소년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을 걱정해야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의사 결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다. 적합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얼마나 많은 능력 양의 정보에 노출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정보가 많은 상태에서 내린 결정일수록 전반적인 질도 높아지는 법이다. 너무 적은 정보를 토대로 내린 결정을 내리면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거나, 중요한 정보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정보의 양과 의사 결정의 질 사이에 존재하는 긍정적 상관관계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단계에 다다르면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진다 해도 이를 처리해 통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추가 정보가 오히려 정보 과부하로 이어질 수 있고 혼란, 좌절, 공항 심지어 마비 같은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성인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도 선택의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행동 경제학이 가르쳐 주듯이 대안이 많을수록 아예 결정을 내리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181~182쪽 중에서)
책 제목이 도발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호기심을 당긴다. 원제는 Born Digital. 그러나 책 제목처럼 ‘그들이 위험하다’는 말에서 보듯이 그들은 분명 청소년들이다. 미디어 세계에 푹 빠져 있거나, 1인 매체에 빠져 있거나 어제도 밤새 게임에 빠져서 이제 겨우 눈을 부스스 뜨고 나오는 바로 그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종들이 쏟아져 나온다. 기종에 따른 새로운 기능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영역을 거침없이 넘나들고, 결합하여 쫓아내는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보고 듣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다. 청소년들의 손가락은 늘 바쁘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왜 위험한지? 그리기 그들의 피부처럼 붙어 있는 정보매체들이 왜, 그들에게 필요하고 위험한가에 대한 논의는 늘 부족했다. 이 책이 그러한 갈증에 목을 축여 준다. 책을 넘기며 읽어 갈수록 주변 매체들과 아이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고 그 이유가 분명하게 이해된다. 기성세대가 그들의 행동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위험한 생각일까?
- 화정초등학교 교사 이정균 (le403@chol.com)
『감성 지식의 탄생』, 김진혁 지음, 마음산책 (고1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4, 대표성 5, 확장성 4, 복합성 4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른 적이 있고, 나처럼 지독한 문자 우월주의자는 아직도 믿음이 가지 않는 매체이기도 하다. 영상이란 얼마든지 조작이나 과정이 가능하고 편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쳐 본질을 왜곡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도 한다. 화면에 비쳐진 한 두 컷 장면과 소위 뜬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누리는 사회적인 대우는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매체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가운데서도 유독 하나는 눈에 띄는바, 그것이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것도 학생들이나 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들이나 본다는 교육방송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대박’났는데 그것이 단 5분 이내로 끝내고 빠져 나가는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학교 사회에 새로운 ‘교재’로 자리 잡았고, 타 방송에 미치는 영향도 대단하다. 이 책은 이 프로그램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며, 방송 하나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교재이기도 하다. 자료를 모으고, 선별하고, 선택하고 거기에 감성과 논리와 지식을 버무려서 임팩트하게 포장하고 전달하여 찡하게 만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지나면 그만인데 이 책은 그러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흥분하는가?
우리가 흔히 지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영구불변할까?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가 요사에 전자 매체가 흘러넘치는 시대에 존재할 수 있을까? 대체 지식은 오로지 논리와 차가운 이성만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런데 사람들이 따뜻한 털장갑과 같은 감성에 기대려고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이 책은 차가운 전자매체인 TV를 통해 사람들에게 진리와 양심 그리고 소외되기 쉬운 지식을 따뜻하게 덥혀서 채워주고 있는 또 다른 지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가치 있는 책이다.
- 화정초등학교 교사 이정균 (le403@chol.com)
『왕의 밥상』, 함규진 지음, 21세기북스 (고2부터)
충실성 5,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5
왕의 밥상이라…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가득 차려진 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조선조 중종시대에 수라간을 배경으로 했던 드라마 대장금과 대령숙수가 등장했던 식객이 떠오른다. 최고의 음식과 맛을 매일 즐기는 왕을 상상하면서 책을 펼쳤다. 그러나 왕은 먹는 즐거움조차 온전하게 사적으로 즐길 수 없었던 존재였고, 밥상까지도 유교적 사상이 깃들어 있어 공적,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부제 ‘밥상으로 보는 조선왕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왕의 먹을거리를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의궤 등 역사적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스물일곱 왕들의 밥상을 분석했다. 그들이 밥상에서 보인 행동거지, 식습관 등을 통해 당시 통치 윤리와 연관을 시켰고, 왕의 치세(治世)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시각의 책이다. 익히 읽어온 전쟁이나 당파 싸움으로 얼룩진 역사가 아니라 밥상을 소재로 하여 왕실의 모습이 가깝게 느껴지고 인간적인 면면을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왕의 밥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왕의 밥상은 팔도에서 바친 식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식재료의 상태를 보고 각 지방의 고충과 백성들의 생활사정을 두루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언론 미디어였다. 나라가 재난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왕은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아예 밥상을 물리는 감선, 고기 반찬을 줄이는 철선을 시행했다. 그리하여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자신의 부덕함을 스스로 반성하였다. 왕 자신의 배만 채우는 밥상이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먹기를 지향하는 생각하는 밥상, 배려하는 밥상이 된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화두이고, TV 프로그램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건강한 밥상, 자연식 밥상을 소개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패스트푸드에 노출되어 있고 잘못된 식습관으로 몸과 마음을 해치고 있다. 어떤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가져야 할 것인지와 먹는 일을 단순하게 건강을 유지하는 일에서 벗어나 윤리적으로 먹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산본고등학교 국어교사 이효선 (sunnysaem@hanmail.net)
< 과학 ․ 예술 > - 12종
* 과학 - 9종
『이덕환의 사이언스 토크토크』, 이덕환 지음, 프로네시스(웅진) (중2부터)
충실성 5,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4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 수학 공식 하나 없이 물리학을 강의할 정도로 과학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했던 과학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들은 이야기라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공식을 외우고 적용하는 것이 과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과학은 어렵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쉽게 설명하면 좋다. 하지만, 과학의 본질은 저 멀리 버려둔 채, 무작정 쉽게만 설명하는 책은 과학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과학의 왜곡을 걱정하는 과학자가 쉬우면서도 과학의 본질을 보여주는 책을 썼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쉽게 풀어쓴 과학책은 최근 들어 부쩍 많아졌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들과 다르다.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서 쉬운 과학책을 보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필자는 과학지식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과학 교육은 DNA를 가르치기만 했지, DNA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즉, 개념과 발견과정만 설명했을 뿐, 정작 그 개념을 아는 것이 어떤 면에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가치교육이 없다. 과학지식은 시간이 흘러가면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보다는 ‘과학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가치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과학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세계를 보는 시각(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을 모르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되고, 과학을 알아야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
- 환일고등학교 국어교사 홍승강 (stickhong@naver.com)
『곤충의 밥상』, 정부희 지음, 상상의숲 (중3부터)
충실성 5,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4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행운아였다. 어린 시절을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집 앞에 있는 밭에는 호박이며 가지, 고추 등의 채소가 널려 있었고, 마당에서는 토끼와 강아지를 길렀다. 초등학교 때 한 번은 집에 오는 길에 잠자리를 잡으려다 가방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잠자리에 정신이 홀려 가방을 어디에 벗어 두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물론, 집에 와서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다. 그래도, 잠자리는 잡았으니 위로가 되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풀밭 공터와 뒷산을 헤집고 다니며 자연스레 자연을 접했던 기억을 새록새록 되살려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이 불러일으킨다. 처음에 이 책을 본 느낌은 곤충도감이나 학술서적 같아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다. 게다가 무게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가격도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한 장 두 장 넘겨가며 곤충들의 세계 속으로 푹 빠져 들었다. 바로 어린 시절 내가 뛰어놀던 그 곳에 다시 서 있는 기분으로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입니다.’식의 경어체를 사용해서 친밀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무엇보다도 과학자의 세심한 관찰력에 탄복을 해가며 다음 장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자연을 휘저었던 나에게는 공감이 많이 되었지만, 흙을 밟으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곤충은 어떤 느낌일까?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고2 자연계 학생들)에게 ‘곤충하면 어떤 생각이 나니?’하고 물었더니, ‘개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요, 파브르요, 곱등이요’ 등을 외친다.
주로 아이들은 사진이나 책을 통해 곤충들을 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연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연의 신비로움과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다. 자, 그럼 추운 겨울이지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곤충들의 밥상을 한 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세심해진 자신의 관찰력에 모두들 놀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매력이다.
- 환일고등학교 국어교사 홍승강 (stickhong@naver.com)
『오늘의 과학』, 곽영직 외 지음, 사이언스북스 (고1부터)
충실성 5,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4
‘과학’하면 우리 일상 속에 함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멀게만 느껴지는 신비로운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 우리가 입고 있는 옷 등 우리 삶의 모든 것이 과학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숲 속에 살고 있어서인지 우리는 과학의 본질보다는 과학 지식이 과학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과학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책은 매일 1편의 글을 통해 과학이라는 세상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단순한 과학 지식의 정보 전달의 차원을 넘어 ‘과학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를 보여주고 있다. 과학적 호기심, 상상력, 관찰력 그리고 인내력과 같은 과학의 특징들을 보여주며 물리 산책, 생물 산책, 인체 기행, 수학 산책, 이미지 사이언스 등 총 5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우리가 사는 세상 속 과학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과학’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왜일까?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물리는 수학보다도 더 어려워요, 문제마다 풀이 법이 달라서 혼란스러워요, 이해가 잘 안 돼요, 공부해도 성적이 안 나와요.’ 고2 자연계 학생들의 말이다. 역시 우리 과학 교육은 지식 위주이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한 과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과 성적을 연관 짓는다면 세상의 그 어떤 학문도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과학이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학생들이 이 책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시험지에 나오는 과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과학이 얼마나 매력 있는 학문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 환일고등학교 국어교사 홍승강 (stickhong@naver.com)
『의학적 상상력의 힘』, 허정아 외 지음, 21세기북스 (고1부터)
충실성 4,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5
의학(醫學)과 상상력은 무관하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은 명백히 상상력의 산물이다. 실제로 의학의 역사는 의학적 상상력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 책은 프롤로그인 ‘의학,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다’와 에필로그인 ‘상상력, 미래 의학을 위한 원동력’으로 앞뒤를 열고 닫으며 그 안에 7편의 글을 담고 있다. ▶ 1부 의학, 상상력이 혁명을 부른다 : 역사에서 보는 의학적 상상력(이재담), 수술실에 들어온 Dr. 로봇(나군호), 의학, 뇌의 영토를 점령하다(김재진), 의학, 예술에게 마음을 열다(허정아) ▶ 2부 의사, 상상력으로 사람을 살린다 : 의학,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이자경), 의학, 윤리의 눈물을 흘리다(이일학), 인간적인 의학을 위한 상상력(안덕선) 등.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의학과 상상력의 상관성을 역사와 테크놀로지, 뇌과학, 예술, 문학, 윤리 등의 다각적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실제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개최한 심포지엄 ‘의학적 상상력, 의학의 미래를 열다’를 모태로 삼은 책이니 요즘 식으로 말하면 통섭과 융합의 생생한 연구 성과를 보는 셈이다.
이들이 모인 것은 지금의 의학교육이 의학의 기본인 상상력을 잃어가게 만들고 있다는 데 대한 비판적 실천이다. 의학적 상상력이야말로 앞으로 해결할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동력임을 떠올리면 이러한 노력이 왜 중요한가 금세 깨닫게 된다. 나아가 의학적 상상력이야말로 환자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능력으로서 의사를 의사답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기본적 상식도 되새기게 해준다.
그저 편한 직종으로서 의사를 선택하는 학생들, 의학은 그저 맹목적으로 암기 대상일 뿐이라고 오해하는 청춘들에게 이 책은 바람직한 의학도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하려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쉽고 흥미롭게 깨우쳐 준다.
- 숭문고등학교 국어교사 허병두 (wisefree@empas.com)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 가마타 히로키 지음, 부키 (고1부터)
충실성 4, 가독성 4, 진실성 4,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5
얼마 전 이덕환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적이 있다. 그 분이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이덕환 선생님의 답은 ‘과학(기술)’이었다. 인간만이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킬 줄 알고, 그 원동력이 과학이라는 말씀이셨다. 국어교사인 내게 그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만큼 과학은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힘을 지녔다는 것이다.
과학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이다. 이 책에서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을 소개하고 있다. 본격적인 진화론 연구의 시작을 알린 『종의 기원』에서부터 세계 지도를 보고 직관적으로 대륙이 이동한다는 것을 밝힌 『대륙과 대양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과학 분야에서 고전이라 할 만한 책을 14권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책을 쓴 필자의 일생을 짧게 서술하고, 책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도 담고 있어서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게 과학책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각 장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소개해서 과학책 읽기에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해 준다.
나는 예전에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책을 추천한 적이 있다. 이 책은 고 장영희 선생님께서 서양 고전 문학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도록 쓴 수필집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느새 고전을 한 번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도 그런 책이다. 겨울 방학 과학책 읽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기를 바란다.
- 창문여자중학교 국어교사 조영수 (notshy0120@paran.com)
『아파야 산다』, 샤론 모알렘 지음, 김영사 (고2부터)
충실성 5,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5
“아파야 산다? 무슨 제목이 그래?”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이다. 그리고 ‘질병은 재앙이 아닌 축복이다!’라는 표지에 있는 글을 보고는 또 한 번 갸우뚱한다. 이 책은 몸을 아프게 하는 유전자, 하지만 그 유전자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파격적인 주장이 담겨 있는 인체생리학, 신경유전학, 진화의학 박사인 샤론 모알렘의 책이다.
건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건강할 때는 모르지만 한 번 아프고 나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는 자신의 몸을 살피게 된다. 얼마 전 ‘행복 전도사’로 알려진 최윤희씨의 자살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던 그녀는 ‘홍반성 루푸스’로 700가지가 넘는 통증에 시달려왔다고 하는데, 그 고통이 가히 짐작도 가질 않는다.
저자는 할아버지가 앓고 있던 혈색증을 물려받았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해를 끼칠 개연성이 높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 많은 걸까? 사람의 진화 과정에서 해로운 특성은 없어지고 요긴한 특성은 살아남는다는데, 왜 이 따위 유전자는 내버려둔 채 진화가 된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어 자연스럽게 의학을 연구하는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그 의문은 이 책의 주제가 되었다.
소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데 ‘철(鐵) 들면 죽는 병, 빙하기를 이겨낸 당뇨병, 콜레스테롤의 딜레마, 말라리아를 부탁해, 세균과 인간, 바이러스의 재발견, 콩 심은 데 팥 나는 사연, 죽어야 사는 생명의 대원칙’ 이렇게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질병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전문적인 용어와 지식이 많지만, 질병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흥미롭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으며 위트가 곁들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 산본고등학교 국어교사 이효선 (sunnysaem@hanmail.net)
『물의 자연사』, 앨리스 아웃워터 지음, 예지 (고2부터)
충실성 5,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5, 복합성 5
비버라고 혹시 민물에 사는 포유동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이름이 낯설다면 서양 초상화 속의 지체 높은 자들이 거만하게 걸친 모자가 거의 비버 털로 만들었다는 것쯤은 알고 넘어가자. 한때 아메리카 대륙 강가에 득실거렸으나 광적인 모피 사냥 때문에 이 가련한 동물은 거의 멸종 상태가 되었단다. 냇가 근처의 나무와 수초로 천연 댐을 만드는 이 비버가 사라지면서 무려 3000만 평방 마일의 자연스런 습지도 사라져 버렸고 아메리카 민물 생태계의 풍요로움도 종말을 고했다는 것이다.
『물의 자연사』는 인간의 탐욕이 북 아메리카 생태계에 어떤 치명적 해악을 주었는가에 대한 장대한 보고서라 할 만하다. 삼림의 벌채로 강물에 떠내려 오는 나뭇가지가 줄면서 강의 풍요로움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잔인한 버팔로 학살과 프레이도그라는 설치류의 무자비한 추방이 미국 초원의 지하수를 어떻게 말라버리게 했는지, 진주를 채집하기 위해 미시시피 강바닥을 훑다시피 하며 홍합을 쓸어버린 행위가 어떻게 강을 오염시켰는지를 꼼꼼하게 증언한다.
사실 인간의 탐욕이 생태계를 훼손시켰다는 식의 서술은 절박하긴 하나 새로울 것이 없는 애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물의 자연사』의 매력은 이 훼손의 과정을 지질학, 기후학, 생물학. 화학 등 모든 생태 과학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연쇄 반응적인 과정을 눈에 잡힐 듯이 생생히 묘사하는데 있다. 게다가 인간 탐욕의 실상을 경제학, 인류학적 시각을 동원해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어 인문 사회과학적 안목을 키우는데도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질문. 재미있게 읽히는가? 약간 모순된 답변이지만, 지루하지만 재미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집요할 정도로 반복되는 과학적 설명은 중간에 책을 내려놓게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싶어 다시 책을 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으로도 작용한다. 한꺼번에 다 읽으려 하지 말고 나누어 읽으면 좋을 듯싶고. 특히 부모님과 자녀가 찬찬히 같이 읽어 내려가면 이야기 나눌 거리가 많을 것 같은 책!
- 숭문중학교 사회교사 백택현 (enhae-55@hanmail.net)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권오길 외 지음, 사이언스북스 (고2부터)
충실성 4, 가독성 3, 진실성 4,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5
이 책은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TP)가 발행하는 웹진 『크로스로드』의 에세이를 모아 펴낸 책이다. 웹진 『크로스로드』는 온라인 공간에서 과학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과학자들이 대중과 사회와 소통하고 꿈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장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웹진의 특성상 수많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주로 과학 관련 글들이지만 전통적 성격의 과학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의 과학은 꿈이고, 이야기이고, 소통이다. 인문 학자와 자연 과학자가 펼치는 제각기의 꿈과 이야기가 일반 독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가 그들 서로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과학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과학은 당연히 과학적 시각으로, 정치도 과학적 시각으로 심지어 종교까지도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어려움,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촛불 집회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성찰, 그리고 첨단의 과학적 연구의 성과 등을 담은 이 책을 차근차근 읽다보면 우리 삶과 우리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저절로 생길 것 같다.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창의 ․ 인성’을 위해서는 자기 주도적이면서도 타인과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이러한 능력이 인문학도나 과학도 모두에게 필수적이다. 사실 이러한 능력은 학문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필요하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역사상 뛰어난 정치지도자들이나 과학자들은 정의나 진리의 수호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새로운 정의와 진리를 필요로 한다. 몇몇의 뛰어난 정치지도자나 과학자들만이 정의나 진리를 외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보통 시민들이 정의와 진리를 외칠 차례이다. 외치기만 해서는 곤란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정의와 진리가 실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런 실천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과학적 성찰이다. 이러한 과학적 성찰을 위해 우리는 과학으로 꿈꾸고, 과학으로 이야기하고, 과학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이 책은 그 방법을 알려 줄 것이다.
- 현대고등학교 국어교사 김진황 (pinebrook@paran.com)
『건축 콘서트』, 이영수 외 지음, 효형출판 (고3부터)
충실성 5,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4, 복합성 4
평소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좋은 공연이 있다며 콘서트 하나를 소개해 주셨다. 그런데 이 콘서트, 제목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건축 콘서트! 총 5막 10장으로 구성된 이 콘서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사뭇 기대가 된다.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처음은 건축과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건축가가 어떤 상상을 어떻게 하는지, 건축에 대한 상상력은 어떻게 표출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건축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다. 곧 이어진 2막에서는 건축과 공간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한다. 인간이 존재하고 이용하는 공간이 새롭게 창조되고 변신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공간의 개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3막에서는 건축이 빛과 색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빛과 색의 영향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는데 가히 이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 하다. 빛과 색의 향연으로 콘서트의 절정을 보여주더니 4막에서는 우리에게 감정을 억제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현대사회에서 건축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 그리고 건축과 생태환경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문장과 문장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사유의 공간을 선물로 주고 있다. 템포를 최대한 늦추면서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이 시간은 나에게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5막에서는 건축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준다. 이렇게 공연이 끝남을 아쉬워하는 찰나 곧 앙코르 공연이 이어진다. 건축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건축과 문화와 예술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통찰력 있게 보여주며 이 공연은 막을 내린다.
공연이 끝난 후 내 마음속에 남은 여운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보고 싶다.
기승전결의 매력이 가득한 건축 콘서트! 저와 같이 가실래요?
- 안산화정초등학교 교사 류연정 (992452@hanmail.net)
* 예술 - 3종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 여행』, 강두필 지음, 아트북스 (중2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4
미술관 기행 책은 많이 있지만 본인의 여행 일지에 머물 뿐 그림 자체를 쉽게 알리려고 애를 쓴 책은 많지 않다. 또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쓴 책들도 읽다 보면 모두의 아이들을 위하기보다는 그저 자기 아이에게 바치는 책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이 책은 위의 걱정거리들을 통과한 멋진 책이다.
그림들의 목록은 ‘가디언’지 기자인 ‘조너선 존스’가 발표한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걸작 20>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문외한이라도 몇 번은 보았음직한 작품들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좋다. 처음 보는 작품들도 언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이는 우리가 예술 작품에 늘 노출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모르고 지나치는지를 말해준다.
그림 속 이야기와 미술사적 배경을 청소년 눈에 맞추어 이토록 쉽게 잘 설명해주는 책은 오랜만인 것 같다. 예술이란 당시의 사회와 사람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진정한 예술가는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는 의미가 깃든 작품을 만듦을 아들과 아빠는 눈과 대화로 깨닫는다.
아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책 곳곳에 나타난다. 따라서 예술 작품을 멋지게 감상하고 싶지만 3초 이상 그림 응시가 불가능한 뭇 남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또한 광고 전문가인 저자의 이력을 살려 광고 속의 명화를 곳곳에서 설명해 주는데 일상생활에 깃든 예술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그림을 보며 소위 ‘멍 때리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면, 생각에 잠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우리의 미래가 아주 훌륭해질 것이다. 물론 그 아이들이 예술을 즐기면서도 조금 안다고 잰 체하거나 남을 무시하지 않을 정도로 자라려면 이 책의 저자처럼 속 깊은 그림 안내자들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 창곡중학교 국어교사 허소혜 (ssoi0605@hanmail.net)
『나의 사랑 백남준』, 구보타 시게코 지음, 이순 (고1부터)
충실성 4, 가독성 4, 진실성 5, 대표성 4, 확장성 5, 복합성 5
한국이 낳은 위대한 현대미술가 백남준의 삶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tv 여러 대를 가지고 나부(裸婦)의 모습 같은 선정적(?) 화면을 틀어놓은 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위적인 예술 활동을 펼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훗날 구보타 시게코는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란 작품으로 백남준에 버금가는 현대 예술가로 자리매김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것이 tv의 내부회로를 조작해 화면의 색깔과 형태를 변형시키는 방법을 독학으로 깨우치고 개척한 비디오 아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남준을 비롯한 몇몇 예술가들이 모여 플럭서스(fluxus)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뜻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위예술장르는 1960년대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처럼 뉴욕에 한국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고 그의 예술 세계를 알아 줄 사람조차 흔치 않던 시대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이가 바로 아내 구보타 시게코였다. 이후 40여 년간 백남준과 함께하며 그녀는 제자이자 조수로서 함께하는 아내로서 남준의 예술에 동참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위대한 예술가 백남준의 예술이야기가 아니라 아내 구보타 시게코와의 사랑이야기이다. 백남준과 시게코는 플럭서스 커플이자 비디오 아트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음가 양, 달과 해, 요철과 같은 커플이기도 했다. 이 책이 그에 대한 예술적 조망만을 담았다면 추천하기에 주저했을 것이다. 2006년 백남준이 타계하기까지 옆에서 함께한 구보타 시게코 와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기에 어려울 것만 같던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가장 진솔하게 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되어 이 책을 추천한다.
- 경문고등학교 역사교사 박범철 (parkbch@hanmail.net)
『오동명의 보도사진 강의』, 오동명 지음, 시대의창 (고2부터)
충실성 4, 가독성 5, 진실성 5, 대표성 5, 확장성 4, 복합성 4
제목만 보면 왠지 시사성이 강한 보도사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들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지요? 그러나 이 책은 날카롭기 보다는 부드럽고, 차갑기 보다는 따뜻한 책입니다. ‘사진과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는 말을 건네며 현란한 사진 기술을 전하기 전에 ‘사진과 만나는 마음’을 먼저 말하고 있지요.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에 여러 번 스케치를 하고,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보여주고 싶은 것 과 말하고 싶은 것을 담아 전달하라고 말합니다. 특히 보도사진은 ‘널리 알리는 동시에 지도하는 사진’으로 ‘알릴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끌고 싶은 것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사진과 함께 사진을 설명하는 글까지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곧 사진 속에 찍은 사람 나름의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또 사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백일 사진을 보면 나만의 어떤 기억이 떠오르지 않나요? 중국 쓰촨성 지진 때 묻힌 모자(母子)를 담은 사진을 보면 스멀스멀 아릿한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하지요. 전직 대통령들의 스산한 모습들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사진 속에 숨겨진 마음들이 읽혀지기도 하나요? 달콤한 데이트의 모습, 여러 가지 표정의 골목길을 엮은 사진을 보면 부러움과 호기심이 불쑥불쑥 일어나기도 하지요. 이렇듯 저마다의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과 그 속에 담긴 마음을 읽어가면서 나만의 경험을 떠올리며 사진을 본다면 더 풍성하게, 더 깊이 있게 사진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자는 것이지요.
저는 이 책이 대학에서 사진관련 학과를 선택한 학생뿐만 아니라 전공과 상관없이 사진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도(글쓴이는 경제학과를 선택했지만 지금은 사진을 찍고 강의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네요.)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 보기에 멋지기만 한 사진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사진’, ‘다채롭고도 생생한 느낌이 피어오르는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거예요. 또 그런 사진들을 찾아보게 되고요. 자. 이제 책 속의 사진들처럼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느낌으로 가득한 통통 튀는 사진을 찍으러 길을 나서면 어떨까요?
- 양일고등학교 국어교사 이수정 (sjji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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