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의 시 세계

[이일배]

노천명의 시세계  

2008.05.21. 03:58

 

1. 머리말

1930년대의 두드러진 문학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여성작가들의 본격적인 등장과 함께 비로소 여성시인의 활약상이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 노천명, 모윤숙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여성시인은 초창기 여성시인들이 가졌던 수식어의 남발과 감상주의적 특성을 극복하고 남성 문인들의 전적인 후원 없이 시를 써갔다.
노천명(1912-1967)은 1935년 『詩苑』창간호에 시 <내 청춘의 배는>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한 이래 20여 년간 시 『珊瑚林』(1938), 『窓邊』(1945), 『별을 쳐다보며』(1953), 유고시집으로 『사슴의 노래』(1958)가 있고 수필집으로 『산딸기』(1948), 『나의 생활백서』(1954), 유고수필집으로 『사슴과 고독의 대화』가 있고 단편소설로는 『사월이』(1939), 『하숙』, 『외로운 사람들』, 『誤算이 있다』가 있다.
따라서 노천명이 남긴 시는 모두 172편이며 노천명의 시작품에 대한 논의는 전기적인 고찰이나 시의 경향, 개인의 기질 연구에 대한 것 등이 대부분이었고 최근에 오면서 시의 형식에 대한 문제와 바슐라르의 4원소론에 의한 내면적 상상세계의 분석 등이 연구되고 있다.
노천명 시연구의 방향은 대체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으로 大別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 노천명을 받아들인 사람으로 최초는 최재서이다. 최재서는 1938년 노천명이 시집『산호림』을 上梓하였을 때 노천명의 시를 '自制'라는 한마디로 요약하여 억제된 감정과 응축된 열정, 그리고 여성다운 섬세한 서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점에서 영국 여성시인 알리스·메이늘(Alice Meynel)과 비교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그 이후 이와 같이 언어의 절제, 감정의 극기라는 차원과 여성 특유의 애수와 고독을 심화시킨 개성있는 시인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과 사회적 시련으로부터 고독 속으로 침잠해 버린 평범한 감수성으로 시를 썼고 시인의 기질적인 문제에서 정서의 절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입장에서 비판하는 경우로 나누어져 계속 논의되고 있다.
이상의 논의들을 수용하면서도 지나치게 전기적인 사실에 집착하는 경우와 한국여성시단의 최초의 본격 여성시인이라 명명할 때에 오는 과장되거나 비호받는 여지는 없는지도 검토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오늘의 시점에서 냉정히 수용되어야 할 지적이다.
따라서 부분적으로 거론된 노천명 시의 내용적 특성을 총체적으로 정리해 봄으로써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공존하는 노천명의 시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2. 情恨의 전통성

한국시의 전통맥락이 情恨의 세계에 있음을 주지의 일이다. 정한은 우리민족 정서의 바탕이 되어 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인들이 민족적인 정한의 세계를 노래함으로써 개인은 물론 민족의 정서와 한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노천명 시인 자신도 이러한 민족 정서에 바탕되고 있으며 출생 및 성장 과정에서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 비석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냄으로써 가지는 환경적 요인과 독신녀로서 고독하게 살다 간 생애사적 편력등이 정한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한국시의 전통성은 님과 한이라는 서정성으로 집약된다. 특히 여성시의 의식 공간은 이러한 님과 한의 문제를 근저로 현대 여성시의 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열규 교수는 한의 개념을 문학의 원형질로 보았고 오세영 교수는 "한은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우호적인 감정과 배타적인 감정, 방어적인 감정과 공격적인 감정들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속에 상호갈등을 이루고 있다."고 했으며 허미자 교수는 "恨은 성취 불가능한 상황에서 체념과 미련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일어나는 갈등현상으로서 여성의 경우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매개로 하여 발생되는 삶의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정성은 의식적인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은 自慰나 忍從의 형태로 표출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일정한 소망의 충족과정, 즉 정신분석학에서 일컫는 願望實現의 한 장치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한의 세계는 님을 대상으로 한 이별과 눈물과 꿈과 신앙과 고독과 자기도취와 헌신적인 미덕에서 오는 것으로서 그것은 폐쇄된 도덕률 속에서 빚어진 정서라고 보았다.
조선시대 유교적인 전통사상은 이러한 한의 정서를 부녀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접목하게 했고, 그러한 한의 서정은 현대 여성시인의 한 바탕을 이루게 된 것이다.
노천명의 시에서도 정한의 전통성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용성은 노천명의 시세계를 주정적인 세계와 객관화된 향토적 세계가 거의 동시에 병행하여 나타난다고 했다.
첫시집 『산호림』은 노천명의 자전적인 기질이 그대로 나타나는 <자화상>, <사슴>, <고독>, <동경> 등의 시가 있다. 노천명의 자전적인 기질은 사슴과 같은 고독이며 장미의 사랑을 안으로 연소시키는 내향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기질적인 요소는 정한을 바탕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모자람을 노래하면서도 자기를 지극히 사랑하는 정과 한의 이율배반적인 조화와, 사슴의 처연한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되 슬픔의 한이 함께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시집 『창변』은 유년시절의 향수를 노래하는 情恨의 세계가 『산호림』보다 심도있게 노래되고, 제4시집 『사슴의 노래』에 오면 고독과 애수를 더욱 심화시킨 정한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가을 바람이 우수수 불어옵니다.
산이 몰아오는 비인 마차소리가 들립니다.
웬일입니까
내 가슴이 써―늘하게 샅샅이 얼어듭니다.

「인생은 짧다」고 실없이 옮겨본 노릇이
오늘 아침 이 말은 내 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황혼이 시시각각으로 닥아섭니다.
하루 하루가 金싸라기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님이야 뭐라던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던 밤을 도와 하게 하시오.
聰氣는 늘 지니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금싸라기 같은 날들이 하루 하루 없어집니다.
이것을 잠가둘 상아궤짝도 아무것도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낙엽이 내 창을 두드립니다.
차시간을 놓친 손님모양 당황합니다.

어쩌자구 신은 오늘이사 내게
청춘을 이렇듯 찬란하게 펴 보이십니까.
― <秋風에 부치는 노래> 전문

노천명의 시 세계는 감정의 절제라는 특성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설명적으로 고백하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유고시집 『사슴의 노래』에 오면 사랑에 대한 정직한 발언과 긍정적인 수용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아까샤」꽃 핀 유월의 하늘은/사뭇 곱기만 한데/「파라솔」을 접드시/마음을 접고 안으로만 들다//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이름모양 꼿꼿이 어러드러옴은/어쩐 까닭이뇨//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곻은데/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이야기해 볼 사람은 없어/「파라솔」을 접드시/마음을 접어 가지고 안으로만 들다//>의 <유월의 언덕>과는 많은 시리적 차이를 보여 준다. 자신에 대한 수긍, 청춘에 대한 예찬, 사랑에 대한 넉넉함, 시간의 소중함과 이루지 못한 청춘에 대한 회한이 함께 한다.
무심히 들어온 "인생은 짧다"란 말이 하루 아침에 가슴에 와 박히는 실존의 허무함이 첫연에서 노래되고 둘째 연에서는 아름다운 청춘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는 관조적 인생관의 그 여유로움이 있다. 셋째연에서는 남의 말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사랑에 충실하라는 뼈아픈 체험적 반성이 있고 넷째연에서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밤을 세워서 하라는 시간의 유한성을 경계하고 다섯째 연에서는 흘러가는 시간의 소중함과, 그 시간을 전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허무의지가 펼쳐지고 여섯째 연에서는 시간이 다 되어 타야 할 기차를 놓친 사람의 당혹함을, 마지막 연에서는 자신의 삶이 다해가는 마지막 순간에 청춘을 비로소 인식시키게 한 신에 대한 안타까움이 노래된다. 감정의 극기와 비약된 은유의 세계가 없고 충만된 감정의 표출과 직설 적으로 노래되는 인생의 덧없음과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 도도하게 노래되는 정직하고 겸손한 노천명의 고백이 있을 따름이다. <사슴>,<菊花祭>,<장미>,<悲戀頌>,<봄비>등에서 정한의 민족정서가 강하게 노래된다.

3. 향토성과 고향회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고향집과 고향의 전원적인 풍경은 노천명의 이상향이자 자신의 구원적인 공간이었다. 8세 나던 1920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모친의 고향인 서울로 이주하여 고향을 떠난그때부터 노천명의 낙원은 상실되었다. 때문에 노천명은 20년 동안의 시작활동에 줄기차게 고향회귀와 향토적인 전원의 세계를 갈구하고 그리워한 것이다.
<시골 두메 촌에서 어머니를 따라 달구지를 타고 이삿짐을 실리고 서울에 올라오던 그때부터 나는 이미 에덴 동산에서 내쫓겼다>고 시인 자신이 단언한 것과 같이 노천명에 있어서 서울은 자신의 이상향이 끝내 되지 못하였다.
이성교 교수는 이와 같은 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 천성적인 향토주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항상 현실을 죄악시하고 그러한 현실에서 떠나 고향을 부르게 된 이유라고 보았다.
조선시대부터 전원적인 향토시는 현실에서 끝내 이룰 수 없었던 시인들의 이상적인 의지가 승화되었던 역사성을 가진다. 노천명 역시 현실로서의 서울생활이 자신에게 치명적인 박해와 갈등을 연속적으로 주었고, 자신이 항상 피해자 의식으로 살아 온 탓으로 거부하는 도시로서의 서울로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고향의 전원적인 풍경과 그 분위기는 자신에게 있어 유토피아며, 영원한 정신적 안주의 본향이기도 한 것이다.
두 번째 시집, 『창변』은 이러한 고향회귀의 향토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서리 내린
지붕 지붕엔 밤이 안고

그 안에 꽃다운 꿈이 뒹굴고
뉘집인가 창이 불빛을 한 입 물었(含)다.

눈 비탈이
하늘 가는 길처럼 밝구나.

그 속에 숱한 얘기들을 줍고 있으면
어려서 잊어버린 집이 살아났다.
-<창변>에서

풀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나던 길섶
어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가잎나물 젓갈나물
참나물 고사리를 찾던--
잃어버린 날리 그립구나 나의 사람아
-<푸른 오월>에서

뒤울안 보루쇠 열매가 붉어오면
앞산에서 뻐꾸기 울었다.
해마다 다른 까치가 와 집을 짓는다는
앞마당 아라사 버들은 키가 커 늘 쳐다봤다.

아랫말과 웃洞里가 넓어 뵈는 촌에선
단오의 명절이 한껏 질겁고…
모닥불에 강냉이를 뒈먹던 아이들
곧잘 하늘의 별 세기를 내기했다.

강가에서 개(用) 비린내가 유난히
풍겨오는 저년엔 비가 온다는
늙은이의 천기예보는 틀린적이 없었다.

도적인 들고간 새벽처럼 호젓한 밤

개짖는 소리가 덜 좋아
이불 속으로 드러가 묻히는 밤이 있었다.
-<生家>전문

앞마당 '아리사 버들'은 노천명에 있어 구원의 사닥다리이다. <뒤울 안에는 사과나무가 있고, 앞마당엔 아버지가 즐겨 가꾸시던 키 큰 아리사버들이 늘어서 있던 우리집 - 그 시절에서 나는 한껏 행복했다>는 그의 『自 小傳』에서 밝힌 것과 같이 노천명에게 있어 그의 生家는 행복의 보금자리이며 영원한 향수로 남아 있던 유일하게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공간이다. 영원한 이상향으로 구원되고자 하는 객관적인 상관물로서 사닥다리는 '아라사 버들'이다.
모닥불과 별 세기의 동심적 낭만이 더욱 생가의 그림같은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끝연에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묻히는 밤'의 도피적 안락의 공간을 노래했다. '덜 좋아'서 퇴행할 수 있는 '이불 속'이 가능했던 노천명의 생가는 시 속에서 재현될 수 있었지만 끝내 현실적으로 재구축될 수 없는 생가의 상실에서 그의 주옥같은 향토서정의 고향회귀라는 시가 나올 수 있었다.
<生家>의 향토적 공간이 나무 끝, 강가, 그리고 확대된 새벽과 밤의 세계를 포함하는 우주적인 큰 넓힘이라고 하면 <푸른 오월>의 공간은 大地的인 모성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풀냄새가 향수보다 좋게 코를 스치던 길섶의 향토적 체취는 '활나물, 가잎나물, 젓갈나물, 참나물, 고사리를 찾던 어린 날'과 더불어 그리움으로 확산된다. 취각적 이미지가 서서히 그리움으로 확산되면서 '나의 사람'을 찾고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아니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는 시인의 향토서정을 노천명 시문학의 구원의지이기도 하다.
노천명은 고향의 추억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한다. 이 망향의 정이 그의 초기시 경향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향수는 인간의 근원적인 원형회귀와 관계되고, 특히 시어로 자주 쓰인 고향, 향토, 향수, 망향 등은 단적으로 향수에 이르도록 한 그의 기질을 잘 보여 주고 있다.

4. 절대고독과 구원의지

매우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이 시인의 작품은 4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조금도 진부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시를 관념이나 정감으로 배설하지 않고, 天命 특유의 고독과 향수를 事象으로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고독과 향수는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이며 일반화된 정서의 한 편향이다. 노천명의 시에서 유독 고독은 더욱 뚜렸하게 노래되면서 향수와 같은 그리움으로 승화된다. 그의 시에는 고독이 바탕되지 않은 시가 없을 정도로 보편화의 한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

변변치 못한 禍를 받는 날
어린애처럼 울고나서
고독을 사랑하는 버릇을 지었습니다.

煩雜이 이처럼 싱크러울 때
고독은 단 하나의 친구라 할까요

그는 고요한 사색의 호수가로
나를 달래 데리고 가
내 이지러진 얼굴을 비추어 줍니다.

고독은 오히려 사랑스러운 것
함부러 친할 수도 없는 것-
아무나 가까이 하기도 어려운 것인가 봐요.
-<고독>전문

1호실에 그들이 나를 맡기고 간지 며칠만에
두 소녀가 있는 내 집 안방이 이렇게도 그리울 수야-
바람도 나를 삼킬 기세로
잉잉대고 관 속 같은 흰 방안에
총에 맞은 메추리모양
나가 엎드려있다.

태양이 싸늘하게 부서지는 병상 위
무섭게 자리잡은 나의 공포여
엄숙한 눈동자로 창 밖을 내다 본다.

아무도 동행해 줄 수 없는 이 길에서야
나 온종일 성모마리아를 찾는구나
항시 함께 계셔주시는 이 있거늘
나 모르고 살아온 고독의 날들
아무도 나와 같이 해주지 않을 때,
말없이 옆에서 부축해주는 이-
인자하신 어머니, 성모 마리아여
-<흰 午後>전문

'고독'이 친구일 수 있고, 고독이 오히려 사랑스러운 것으로까지 비약되는데 시인의 고뇌가 있고 비애적인 즐거움이 있다. 즐거움 자체는 비애감을 동반하지 않는 것이지만 노천명 시인의 체질은 이미 즐거움 자체가 비애감과 고독감으로 합성된 특이한 즐거움으로 변모되어 있다. 따라서 고독이라는 말은 의인화 시켜서 시인과의 거리를 좁히고 세계와의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카타르시스의 한 양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고독과의 악수는 노천명이 즐겨 원용한 것이다.
두 번째 시집 『창변』에서는 <기댈대 없는 외로움이 박쥐처럼 퍼덕이면/눈감고 가다가/슬프면 하늘을 본다>는 여유를 가진다. 이것은 <사슴>의 "슬픈 모가지를 하고/먼 데 산을 쳐다본다"는 외로움과 같은 계열이다. 하늘을 향한 指向性과 '먼 데'의 지향성은 인간이 추구해 가야할 영원한 고향이며 그곳을 평화와 세계가 된다.
노천명은 그의 시를 통하여 고독을 이수하는 친구처럼 담담하게, 그리고 친숙하게 부르면서 자신의 지향성을 향해 찾아나서는 예리한 감각과 청순한 삶의 전부를 보여 주고 있다. 유고시집 『사람의 노래』에 이르면 그의 만년의 고독은 결국 종교의 구원의지로 변모 시켰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항시 함께 계셔 주는 이가 있음에도 모르고 살아온 고독의 날'들을 시화시킬 수 있는 구원의지로 변한다. 신인의 시가 종교성을 지나치게 띠게 될 때 문학성의 폭과 깊이를 저해하는 요소가 되겠지만 참다운 구원의지 없이는 문학은 위대해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노천명의 시문학에 있어서 절대 고독은 그 주제가 되고 소재 자체는 고향의 전원적인 향토와 사람들이 된다.

5. 감정의 극기와 응축된 열정

최재서는 노천명의 시를 '감정의 절제'로 이루어진 시라고 극찬했다. 그 이후 많은 비평가들에 의하여 노천명은 감정의 극기에서 오는 절제된 시어의 구사로써 그 특징을 보여 주는 여성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여성시의 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한의 세계는 자칫 넋두리와 같은 감정의 넘침으로 흐를 가능성이 충분하다. 기질의 문제인지 자신의 철저한 묘사적인 노력인지는 앞으로의 연구에 기대되는 바이지만 감정의 극기에도 불구하고 응축된 열정이 활화산처럼 나타나는 것도 특이한 요소로 지적된다. 얼음처럼 차고, 불처럼 뜨거운 것의 배합으로써가 아니라 간결한 감정처리를 하면서도 그 속에는 불붙은 질화로의 뜨거움이 계속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참아 못봐 도라서오며 듣는 기차 소리는
한나절 山人골의 당나귀 우름보다 더 처량했다.

鋪道우에 소리없이 밤안개가 어린다.
마음 속엔 곱비논 슬픔이 딩군다.
편―한길에 거롬이 안걸려
몸은 땅속으로 잦어들 것만 같구나.

거리의 푸라타―느도 눈물겨운 밤.
일부러 六曺앞 먼길도 돌았다.

길바닥엔 장미꽃이 피었다―사라젓다―다시 핀다.
海底의 소리를 누가 들은 적이 있다더냐.
- <돌아오는 길> 전문

하늘에 불이 났다.
하늘에 불이 났다.

도무지 나는 울 수 없고
사자같이 사나울 수도 없고
고은 생각으로 진여 씨불 것은 더 못되고
희랍적인 내 별을 거느리고

오직 죽엄처럼 처참하다.
가슴에 꽃았던 장미를 뜯어 버리는
슬픔이 커 喪章같이 처량한 나를
차라리 아는 이들을 떠나
사슴처럼 뛰어 단여보다.

고독이 성처럼 나를 두르고
캄캄한 어둠이 어서 밀려오고
달도 없어주

눈이 나려라 비두 퍼부어라.
가슴의 장미를 뜯어 버리는 날은
슬퍼 좋다.

하늘에 불이 났다.
하늘에 불이 났다.
― <사슴의 노래> 전문

노천명의 <사슴>은 감정의 극기로써 유명한 시이다. 자전적인 경향을 띠고 귀족적인 고고함을 돋보이고 있는 이 시는 많은 노천명 시 연구가의 분석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노천명 시의 특성으로 감정의 극기 내지 절제가 오히려 그의 뜨거운 감정적 열정을 도외시하는 한 편향을 만들어 온 것도 반성할 점이다. 따라서 그의 극기 이상으로 그의 응축된 열정은 자신의 감정을 범람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별하고 돌아서는 기차소리가 산골의 당나귀 울음보다 더 처량하고 밤안개가 어린 포도 위에 슬픔이 격해 땅 속으로 잦아들 것만 같은 고뇌 속에서도 돌아오는 길바닥에 장미꽃이 피었다 사라졌다 다시 피는 재생의 뜨거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의 극기라는 일반적인 그의 시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을 위해>에서는 소극적이지만 뜨겁고, 차디찬 몸짓으로 뜨거운 맘을 감추는 역설적인 사랑의 적극성이 돋보이고 <사슴의 노래>에서는 사랑의 격정이 "하늘에 불이 났다"는 首尾相關의 불 이미지가 장미를 뜯어 버리는 슬픔과 대비되고 있다. 사랑의 불이 강렬할수록 슬픔의 비애가 그 정비례로 증가하는 역설의 고독이 응축된 열정으로 확산된다.
이와 같은 계열의 시로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내 가슴에 장미를>, <유월의 牧歌>, <소녀>, <오월의 노래>가 있다.
따라서 감정의 절제된 극기라는 노천명 시의 특성은 응축된 열정과 함께 논의할 때 비로소 그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6. 사회비판과 방랑성

시집 『별을 쳐다보며』는 해방과 6·25라는 커다란 역사적 변혁을 치른 후에 나온 후기 시집으로 이 중 대부분이 옥중의 고뇌를 읊은 시편들과 그 당대의 상황에 관련된 것들이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생존을 향한 극한 상황 속에서의 기막힌 현실을 한탄하고 초조와 불안으로 가득한 시들이 있다. 그러나 이 시집보다 훨씬 그 이전의 시에 있어서도 이러한 경향은 조금씩 보인다.
따라서 노천명은 근원적으로 고향의 그리움과 원형적 회귀라는 강렬한 방랑성과 함께 사회비판의 날카로움도 함께 노래하였다.
특히 <시인에게>에서는 "네 성스러운 붓대를 들어라/네 두려움 없는 붓을 들어라/정의를 위해/횃불 갖고 시를 쓰지 않으려느냐"는 시인의 사명을 촉구하며 깨어있는 열린 의식의 탐구자임을 스스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또 하루를 삼키고
내일로 내일로
내가 걸어가는게 아니오 밀려가오

구정물을 먹었다 토했다.
허우적댐은 익사를 하기가 억울해서요.

악이 약귀비곷 마양 피어오르는 마음
저마다 모종을 못내서 하는 판에
자식을 나무랄게 되오
울타리 안에서 기를 수는 없지 않소?

말도 안나오고
눈 감아버리고 싶은 날이 있오.

꿈 대신 무서운 심판이 얼른거리는데
좋은 말 해줄 친구도 안보이고
할머니 내게 '레몬'을 좀 주시지
없음 향취있는
아무거고
곧 질식하게 생겼오!

위의 시는 그의 유고시집 『사슴의 노래』에 실려 있다. 노천명의 死後 1년만에 유고와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을 모아 간행한 시집으로, 말기의 시가 실려 있다. 여기에도 상당한 현실 비판 의식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걸어가는 게 아니고 밀려가는 인간 삶의 쫓김같은 허둥댐을 노래하면서도 구정물을 먹었다 토했다 하는 불신과 더러움의 현실 속에 눈감아 도피하고 싶은 질식과 악취의 현장을 직설적으로 詩化시키고 있다. 향기있는 레몬으로 이 더러움을 무화시켜야 하겠다는 시인의 열망이 숨가쁘게 제시되고 있다. <고별>에서는 사회에 대한 저주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 현실 도피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정이라는 것 또 신의라는 것/이것은 다 어디 있는 것이냐/생쥐에게나 뜯어먹게 던져 주어라//온갖 禍根이었던 이름 석字를/갈기갈기 찢어서 바다에 던져 버리련다/나를 어느 떨어진 섬으로 멀리 멀리 보내다오"의 <고별>은 시인이 사회와의 고별을 각오하고 노래한 것으로 6·25 이후 附逆이라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자신에게 내려진 가혹한 처사에 대한 저항적인 몸부림을 보여 주고, 자신에 대한 양심선언이자 사회에 대한 자기 변호의 한 방편으로 이용한 셈이다.
그러나 문학이 문학 이외의 어떠한 수단이나 목적으로 사용될 때 이미 그 예술성의 문제는 철저히 배제한 것이라 볼 때 이 시 역시 문학성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시인 개인의 명예에 더 집착하고 있는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인간의 기다림에 대한 관조적이며 철학적인 것을 노래한 <待合室>에서는 오히려 노천명의 열기와 분노는 감정적 극기를 회복하고 있다. "시간표에도 없는 차시간을/사람들은 지금 기다리고 있다…(중략)/탑 위의 시계는 얼굴을 가리고/아무도 지금 몇 시인지 알 수가 없다"는 시간과 인간의 끝없는 방랑벽과 알 수 없음의 절망을 담담한 호흡으로 노래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무화시키는 예지를 보인 것이다. 시간표에도 없는 차시간을 기다리며 방랑하는 나그네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노래하는 그의 시는 그리움과 함께 노래된다.

7.자기애와 열림의 세계

노천명은 지나칠 정도로 자기애로 살다 간 시인이다. 따라서 그 의 모든 고독, 그리움 등은 자기애에서 출발한다.
심리학에서는 libido가 외부로 발산되지 못하고 내부로 향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narcissism)가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 돌려진 자기도취의 형태가 최초의 만족의 방법이 되고, 사춘기 후기에는 자아가 초자아의 이상과 동일시할 때 자아가 체험하는 自負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쾌락이다. 때문에 노천명의 시적인 자아실현의 성취는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 쾌락적 자위로 표현되고, 이것은 하나의 기질적인 유형으로 그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자신을 너무나도 잘 나타내고 있는 시 <自畵像>은 자신의 불만과 결점을 진솔하게 표현했지만 자신을 아끼고 결점마저 미화하고 높게 평가하는 자기애의 한 전형을 보여 준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세 온스의 살만/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슬 데가 있는 것을 잘 알지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대처럼 꺾어는 질망정 구리모양/휘어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자신을 괴롭힌다"는 자전적 평가는 애정 있는 자신의 비판이요, 청결벽의 자전적 성격을 잘 변호하고 있는 자신의 선언문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내 마음은 늘 타고 있오
무엇을 향해선가

아득한 곳에 손을 휘저어 보오.
발과 손이 매여 있음도 잊고
나는 숨가삐 허덕여 보오

일즉이 그는 피리를 부렀오.
피리 소리가 어듸서 나는지 나는 몰라.
예서 난다지…제서 난다지…

어듸멘지 내가 갈 수 잇는 곳인지도 몰라.
허나 아득한 저곳에
무엇이 있는 것만 같애
내 마음은 그칠 줄 모르고 타고 또 타오.

자신을 연소시키면서 그리움의 대상을 향하여 열정적인 지속성을 가지는 시적 話者의 자기애는 여태껏 '감정적 절제'라는 특성 때문에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노천명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정열적인 행동과 고귀한 정신적 기품을 의식한 시인이기도 하며 폐쇄된 공간에서가 아니라 세계와 사회를 향하여 의식을 열어 놓고 그 의식의 과잉을 범람시키고 있다. 감정의 절제와 의식의 범람이라는 모순 속에 시를 살고 인생을 살며 세계와의 열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면모를 보여 준다. 따라서 세계와의 단절을 통하여 자신 속에 몰입한 고독한 여성시인이라는 폐쇄성은 성급한 판단이었다고 본다.

누가 오는데 이처럼 늘 부산스러운가요.
목수는 널판지를 재며 콧노래를 부르고
하나같이 가로수들은 초록빛
새옷들을 받아들었습니다.
선량한 친구들이 거리로 거리로 The아집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더 야단입니까.
나는 鋪道에서 현기증이 납니다.
삼월의 햇볕아래 모든 이지러졌던 것들이 솟다오릅니다.
보리는 그 윤나는 머리를 풀어 헤쳤습니다.
바람이 마음대로 붙잡고 속삭입니다.
어디서 종달새 한놈 포루루 떠오르지 않나요.
꺼어먼 살구남기에 곧
올연한 분홍 '베일'이 씌어질까 봅니다.
-<봄의 서곡> 전문

열린 세계로 향하는 미래지향적 시선과 지금이라는 시간과 현재의 공간에 뿌리내리는 기쁨이 있고, 그 수선스러움이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생활적인 움직임이 삶의 과정이며 그 바탕에 자처하는 삶의 희열이라고 인색해 간 것이다.
자연을 향하여 친화될 수 있는 <봄의 서곡>은 이미 봄에 대한 친화를 넘어 세계와의 친화를 뜻하고 그것은 목수의 건축물 구축, 가로수의 초록빛, 선량한 친구들의 거리로 쏟아짐, 햇볕 아래 이지러졌던 것들의 솟아오름, 바람, 종달이, 살구나무의 꽃으로까지 확대되는 우주적 범위를 수용한다.
사회, 세계와의 갈등구조를 통한 긴장구축의 감정적 절제가 아니라, 세계와의 화해와 친화속에 기쁨과 재생의 환희가 있는 노천명의 시는 많다. 특히 <국화제>는 노천명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보내는 사랑과 뉘우침의 절절함이 가득한 시이다. 갈꽃보다 부드러운 마음이 사랑스러워 거츠른 들녘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아 화병에 꽃아 두고, 시들고 싶지 않아 화병이 꽃아 두고, 시들고 마른 꽃을 안고, 높은 하늘 시원한 언덕 앞에 묻어 주려는 시인의 참회와 사랑이 그대로 노래되고 있다. "저기 너의 푸른 천정이 있다/여기 너의 포근한 갈방석이 있다"로 끝나는 <국화제>는 노천명 시인의 작고 약한 것에 보내는 인정에 넘치는 마음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열림의 세계를 보여 주는 시들은 <새날>, <길>, <저 바릴 수 없어>등이 있다.

8. 맺음말

노천명은 현대 한국 여성시인 가운데 가장 많이 논의되고 연구되어 왔던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 논의는 최재서의 극찬을 시작으로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오류를 가져오고 있음도 부인 할 수 없다. 따라서 노천명 시의 내용적 특성을 살펴보면서 새로운 흐름이 그의 감정적 절제 이상으로 범람하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노천명은 정한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향토성과 고향회귀를 노래하면서 그 특유의 절대고독과 구원의지를 시화하였다. 일반적으로 통칭되고 있는 감정의 극기 외에 응축된 열정이 그의 많은 시편에 넘쳐 있으며 사회비판과 방랑성을 엿보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자기애와 세계를 향한 열림의 친화력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노천명 시인자신의 고독 자체도 자기애의 한 유형인 것이며 세계를 향하여 화해되고 친화되는 기쁨이 그가 노래하고자 한 의식의 밑뿌리인 것이다. 정한과 고향생각, 고독과 방랑자체도 자기애에서 오는 필연적인 한 과정이며 열린 세계로 향하는 일종의 통과제의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1) 구창남, <노천명의 연구>, 『영남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1983.
문정희, <노천명의 연구>, 『동악어문논집(14)』, 1981.
2) 허미자, 『한국시 문학연구』,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1982.
3) 최재서, 『문학과 지성』, 인문사, 1938, pp. 240-243.
4) 백 철, 『主情과 觀念의 문학, 신문학사조사』, 신구문화사, 1980.
이성교, <노천명 연구>, 『성신여사대 연구논문집』, 1968.
박동규, <향수의 미학>, 『한국현대소설의 비평적분석』, 문학예술사, 1984.
조지훈, <노천명 시 해설>, 『한국시인전집』권7, 신구문화사, 1949.
김광섭, <사슴의 노래 서문>, 『노천명 시집』, 천명사, 1961.
김혜리, 『현대시 문학 비평』, 대광문화사, 1982.
이인복, 『문학과 구원의 문제』, 숙명여자대학교 출판부, 1982.
5) 정태용, <노천명론>, 『한국현대시인연구』, 어문각, 1976. p. 191.
김윤식, <예술의 방법론과 개인의 기질문제>, 『한국현대시론비평』, 일지사, 1982. p. 114.
김지향, <孤獨城의 次元>, 『시문학』, 1973. 10.
신경림, <노천명의 문학과 인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사슴은』, 지문사, 1981.
6) 허영자, <노천명 시의 자전적 요소>, 『정한모 박사 회갑기념논총, 한국현대시사연구』, 일지사, 1980, p. 367.
7)김열규, 주간조선, No. 562, 1979, pp. 58-59.
8)오세영, <한의 논리와 그 역설적 거리, 『語文論志』 제3집,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78, p. 133.
9) 허미자, op. cit., p. 96.
10) Ibid, p. 96.
11) 김용성, 『한국현대문학사탐방』, 현암사.
12)김용성, op. cit., p. 382.
13)노천명, 「사슴과 고독의 대화」, 서문당, 1973, p. 26.
14)이성교, <노천명연구>, 성신여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논문집, 제1집, 1968, p. 132.
15)이성교, <노천명의 사슴>, 『현대시 작품론』, 김용직·박철희 편, 문장, 1981, p. 193.
16)조병춘, 『한국현대시사』, 집문당, 1980, p. 261.
17) 김명훈·정명윤, 『심리학』, 박영사, 1971, p. 175.
18) 장병림, 『이상성격심리학』, 박영사, 1978, p. 223.
19) 김명훈, op. cit.,

                                                   원문 보기 

노천명의 고향  

수필 '산나물"

근대서지 12호, 노천명의 친일 시 9편 미 삭제 시집 『창변』 공개

OSEN= 강희수 기자 l 2016.01.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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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홍윤표 기자] 최근 출간된 『근대서지』 12호(소명출판)에 시인 노천명의 친일 시 9편이 실려 있는 시집 『창변』 의 미 삭제 본이 공개됐다. 

근대서지학회(회장 정경수)가 반년간으로 펴내온 『근대서지』 12호(2015 하반기호)에는 노천명의 친일시 9편 외에도 조지훈의 글이 실려 있는 해방 공간에 발행된 어린이 잡지 『그림동산』 제3집(1946년) ‘우리마을’ 편과 1947년 평양에서 발행된 22인시집 『전초(前哨)』, ‘오랑캐꽃’ ‘전라도 가시내’의 월북시인 이용악의 미 발굴 시와 산문 등을 발굴, 게재했다. 

『근대서지』 12호에는 근대서지학회의 지난 해 12월 학술대회의 대상이었던 미공개본 어린이 잡지 28개본 해제를 비롯해 『백민』 (1945년 12월 1일 창간. 『백민』 21호, 『문학』 개제 3호 포함 통권 24호) 총목차와 인명색인, 소오(小悟) 설의식(薛義植)이 1947년에 창간한 순간 『새한민보』 (통권 63호) 총목차와 인명색인을 정리해 놓았다. 

아울러 연재물로 한국 언론의 산증인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의 시대의 고뇌가 담긴 언론사 연구의 실증적 체험기인 ‘언론과 학계의 반세기, 자료 발굴과 글쓰기’ 첫 편이 실려 눈길을 끈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자료 발굴과 보존과 해석의 중요성을 실천하는 장’ 이라는 제하의 『근대서지』 12호 발간사를 통해 “우리 근대문학의 연구는 기원 혹은 고전에 대한 발본적 성찰의 기회를 주는 시대”라고 전제, “우리 근대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데 헌신했던 분들의 삶을 탐색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가난했지만 치열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도, 근대문학의 일차 자료들을 일일이 검색하고 찾아내어 원형을 보존하고 고전적 해석을 쌓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15일에 나온 『문화전선』창간호, 1945년 12월 1일에 출간된 『아동문학』창간호 등 해방 공간의 좌익계열 신문과 잡지 영인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이번에 『근대서지』 12호가 발굴한 노천명의 친일시는 김재용 원광대 교수의 연구 작업의 결과물이다.

‘두 가지 노천명 시집 『창변』’ 이라는 부제를 달고 ‘찢겨진 시집과 친일 흔적 지우기’ 라는 제하의 김재용 교수의 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에도 수록돼 있는 노천명의 친일 시의 ‘감추고 숨기고 흔적 없애기’를 샅샅이 파헤쳐놓은 것이다. 

김재용 교수는 1945년 2월에 나온 노천명의 두 번째 시집 『창변』이 해방 이후에 재판매될 때 친일 시 9편을 종이를 붙여 가리거나 아예 목차를 찢는 방법으로 은폐됐음을 밝혔다. 그래서 그 때 시집 『창변』을 일러 ’찢겨진 시집과 친일 흔적 지우기’라고 명명한 것이다. 

김 교수는 “(찢겨진 책에는) 목차 끝 대목에 종이를 덧붙여 시의 제목을 가리려한 흔적이 있다. 찢겨지지 않은 온전한 책에는 종이로 덧댄 부분에 4편의 친일시가 있고, 목차가 있는 한 페이지를 뜯어내 5편의 친일시를 더 감추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노천명의 친일시는 종이로 덧댄 부분에 4편(‘힌 비둘기를 날려라’, ‘진혼가’, ‘출정하는 동생에게’, ‘승전의 날’), 페이지를 몽땅 도려낸 부분에 5편(‘병정’, ‘창공에 빛나는’, ‘학병’, ‘천인침’, ‘아들의 편지’)이 숨어 있었다.

김 교수가 찾아 낸 온전한 『창변』 시집은 1945년 2월에 발행한 시집으로 해방 이후에는 친일시를 빼거나 가리고 배포, 누더기 시집이 돼버렸던 것이다. 온전한 시집은 미처 회수하지 못한 원래의 모습 시집이다.

김 교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에서 종이로 가린 데는 4편밖에 없었다. 다시 찢어진 시집의 목차를 자세하게 검토하니 목차가 있는 페이지의 한 장을 통째로 뜯어낸 흔적을 어렵게 찾아낼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네 편은 친일 협력이 아닌 다른 시들과 한 면에 인쇄되었기에 따로 오려낼 수 없어서 덧붙여 가렸고, 다른 5편의 제목이 있는 별도의 면은 통째로 뜯어낸 것임을 알게 됐다.”고 발견 과정을 알렸다.

chuam@oeen.co.kr 

사진=『근대서지』 12호 표지와 노천명 시집 『창변』 의 목차부분. 친일시를 종이를 덧대어 감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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