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에서는
자잘한 씨알들이 나란히 누워 뿌연 인삼들로 잉태 되고 있는 차일 밑으로
다문 다문 걸으며 소수서원의 여름 뜨락에서 우리는 문학과 역사와 사랑과 농밀한 추억 같은 것도 꺼내 들었다.
그때 배 작가폐업께서 상사화에 대한 꽃 얘기를 지줄히 풀어 가고 있을때, 문득 선운사가 생각 났다. 지금 가면 선운사에 상사화가 지천이라는...선운사 선운사 선운사...동백이 필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그 선운사는 아마 미당의 글에서 읽은 그 짤막한 싯구 때문이리라.
늘 가곱은 곳에 데려다 주는 형(장명숙)의 그 연연함이 아리던 차에
며칠 방학인데..풍기에서 내려온 다음날 새벽, 길을 떠났다.
문학 기행 아니면 한번도 변변히 길 나서지 못했던터라 맘 설레기는 소싯적 같았다. 내 피폐된 넋은 이미 남도를 밟고 있을때 부터 다른 세계의 관문 이었다. 사람들의 말 소리..다정한 품성..저 질곡한 삶에서도 느끼는 여유로움의 모습들..뙤약볕에서도 사람만은 정겨웠다.
선운사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마저 정겨운 이를 뵈러 오는것 같은 느낌.
선운사!!
아 선운사..얼마나 그리운 곳 이었던가?
단 한번도 와 보지 않았지만 그 몇줄의 싯구로 절절히 그리워 했던곳, 와락 더운 흐느낌 쏟으며 같이 오지 못한 형에게(병원에 있음으로) 그 미안함을 대신 전하며 배흘림 기둥에 서 서 불자가 아니래도 충분히 반 할, 배롱나무 등걸에 애정을 쏟으며..상사화를 찿았건만... 없었다.
상사화
시/ 안다혜
내게도 그런적이 있었다
어스럼이면 지병처럼
도지는 상사
온 여름 혼자 앓고서도
멀쭉한 잎하나 건사 하지 못하고
꽃 대궁만 쑤욱 키웠다
...중략..
그 곳의 상사화는 8월 중순 즈음에 시작하여 천지를 뒤덮는단다.
선운사 동백을 사모하여 이곳을 염원했건만 이제 흐드러지게 피인 상사화도 못 보다니...못 보아도 좋을, 산수가 수려한 곳에 나작히 엎드린 선운사는 백제위덕왕(577년)에 세워 졌다던... 고려시대의 석탑이 서 있던 자리에 조선 성종때 다시앉혔다는...
오오 선운사여
죽은자들에게서 묻어나는
나뭇결들의 소리를
너 대웅전에게서 듣노니
천년의 숨소리 녹아든 자리여
내 주춧돌 모서리에 앉아
천년전의 영혼들의 목소리 듣노니
저 돌쩌귀에 묻어 나는 세월
나 이제 감당하리니
중략......
무엇을 감당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숲들의 짙음이나 산들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지, 숱한 넋들의 억울했던 삶들을 감당해야 하는지...또 하나의 숙제를 안고 미당 생가를 향했다.
자화상
시/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
스물 세햇동안 나른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중략..
고창에 가면 여길 들리리라
아 내가그랬던가? 작열하던 태양도 무색하게 나도 부끄러워 지는 이 어지럼증...그래, 지나는 길이잖은가? 자위하면서 돌아 보는 쓸쓸함.
그를 추억하지 말기로 하자.
종의 자식으로 태어 났다더니 아들과 손주들은 미국에서 부르조아의 첨단을 걸으며 찍힌 사진 전시...한국의 시인의 발자취가 이래야 하나?
폐교를 헐어 기념관을 만들고, 여기 저기 유명 인사와 찍은 사진들이 걸레처럼 전시 되어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를 욕되게 하고 있는 슬픔이,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를 쓸쓸하게 하고 있음을 ..그는 알까?
팻말을 보고 찿은 그의 생가!
이랬단 말이지..영랑 생가를 갔을때의 그 잔잔한 감동 같은거, 청마의 생가는 터만 남았더래도 저렇게 억지도 다시 만든? 복원은 아닌...그러진 않았다.우물터도 행랑채도 다 다시 만든 자국, 아 마당 역시 사람 디딘 발자죽 없는 ..이래야 하는가? 한 시대의 맥을 그었던 사람의 자취가 이리도 보여 줄게 없는 부끄러움이더란 말인가?
독일에서 괴테의 생가를 찿았을 때 그 감동이 어깨너머로 밀려 왔다.
작가의 체취 그대로를 보존하기 위하여 수수한 그대로를 남겨 두는 그들의 존엄성.괴테가 산책한 마당엔 전 세계의 수 많은 문학인들이 와서 똑 같이 걷고 사색하며, 함초롬히 앉은 풀꽃들에 정을 주었던지라 흙 마당이 반질 반질 하였고, 그 반질 반질한 길을 나도 답습 했던 기억....설혹 생가가 없으면 어떤가? 슬픈 시비 하나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앙 다문 입술로 비껴나는 서해를 품에 안고, 무안! 백련 축제가 열린다는
무안을 위하여 가쁜 숨을 쉬며 저물녁을 맞고 다음날 무안으로 출발했다.
무안 백련은 장관이었다
아니 저수지가 장관 이었다. 아직 꽃은 튀우지 않았더랬다.
심한 장마로 인해 일조량이 부족해서리라.
그러나 광활한 연못, 뒤덮인 수련의 잎들...햇빛의 따랑거림을 즐겨 노니는..저 푸르른 잎들의 수런거림이 물어 물어 찿은 노고를 다 씻어 주었다.
지난해에는 8월이 익어 갈 무렵 경주< 서출지>에서 몇몇의 수필가(여성만)들과 아주 만개한 수련을 흠향한 적이 있는지라, 이 곳의 느낌은 색달랐다.아마 8월 중순이면 백련의 모습들이 만개 할 것이며, 그 농후한 자태에서 빗어지는 애련도 맛보리라.
남도를 거닌 동안, 서편제 생각 나고..그 한 많은 소리들이 삶의 질곡 가운데 묻어 나와야하는 그 얼굴들도 다정 스럽기 그지없는...돌아 돌아 나오는 길에 늘 발목 잡는 건, 어느 핸가..아득한 날.. 서해를 돌며 돌며 남도를 사랑했던 옛 애인의 기억이었다.
오래 된 슬픈보물처럼 간직하는 이 미련을 떨구기 위해 아마 남도를 찿았는지도 모르다. 이제 밟히는 기억 같은거 발자죽에 묻으며 사는 나이 되지 않았을까?
함께가지 못한 내 사랑스런 형 장명숙에게 아리따웠던 기억을 고스란히 바치며...
며며칠 잠수한 죄스러움을 대신 하려고 하는... 안다혜..
*
바다
시/ 안 다혜
거기에 오지 마라
해질녁에는 더욱
구시렁 구시렁 할매 같은 음성
나즉히 따습게 불러도
악아 거기는 오지마라
엄니 옛 생각이 나요
그래 그래 옛 생각이 나지 그곳에 서면
시리게 가슴 아파서 왠지 눈물 쏟고 가는 곳
그 염병할 병이 도지는 어스럼
육신 묻히기 전까지 얼씬도 말어
젊은 나이 애닯을 때 그곳에 서면
몸 던지고 싶은 달콤함이여
인생을 살짝 보듬고 포옥 빠져서
버거운 이승 버릴려나 싶어
엄니 엄니 울 엄니 해질녁에는 악아
집에 가서 니 새끼 봐야제 타이르시는
첫댓글기어이 선운사를 다녀왔구나 풍기에서 돌아와서 널 많이 생각했다 마음을 다 열고 속자락 하나까지 다 열고 너를 받아들이자고.. 좋은 친구를 하나 얻는 다는 것은 세상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그래 다혜야 선운사를 다녀왔구나 내가 왜 이렇게 가슴이 설레냐? 어느날 시골 집앞에 내 얼굴보다 크게 화안하게
시골 웃집 마당에 상사화가 곱게 피었더군요. 흙에 닿은 굵은 대공 두 손으로 감싸고서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여 엇갈리는 인연으로 아름다운 상상화꽃 눈여겨 보았습니다. 아, 이 꽃이 상사화였구나...내가 알던 꽃이었음에도 그 꽃을 지칭하는 것임을 며칠전- 30대의 마지막 8월-에서야 확인했습니다.
첫댓글 기어이 선운사를 다녀왔구나 풍기에서 돌아와서 널 많이 생각했다 마음을 다 열고 속자락 하나까지 다 열고 너를 받아들이자고.. 좋은 친구를 하나 얻는 다는 것은 세상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그래 다혜야 선운사를 다녀왔구나 내가 왜 이렇게 가슴이 설레냐? 어느날 시골 집앞에 내 얼굴보다 크게 화안하게
피어있는 화려하지만 서러워보이는 꽃을 보았는데 그게 상사화라고 해서 혼자서 잠간 상념에 잠겼더랬는데 너는 찾아갔구나 니 눈을 통해 나는 상사화를 느끼고 선운사도 본다
새이야...다하지 못한 말이 있더래도 이미 알아버린...사람의 관계란 그런 속 깊은 것이어야 된다고 생각는 나는, 늘 저 거제 어느쪽에 그리운 사람 하나 심어둔 자랑스러움..배교수님! 하시고픈 말씀..알 것 같은데요.
시골 웃집 마당에 상사화가 곱게 피었더군요. 흙에 닿은 굵은 대공 두 손으로 감싸고서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여 엇갈리는 인연으로 아름다운 상상화꽃 눈여겨 보았습니다. 아, 이 꽃이 상사화였구나...내가 알던 꽃이었음에도 그 꽃을 지칭하는 것임을 며칠전- 30대의 마지막 8월-에서야 확인했습니다.
향기야~ 어디갔었니? 소식이 없어서 궁금했다 잘 있지? 배교수님 너무 적조해요 홈피에서만 만나다니...
무안 백련...상사화...그리고 작열하는 태양아래 그늘지운 선운사~모든것 일체만물을 마음에서 버리라는 생각마져 버리라는 선운사의...그 선운사에 상사화라!!. 그 무엇이 그리도 모질고 질긴걸까...남도를 사랑했던 바다소리님의 옛 애인이..그렇게 못잊어 부처님전에 꽃공양을 올리시는걸까..연꽃위에 떠있는 선운사
그 모습에...꽃잎에 맺혀 구르는 이슬은...바다님의 눈물이련가~(아주 좋은 추억 되시길)..나무관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