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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동물의 눈
이 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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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초식동물의 눈을 섬세하게 관찰한 적이 있는가?
없다면 그 눈을 면밀하게 살펴보시라!
자칫, 풍덩 빠진다네.
물이 아니니 익사에 주의할 필요는 없다네.
*
홍랑은 지금 집 앞에 있는, 자주 가는 노천카페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초식동물을 떠올리고 있다. 정정하자. 초식동물의 눈을 떠올리고 있다. 달싹한 싸구려 커피지만 매일 아침, 아침을 먹고 입가심으로 이 커피를 마시러 이 집을 찾는다. 커피보다는 사람 구경을 하기 위해서다. 미얀마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 이 시간이면 출근할 시간인데 모두 태평이다. 야자수 그늘이 드리워져 집보다 시원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매일 아침 나오면 누가 말을 걸어도 걸지만 오늘은 그런 작자가 없다. 혼자다.
초식동물의 눈!
초식동물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느 눈과 또 다른 흡인력을 지니고 있어 그 눈동자에 가끔은 빨려들게 된다. 한번 빨려들면 빠져나오기 상당히 힘든 눈망울이다. 홍랑은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순도 백 프로의 순수,
순수의 절정!
적의가 없는 눈매에 빠진 적이 여러 번 있는데 미얀마 사람들의 눈을 보면 가끔 초식동물의 눈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나 소녀들의 미소와 함께 보는 눈동자는 가끔 초식동물의 눈과 겹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순수하고, 어떻게 보면 우매하면서도 겁먹은 눈망울. 그 눈망울을 보면 홍랑은 반드시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가 누군가? 초식동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그 친구는 늘 인터넷의 어느 카페든, 가입만 하면 언제든지 별명을 초식동물로 썼다.
초식동물이 그렇게 좋아?
눈매가 선하잖아요?
그는 홍랑의 후배였다. 여기서 ‘였다’는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그 친구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홍랑의 중학교 이 년 후배이지만 같이 다니면 때로는 친구이고, 때로는 스승이었고, 선배나 형처럼 든든했다. 사물이나 대상을 접하는 시각과 인식의 폭이 홍랑의 그것보다는 넓고 높았기 때문이다.
초식동물의 눈이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홍랑은 그에게 듣고 나서 보니 초식동물의 눈이 그렇게 선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까지는 예사로 보아 넘겼는데 그 눈동자가 선하다는 걸 그가 거론하고 나서야 다시 관찰하고 인지했다. 자꾸 보면 닮아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그도 초식동물의 그런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는 적이 없었다. 홍랑에게 깎듯이 형님이라 불렀던 인물인데, 누구에게도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와도 친화적인 성향이었고 어쩌다 이견이 생겨 다툼이 있으면 언제나 져 주고 먼저 사과를 하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탐을 내서 일찍 데려갔다고, 술자리에서 지인들은 가끔 기억을 들추며 안주로 삼곤 했다. 그를 안주로 삼는 날이면 홍랑은 그 술자리가 언제나 쓸쓸했고 처량했다.
홍랑은 초식동물의 눈을 볼 때마다 그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부표처럼 기억의 수면 위로 불쑥 솟구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애달프고 가슴이 미어진다.
이 말을 제외하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하여, 가능하면 그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봄이 되면 가장 일찍 꽃이 피는 생강나무를 한 줌 꺾어와 불쑥 내밀던 모습. 그가 떠나자 모두 그걸 기억했다.
그는 시립 묘지에 있지만 홍랑은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가면 뒷감당이 두려워 애써 외면한 것이다. 그는 문득문득,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의 갈피에 너무 많은 것을 꽂아두고 떠났다. 이런 말을 하면 또 감당이 안 된다.
갑자기 떠오른 건데, 그 초식동물이 싫어하는 인간이 하나가 있다.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물론 그 대상이 홍랑은 아니다. 초식동물은 드러내놓고 남을 비판하는 성격이 아니다. 다만, 예리한 판단을 기준으로 촘촘한 그물망을 가지고 있고, 그 그물망은 논리와 통찰력으로 무장되어 있다.
어느 선을 이탈하여 그물망에 걸리는 작자가 있으면 그 인간을 만나기를 상당히 꺼리는 성격이었다. 그것이 당사자인 자신에게 득이 되든, 실이 되든 상관하지 않는데 그의 촘촘한 그물망에 걸린 인간이 있었다.
바로 A였다.
초식동물은 그를 상당히 싫어했다. 그와 싸움이라도 해서 늘씬하게 얻어맞은 것도 아닌데 유별나게 싫어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남의 일인데 뭔 상관이야?
홍랑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초식동물은 경멸을 넘어 혐오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자신이 제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저러다가 인생 조지지? 제 눈에는 보이는데요?
A의 얘기가 나오면 초식동물이 하던 말이었다. 홍랑이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았다. 그러나 초식동물은 그걸 홍랑보다 먼저 내다본 것이다. 초식동물의 더듬이는 분명 홍랑의 그것보다 길어서 멀리 더듬고 있다. 공간이든 시간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같이 다니면 늘 배우는 게 홍랑이었다. 그런 더듬이는 학습한다고 길어지는 물건이 아니다. 그는 타고 났다.
아무튼, A를 엄청 싫어했다.
A는 초식동물과 동년배이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그냥 아는 사이다. 작은 소도시에 살다 보니 이리저리 얽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그가 A를 유독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인생을 가뿐하게 싸잡아 꾸려가지 못하고 모험의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제 인생 제가 꾸려가겠지, 남의 일에 왜 그렇게 신경을 써?
이제야 생각난 것이지만 관심이 없다면 미워할 이유도 없다. 싫어하는 배면에는 그 대상에 관해 관심이 있는 말이다.
A, 그는 일이라곤 해 본 적이 없는 작자다.
그게 옆에서 보는 초식동물의 눈을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다.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그가 초식동물의 눈에는 심하게 거슬렸던가 보다. 홍랑이 보기에도 그랬다. 말로만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A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인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이나 준비를 했다. 그 중간에 검찰사무직을 쳐서 공무원으로 합격이 되었다. 7급인데 발령을 받으면 검찰 수사관이 되는 시험이었다. 그런데 A는 달가워하지 않고 그 합격을 깨끗이 포기했다. 그냥 시험 삼아 쳐 본 시험이라고 했다. 자신의 목표는 행정고시라고 하면서 발령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초식동물은 A를 찾아갔다. 요지는 발령을 받으라고, 지금 발령을 받아도 이른 나이가 아니라고 충고를 했던 모양이다. 하긴 그때 공무원으로서는 이른 나이가 아니었다.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었으니 빨리 된 것은 아니었다. 초식동물은, 일단 발령을 받아 놓고, 한 육 개월 다니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휴직을 하고 행정고시 공부를 하라고 조언도 아니고 간절히 부탁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니 초식동물의 판단이 맞았다.
그러나 A도 한 고집을 하는 인간이었다.
초식동물의 조언은 김상기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초식동물이 A를 싫어하는 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가장 우둔한 자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A가 초식동물의 눈 밖으로 난 것은 A가 결혼하면서부터였다.
제 인생 조졌으면 되었지. 남의 인생까지 조지려 드는군!
결혼 소식을 접한 초식동물의 말이었다. A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결혼하는 날까지 행정고시로 입성하지 못했다. 상대는 초식동물과 홍랑이 자주 가서 빤히 아는 전통찻집 여주인 B보살이었다. 불교에 심취해서 홀로 사는 노처녀인데 A보다 무려 일곱 살이나 연상이었다.
그 전통찻집은 인근 사암寺庵의 스님들이 자주 찾는 곳인데, 초식동물도, 홍랑도 단골로 자주 가는 곳이라 여주인의 성품까지 잘 알고 지내며, 마담의 불교적 호칭인 B보살이라고 하면 지인들에게 다 통하는 곳이었다.
그 찻집에 구미의 문학청년들이 아지트로 삼아서 들락거리던 곳이기도 했다. 초식동물과 홍랑도 거기에 끼어 들락거렸었다.
그 찻집이 구미 문학의 산실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 찻집이 알려지기 전에는 구미라는 공단 도시는 문학의 불모지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 찻집을 무대로 구미의 문학이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 찻집에서 많은 문학 모임을 했고, 거기에 가면 누가 있어도 죽이 맞는 인간이 있었다.
A도 그렇게 들락거리다가 눈이 맞은 모양새였다.
A는 부모의 반대에 말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급한 김에 살림부터 차린 것이다. 살림을 차렸다고 해봤자, 그 찻집에 딸린 B보살의 방에 A가 책 보따리를 싸서 들어간 것이다. 홍랑이 보기에도 처음에는 불장난 같았다.
저러다가 초식동물 말마따나 한 사람이 상처를 심하게 받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기까지 했다.
그 생각에는 초식동물도 같았던 모양이었다.
살림을 차리면서 남들의 눈을 의식했던지 B보살은 구미에 있던 찻집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군청소재지가 있는 충청도의 작은 읍이었는데, 그들에겐 익명성이 요구되었던 모양이다.
초식동물과 홍랑은 그 옮겨간 찻집을 찾아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릴없이 무료한 날이면 바람 쐬기를 빙자해서 그 읍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 찻집도 가게에 방이 딸려 있어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는데 A는 늘 그곳에 머무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B보살이라는 후원자를 만났으니 서울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가끔 내려오는 모양새였는데 그의 합격 소식은 지독히도 들리지 않았다. 지독하다고밖에 수식할 수가 없는 시험이었다.
세월은 너무도 빠르게 흘렀다.
공부도 나이가 있는 법인데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합격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 나이에 행정고시가 되면 몇 년이나 근무할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회의가 일 정도였다. 초식동물은 A를 얘기할 때마다 포기한 검찰사무직 자리가 아깝다고 했다.
A는 마흔을 넘기고 공부를 포기하고 구미로 돌아왔다.
물론 B보살도 찻집을 접고 따라왔다.
구미로 돌아와서, 어떤 연줄인지 법무사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돈을 벌어보는 것이었다. A가 공부를 포기하고 밥벌이로 돌아서자 그 전통찻집은 문을 닫고 B보살은 살림을 하게 된 것이다. 늦은 결혼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미 B보살이 여자로서 생산능력을 상실하고 난 뒤라 슬하에 아이들은 없었다.
A가 법무사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나가자, 초식동물은 또 검찰사무직을 거론했다. 그 옛날에 임용을 받고 근무를 했더라면 지금쯤 일찌감치 명예퇴직 했더라도 법무사 자격이 나왔을 터인데 고작 등기소 심부름이나 하는 사무장이 되었다고 개탄했다. 그 개탄은 A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혐오로 이어졌다. 그놈의 공부가 겨우 법무사 사무실 사무장을 만들었다고, 한 사람 인생을 온전히 조진 게 그놈의 공부라고 하며 자신의 처삼촌 얘기를 홍랑에게 들려주었다. A와 같은 부류의 족속이라고, 초식동물은 분명히, 족속이라는 경멸에 찬 용어를 썼다.
인간이란, 꿈은 원대하게 가지되 자신을 직시하고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요지였다. 초식동물에게는 처삼촌이 있단다.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었더니 아직도 자기 자신을 연구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농담 말고.
그 양반은 집이 가난했던 관계로 고등학교를 국립 철도고등학교를 나왔었다고 했다. 철도고등학교를 나와서 철도청에 이 년을 근무하고 바로 유명대학 법대를 들어갔다고 했다. 인문계도 아니고 특수학교를 나와서 철도청에 근무하다가 바로 유명대학 법대에 들어갔다면 수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게 문제였단다.
인생은 때로는 마치 뒤에서 당기듯이 진취성을 잃고 방황하다가 제자리에 내팽개치지는 경우가 있는 법이라고 전제를 깔고 그는 뜸을 들이며 말을 이었다. 그 처삼촌이라는 작자가 바로 결정적인 순간에 그런 경우를 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 양반은 대학 삼학년을 마치고 절로 들어가 사법고시를 준비했는데, 그게 장장 십삼 년이라고 했다. 장가도 못가고 마흔을 넘긴 것이라고 했는데, 일차는 서너 번 합격했지만, 이차의 고개를 결국은 넘지 못했다고 했다. 철도청에 있었으면 역장을 했을 나이인데 백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뭘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소장이란다.
그 양반의 대학 선배가 운영하는 주유소의 소장이라고 했다.
소장?
주유소니까, 소장이라는 허울 좋은 직함이지, 잘 하면 매출 전표정리고 잘못하면 기름배달이 고작인 직업이다. 그 양반은 당시에 환갑이 코앞이라고 했는데, 홀아비라고 했으니 지금은 보나 마나 홀로 사는 노인이 되어 임대아파트를 전전하고 있을 거다.
자식이란 키우기가 성가셔도 늙어서 비빌 언덕이다.
그 양반은 기댈 언덕도, 비빌 언덕도 없는 노인이 되었을 거다. 갑자기 그 양반의 근황이 궁금한데 불어볼 곳이 없다.
초식동물이 없으니 그런 것도 아쉽군! 쩝.
초식동물은 그래도 A가 자신의 처삼촌 경우보다는 낫다고 했다. 늦은 나이의 공부는 인생을 거는 건 상당한 모험이라고 했던, 초식동물은 A가 법무사 시험에 합격하는 걸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공부? 그거, 자신만 가지고 하다가 패가망신하는 항목입니다.
초식동물의 말이었다. A는 법무사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나가면서 틈틈이 공부해서 오십이 넘어서 제 이름으로 된 법무사 사무실을 열었다. 행정고시보다는 쉬웠던 모양인데, 초식동물이 알았더라면 분명히 한마디 했을 것인데 생략하자.
초식동물은 남다른 통찰력을 지녔었다.
초식동물은 홍랑의 집에도, 사무실에도 가끔 놀러 왔다. 예고 없이 불쑥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홍랑의 아내에게 형수라고 깍듯이 부르며 찾아오면 정작 홍랑보다, 아내와 더 친하게 지냈다. 홍랑의 아내도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초식동물의 말에는 전적으로 신뢰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다가 나중에는 맹신하기에 이르렀다.
맹신이었다. 팥을 보고 콩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지만, 초식동물은 절대로 팥을 보고 콩이라고 할 작자가 아니었다.
홍랑의 아내는 초식동물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뢰를 했고, 그의 말은 그만큼 논리가 있고 근거에 기초를 둔 말이었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급기야는 홍랑의 내외간에 부부싸움을 해서 냉전기가 되면 초식동물이 거기에 끼어들어 화해를 시키는 일까지 자청해서 할 정도였다. 초식동물의 눈은 예리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데 예리하다는 말이다. 홍랑의 아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읽어내고 거기에 합당한 답을 찾아서 내밀었다.
홍랑이 시내로, 건물을 지어 이사를 나오기 전에 대신이라는 행정구역상 김천에 속하는 시골 마을에 살았다. 작은 간이역이 있는 시골 마을의 철로가의 촌집을 샀다. 가끔 기차가 지나가며 지축을 흔들어 놓지만 싫지는 않았다.
이웃이 있는 삶을 누리고 싶어 농촌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웃보다 더 심리적으로 작용을 한 것은 아파트가 도무지 체질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층간소음도 신경이 쓰이고, 고립된 섬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허공에 있는 집을 쳐다볼 때마다 고립된 섬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나, 당시에는 변두리라도 땅을 사서 단독주택을 지을 형편이 되지 않았던 것이라, 차선책으로 촌집을 산 것이었다. 그런데 시골 마을에 살아보니 간섭을 너무 받고 이웃의 눈치를 상당히 보아야 하는 게 오히려 불편하기도 했다.
거, 봐요. 그분 말씀이 맞잖아요?
홍랑의 아내 입에 밴 말이다. 그곳에 촌집을 사서 이사 간다니 초식동물은 우려가 배인 목소리를 냈다. 사람이란 때로는 익명성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그런 점에서 엄청 성가신 면이 있을 거라고 했다.
초식동물은 육감적으로 이미 그것도 넘겨짚어 보고 있었다.
그는 그 촌집에 살 적에도 수시로 왔다.
오면 할 일이 언제나 늘려 있었다. 초식동물이라 그런지 그는 식물에 엄청 관심이 많았다. 텃밭이 있는 집이었는데 텃밭을 잘라서 화단이 있는 정원으로 꾸미고 거기에 자연석을 가져다 놓거나, 관상수를 심는 것은 초식동물의 몫이었다.
홍랑은 그 정원이든, 텃밭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배추와 무를 심고 초식동물이 비료와 농약을 사서 뿌리고 알아서 가꾸었고, 수확하면, 그것도 알아서 누구네를. 얼마 주고 분배까지 했다. 초식동물, 정작 자신의 몫은 풋고추 한 줌이거나, 아내와 종일 같이 김장을 해서 김치통에 몇 포기 가져가는 게 고작이었다.
정원은 언제나 깔끔했다.
홍랑이 있든, 없든 알아서 했다.
그렇게 들락거리니 이웃들과도 상당히 친해졌다.
초식동물은 이웃에 사는 C의 아내가 절세의 미인이라고 하면서 C한테는 과분한 대상이라고 했다. 홍랑은 대수롭잖게 보았지만, 그녀가 참 보기 드문 미인인데 시집을 잘못 와서 신세를 망친 것이라는 말을 누누이 했다. 홍랑이 듣기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극찬을 했다. 그녀가 절세의 미인이라니? 홍랑은 좀 황당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그렇겠지 생각했다.
홍랑보다 두 살이 많은 C는 주정뱅이에 가깝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중에서 삼백일은 술어 절어서 뻗어버리는 날이었다. 그러면 그 농사는 C의 마누라가 다 지었다. 위에 시어머니가 있어서 그 집은 큰소리가 끊어질 날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성질머리와 더불어 입까지 고약해서 C의 아내는 들일을 하고 들어와서 매일 당하는 꼴이었다. 요지는 여편네가 서방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서 남자가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술만 마신다고 C의 술버릇이 마치 그 아내의 책임인 것처럼 떠넘겼다.
C의 아내, 동수 엄마는 남편과 나이 차이가 꽤 난다. 아마도 열 살은 넘게 차이가 나는 모양이었다. 초식동물은 C의 아내가 철없는 시절에 결혼해서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다고 하며 인물이나 품성이 아깝다고 혀를 찼다.
저러다가 무슨 일을 내지?
C의 집에서는 큰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이웃에 다 들릴 정도였다. C의 아내가 시어머니에게 당하는 소리가 들리면 초식동물이 하는 말이었다. 그 담을 넘어오는 큰소리는 인용하기가 힘들다. 며느리에게 하는 욕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도저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런 독설을 구사하고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가 있을까? 홍랑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걸 담 너머로 듣는 것도 그 동네에 사는 불편 중의 하나였다.
초식동물의 말마따나 큰일은 머지않아 일어났다.
옆집 C가 죽었다.
술에 절어서 살던 C의 간이 견뎌내지 못하고 간이 경화되어 오륙 개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죽은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 전에도 그런 전조증이 있었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을 떠는데도 술을 마시면 괜찮다고 하며, 해장으로 소주 두어 병을 비우고 하루를 시작했다. C는 소주를 소주잔에 부어 마시지 않고 맥주잔에 부어 마시곤 했다. 잠시도 술기운이 몸에서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들일을 나가면 소주를 한 광주리 챙겨서 나가곤 했다. 이상 증후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낸 것이었다. 간이 견딜 수가 없도록 만들어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C가 죽고 나자, 그 시어머니인, 고약한 할머니의 닦달은 더 심해졌다. 결국, 아들을 잡아먹는 년! 서방을 잡아먹는 년! 이라는 저주 어린 욕까지 담을 넘어왔다.
저 할마씨 복에는 과한 며느리구만!
초식동물의 말이었다. 지극히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C가 죽자 동생인 D가 이태 동안, 회사가 쉬는 휴일이면 집으로 와서 농사일을 도왔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농기계 운전하는 게 전부였다. 뒷일, 잔손은 그의 형수인 C의 아내 몫이었다. 그가 오는 날이면 큰소리는 여지없이 담을 넘어왔다. 작은아들이 오니 기세가 등등해진 할머니는 더 심해졌다. 마치 솥에 든 콩을 복 듯이 닦달했다. 밥상이 날아가고 들일을 마치고 들어온 C의 아내가 대문 밖으로 쫓겨나는 사태가 종종 생겼다.
이 할마씨가 노망들었나. 그만 좀 해. 동네 남세스럽구만!
그런 날이면 D가 제 엄마인 할머니를 타박하는 목소리도 담을 넘어왔다. 홍랑은 듣기에 상당히 불편했다. 결국, 못 견디고 C의 아내는 집을 나갔다. 시동생인 D가 할마씨 고생하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는 말도 있었고, D가 형의 재산이 탐이 나서 내쫓았다는 말도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이었다. 아들인 동수는 집에 두고 홀로 나간 것이다. 그 할머니는 손자인 동수는, 지독히 끼고 돌았으니 아이를 데려간다는 건 언감생심이었고 이산가족이 되었다.
그 할머니도 머지않아 죽었다.
이웃의 잔치에 가서 잘 먹고 잘 놀다가 밤에 자다가 갑자기 죽은 것인데 하루가 지나서 작은아들에 의해 발견이 된 것이다. D가 전화를 아무리 해도 받지 않기에 회사를 마치고 집에 들르니 할머니 방에서 벽에 기대고 웅크리고 앉아서 죽어있더라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며느리에게 그렇게 모질게 했으니 천벌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죽음 복을, 타고 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홍랑도 이웃이기에 당연히 빈소를 찾았고 장례에까지 참석하여 얼굴을 비추었다. 그 동네에서 다른 사람은 참석하지 않아도 표시가 나지 않지만 홍랑이 참석하지 않으면 당연히 표시가 난다. 시골 동네에 발붙이고 살려면 동네 경조사를 꼭 챙겨야 하는 법이다. 도회와 다른 점이 그것이다.
그 할머니가 죽자 동수 엄마가 왔다고 했는데 홍랑은 보지 못했다.
옆집 할머니가 죽자 동수 엄마가 집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동수를 데리고 나갔고 집은 빈집으로 남아있었다. 농지는 다른 이웃에게 소작을 맡기고 동수를 김천 시내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는 말을 홍랑은 아내를 통해서 들었다.
초식동물은 그 동수 엄마의 판단이 현명한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의 미인이 시골 동네서 썩어서는 아니 될 인물이라는 말까지 했다. 홍랑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말이었다.
동수 엄마가 미인이야?
형님! 참, 인물 볼 줄 모르네, 그런 눈으로 어떻게 형수 같은 여자를 만났어요? 이목구비가 선명한 게, 눈빛이 선하고 키도 적당하고, 지적이고 현대 감각을 지닌 게 어디를 내놓아도 빠지지 않지요.
초식동물은 동수 엄마를 두고 진흙에 묻힌 진주라는 말까지 했다.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홍랑이 보기에는 몸빼라는 작업복 바지에 장화를 신고 얼굴까지 가리는 터빈을 쓴 시골 아낙네로만 보였는데 거기에서 무슨 진주를 찾는단 말인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로부터 일 년쯤 후,
홍랑이 무슨 일인가,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가니 손님이 와 있었다. 상당히 세련된 미모의 여자였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다가 홍랑이 들어가니 인사를 하는데 그냥 보험 설계사나, 무슨 외판원인 줄 알고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뵙는데 나오셔서 차나 같이 하시죠?
오랜만? 누구시더라?
홍랑의 아내는 동수 엄마라고 했지만, 동수가 누군지 기억이 얼른 나지 않았다.
옆집, 동수 엄마!
아내가 옆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듭 이야기를 하는데 보니 C의 아내였다. 희고 치열이 고른 치아에 화장을 연하게 하고 머리를 갈색으로 천박하지 않게 물을 들였느니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초식동물의 말이 맞았구나, 이렇게 미인이었구나. 정말 지적이고 현대 감각이 있네!
같이 앉아 차를 마시는 내내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절세의 미인, 진흙에 묻힌 진주라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실감했다. 동수 엄마는 김천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시립 주차장 매표소에 근무한다고 했는데, 그녀를 보고 놀란 것보다 초식동물의 말을 뒤늦게 생각하고 그의 눈에 놀란 것이었다.
초식동물은 그랬다.
항상 홍랑보다 앞서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것이다.
초식동물, 그를 생각하면 슬프다.
홍랑이 어릴 적 집에 텔레비전이 처음 들어오고 본 프로 중에서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어린 홍랑은 그 프로를 즐겨 보았다. 아무런 비평의 눈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감수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동물에겐 먹이사슬이라는 게 있다. 그런 자연의 법칙, 생존의 이치를 이해하기 전의 일이다.
약육강식.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였다.
육식동물이 숲에서 초식동물을 노리는, 눈빛을 보면 간이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맹추격과 사생결단으로 달아나는 초식동물을 보면 어린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오금이 저리며, 잡히지 말아라, 잡히지 말아라, 외치곤 했지만, 결국은 땀이 손에 배일 무렵,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의 먹이가 된다. 사지가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이빨에 찢어지는 초식동물. 끝까지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쩌다 초식동물이 도망에 성공하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쫓고 쫓기는 동물의 이해관계, 사지가 찢어진 초식동물.
세상은 왜 저렇게 공평하지 않을까?
당시에는 그게 굉장히 슬펐다.
어린 심정에 생각했다. 포악한 육식동물이 세상에 없다면 초식동물에게 평화가 올 것인데, 그런 세상이 바로 지상의 낙원이 아닐까? 육식동물은 왜 하필 초식동물 중에서도 어린 것이나 약한 것만 택하는지 야비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텔레비전을 보면 초식동물은 오로지 먹고 종족 번식에만 열중했다. 육식동물의 공격을 막을 채비는 전혀 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먹이사슬 아래쪽에 있는 초식동물은 개체가 많다. 번식력도 완성하고.
그게 자연의 법칙이오,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살아보니 인간 세계가 그 동물의 왕국과 흡사하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초식동물의 눈이 선하다는 걸 몰랐었다.
초식동물, 그가 초식동물의 눈을 거론하고 그 눈을 다시 보았다. 언제나 홍랑보다 앞서 그런 것을 가르쳐준 초식동물이었다.
정말, 육식동물이 없다면 초원에 평화가 있는 지상낙원이 될까?
초식동물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그는 세상에 없다. 서글픈 일이다.
난데없이 해장부터 초식동물을 떠올렸을까?
커피가 식어 있다.
저 자식은 커피를 안 처먹고 턱을 괴고 뭐 하는 거야?
개똥이와 눈이 마주쳤다. 개똥이의 눈에는 그런 빛이 역력하다.
저 자식의 이름은 게톤인데 홍랑은 개똥이라 부른다. 개똥이가 이 찻집의 주인이다.
개똥아!
홍랑이 그렇게 부르면 녀석은 냉큼 달려온다. 개똥이가 무슨 뜻인지 알 리가 없는 녀석은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주는 데 대해 감사하다는 투다. 홍랑은 아침마다, 아침을 먹고 나와서 커피를 한잔하며 사색에 잠기곤 한다.
오늘은 초식동물을 떠올리고 한참이나 그를 생각했다. 이제는 좀 덤덤해진 모양이다. 그를 떠올려도 견딜만하다. 세월이 약인 모양이다. 왜 난데없이 그를 떠올렸을까? 이 노천카페에서.
노천카페라고는 하니 그럴듯하게 꾸민 정원이 있는 테라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런 곳이 결코 아니다. 굵은 야자수 줄기를 기둥 삼아서 얼기설기 얹은 함석지붕에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가 있고, 이백 원짜리 싸구려 커피, 아니 정정하자. 근간에 왕창 올랐다. 지금은 이백오십 원이다. 아무튼, 커피와 라팔예라는 미얀마 전통차를 파는 현지인의 카페다. 물론 쌀국수나 간단한 식사도 파는 곳이다.
오늘 여기서 새로 온 소녀를 보았다. 개똥이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뭐라고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다 알아듣지는 못했고, 눈치로 보니 시골에 있는 친척 집에서 데려온 모양이다.
커피를 가져온 그 소녀의 눈망울에서 초식동물을 떠올린 것이다.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어디선가 초식동물이, 그가 지닌 특유의 눈빛으로 홍랑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홍랑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아까운 커피가 다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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