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7월 2일) 김종석, 김태석, 서영태, 정철규, 김태정, 이진현,
이미정, 서현성, 윤은정, 최현선, 총 10명
07:00 기상
08:00 아침식사(토스트, 우유)
09:00 campsie로 출발(일부는 김창호씨 승용차, 일부는 전철 이동)
난 전철로 남자 단원들 데리고 이동 kings cross역-campsie역
09:40 campsie역 도착- 차량으로 시드니 한인회관으로 이동
11:30 점심식사(밥, 된장국)-노인회 회원들과 함께
13:00 [풍동전 공연]-노인회 120여명 관극, 호주$400 모금 찬조
15:00 공연 끝 정리
16:00 한인회관 출발-도보로 campsie역까지
일부는 중간에 김창호씨 차 만나 두리하우스로 바로 감.
16:30 campsie역 도착 - campsie시내 관광
17:30 campsie역 출발
(김종석, 정철규, 윤은정, 서현성, 이진현, 서영태)
18:00 kings cross역 도착
18:30 저녁식사(카레라이스)
20:00 조셉김 부부 우리 초청하러 옴(차량 2대 분승)
21:30 조셉김 집에 도착(스트라스필드)
22:00 회를 안주 삼아 술 파티 - 광란의 밤
01:00 조셉김 집 출발
01:30 두리 하우스 도착 취침
6시30분 정도에 잠이 깨었다. 누워 있자니 그렇고 혼자 일어나 조용히 샤워를 했다.
기분이 상쾌하다.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조금 차갑다.
7시에 다들 기상을 시켰다.
8시가 되자 여자단원들이 계란후라이를 넣은 토스트를 만들어 왔다.
아침식사다. 우유 한잔이랑 토스트 한 조각을 먹고 난 뒤 우린 출발 준비를 했다.
오늘은 한인회관에서 시드니 노인회를 위해 [풍동전] 공연이 있는 날이다.
한인회관은 시드니에서도 한국인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campsie지역에 있단다.
두리하우스 사장님이 우리를 위해 차로 태워주시겠단다.
그런데 본인은 다른 일이 있어 데려다 줄 수 없고 다른 분에게 부탁을 했단다.
우린 전철을 타고 가면 되니 그렇게 안 하셔도 된다고 만류하였지만
악기랑 짐이 많아 전철로는 곤란하다며, 굳이 태워 주시겠단다.
참 친절하시고 고마우신 분들이다.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니 두리 하우스를 2곳이나 운영하고
생수 장사까지 하시면서 상당히 바쁘게 사시던데 굳이 도움을 주시겠단다.
그렇다고 우리가 따로 차량 운임을 지불하는 것도 아닌데~~~~~~~~~~~~~
여자단원들이랑 김태석 감독은 짐을 가지고 차량을 타고 가고
난 남자 단원들이랑 전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전철은 시드니햄역에서 갈아타는 것이 가장 좋단다.
시드니햄역은 킹스크로스역에서 5번째 정거장이고 다시 5정거장을 더 가면 캠시역이다.
9시가 되자 두리 하우스 사장님이 부탁해 놓은 차량이 왔다.
일일관광업을 하시는 김창환씨다.
캠시역에서도 한인회관이 상당한 거리에 있다면서 역에 내리면 우릴 데리려 오겠단다.
차량에 짐을 실어주고 우린 킹스크로스역으로 가서 전철을 탔다.
1사람당 편도요금이 $2.8(2,140원(호주$1=766원))이다.
시드니햄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캠시역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호주에 왔을 때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라 하여 campsie에 와 본 적이 있다.
참고로 시드니에서 한국인들이 주로 분포되어 살고 있는 지역을 보면,
campsie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어 campsie지역은 시드니의 한인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eastwood지역과 strasfild지역도 한국인들이 상당히 많이 살고 있다.
지난번에 호주를 방문했을 때 strasfild에서 1주일동안 있었다.
우린 캠시역에서 김창환씨 차를 타고 한인회관에 도착했다.
거리는 한 2km 정도 되는 것 같다.
한인회관은 주택지 근처 조용한 냇가에 자리잡고 있다.
시간은 10시 무대는 공연준비에 분주하다.
시드니 한인통합노인회 이영순 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몇몇 임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무대 앞을 배경으로 쓰는 십장생 가림막을 쳐서 무대 위는 자연스럽게 분장실이 되었다.
무대 앞에도 마당극 형태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마루로 무대가 만들어져 있는 그런 한인회관이다.
우린 이 무대를 좀더 넓혀서 사용하고, 객석은 그냥 8명씩 앉도록 되어 있는 원탁테이블이다.
10시30분이 되자 노인회에서 영어 강습이 시작되었다.
모인 노인 분들이 120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간단한 복사물을 나누어주고 강의를 하는데 단어를 중심으로 간단한 문장을 가르쳐 주는 공부다.
오늘 공부하는 복사물을 받아 보았는데 C로 시작하는 단어에 관한 공부다.
CAR, CARD, CAPITAL, CALL 등의 단어가 8개정도 적혀 있고 단어 밑에 간단한 예문이 한 두개씩 있다.
어른신들이 자식들을 따라 이국만리 이민을 왔는데 말은 안 통하지
자식들은 매일매일 삶의 굴레 속에서 바쁘고 여유가 없지
이렇게 라도 모여 서로 그리움을 달래고
비록 암기야 제대로 안 되겠지만 함께 영어 한 단어라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할아버지들 보다 할머니들이 훨씬 더 많은데 만나면 서로 이야기하기 바쁘다.
그래서 이민을 가면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함께 모여 있는 것이
살기에도 편하고 외로움도 달랠 수 있기 때문에 집단촌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생활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도 하고 노인회도 만든 것이다.
주로 공지사항을 보면 전부 이 교회 저 교회 행사 안내들이다.
그래서 다들 이민을 오면 집단 속에 소속이 되기 위해 싫든 좋든 교회를 다니는 것 같다.
40분 정도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 [풍동전]공연이 있는 관계로 11시반에 점심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는 한인회관 주방에서 공동으로 만들어 제공이 되는 데
이 일에 봉사를 하시는 분들은 교회에서 봉사하시는 분이나, 어른신 중에서 활동적인 분들이 주로 하고
어떤 분들은 물품이나, 돈을 찬조하기도 하여 여기에 쓰이는 비용들이 충당되는 것 같다.
된장국과 밥 그리고 김치랑 3개의 반찬이 상위에 차려졌는데 아욱을 넣은 된장국 맛이 기가 막히다.
된장국이 맛있어 밥을 한 그릇하고도 조금 더 먹고, 호주산 와인도 한 잔 했다.
점심을 먹고 12시40분부터 [풍동전] 길놀이에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길놀이는 꽹과리가 앞장을 서고, 징, 장구 3개, 북 3개 순서로 객석을 한바퀴 돈 뒤
무대 위에 이르러서는 빠른 탬포로 휘몰아치다가 서서히 잦아들고
시종 윤은정이의 관객과 주고받는 넉살좋은 대사로 극은 시작되었다.
보리타작 장면에서는 도리깨 4개를 시드니 공항에 압수 당한지라 그냥 행위로 흉내만 내었다.
정말 도리깨만 있었으면 어른신들이 훨씬 더 향수에 젖었을 것이다.
모두들 재미있어하면서 흥미롭게 관극을 하고 있다.
보부상 장면에서 보부상들이 노래를 부르며 김일두 선생님이 그려준 선화를
객석에 앉으신 어른신들에게 40점 정도를 나누어 드렸다.
우리 극단예전의 한결 같은 후원자인 김일두 선생님께서 우리가 떠날 때
좋은 곳에 선물하라면서 선화 60점과 쥘부채 10점을 손수 그려 주셨다.
어른신들이 처음엔 이게 뭔가 하시다가 손수 그린 선화인 걸 알자 서로 달라신다.
하지만 120여분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 드릴 수가 없다.
다만 앞에 앉으신 분 위주로 행운이 돌아가는 수밖에
근데 조금 있더니 누군가가 돈을 걷기 시작한다.
갑자기 객석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돈 걷는다고 일부 몇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관극분위기가 흐려질 수도 있고,
무료 공연이라고 하더니 우리가 선물로 나누어 드린 선화를 파는구나 하고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부상 장면에서 그림을 선물로 나누어주었으니 말이다.
암튼 별 무리 없이 돈 걷는 행위가 끝나고 장승장면을 지나 풍동이가 각설이 타령 하는 장면이 되었다.
한인회관에서도 깡통을 구할 수가 없어 냄비로 각설이 깡통을 대신 했는데
조금 전에 모금한 돈이 각설이 냄비 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확인을 했더니 호주$400이나 되는 거금을 모금 하셨다.
결혼식 장면이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뒷마당이 시작되었다.
역시 사물놀이 장단에 한국사람은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무대 위는 어른신들과 배우가 함께 어루러져 돌아간다.
징과 북 하나가 어른신들 손에 넘겨졌다. 다들 신명이 있으시고
나이 많으신 분들은 옛날 한국에 있을 때 한번씩 정도 사물을 만진 경험들이 있으시기에
사물의 기본 장단 정도는 무리 없이 흥과 함께 어우러져 넘어간다.
뒷마당이 끝나고 함께 춤을 추신 어른신들과 기념촬영을 끝으로 모든 공연이 끝났다.
노인회를 만들었다는 여자분(나중에 난 누님이라고 불렀다)이 다가와서 공연 너무 잘 봤다면서
어디에 묵고 있으며, 언제까지 묵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호주 떠나기 전에 한번 찾아오겠다고 한다.
우린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고 사물을 정리한 뒤 뒷정리하고 계시는 어른신들과
회관을 관리하시는 분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악기를 들고 한인회관을 나셨다.
우리를 태워준 김창환씨가 끝나면 데리러 오겠다며 끝나는 데로 연락을 달라고 하는데
괜히 미안해서 그냥 우리끼리 캠시역까지 걸어가자면서 출발을 했다.
밖엔 계속해서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조용하고 고즈넉한 전원주택가를 촉촉히 적시고 있고
한인회관 옆 개울엔 장마로 불어난 물이 황토색을 띤 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캠시역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데,
슬슬 걸으며 한인들이 많이 사는 캠시 지역을 돌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악기가 젖어서 문제가 되는데 이 정도 비는 괜찮을 것 같다.
절반쯤 걸어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아침에 우리를 데려다 줬던 김창환씨가
차를 몰고 한인회관으로 우리를 데리러 가던 중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왜 연락 안 했냐고 묻는데 그냥 미안해서 우리끼리 구경하며 걸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일부는 졸지에 차를 타고 두리 하우스로 바로 가고, 우린 6명이서 걸어서 캠시역가지 왔다.
바로 전철을 탈까 하다가 캠시를 좀 더 돌아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어차피 숙소에 가면 저녁 먹고 놀 건데 캠시를 좀 더 눈에 익히고 가자.
다들 뭘 좀 먹고 싶어하는 눈치이다. 뭘 좀 사줄까 하다가 가까이에 있는
치킨 가게에 들어갔다. 철규와 은정이가 $10씩을 보태겠다며 맛있는 것 먹자고 한다.
뭘 먹을까 망설이다가 닭다리 그림이 그려져 있고 너겟 3조각과 콜라 1개 해서
세트로 $5.5이라고 쓰여 있어 일단 양을 몰라 2셑을 주문하고 $11를 지불했다.
근데 그림에 그려져 있는 닭다리는 안나오고 정말 롯데리아에서도 파는 조그만 너겟이 나왔다.
아니 요따구 너겟 6개 조각과 콜라 2병에 $11을~~~~~우씨!!!
목만 추기고 좀더 걷다가 한국에서 먹어보지 못한 것을 먹어보기로 했다.
거리를 따라 생선가게, 채소가게, 정육점, 식품점 등이 늘어서 있는데
한국의 재래시장을 조금 현대식으로 바꾸어 놓은 듯한 거리의 풍경이다.
생선가게에도 들어 가 보았는데 우리 재래시장의 생선가게 모습 그대로다.
거리를 따라 걸으면서 좀 특이한 음식을 찾아보았으나 햄버거나 치킨 외엔 특별한 것이 안 보인다.
결국 음식도 세계화가 되어 우리나라에 대부분 다 들어와 있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는 자기나라를 대표할 특별한 음식이 없기 때문에
그냥 일반적인 양식을 먹거나 각 민족들이 들어와서 자기들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걷자 소박한 중국 음식점이 보이는데 오리인지 닭인지를 튀겨 소스를 발라 걸어 놓은 것이 보이고
그 옆에 갑오징어(?)를 데쳐서 소스를 발라 놓은 것이 보인다.
한 마리 $4인데 한 접시에 $10이란다.
우린 만장일치로 그 갑오징어(?)를 먹기로 하고 2접시를 시켰다.
라이스도 줄까 묻는데 밥은 필요 없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자스민 차가 나왔다. 그리고 우거지를 넣은 사골 국 같은 게 나왔다.
오징어를 썰어서 소스가 발라져 나왔는데 맛이 괜찮다. 다들 탁월한 선택이라며 좋아한다.
음식이름을 물었더니 중국어로 <망니>라고 한다. 영어로는 cuttlefish(오징어)
2접시를 6명이 맛있게 먹었다. 다들 배도 적당히 부르다.
나는 음식값 $20를 지불하고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한 뒤 중국집을 나왔다.
우린 전철을 타고 두리 하우스에 돌아오니 김태석 예술감독이 열심히 카레라이스를 만들고 있다.
노인회를 만드신 여자분이 김감독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단다.
같이 저녁 식사나 하자고 하는데 지금 저녁 준비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럼 저녁 식사 후 술이나 함께 한잔하는 게 어떠냐고 그래서 OK했단다.
우린 맛있게 카레라이스로 저녁을 먹고 잠시 고스톱이나 한판 치고 있는데
8시가 되자 조셉 김 부부가 차 2대를 가지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승합차와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Strathfield에 있는 조셉 김 댁으로 갔다.
호주의 집들은 대게 앞에서 보면 수수하게 보이지만 집안으로 들어가면
후원에 잔디가 깔려 있고 조그만 수영장을 갖추고 있는 게 보통이다.
현관에 들어서자 12살 난 남자가 안녕하세요 하고 우리말로 인사를 한다.
거실에 들어서자 한국에서 오셨으니 한국식으로 인사를 하겠다며, 큰절을 한다.
우리도 어떨결에 함께 절을 했다. 음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군.
이름은 다니엘인데 12살이며, 공부도 잘하여 장학금을 받고 명문사립중학교에 다닌단다.
영어, 한국어, 중국어 등 5개 국어를 할 줄 알며, 피아노도 치고 바이올린도 잘 켠다.
속으로 아니 12살짜리가 언제 그런 걸 다 배웠지 하며 감탄스럽다.
지하에 있는 또 다른 거실로 내려가자 뒤로 대형 유리문이 있고 그 밖엔 잔디밭과 수영장이 아담하게 있다.
뒤쪽에서 봐선 지하가 1층인 셈이다. 집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중산층 이상은 되어 보였다.
27년 전인가 이민을 와서 교회에 다니며, 25년 전에 두 부부가 노인회도 만들고
가족 모두가 봉사 활동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가정이다.
지금은 노인회도 엄청나게 커졌지만 초창기엔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고,
유희를 할 사람을 초청 할 수가 없어 가족 모두 한가지씩 악기를 다루는 법도 배우고
큰딸은 직접 사회도 보며 어릴 때부터 가족 모두가 직접 재롱잔치를 해야만 했단다.
딸 둘은 20대이고 아들 하나는 늦동이를 본 셈이다.
휴대폰과 카오디오 등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한국 분들을 많이 초청해
집에서 파티도 자주 여는 모양이다.
시드니 올림픽 때는 선수단이 초청을 받아 놀다가 간 일도 있단다.
훈제연어와 참치회, Kingfish회와 야채를 안주 삼아 양주와 와인으로 술파티가 벌어졌다.
파티 중간에 약사 일을 하고 있는 큰딸이 들어오고 마지막으로 작은 딸이 들어 왔는데
가족 모두 엄청나게 끼가 많고 다들 즐겁게 잘 논다.
다니엘의 바이올린 연주에 이어 우리 팀 여성들의 창 한 자락이 펼쳐졌다.
드디어 주거니 받거니 하며 15명이 어우러져 엄청나게 잘 논다.
집안에 있는 노래방 기계가 켜져 어느새 홀은 노래방 분위기로 바뀌고,
술은 이제 맥주에 이어 소주까지 나왔다.
조셉 김과 나와 김감독은 어느새 형님동생이 되었다.
진현이는 둘째 딸을 달라면서 어느새 장인 장모가 되었다.
이것저것 술을 많이 마셔 정신도 가물가물 해지고 내일 블루마운틴 관광도 있고 해서
우린 새벽 1시에 파티를 끝내고 스트라스필드를 출발 1시30분에 두리 하우스로 돌아 왔다.
다들 씻는 둥 마는 둥 오자마자 대충 그대로 잠이 들었다.
P.S. 조셉형님 가족과 그 후의 이야기
다니엘 어머니(누님 아직 이름도 안 여쭈어 봤습니다) 고향이 단양 도담삼봉 있는 곳이란다.
근데 이번에 초등학교 동기회가 있어 25년 만에 동기생들 보러 한국에 나온단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에 오시면 꼭 대구에 오셔서 한번 만나자고 부탁을 드렸다.
우린 7월 8일에 귀국했는데 우리보다 하루 먼저 한국에 나와서 서울이랑, 제주를 돌아보고
대구 두산동에 다니엘 큰아버님 댁이 있어 13일(일요일) 대구를 방문했다.
13일 오전에 내 휴대폰으로 누님 전화가 왔는데 난 그때 시골 부모님 댁에 가서
빗속에 형제들과 낚시를 놓고 있었다. 그리고 고기가 한참 잘 잡히고 있을 때다.
저녁에 누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난 시골에서 가족들보다 조금 일찍 올라 왔는데
낮에 김감독이 조셉김 형님 부부와 다니엘 그리고 누님 친구 3분과
감포에 회 먹으러 다녀와서 밤 9시에 MBC 앞에서 나와 합류했다.
그 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월드컵 경기장과 수성유원지를 돌아봤다.
그리고 상동막창에서 소막창 돼지막창에 소주 한잔씩하고 밤 12시가 조금 넘어 헤어졌다.
그날 조셉형님 이야기가 자기집에서 그렇게 많은 파티를 했는데 우리처럼 잘 노는 팀은 처음이란다.
첫댓글 아~ 호주서 손님이 오셔서 3040참석 어렵다던....그분이 이분이셨군요^^
수야 그날 이분 땜시 3040모임 못갔다. 나 하늘천따지 오리숯불구이 좋아하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