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알현한뒤 돌아와 페르니엘로부터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들었다.
지금은 말그대로 ‘전제왕권’의 시대. 중학교때 배웠던 절대 왕권의 시대인것이다.
아니, 시대라기보다는
지금의 패권을 쥐고있는 에이런의 황제가 휘두르고있는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세 개로 나뉜 공작가는 세 개의 최고의 권위를 나눠 가지고 있는데
페르니엘의 가문인 엘리엔가(家)는 정치를,
에이런의 개국과 함께해온 전통을 자랑하는 미하엘공작가는 군권을,
그리고 평민에서 공작까지 파란만장한 출세의 길을 걸은 펠라하가(家)는
재판을 담당하고 있다.
중요한것은 그 세가문이… 황태자인 나를 지지하지 않고있다는 것.
듣기에 ‘황태자’는 엄청 나약한 사람이었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권위를 휘두를줄 몰랐으며
타인에게 질시받으면서도 그것을 벌하여주지 못했다.
또 황태자로서 해야만하는 공부따위를 따라가지 못했고
황제의 부름에 도망이나 치는등의 추태를 부렸다.
나같아도 이런 황태자는… 별로 지지하고싶지 않다.
만약 지금의 시대가 황제의 권한이 약한 귀족들의 세상이라면
분명 그 황태자는 엄청난 세력을 업고 황제에 등극했을것이다.
물론 허수아비 황제로서.
하지만 전제왕권이 뒷받침되고 그것이 지금뿐만이 아니라
개국이래 백년전 잠깐을 제외하고 지켜져왔다면
귀족들은 강하고 동경의 대상인 군주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택한 자가 왕이되어 황제를 뒤에 업고 위세를 떨치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나는, 아니 ‘황태자’는 티끌만큼의 세력도 없었다.
나의 부관인 페르니엘의 가문마저도 2황자를 지지하고있으며
펠리하가는 3황자를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공작가중에 제일 세력이 강하다 할수있는 미하엘 공작가는
황가의 정통성을 지지하는데도 불구하고 ‘황태자’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황태자’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던 놈인것이다.
일단에 그가 첫째이기 때문에 받은 황태자의 지위는 그들에 의해 뒤집히기 일보직전이었고
결국 누군가의 술수로 독을 먹은것.
약하디 약한 황태자덕에 없어도 되는 계승권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젠 뒤바꿔야 하겠지. 내가 해낼것이다.
그리고… 페르니엘. 아니… 펠인가.
처음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당황했던 이 은발의 남자는 ‘황태자’의 죽마고우였다.
약한 황태자가 겨우 이 자리를 지탱하고 버틸수 있었던것은 바로 이 남자의 덕.
역시나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나를 ‘황태자’ 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의 감이라 할것인가. 타인이라는것을 알아챘다.
물론 내가 일부러 유도 한 것도 보탬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난 ‘나’로서 황태자의 자리를 바로세우고 권위를 가질것이다.
절대 ‘황태자’ 그놈의 그림자가 되고싶지 않다.
애초에 내가 당당하게 그에게 ‘난 누구인가’라고 물은것은 바로 그때문.
측근으로 보이는 그에게 철저히 나는 ‘그’와 다르다는것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를 친구로 대해주기를.
“페르니엘”
“예 전하”
“내가 유리시엔… 으로 보이더냐?”
“……”
“네 이야기를 들어주마. ‘그’의 친구였던 너의 심정을.”
잠시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날 보았다. 조금의 의아함과 함께.
그리고 곧 입을 열었다.
“처음엔… 독을 먹은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인줄 알았더랬지요…”
“그러냐”
“…예, 하지만… 하란백작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그게 아니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
“마치… 율이 아닌듯… 유리시엔이… 아닌 타인인것같다는.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다시 그가 말했다.
“그리고 황제폐하를 알현한후에는… 확신했습니다.”
그가 정확히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말이더냐. 그래… 난말이다…”
잠깐 말을 멈췄다. 뭐라고 말을할까. 솔직하게?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한사람쯤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도 ‘나’로써 지탱해갈수 있다.
나에대해 자신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한사람이라도 믿는자가 없다면…
나도 무너질지 모른다. 나에대해 나는 확신할수 없다.
“난 유리시엔이 아니다.”
“그럼… 누구신지요”
난 누구일까. 진도현? 그럴까? 정말로?
이곳에 온이상 진도현이란 그것은 쓸모없는 과거의 산물일뿐이다.
여지껏 내가 속한곳이 한국이었기 때문에 충실했던것이지
이제와 여기에서 미련을 가질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 난 누구일까.
난…
“그럼에도 난 유리시엔이다”
순간 그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뭔가 비장한말이 나오길 기대했던가?
“네가 나에게 ‘그’에게 보였던 만큼의 신뢰를 보여준다면.
난 내가 ‘누구’인지 이야기 해주겠다.
네가 알고있듯 나는 유리시엔이며… 유리시엔이 아니니“
“가셔야 합니다!”
“급할것 없다”
“당신께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압니다. 그렇기에 가야합니다!”
뭔가 진중하게 고민하는 듯하던 그는 한참후에 내게 황제에게 내가 ‘그’가 아님을
말해야 한다며 난리를 쳤다. 그게 내가 원하는 거라면서.
나의 의지를 존중한다면서.
알고있다. 왜 그가 그러는지는…
황제에게 말한다는것은 바로 ‘나’를 ‘나’로서 인정받게 해준다는것.
알고있다. 하지만 아니다. 지금은.
“페르니엘, 그리 급할것 없다 하지 않았느냐”
“전하. 그래도 폐하께서는 알고 계셔야 합니다”
“…외면하려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돌아가자”
“전하…”
“네가… 나의 친구였다면. 돌아가자”
“유리시엔…”
“그래. 난 유리시엔이다. 돌아가자 페르니엘”
결국 복도까지 질질끌려나왔다가 어전에 거의 다다르러서야 설득했다.
겨우 발걸음을 돌려 나가는데 잠깐 스쳐간 칠흙같은 흑발.
내가 아는 누군가의……
“그럴 리가 없지.”
“예?”
“아니다 돌아가자.”
아닐것이다. 그래.
오늘도 읽어주신분들 감사하구요 'ㅁ'
꼬릿말 남겨주시면 더더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재밌습니다...! 또 올려주세요오~~
헛, 다음편은 내일<<<<
그러고보니 유리시엔을 줄여서 율이라고 부르던데... 작가님 이름...!!!!!!
율이란 이름은 제가 보던 소설주인공 애칭인데요... 이번에 캐릭터 설정하면서 약간 고의성이 ....<<<<<<<<<<<<아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