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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리트는 낭만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음악사에 세운 찬란한 금자탑이다. 샘솟듯이 솟아나는 음악적 영감은 이 천재로 하여금 노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슈베르트는 무려 600여 곡의 예술가곡을 창조해 내었다. 이는 질과 양에 있어서 그 후 어느 구구도 해내지 못했던 것이며, 그 증 일부는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기악곡으로 재탄생 되었다. 아마도 이 아름다운 곡을 리트로만 듣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던 모양인다. 슈베르트 자신은 물론이고 리스트에 있어서 그 정점을 이루었다. 슈베르트의 리트뿐만 아니라 이 기악곡들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우리들의 음악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는 오페라가 탄생하였고, 고전주의 시대에는 현악사중주와 교향곡이 탄생되었다. 이들 장르는 그 후 클래식 음악의 적자가 되어 고전 음악의 세게를 지배하게 된다. 그렇다면 낭만주의 시대에는 어떤 음악의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가곡이라고 불리는 리트이다. 물론 리트는 낭만주의가 도래하기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낭만주의 이전의 리트는 양과 질적인 면에서 낭만주의 시대의 리트와는 그 차이가 크다. 리트는 낭만주의 특징을 온전히 품고 있는 낭만주의의 적자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리트는 형식보다는 창작자의 느낌과 주관적인 감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어떤 다른 장르의 음악보다 낭만주의적이다. 우리는 리트를 독일 가곡이라 부른다. 이는 독일의 낭만주의가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장르 간의 벽을 허물기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독일의 리트는 낭만주의적 표현에 가장 적합한 음악형식이었다. 리트의 세계를 가장 먼저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워낸 작곡가는 슈베르트이다.
음악과 문학의 결합
슈베르트가 활동하던 시기는 독일 낭만주의 서정시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뮐러, 슐레겔, 하이네, 뤼케르트 등 슈베르트 가고 작품들의 작사가들은 당대의 유명 시인들이었다. 이들의 시집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의식이 높았던 빈 시민들의 입에서 언제 어디서나 노래되었다. 이 작품들의 내용은 남녀 간의 사랑,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 등으로 사람들에게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정서와 감성으로 만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중가요 중에 '만남'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노랫말과 같이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와 슈베르트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슈베르트가 600여 곡의 가곡을 작곡할 만큼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시들에게서 받은 영감이 큰 역할을 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음악과 문학의 결합인 이 가곡 작품들에게서 문학을 배제한 채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음악사에서는 그 당시에 가사가 있는 가곡이 일종의 유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슈베르트의 작품들도 이러한 유행에 힘입어 600여 곡이나 되는 가곡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슈베르트의 600여 곡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품고 있는 가곡을 후세에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피아노의 귀재 리스트는 자신의 창작곡을 연주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비르투오소적인 연주를 과시하기 위해 유명 작곡가들의 멜로디를 차용하여 자신이 편곡하여 연주하기를 즐겼다. 오케스트레이션의 대가 베를리오즈도 슈베르트의 〈마왕〉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으로 사회적 부가 축척되어 가던 유럽의 시민계층은 자신의 거실에서 바이올린 또는 플루트로 가곡 작품을 연주하기를 즐겼다.
슈베르트 자신도 자신의 가고 작품의 멜로다를 사용하여 새로운 장르의 명작으로 재탄생시켰다.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시든 꽃 주제에 의한 변주곡〉, 피아노 독주를 위한 〈방랑자 환상곡〉,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그리고 〈피아노 오중주 송어〉 등이 바로 이런 곡들이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시적 문학적 요소를 배제한 뒤의 효과를 제대로 짚어보려면 먼저 슈베르트가 가사를 취급하는 방법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슈베르트는 원시가 나타내는 언어의 뉘앙스를 세심하게 살려 좋은 효과를 낳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사실이라고만 볼 수 없다. 유명한 그의 음악 예를 보면, 'du holde Kunst, in wieviel grauen Stunden'(상냥한 예술이여, 수많은 어두운 순간 중에도 -1절), 'Oft hat ein Seufzer, deiner Harfentflossenn'(종종 닥치는 한숨도 너의 하프는 날려 버리고 -2절)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전형적인 유절가곡(똑같은 음악을 원시의 연에 따라 1절 2절 등으로 반복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1절 첫행에서 음악적 분절을 이루는 부분은 4음절을 마친 후인 'Kunst'과 'in'사이에 놓인다. 이는 원시와의 호흡과 일치한다. 그러나 2절에서는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다섯 음절을 마친 후인 'Seufzer'(한숨) 뒤에야 쉼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숨'이라는 한 단어가 완벽하게 앞뒤로 두 동강 나버린다. 이를 보상하기 위한 아무런 장치도 없다.
송어의 경우
작은 예이지만 이 이야기는 슈베르트가 단어에 따른 적확한 선율 구성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증명이 된다. 무엇보다도 그가 작곡한 수많은 유절가곡이 이를 웅변한다. 반드시 시의 연에 따라 정확한 음악적 표현만을 의도한다면, 각 연마다 악보를 달리 구성한 통절 가곡 형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가사와 선율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가곡에서 가사를 배제한 채 연주해도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끄집어 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곡에서 가사와 선율의 일치를 요구하지 않았던 것은 전기와 중기 낭만주의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특징의 하나라고 하는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반면 브람스를 거쳐 후기 낭만주의 시대에 접근해 갈수록,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볼프, 말러 등이 내놓은 가곡은 시의 단어 속으로 깊이 밀착해 들어갔다. 유절가곡은 자취를 감추고, 반복적 멜로디보다 음향의 세밀한 뉘앙스가 중요시한다. 따라서 이 시대의 가곡 작품으로서 가사를 배제한 채 기악으로만 연주되는 예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렇다면 슈베르트 시대에의 가곡은 가사의 내용을 무시한 채 '음악 따로, 시 따로' 식의 접근을 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세밀하게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송어'를 살펴보자. 시인은 송어잡이에 나선 낚시꾼을 주시한다. 날씨는 좋고 물은 맑으니 노래는 경쾌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시인은 내심 개울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송어의 편이 된다. '낚시꾼에게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나 보다.'에서부터 선율은 단조로 흐르며 불안함을 암시한다. '그래서 낚시꾼은 시냇물을 흐려 놓는다.'에서 피아노는 저음을 쿵쿵 찍어댄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들려오는 듯하다. 가사에서는 t 음이 세번이나 연속되고, 선율부는 같은 높이의 음이 연달아 나오는 7개의 8분 음표로 긴장을 고조시킨다.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송어는 잡혔다)'에서는 갑자기 분위기를 반전시켜 획 고개를 돌리는 듯한 날렵함으로 표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다시 처음의 분위기로 돌아가는 것은 노래에 등장한 사건이 결국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깊게 빠지기 싫은 해프닝에 그치고 마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에는 밀착돼 있지 않은 반면, 가사가 암시하는 사건의 줄기에는 깊은 공감으로 연결되어 있는 슈베르트 가곡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한 예다. 양자는 언뜻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가사를 배제한 편곡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전자인 단어와 선율의 밀착의 경우 가사를 배제했을 때 노래의 의미를 바로 상실해 버린다. 그러나 후자인 상황과 선율의 밀착에 있어서는 가사를 뺀 선율과 반주만으로 노래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묘사적인 반주부
〈송어〉의 예에서 보듯이 슈베르트의 가곡 작품에서 반주부는 그대로 하나의 음악의 시적 표현이다. 베토벤에 이르러 표현의 가능성을 크게 끌어올린 피아노가 가곡의 회화적 성격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가곡 중 반주부가 시가 표현하는 회화적 기능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은 어느 곡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단순한 만큼 아름다운 성악부 선율로만 귀에 남기 쉬운 〈보리수〉에서도 흔들리는 듯한 피아노 전주는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암시한다.
〈세레나데〉는 또 어떠한가. 눈치가 빠른 사람이면 누구나 반주음형이 연인의 창가에서 연주할 법한 기타의 음형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마왕〉에서 밤길을 박차고 달리는 말발굽 소리이며, 〈물 위에서 노래하다〉에서 수면 위를 고요히 흔들리는 반사된 풍경의 색채적인 아름다움이 그대로 살아나고 있는 반주의 표현은 또 어떤가. 그의 첫 작품인 〈물레 짖는 그레첸〉부터 반주부에 충실했던 슈베르트의 특성을 잘 나타내 준다. 물레를 돌리듯이 단조롭게 흐르던 반주가 순간 멈추고 '아 그의 키스!'를 외치는 부분에서 청중은 물레질을 멈추고 탄식하는 소녀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토록 상황을 정교하게 설명하는 반주부는 놀랍게도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가사의 기능이 없어도 곡의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반주부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곡의 모든 상황은 반주부가 거의 묘사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슈베르트 가곡의 특징은 슈베르트 가곡을 기악으로 연주하려는 시도가 유독 많았던 이유이다. 특히 악보의 편곡 없이 성악 부분만을 그대로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생물의 보이지 않는 생명의 에너지를 보여준다는 길리안 사진에서 잘려나간 이파리를 촬영해도 잘려나간 부분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처럼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가사를 생략해도 원곡의 대부분의 이미지는 손상을 입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가 가진 세밀한 장면 묘사의 효과는 목소리를 배제한 기악의 연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편곡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이를 보완할 만한 장치를 만들어 두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보완은 기악이 성악에 대해 반대급부적인 장점을 무기로 가진다. 그런 기악으로 장점으로 평가할 만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음역의 폭이 넓다는 점과 사람의 목소리에 비해 훨씬 어려운 기교도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피아노를 비롯한 기악의 연주는 호흡에 의해 분절될 수밖에 없는 프레이징을 훨씬 유려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저역에서 고역까지의 쏜살같은 음의 이동, 트레몰로와 트릴 등의 장식음 처리, 성부를 중첩시킨 다양한 효과를 모두 가능하게 해준다. 가사가 빠진 가곡의 아쉬움을 이런 기악의 다양한 효과로 만회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기악 편곡의 장점을 잘 활용한 사람은 피아노의 귀재 프란츠 리스트이다.
리스트의 편곡 작품들
프란츠 리스트는 19세기 중엽 개량된 피아노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피아노 창작곡과 편곡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의 편곡 작품들은 바그너와 슈만으로부터 멘델스존, 클린카, 베버, 베르디, 차이코프스키 등 동시대의 모든 작곡가들을 포함하고 있다. 당시에 유행하던 성악 작품의 편곡은 유명 아리아에서 주제를 빌려와 변주곡으로 만드는 형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리스트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성악 편곡을 자신의 거장성을 증명하는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그의 지인인 언어학자 픽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피아노는 예전의 사람들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교향악적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피아노를 위해 쓰여진 편곡 작품들이란 단조로운 공허감만을 주었을 뿐입니다. 피아노는 모든 악기 중 으뜸가는 악기로서 관현악의 전체 음역을 포괄하며 피아니스트의 열 손가락은 백명의 관현악단이 내는 화성을 모두 재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념에 따라 리스트는 기존에 알려진 유명 주제를 사용하여 관현악에 접근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슈베르트의 원곡에 바탕을 둔 편곡 작품들은 〈물 위에서 노래하다〉, 〈세레나데〉 등 여러 작품들이 있지만 이 중에서 〈마왕〉 및 〈송어〉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마왕〉은 애인 마리 다구 백작부인에게 헌정된 12개의 가곡에 포함된 작품으로, 1839년 초연되어 갈채를 받았다. 원곡의 멜로디 선율을 효과적으로 살리면서 강약의 다이내믹을 넓혀 아버지, 아들, 마왕 등 세 주인공 간의 심리상태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는 중음역에서, 아들, 마왕은 고음역에서 표현되지만 마왕의 목소리를 풍부한 장식음형을 사용해 '달콤한 유혹'의 느낌을 높여주고 있다. 원곡에서 단순한 저음역의 셋 잇단음표였던 간주부는 오른손으로 힘껏 높은 음역까지 뛰어오름으로써 극적인 긴장감을 유발한다. 아이의 공포 섞인 외침에 짐짓 무관심하게 반응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흥분이 고조됨에 따라 잇단음표의 강타로 표현된다.
〈송어〉는 분산화음으로 물가의 느낌을 충분히 표현해 주는 전주를 덧붙여 시작된다. 이어지는 원 가곡 부분은 두 개의 연이 연주된 뒤 처음부터 다시 반복될 때 모습을 바꾸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셋 잇단음표로 연주되는 반주부와 선율부가 교대로 등장하며 종횡으로 넘나들어 연주자의 기교를 마음껏 과시할 수 있게 한다. 송어가 잡히는 부분의 아슬아슬한 감정을 원곡과 무관하게 급격한 하향음형으로 표현한 것도 재치있는 처리이다.
슈베르트 자신의 편곡
피아노의 비르투오시티(virtuosity)를 한껏 발휘한 리스트의 편곡 작품에 비해 슈베르트는 주로 자신이 마음에 들었던 선율을 살려 다른 장르의 악기를 위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었다. 〈송어〉, 〈죽음과 소녀〉 등 두 개의 작품은 실내악 작품의 변주곡으로 녹아들어 갔고, 방랑자는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으로 〈시든 꽃은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으로 개작됐다. 〈시든 꽃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은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중 18번째 곡을 주제로 원곡 발표 1년 후 작곡한 변주곡으로 플루트의 전아한 음색과 화려한 기교에 맞추어 씌여졌다. 원곡은 실연의 슬픔을 홀로 달래며 죽음을 예감하는 내용으로 "아가씨가 준 모든 꽃들아. 너희를 나와 함께 무덤에 묻어 달라고 하자." 마지막 7번째 변주는 16분 음표로 화려하게 전개되는 부분으로 호흡 스케일 등 어려운 기교가 요구된다.
〈방랑자 환상곡〉은 가곡 방랑자에서 연감을 얻은 작품으로 원곡은 레치티타보(Recitativo) 스타일의 시작 부분인 "나는 산 저쪽에서 왔다. 골짜기에 안개가 끼고 ..."에 이어 환상곡에 전용된 주선율 "해도 내게는 차갑게 느껴지고, 꽃은 시들었다."로 이어진다. 이 멜로디는 고요하고 움직임이 적지만 음계의 제3음(G#)로 향하는 명백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어 먼 동경을 전해주는 동시에 전형적인 슈베르트의 스타일을 느끼게 한다. 이에 바탕을 둔 〈방랑자 환상곡〉은 그의 피아노 곡 중에서도 가장 이채로운 작품으로 전 4악장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만 곡 첫머리에 등장하는 독특한 음형에 의해 통일된 느낌을 갖게 한다. 가곡 방랑자 선율이 등장하는 부분은 작품의 2악장으로 다섯 개의 변주가 이어지며 두터운 화음의 명상을 들려준다. 이 작품은 리스트에 의해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되기도 하였다.
〈피아노 오중주곡 송어〉는 아마도 슈베르트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슈베르트가 가곡 송어의 주선율을 바탕으로 피아노 오중주곡으로 씌여 졌으며 피아노 사중주에 콘트라베이스가 추가된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이루어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편성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슈베르트 특유의 가요적 선율이 싱그럽게 잘 나타나고 있고 더블베이스와 피아노가 어우러지는 음향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후에 이러한 형식의 작품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아쉽다. 작품은 전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네 번째 악장이 각곡 송어에 의한 주제와 5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4악장의 가곡 숭어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먼저 현악기들이 우아하게 주제 선율을 한차례 연주하고 그것을 다섯 차례 피아노, 비올라가, 첼로,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이 이어받으며 변주를 이끌어 간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제3변주에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주제의 저음 연주에 높은 음의 피아노의 세련된 선율이 아름답고 독특한 효과를 내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경쾌하고 피날레는 경쾌하고 화려한 분위기로 이 곡을 마무리한다. 원곡인 가곡보다 한층 느긋한 빠르기로 제시되며, 세 번째 변주에서 피아노의 높은 음으로 잘게 나누어지는 음형이 특히 아름답다.
현악사중주곡 〈죽음과 소녀〉는 2악장에서 같은 제목의 가곡 후반부에서 주제를 빌려왔다. 원곡은 죽음을 피해 달아나려는 소녀의 절규와 소녀를 유혹하는 사신의 달콤한 유혹의 말로 되어 있다. 〈마왕〉을 비롯하여 죽음의 유혹을 그린 가곡이 왜 슈베르트의 작품들 중에 유독 많은 걸까. 질병과 세상의 몰이해에 시달려오면서 오히려 죽음을 편안한 안식처로 곁눈질해 보던 작곡가의 내면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2악장은 주제와 6개의 변주곡과 종결부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종결부에서는 주제가 여러 악기로 나뉘어져 연주되며 꿈처럼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슈베르트 가곡의 대표적인 편곡 음반
1. 피아노 오중주곡 송어 - 피터 뢰젤(p), 칼 수스케(vn), 디트마르 할만(va), 쥔야코프팀(vc), 라이너 후케(cb)
수 많은 유명 연주가 많은 연주 중에서 동독의 피아니스트 피터 뢰젤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흥겨운 송어 연주를 들려준다. 템포를 느긋하게 유지하면서 송어의 생생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내는 리드미컬한 연주는 미소를 머금게 할 정도로 흥겹게 들려준다. 뢰젤의 다소 유연하지는 않지만 또랑또랑한 터치가 연주의 완성도에 큰 몫을 한다. 베를린 클래식스(아르스 비벤디)의 녹음은 생생한 음향이 생생하게 살아나 오디오적으로도 최상의 음반이나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아쉽다.
또 다른 피아노 오중주 송어의 연주는 전에 포스팅했었던 아래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송어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Schubert Quintet 'Trout' - Brendel
https://blog.naver.com/h2kim59/222058501522
송어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Schubert Quintet 'Trout' - Brendel
연일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 아래가 아니면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워지면서 나무 나무 그늘 아래시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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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issin Plays Liszt : 송어, 마왕, 방랑자
쇼팽의 연주에 탁월한 연주를 보여주는 키신의 리스트 연주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리스트의 곡들에서 키신의 열정적인 타건을 들려준다. 송어에서 반복 부분에서 음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듯한 저역과 고역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부분은 일품이다. 마왕에서도 최후의 클라이맥스를 형해 속도를 늦추고 강열하게 두드려대는 다이내믹이 숨을 죽이게 한다.
3. List Schubert Song Transcriptions(Lieder) - Jorge Bolet
송어, 마왕, 보리수 등 슈베르트의 가곡을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리스트의 곡들을 조르쥬 볼레가 연주한 음반이다. 조르쥬 볼레의 음색은 미묘하고 다양하며 멜로디 라인이 노래하고 수반되는 주제가 명확하고 명료하다. 그의 템포는 다소 억제되어 있는 듯하나 음의 각 부분의 세세한 뉘앙스를 놓치지 않고 들려준다. 특히 물 위의 노래(Auf dem Wasser zu Singen)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슈베르트 곡이지만, 가사에 맞추어 멜로디를 배치하는 데 있어 점점 더 복잡해지는 반주와 더불어 리스트의 종교 찬송으로 승격되었다. 노래 전체에 걸쳐 뚜렷한 다이내믹 콘트라스트를 보여주며, 반복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암시할 수 있는 코다에서 절정에 달한다.
3. James Galway Plays Schubert : 세레나데, 시든 꽃 주제에 의한 변주곡
James Galway(fl), Phillp Moll(p)
약간은 두터운 듯한 골웨이의 플루트 음색이 풍요로운 느낌을 끌어올린다. 시든 꽃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 일정한 폭의 음색을 유지하면서 빠른 도약을 이끌어 내는 골웨이의 기교는 훌륭하다. 필립 몰의 반주는 지나치게 개성이 없을 정도로 모범적이라 다소 학구적인 느낌도 든다.
4. 방랑자 환상곡 -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루바토가 거의 없고 템포 설정이 다소 고식적이지만 리히터 특유의 강건하고 명료한 터치는 2악장에서 명상적인 느낌에 아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연마된 소노리티와 깔끔한 구성과 안정된 해석으로 리히테르의 피아니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려한 다이내믹이 넘치는 연주이다.
5. 호로비츠 엣 홈 - 호로비츠
이 음반에서 호로비츠의 리리시즘이 넘치는 세레나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매력이다. 편곡으로는 슈베르트 특유의 개성이 잘 살려내기 어려운 세레나데에서 원곡의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넓게 펼쳐지지 못하는 좁은 음장이나 좁은 공간에서는 마치 눈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듯한 현실감이 있다. 끊어지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 교묘한 페달링으로 낭만주의적인 슈베르트 성향을 기가 막히게 묘사하는 호로비츠의 연주에 탄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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