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저는 여태껏 동명왕=태조왕인줄 알았습니다
즉 나라를 처음 개창한사람한테
태조라는 칭호를 주는줄 알았는데요
그게 아니더라구요.....
(왕건도 태조왕건이라고 하구요
이성계도 태조이성계라고 하잖아요
여기선 왜 그런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동명왕과 태조왕은 어떤 관계일까요?
유화부인의 알에서 동명왕이 태어났구요
그의 아들이 유리왕이구요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그럼 태조왕은 누구란 말인지.....
가계도가 안 그려지네요....
- 이를 두고 말이 많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태조왕이 계루부 고씨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유리왕이 해씨인데요.
태조왕은 유리왕의 손자입니다.
하지만 고씨죠.
그래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고구려 초기 왕의 성씨는 왕위 세습 전까지 기록이 애매해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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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년 광개토대왕비를 세우고
423년 중원고구려비를 세웁니다(이때 한강유역을 빼앗습니다)
그리고 427년 평양으로 천도를 합니다
이후 백제와 신라연합군이 고구려를 몰아내고
신라는 한강상류에 단양적성비를 세웁니다
하지만 진흥왕이 배신을 하면서 한강을 독차지하고
이를 기념하여 한강하류에 북한산비를 세웁니다
그런데 이때 백제는 완전히 한강에서 세력을 잃지 않았나요?
성왕이 신라를 공격할때 한강하류를 차지했다고 해서요
성왕은 전사하고 한강유역은 완전히 신라차지가 되는게 아니었나요?
이 부분이 명확하지 못한거 같습니다
- 백제가 한강을 잃었다가 신라와 힘을 합쳐서 빼앗습니다.
하지만 신라가 배신해서 다시 빼앗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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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광종은 호족을 비롯한 적대세력을 저지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963년에 귀법사를 창건하고,
이곳에 구호기관인 제위보를 설치하여 각종 법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는 귀법사의 균여와 탄문 등을 통하여 호족 세력에 반발하는 민중을 포섭하여
개혁을 지지해주는 사회기반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의천은 숙종 2년(1097)에 자신을 위해 건립된 국청사에서 처음으로 천태교학을 강의하였고,
지눌은 조계산 수선사를 중심으로 정혜결사를 결성하여 새로운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국청사나 송광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기는 매우 애매합니다.
선생님~
여기서 애매하는 뜻이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의천-교종중심의 선종통합운동-국청사
지눌-선종중심의 교종통합운동-송광사
이렇게 알고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요?
- 어느 한 사찰에서 시작되었다고 단정짓기 애매하다는 겁니다.
관련 사찰로 그러한 절이 있다는 정도만 알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