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일본의 가업 300년”
장어구이는 영양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맛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장어구이집이 항상 붐비는 것이겠지만, 그 만큼 값이 상당히 비싼 요리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없을 정도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 본바닥 일본에 가면 사정은 엄청나게 달라지게 된다. 서민은 물론이고 웬만한 부자들조차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식도락가들은 축복을 받고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장어구이 요리가 이유없이 비싼 것은 아니다. 그 맛이 그만큼 훌륭하기 때문이며, 그 정도로 요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까닭이다. 또 장어구이 요리사 한 사람이 태어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이다.
자그마치 10년의 세월이 걸린다.
우선 일류 장어구이 요리사가 쓸만하다고 생각되는 젊은 조수 한 명을 받는다. 그 조수는 숯불 피우는 요령부터 2년 동안 배운다. 다음 3년 동안은 장어 껍질을 벗기고 토막내는 기술을, 다시 2년 동안은 양념을 하고 대나무 꼬챙이에 끼는 요령을, 그리고 또 3년동안 숯불에 익히는 기술을 습득해야 비로소 한 사람의 장어구이 요리사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맛있을 것이고, 비쌀 것이며,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따라서 요리사의 긍지 또한 대단한 것이다. 이러한 직업 교육이 일본사회에선 엄격히 지켜지고있다. 그 까닭에 일본은 패전의 상처를 쉽사리 씻어내고 오늘의 부를 이룩한 것이다. 그들의 철저한 직업 의식을 잘 말해 주는 일화가 있다.
도쿄와 파리를 오가는 JAL기의 요리사가 어느 날 손가락을 가볍게 다쳤다. 겨우 슬쩍 칼에 벤 정도여서 그는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고 요리를 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먹은 탑숭객들이 집단 식중독을 일으켰다. 그 요리사의 상처에서 나온 화농균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유서를 남긴채 자살해 버렸다. 유서에는 자신의 생명으로 죄값을 대신한다고 씌어있었다.
본디 잔인한 성격 탓에 사소한 일에도 할복을 서슴지 않는 일본인들이긴 하다. 하지만 그 요리사의 투철한 직업 의식과 드높은 자존심은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조그만 식당이나 과자집일지라도 이러한 정신으로 5대, 10대를 물려가며 지켜 오는 것이 일본이다. 도쿄에 있는 “도라야”라는 과자집은 밤이나 전분을 설탕과 버무려 만든 양갱으로 유명한데, 자그마치 300년이나 가업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한다. 일본은 제일의 양갱으로 군림하게 되고 큰돈을 모아 재벌이 됐는대도 오로지 양갱 한 가지만을 만든다는 것이다.
300년이나 한 가지 기술을 축적해 왔으니 그 방면에서 세계 재일일 것은 뻔한 노릇이다.
그에 반하여 우리의 고려청자 기술은 어떻게 되었는가? 세계 제일로 꼽아주는 고려청자건만 그 맥이 끊긴지 옛날인 것이다. “나같은 고생을 자식에게 되풀이 시키랴” 하는 집념이 그 오묘한 청자빛 제조기술을 어둠 속에 묻어 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도 잘 나타나있다시피, 자식한테는 절대로 장사를 시키지 않겠다는 우리나라 상인들의 의식구조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국가 발전을 위하여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사회 전반의 책임이 크겠지만 언제 까지나 이런 상태에 머물러있을 수는없다.
사람은 누구나 직업을 갖게 마련이며 그 직업에 의해,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기 직업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과연 자기의 인생에 충실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의 인생은 결국 그가 사는 동안 자기 직업에 얼마나 충실할 수 있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