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열사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으로 시작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하다가 체포되어 일본의 총칼과 고문으로 스러져간 가녀린 소녀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일제 강점기에 이화학당 고등부 1학년생이던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서울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고향에 돌아와 아우내(충남 천안시 병천면)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으나 옥중에서도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고문을 받던 중 가혹행위로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그녀는 1902년 12월에 충남 천안군 동면 용두리에서 고흥 류씨의 집안의 딸로 태어나 1915년 공주의 감리교 여 선교사 앨리스 제이 해몬드의 추천으로 사촌언니 유예도와 함께 이화학당 보통과 교비생(장학생)으로 입학하여 기숙사에서 생활하였습니다.
1919년 3월 1일 33인의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을 하고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학생과 시민들의 시가행진이 시작되어 덕수궁 뒤 이화학당에 이르자 이화학당 학생들이 교문으로 달려나갔으나 교장 및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막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포함한 4명의 학생들이 뒷담을 넘어 거리로 나가 만세 시위대열에 합류하였고 3월 5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광장 학생단 시위에도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가 이화학당 측의 요구로 석방되었습니다.
이후 학교가 휴교를 하자 3월 13일 사촌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4월 1일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가 계획된 것을 알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인근 지역을 돌며 유림 대표와 가문의 어른들을 찾아 다니며 시위운동에 나설 것을 설득하였습니다.
그녀는 3월 31일 거사를 알리기 위해 매봉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려 멀고 가까운 24군데의 산봉우리에서 이에 호응하는 횃불이 타올랐다고 합니다.
4월 1일 오후 1시에 그녀는 장마당 한 가운데 큰 태극기를 세우고 쌀가마니 위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온 군중이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아버지와 숙부를 포함한 지도자들과 함께 시위행진이 시작되자 현장에 출동한 일본 헌병대의 무차별 총탄과 총검에 의하여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한 19명이 참혹하게 숨지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녀는 부모의 시신 곁을 지키다 이웃들이 강제로 피하도록 하여 피신했다가 동생들이 걱정되어 집에 들렸다 체포되었다고 보도되었는데 그녀는 재판 중에도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군기(군대무기)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는가?", "죄가 있다면 불법적으로 남의 나라를 빼앗은 일본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논리정연하고 당당하게 진술하여 재판관을 격분케 했다고 합니다.
2심 판결에서 징역 5년의 형량이 많다고 3년으로 낮추어 졌으나 다른 사람들이 최종심인 고등법원에 상고하자 그녀는 "삼천리 강산이 어디인들 감옥이 아니겠습니까" 하며 상고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후 1920년 4월 영친왕이 일본 왕족 이방자와 결혼하면서 특사로 형이 1년 6개월로 감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서도 계속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그때마다 형무관에게 끌려가 모진 구타와 고문을 당했습니다.
더우기 그녀는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허리에 찔린 상처와 고문으로 파열된 방광을 치료해 주지 않아 이화학당 교사들과 오빠가 면회갔을 때 이미 살이 썩어가고 있었고 형기를 3개월 남긴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성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녀가 남긴 말 중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과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라는 말을 올려드립니다.
때로는 가녀린 소녀의 꿈을 지켜주지 못한 대한제국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로부터 105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일본을 힘으로나 실력으로나 이기고 있는가?' 생각하게 되며 '우리가 과연 외부의 침략자들로부터 이 나라의 착하디 착한 사람들 특히 꽃다운 젊은이들과 귀여운 어린이들을 지킬 힘을 가졌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게 됩니다.
그럼 삼일절 105 주년을 맞이하여 순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그날의 생생한 함성소리와 일제의 총칼에 숨져간 순국선열들이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거친 숨결의 조언들을 들어보는 뜻깊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서대문 형무소는 일본놈들이 우리나라에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고문했던 잊을수없는 감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