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행정구역
하지만 내 오른손은 누군가의 왼손이 되었다
하천을 따라 느리게 걷고 있었다
그림자 위에 얹어진 그림자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걷고 있던 오른쪽 둑길이
오른쪽 마을 행정 소속이 아니라고 너는 말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먼저 했다
낮의 그림자와 밤의 그림자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풍경은 빨려 들어갔다
우리는 계속 걸었고 걷다 보니 알 수 없게 걸음이 빨라졌다
밤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행정구역을 지워 나갔고 둑길도 지워지고 있어서
뒤를 한 번씩 돌아보았다
―계간 《시산맥》 202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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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여 / 1970년 경남 진주 출생. 경상국립대학교 역사교육과 졸업. 2022년 제17회 최치원신인문학상으로 《시산맥》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