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새한 옷이나 옷감의 구김을 펼 때 사용하는 받침대. 재료는 나무[木材]와 돌[石材] 두 가지가 있다. 돌은 화강암 납석 대리석 등으로 하고, 나무는 주로 재질이 단단한 박달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것으로 했다. 모양은 직사각형이며 크기는 일반적으로 길이 60cm, 높이 20cm, 너비 30cm가량이다. 윗면은 매끄럽게 잘 다듬고 밑변보다는 약간 넓다. 밑변의 양쪽에는 손을 넣어서 움직일 수 있도록 홈을 파 놓았다. 다듬이 도구에는 다듬이와 방망이가 한 틀이 되며, 방망이는 두개가 한 틀이다. 다듬는 일은 "다듬이 질 한다", "다듬는다" "다듬이 질"이라 한다. 다듬질 할 때는 혼자나 또는 다듬이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양쪽에 앉아서 한다. 구김이 잘 펴지면 "다듬이 살 잘 받았다"고 한다. 다듬이 감이 고급일 때는 일단 초벌로 다듬이를 하고 다음으로 홍두깨를 올리기도 한다. 둘이서 할 때는 방망이가 부딪히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두 사람의 호흡을 맞추면서 한다. 주로 모녀(母女)나 고부(姑婦) 동서(同壻)끼리 하였다. 다듬이는 추석이나 설 등 명절이 가까워지거나 혼사(婚事), 겨울옷을 마련 할 때가 되면 집집마다 하는데 다듬이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가을에 많이 하게 되는데 시원하고 밝은 달밤의 방망이소리는 청아(淸雅)하여 듣기에 거슬리지가 않으므로 밤중까지 소리가 들려도 이웃에서 시비를 걸지 않았다. 특히 옛 사람들은 다듬이 소리와, 글 읽는 소리, 아기우는 소리는 아무리 심해도 탓하지 않았다. 이 소리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이며, 집안에 이러한 소리가 그치면 "망한 집안"이라고 하였다.
유물상세설명 다듬이질을 할 때 옷감을 올려놓는 용구. 침석(砧石)이라고도 한다. 다듬이질 절차는 풀 먹인 옷이 완전히 말랐을 때 걷어다가 물을 축인 후 보에 싸서 물기가 골고루 퍼지게 한 후 적당한 크기로 접은 뒤 보에 싸서 한참 동안 발로 밟아 빨래의 굵은 주름을 편다. 다듬이돌은 놓아두는 자리에 흠이 나지 않도록 다듬이방석을 깔고 그 위에 놓는다. 다듬이방망이는 다듬이질할 천을 다듬이보자기에 싸서 다듬이돌 위에 올려서 두드릴 때 쓰고, 홍두깨는 다듬잇감을 감아 다듬는 데 쓰였다. 올이 고운 명주와 같은 옷감을 초벌로 다듬잇돌에서 다듬은 후에 홍두깨에 감아서 다듬이방망이로 돌아가며 두들겨 손질한다. 18세기 책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옷감에 따른 다듬이질법과 손질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민간에서나 다듬이질을 하였고 궁중에서는 진풀을 한 다음 처음부터 홍두깨 다듬이를 하여 천을 두꺼운 종이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다듬이돌은 단단한 화강암이나 곱돌 등을 재료로 직육면체형으로 만들었으며 밑면의 네 모서리에 네 개의 짧은 다리가 있다. 옷감과 닿는 윗면은 고운 옷감도 상하는 일이 없도록 반들반들하게 만들었다. 충청도와 함경도 지역에서는 박달나무 등으로 만들기도 하였으며, 이 경우 '다듬잇대'라고도 불렀다. 예로부터 삼희성(三喜聲)이라 하여 세 가지 듣기 좋은 소리로 아이 우는 소리, 글 읽는 소리, 다듬질 소리를 꼽았다. 다듬이돌에 얹은 옷감을 두 손에 각각 잡은 나무방망이로 칠 때 울리는 경쾌한 소리는 건강한 생명력과 주부의 부지런함 등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관련 속담으로는 다듬이돌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내용들이 많은데, "다듬잇돌을 베고 누우면 입이 비뚤어진다", "다듬잇돌에 올라앉으면 소박을 맞는다", "다듬잇돌을 베고 자면 혼인 이야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등이 그 예이다. 이 유물은 직육면체 형태이고, 바닥면 네 모서리에 발이 달려 있다. 윗면은 약간 둥근 편으로 양면에 꽃과 꽃잎 그려져 있으며, "壽福康寧"이 적혀 있다.
옷이나 이불호청 등을 세탁한 후 풀을 먹여 약간 말려 손질한 다음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린다.
풀을 먹여 두드리면 천이 견고해지고 매끄럽게 된다.
골고루 두드리기 위해서는 여러 번 접어가면서 윤이 나도록 다듬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섬유 특유의 광택과 촉감을 살릴 수 있다.
다듬잇돌은 옷감을 다듬을 때 밑에 받쳐놓는 돌로 결이 단단하고 매끄러운 돌로 만든다.
중앙부분이 약간 위로 올라와 완만한 곡선을 이룬 장방형으로 윗면은 반드럽게 손질되어 있다.
양쪽 밑으로는 손을 넣어 들 수 있도록 둥그런 홈이 파여 있다. 다듬이 방망이는 박달나무같이 단단한 나무를 깎아서 쓴다.
다듬이질은 우리나라 생활풍습상 매우 운치있는 멋의 하나이고. 흔히 아낙네들은 품앗이로 넓은 대청에 모여 이불 호청을 마주 붙들고
잘 접어 다듬잇돌 위에 올린 후 발로 밟고 올라 다져서 천을 가지런히 해두고 방망이질을 한다.
혼자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마주보며 두드린다.
깊은 밤 다듬이질 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풍치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墨客)들의 시에도 등장했다.
당시(唐詩)에도 "바람결에 곳곳에서 다듬잇소리"라 했으니 다듬이질은 예로부터 중국에서도 성했다.
홍두께 - 옷감을 다듬는 한국의 전통도구.
홍두깨/홍두깨
박달나무같이 단단한 나무를 지름 7∼10㎝, 길이 70∼90㎝ 정도로 둥글게 깎은 뒤 다듬잇감을 감아서 다듬는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다듬잇방망이로 교대로 두드리므로 다듬잇방망이의 배와 홍두깨의 배가 알맞게 맞아야 다듬이가 잘 된다.
다듬잇방망이의 배가 너무 홀쭉하면 다듬잇살이 잘 오르지 않으므로 가운데는 볼록하고 양 끝은 약간 가늘게 깎아
명주와 같이 올이 고운 옷감은 애벌로 다듬잇돌에서 다듬은 다음 홍두깨에 감아 다듬잇방망이로 돌아가며 두들긴다.
여기에 푸새를 한 옷감을 감아 홍두깨틀 위에 올려놓고 다듬이질하면 홍두깨가 빙빙 돌면서 구김살이 곱게 펴지게 된다.
홍두깨로 옷감을 다듬으면 다듬잇돌에서 다듬은 것보다 옷감이 윤이 나고 다듬잇감에 금이 생기지 않는 장점이 있어,
특히 한복·이불 겉감용 명주나 비단을 다듬는 데 많이 쓰였다. ---- 출처:다움,브리태니커.
유물번호
0429∼0430
분류번호
유물명칭
다듬잇돌
자료특징
민속자료
제작연대
크 기
59cm×21cm
개 수
2
재 질
돌, 나무
기 증 자
이종건(진농35회)
소 장 처
대학박물관
▶자료설명◀
다듬이 감을 놓는 웃면이 반드러운 도구. 돌이나 단단한 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
진주산업대학교
우리 옛 사람들은 주로 흰색 옷을 즐겨 입었기 때문에 빨래를 자주 해야 했다. 또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옷감은 바람을 막고 보온이 잘돼야 했다. 하지만 이들 옷감들은 주로 모시나 삼베, 무명 같은 성글고 거친 천연섬유로 만들어졌다. 직사각형의 돌이나 나무 판 위에 옷감을 올려 방망이로 두드리는 다듬이질은 이같은 의생활 방식의 약점을 보완해주던 우리나라와 일본만의 독특한 생활문화였다. 옷(감)을 세탁하여 풀을 먹인 후 다듬이질을 하게 되면 섬유가 넓게 퍼지고 듬성듬성 풀이 묻어 바람을 막는 데 도움이 됨은 물론 풀 묻은 표면은 매끈매끈하게 되어 때가 덜 타고 세탁할 때 풀과 함께 때가 떨어져나가 천도 덜 상하면서 깨끗이 빨 수 있었다. 다듬이질은 다듬잇돌과 다듬잇방망이로 이루어진다. 다듬잇돌은 여인네 혼자서 빠듯이 들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화강암이나 대리석 같은 돌 또는 박달나무나 느티나무, 대추나무 같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방망이는 거의가 박달나무를 이용해 어른 팔 길이의 반 정도 크기로 만들었다. 쪹 다듬이질은 대개 낮의 온갖 일이 끝난 후 혼자서 하거나 혹은 시어머니와 함께 밤늦도록 하기 일쑤였다. 또닥또닥 또닥또닥…, 고저 장단의 율동과 소리에 시집살이의 온갖 시름과 생활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는 시간이 되기도 했던 다듬이질. 우리 옛 여인네의 갖가지 정한(情恨)을 문창살 밖으로 실어내던 가장 한국적인 풍정(風情)과 소리 하나가 이제 다 사라지고 없다. 국립 민속박물관 편집실
유물명칭
:
목제 다듬이돌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나무(나무) / ()
크기
:
길이(길이) : 58 cm / 너비(너비) : 16.5 cm / 높이(높이) : 15.5 cm
용도/기능
:
주(住) / 생활용품(生活用品) / 재봉구(裁縫具) / 다듬이돌(다듬이돌)
소장기관
:
학교(學校) / 강원대(강원대)
유물번호
:
구입(購入) 530
야청도의성(夜聽도衣聲)
- 양태사(楊泰師)
霜天月照夜河明 서리 하늘 달 밝은데 상천월조야하명 은하수 빛나
客子思歸別有情 이국땅 머무는 나그네 객자사귀별유정 귀향 생각 깊도다.
厭坐長宵愁欲死 긴긴 밤 홀로 앉아 염좌장소수욕사 시름 이기지 못하는데
忽聞隣女도衣聲 홀연 들려오니 홀문린녀도의성 이웃 아낙 다듬이 소리.
聲來斷續因風至 바람결에 실려와 성래단속인풍지 끊어질 듯 이어지며
夜久星低無暫止 별들이 기울도록 야구성저무잠지 잠시도 멎지 않네.
自從別國不相聞 고국을 떠난 후에 자종별국불상문 저 소리 듣지 못하더니
今在他鄕聽相似 먼 이역땅에서 듣는 소리 금재타향청상사 고향의 소리 같구나.
不知綵杵重將輕 그대의 방망이는 부지채저중장경 무거운가 가벼운가
不悉靑砧平不平 푸른 다듬이돌 부실청침평불평 고른가 거칠은가.
遙憐體弱多香汗 가녀린 몸에 온통 요련체약다향한 구슬 땀흘리고 있겠지.
預識更深勞玉腕 옥 같은 두 팔도 예식경심노옥완 밤늦도록 지치겠구나.
爲當欲救客衣單 홑옷으로 떠난 나그네 위당욕구객의단 구하자 함이겠지만
爲復先愁閨閣寒 규방이 차지 않을까 위복선수규각한 걱정되는 구나.
雖忘容儀難可問 그대 모습 그려 보나 수망용의난가문 물어 볼 도리 없고
不知遙意怨無端 무단히 원망하지나 않을런지 부지요의원무단 알 수 없구나.
寄異土分無新識 먼 이국땅에 붙어사니 기이토분무신식 새로 사귄 친구없는
想同心兮長嘆息 그대 생각 하노라니 상동심혜장탄식 긴 탄식만 나오네.
此時獨自閨中聞 이런 때 홀로 듣는 차시독자규중문 규방의 다듬이 소리
此夜誰知明眸縮 그 누가 알랴, 차야수지명모축 시름 깊은 저 설움을.
憶憶兮 心已懸 그립고 그리워서 억억혜 심이현 마음에 맺힌 듯한데
重聞兮 不可穿 듣고 또 들어도 중문혜 불가천 헤쳐 알 길이 없네.
卽將因夢尋聲去 꿈 속에라도 즉장인몽심성거 저 소리 찾아보려 하지만
只爲愁多不得眼 나그네 수심 많아 지위수다부득안 잠을 이루지 못한다네.
<해설>
양태사의 이 작품은 스물넉 줄로 된 칠언고시(七言古詩)인데, 의례적인 수사법을 버리고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여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이 시는 특히 청각적 심상이 주제로 승화되는 고도의 표현 기법을 구사했다. 여기에는 그 일부만 실었다.
서리 내리고 은하수도 밝은, 가을이 깊은 이국(異國)의 밤에 홀연 어디선가 다듬이 소리가 들린다. 다듬이질은 일본에는 없는 풍속으로, 이는 분명히 고국의 여인이 향수를 달래려고 내는 애련한 소리일 것이다. 그 소리는 끊어질 듯 새벽까지 이어져 여인의 모습까지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이 시에서의 다듬이 소리는 아름다운 선율의 소리로서 여인과 청자의 거리를 좁혀 주고 작자의 격렬한 시름과 탄식을 교차하게 한다. 동시에, 그만큼 조국 발해에 대한 그리움의 정도 깊어진다.
<해설>
갈래 : 칠언배율 연대 : 발해국 문왕 23년(759) 성격 : 서정시 구성 : 24행의 칠언배율시 중 일부 표현 : 직서법 주제 : 향수. 타국에서 가을 달밤에 고국을 그리워함 출전 : '경국집' 의의 - 발해의 시인이 남긴 작품 중에서 가장 장편이고 정감이 특히 풍부함 - 발해 시대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며 당시 시대 상황(외교 활동의 빈번함)의 추리 근거
작가 : 양태사
발해 제 3 대 문왕 때(737~793)의 귀덕 장군. 무인이면서도 시를 잘 지었다. 발해국의 부사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즈음에 다듬이 소리를 듣고 고국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 두 편중의 하나이다.
759년 부사(정사)를 보좌하여 수행하는 사신 자격으로 일본에 갔다가 송별연에서 일본 문인들의 시에 화창했다는 시 두 편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야청도의성'이다.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시인이 사신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시기가 가까운 어느 날 밤으로 설정되어 있다. 시인이 창 밖을 보며 고국 생각을 곁들인 시름에 잠겼다가 시름마저 되씹기 지루해졌을 때 홀연히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다듬이질은 일본에 없는 풍속이어서 시인은 그 소리를 듣자 고국 생각이 간절해지고 온갖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다듬이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바람을 따라 들려 오고, 타국에 가서 밤을 지새우는 시인에게 더욱 깊은 상념을 전해주고 있다.
다듬이판 - 한국민속박물관
다듬이판은 옷감을 다듬을 적에 밑에 받쳐 놓는 판이다. 대개 돌이나 단단한 나무로 만드는데 모양은 장방형이 많으며, 반들반들하고 두텁다. 다듬이질 할 때 사용하는 다듬이방망이는 박달나무로 길고도 둥글게 깍아 만든 것이다. 옷감을 펴기 위해 다듬잇돌에 잘 개어 놓고 방망이로 두두려 다듬은 일을 도침(搗砧)이라 한다. 방망이는 둘이 마주 않자 장단을 맞추어 두드리며, 다듬이판은 보통 돌보다는 배나무나 대추나무로 만든 것이 차갑지 않아 더 소중히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