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늦은 저녁 국도 씨의 부재중 전화 4통. 옥천 성모병원에 계시던 할아버지의 부고를 알렸다. 11일 옥천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돈이 좀 필요할 것 같아 은행에 들렀다. “국도 씨 얼마 찾을까요?” “만원” “만원요? 그건 좀 너무 적은 것 같은데요” “10 만원” “명절에 어머니께 용돈 드릴 때도 30 만원은 드렸어요. 아들이니까. 이번엔 손자로써 할아버지께 가는 것이니 그 정도는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응 그럼 30 만원”
옥천 성모병원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낯익은 몇몇 가족들과 인사를 했고 길남 씨 국도 씨도 가족과 인사했다.
“길남 국도 씨 상복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어디로 갈까요?” “여기요. 근데 상복이 없어요. 그냥 있어도 될 듯싶은데...” “아... 네. 그래도 할아버지 돌아가셨으니 손자도 상주인데 상복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알아볼게요.” 오늘 처음 인사하는 국도 씨의 누나분이 상복을 알아보고 다시 와서 알려주셨다. “상복을 달라고 했어요. 가져다주신다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길남 씨와 국도 씨는 평소와 다르게 말이 없다. 그저 어머니 아버지와 간단한 안부를 전하고 할아버지에 대해 간단히 물었다. 멀리서 온 아들들을 어머니는 따뜻하게 맞았다. 검은 양말을 챙겨주고 가져간 짐을 정리해 주셨다.
“식사 안 하고 오셨죠? 여기서 동생들하고 함께 식사하세요” 누나의 안내로 한쪽에 마련된 식탁에서 식사를 했다.
“오늘 두 동생이 자고 가나요?” “네 그렇죠. 내일 발인이니 할아버지 잘 모시고 가야죠” “아! 네. 근데 두 동생을 가족들이 감당할지 모르겠어요. 막 돌아다니고, 떠들고. 걱정이네요” “네. 아무래도 오랜만에 동생들을 만나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근데 그렇지 않습니다. 누님이 걱정하시는 것보다 예의 바르시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네. 그럼 다행이네요”
가족들은 저마다 분주하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은 조문객 맞이로 바쁘고 사촌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저마다 맡은 일을 하거나 정리를 한다. 전담 직원인 나는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저 국도 씨가 가족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길 바랐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누나가 이야기를 한다. “내일 오전에 발인하면 옥천 집 뒷산으로 가요. 거기가 장지에요. 그러면 오전 중으로 마무리가 될 텐데 오후에는 동생들과 벚꽃이라도 구경했으면 해요. 오후에 와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라도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주신다면 오후에 제가 연락드리고 오겠습니다” “네 연락드릴게요”
다온빌로 돌아오는 길에 새증평교회 유재원장로님께 문자를 남겼다. <국도 씨의 할아버지께서 소천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국도 씨와 가족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녁쯤 유재원장로님이 전화를 하셨다. “국도 씨는 지금 옥천에 있는 건가요?” “네” “아 그렇군요. 국도 씨가 우리 구역 식구인데. 당연히 문상을 가야죠. 위치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녁 8시 정각 국도 씨가 전화를 했다. “예배 왔어 예배” “네?” “예배. 교회. 예배 왔다고” “아 유재원 장로님 오셨어요?” “응 왔어. 와!. 짝꿍. 예배 왔어” “네 알겠습니다. 잘 안내하시고 감사 말씀 꼭 드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