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은행위기, 금융 구조조정 한 단면… 20년 뒤엔 절반만 생존”
[글로벌 은행위기]
동아국제금융포럼 강연할 브렛 킹 ‘뱅크 4.0’ 저자 인터뷰
미국 인터넷은행 모벤의 창업자 브렛 킹이 31일 열리는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은행산업의 미래에 대해 강연한다. 사진 출처 브렛 킹 페이스북
“글로벌 은행업의 구조조정은 향후 20년간 지속될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 현재 은행의 절반 정도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 은행 위기에서 생존하려면 금융사와 규제당국 모두 변해야 한다.”
미국 인터넷은행 ‘모벤’의 창업자이자 ‘뱅크 4.0’의 저자인 브렛 킹(55)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 국면에서 은행들이 소멸과 매각 등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최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은행 위기가 금융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단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퍼진 공포심리로 파산한 사례를 거론하며 금융회사와 규제당국의 인식이 모두 바뀌어야 다음 은행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2011년 모바일 스타트업 뱅크 ‘모벤’을 설립한 킹은 현재 핀테크 및 은행산업 전문가이자 미래학자, 작가로 활동 중이다. ‘뱅크 4.0’ ‘핀테크 전쟁’ ‘테크노소셜리즘’ 등 여러 저서를 통해 은행산업 및 미래 기술의 향방을 제시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핀테크 전략에 대해 자문에 응하기도 했다. 그는 이달 3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참석해 ‘금융의 새로운 미래와 뱅크 4.0’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 유럽 은행들이 연이어 파산했는데 이런 상황을 예측했나.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금융산업 전반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20년 동안 은행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일어났고, 현재 미국 은행 수는 2000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디지털 전환에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도입되면서 지점 위주로 사업을 펼쳐온 은행 간 이합집산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형 금융사도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은 얼마나 오래 진행될까.
“개별 은행의 파산, 은행 간 통폐합이 향후 20년 동안 계속 진행될 것이다. 향후 현재 은행의 절반만 살아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전환에 미진한 금융사가 많아 구조조정이 단기간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시기다.”
―‘제2의 SVB 사태’를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금융회사와 규제당국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우선, 금융사는 소비자와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 SNS 여론만으로 중소형 은행이 파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고객 접근 및 관리 방식을 바꾸지 않는 금융사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소셜미디어와 대중의 의견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한다.”
―규제당국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디지털 은행에 적합한 새로운 유동성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유동성 개념 및 지표가 디지털 은행에 그대로 적용되긴 어렵다. 은행이 적정 자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도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성공적인 디지털 은행 사례를 꼽는다면….
“모바일 플랫폼으로 시작한 기업 중에선 중국 알리페이와 위뱅크, 남미 최대 핀테크 은행 누뱅크(nubank) 등이 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금융회사다. 이들은 고객의 돈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데만 그쳤던 은행의 개념과 역할을 바꾸고 있다. 플랫폼 안에서 고객 경험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성 은행 가운데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사례는 전 세계에서 10곳 남짓밖에 안 된다.”
―한국 금융이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규제당국이 현재의 보수적인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쉼 없이 바뀌는 금융 생태계에 대처하려면 기술, 규제에 대한 생각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중국의 핀테크 시장이 미국보다 10년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데, 이는 중국 규제당국이 디지털 은행과 가상화폐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덕분이다.”
―은행 점포 축소에 대한 생각은….
“정부 차원에서 은행 간 통합 지점 설립을 유도해야 한다. 은행 입장에서 점포를 축소하는 건 비용 절감을 위해 당연하다. 고령층의 모바일 접근성을 단기간에 개선하기 힘드니 정부가 이런 식으로 조율해 나가야 한다.”
강우석 기자
LA 팩웨스트은행 주가 28% 폭락… 퍼스트리퍼블릭 후폭풍
[글로벌 은행위기]
美 지역은행 주가 줄줄이 급락
“또 다른 ‘약한 고리’로 불안 확산”
경기침체 우려에 유가↓ 금값↑
미국 지역 은행들이 심상치 않다. 미국 14위 은행 퍼스트리퍼블릭 파산과 JP모건의 인수로 은행 위기가 잠잠해질 것이라는 규제 당국 바람과 달리 시장은 또 다른 약한 고리를 찾아 불안을 옮기고 있다.
2일(현지 시간) 미 뉴욕 증시에서 지역 은행 주가지수 ‘KBW 지역은행지수’는 5.5% 하락해 2020년 말 이후 가장 낮았다. 특히 전날 10% 이상 하락한 미 로스앤젤레스 기반 은행 팩웨스트 주가는 이날 또 27.8% 폭락해 장중 거래가 한때 중단됐다. 시장이 실리콘밸리은행(SVB),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 이어 팩웨스트를 잠재적 위기 은행으로 지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팩웨스트 주가는 최근 5일간 44.74%, 올 들어 71.11% 폭락했다.
메트로폴리탄은행(―20.45%) 웨스턴얼라이언스(―15.1%) 코메리카(―12.4%) 자이언스(―10.81%) 등 다른 지역 은행도 낙폭을 키웠다. 대형 은행들도 줄줄이 1∼3% 하락했다.
컨설팅 및 위기 분석 업체 훼일런 글로벌의 크리스 훼일런 최고경영자(CEO)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시장은 약한 은행에서 더 약한 은행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며 “예금 인출 문의도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날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이번 은행 위기는 끝났다”고 했지만 투자자와 예금주는 여전히 불안해 한다는 의미다.
은행 위기로 신용 공급이 줄어 경기 침체가 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미 노동지표도 경제 둔화를 시사했다. 올 3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민간 기업 구인 건수는 959만 건으로 2021년 4월 이후 약 2년 만에 최저였다. 지난해 한 차례 감원한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3000명 추가 감원을 발표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국제 유가는 급락하고 안전자산인 금값은 오르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5.3%(4달러) 떨어졌고 런던 ICE선물거래소 7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5%(3.99달러) 내려간 75.32달러에 장을 마쳤다. 반면 6월 인도분 금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온스당 1.6% 올라 2000달러 선을 회복하며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반영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