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이던가 일곱 살이던 해, 우리 집은 산천동 56번지 적산가옥 2층으로 이사를 했지요.
안방은 다다미방으로, 전형적 일본식 가옥구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시레가 있고,
커다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약간 턱이 높은 건넌방과 부엌에 딸려 있는 작은 방이 하나...
어둡고 좁은 복도를 지나면 다른 세대가 세를 들어 살았었다고 기억됩니다.
아래층의 주인댁과는 대문을 따로 쓰는 독립된 구조여서, 나는 초등학교를 입학하기까지는
우리가 전세를 사는지도 몰랐었지요.*^^*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동네 밖을 벗어나 미아가 될 뻔 했던 기억으로부터
나의 유년시절의 삽화들은 생생한 색채로 되살아나곤 합니다.
초겨울의 어느날, 아마도 원효로 4가 어디 쯤 헤메다 울고불고 집을 찾아왔던 기억은
어린시절에 처음으로 느꼈던 공포와 절망의 체험이라고 할까요?^^
저녁이 다 되어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겨울이면 아버지께서 즐겨 잡수시던,
신김치와 돼지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은 구수한 비지찌개 냄새와
잔잔하게 흐르는 ‘저녁의 희망가요’의 시그널 뮤직을 들으며 난 비로소 안도감과 함께
공포보다 몇 갑절 강한 식욕을 느꼈었지요.*^^*
6남매 중 유난히 총명(?)했던 또도가 행여 집을 잃고 헤맸을 거라고는 짐작도 못 하는
우리 가족들은 밥상에 둘러 앉아 희희낙락...
아마도 비지찌개에서 돼지고기 건져내느라 잠시 아이 하나 없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지도..ㅋ~
취학통지서를 받고부터 세월은 완행열차...목 빠지게 기다린다는 둥 손 꼽아 기다린다는 말의
의미를 그 때처럼 절실하고 지루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
우리 형제는 1남 5녀, 작은 언니까지는 가정형편이 넉넉한 편이어서 유치원엘 다녔지만
저는 초등학교 입학을 통해 비로소 공식적인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니
그 기대감과 감동이 어찌 크지 않았겠어요?
쌀쌀한 3월의 어느 날...새로 사주신, 기하학적 무늬가 아주 예뻤던 것으로 기억되는 니트 스웨터에
니트 바지를 입고 입학식을 하면서 나와 남정의 인연이 시작되었지요.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아직도 불려지나요? 지금도 누구나 기억하는 동요가 아닐지...
제겐 더욱 잊지 못하는 추억 하나...
첫 미술대회에서 저는 비오는 날 아침의 등교길 모습을 도화지에 담았었지요.
노란 우산, 빨간 우산, 찢어진 우산을 받쳐들고 재잘거리며 교문을 향하는 귀여운 학우들의 모습을요.
처음엔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었는데,
다른 반 선생님들의 도저히 초딩 1학년의 작품으론 믿을 수 없다는 항의에 몰려
결국 입선작으로 결정...어린 꿈나무의 천재성(?)을 인정했더라면
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ㅎㅎ
(오늘은 여기까지...
요즘은 장편소설을 쓰지도 읽지도 않는 시대라는데 더 길게 쓰면 독자가 하나도 없을 수도...ㅋㅋ)
첫댓글 까붕이는 원효로2가78번지 오시레 있는 2층다디미방.너무 그리워지네 고생은 많이 했지만... 그때 그시절 또도의 총명함도 까붕이와 비슷...ㅋㅋㅋ 근데 우리는 3남2녀.요건 다르구먼..
그 시절 원효로 2가라면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하셨을텐데...전 산동네에 살았구요. *^^*
나보다 고생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구...지금생각하면 그때가 정말 그리워...
여긴 총명팀만 오는곳 인가요 ?? 여기 들어오면 혹시 멍이도 총이 되는 건가요 !!! 아니면 꼬붕이라도 시켜 주실란가...
과거의 총명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지금은 벌써 치매를 걱정하고 있는데...ㅋㅋㅋ
우리 집은 원효로2가 13번지. 2층 다다미방 까지는 같은데. 우리 집은 원효로 변 큰길가 라 잃어버릴 일은 없었지만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났지.
오다가다 까붕이 선배님과 마주치는 일도 있었을텐데 전혀 기억에 없으시죠? *^^*
이 선배님께서는 그나마 좋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계시군요.그림을 잘 그리시는 선배님이 부럽습니다.대학은 미대를 가셨겠군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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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웹디자인을 배워야 할까 봐요. 근데 우선적으로 더 배우고 싶은 게 넘 많아서...*^^*
디자인을 전공하셨군요. 그날 복장/화장이 잘 어우려졌어요. 멋 있습니다 동문님.
에그머니나~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럽네요~감사합니다! 꾸벅
아하 그때 코찔찔이~~하하 난 위위집 농구하던옥란이(27회) 오빠고 61번지,,,,, 56번지 그곳은 대영(17회)형네집 동생들은 2명(정애21회 성명미상 남자25회) 80년대에 어린이집으로 바뀌였지 병갑이는 62번지 그곳은 우영이네 25회,그곳56번지에 살다 63번지로이사한 안영애(19)흥선(22회) 지금은 다 흩어져 각자 잘살고 있지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원~ 기억도 좋으십니다. 어찌 그걸 줄줄이 꿰고 계십니까.
그러게요~ 대수 후배와 쌍벽을 이루는 기억력...ㅋㅋㅋ
내가 산천동 대장이였으니까??ㅎㅎ 그곳에서 태어나 결혼할때 까정 살았으니까~~~
태평성대의 성군은 백성들이 그 존재를 못 느끼고 산다더니, 산천동 대장을 꼬붕인 내가 모르고 살았다면??? ㅋㅋㅋ
그때 딸만 왕창 ㅋㅋㅋ있던집 2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