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께서는 신을 믿으십니까?"
한 여성이 숭산 큰스님께 물었다.
"물론이지요!"
여자는 당황했다.
"아니, 일반 스님도 아닌 선사이신 분이 어떻게 신을 믿을 수 있어요?"
"나는 내 손을 믿습니다. 내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마음을 믿어요. 그런데 신을 못 믿을 이유가 뭡니까? 당신이 당신의 참나를 온전히 믿는다면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초록이고 개는 '멍멍!'하고 짖는 걸 믿게 돼요. 매우 간단하지요?"
여자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숭산 큰스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불교에서는 '하나하나가 완전하다.'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당신 마음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마음이 완전할 수 있는가? (주장자를 내리치시며) 바로 이 순간입니다. 금방 소리를 들으셨어요?(주장자를 다시 내리치며) 이 순간은 이미 완전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일으키면 완전하지 못해요. 소리가 나는 순간 (주장자를 내리치며) 소리만 듣습니다. 이 순간 (주장자를 내리치며) 소리와 당신은 이미 하나예요. 주체도 객체도 없고, 안도 밖도 없습니다. 안과 밖이 이미 하나입니다. 이를 가리켜 절대, 혹은 진리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돼요. 신에 대한 제 질문과도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고요."
여자가 말했다.
"방하착(放下着)하세요. 놓아 버려라 이 말입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어요. 생각이 '나'라는 존재를 만들었어요. 생각이 일체를 만듭니다. 그러나 생각을 끊으면 어떻게 돼요? 생각을 하면 삼라만상을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나'와 '신'과 '부처'와 일체가 분리됩니다. 그러나 이 포인트,(주장자를 내리친다) 이 순간을 항상 유지하면 당신과 신은 결코 분리되지 않아요. 매우 쉽지요, 그렇지요?"
~68쪽
**누군가가 나에게 노래를 보내왔어, 열어보니까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하는 봄노래였어요. 옛날 가수가 정말 봄 산에서 부르는 동영상인데, 노랫말에 맞춰 나물케는 사람도 나오고 밭 가는 사람도 나오고, 노래도 따라 불렀는데 동영상의 노래가 끝나면,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나요? 더 듣고 싶어서 다시 클릭하면 다시 노래가 나오지만, 이 노래는 아까 노래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노래와 가사와 그림은 같지만, 아까와 다른 게 있잖아요. 아까 듣던 노래는 같지만, 듣는 이것은 똑같지 않습니다. 아까 것은 생각 속에 있고 지금 듣는 이것은 항상 지금, 지금 듣고 있잖아요.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만 여기 지갑이 있습니다. 빨간 지갑이 있어요. 지갑을 보는데, 이게 멈춰있습니까? 아니죠? 지갑을 치웁니다. 치워도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죠, 뭐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갑을 보여도 치워도 바로 탁! 알 수 있잖아요. 이것입니다. 이것!
지갑이라는 사물을 보면 지갑밖에 보이지 않아요. 우리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거든요. 산비탈에 가거나 나무 밑에 가면 개미가 있잖아요. 개미 줄을 보면 그대로 따라갑니다.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차례차례 죽을 때까지 계속 앞만 보고 따라가겠지요. 우리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높은 생각, 깊은 생각, 특별한 생각을 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을 누리더라도 역시 생각일 뿐입니다. 모든 게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일 뿐이고, 개미줄처럼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자신은 언제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늘 언제나 이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만 하면 절대 둘로 나눠질 수 없습니다. 원래 그런 것입니다. 자신이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가 서로 방향이 다른 기차를 타면 착각할 때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여기 숭산 스님이 신을 믿는다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신, 이 자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를 받을 신이 없는 것처럼, 신(神)이 바로 자신입니다. 자신이라는 것은 어떤 형체를 가지지 않으면서 모든 형상과 비형상, 있거나 없는 것, 없다고 하는 것, 있다 없다는 벗어난 어떤 것, 그 어떤 것이 아닌 어떤 것,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못 벗어나는 것처럼 모든 것에 전체로 있습니다. 스스로의 본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자성, 성품, 불성이라고 합니다. 이것, 이것, 이 하나에 딱! 지금 자신에게 이게 확~ 드러나야 합니다. 늘 밝은 이 하나가, 깜깜할 때도 밝을 때도 늘, 꿈을 꾸거나 깰 때도 항상, 있잖아요.
이게 왜 어려워요. 생각해서 이해하려니까 자꾸 어려워지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전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늘, 이게 있으니까 그 많은 생각을 하더라도 전혀 생각에 물들지 않으면서 반짝, 반짝, 이 하나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말로써는 절대 이해가 안 갑니다. 말로써 이해가 가는 게 아니라면 말하든 안 하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말하는 거죠? 말하든 말든, 생각하든 안 하든, 행동하든 안 하든, 죽든 살든, 늘 있는 것이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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