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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
이 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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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하게 냈다.
이 도시의 입장료를 거하게 낸 샘이다.
절구는 지금 호찌민의 벤탄시장 부근 알라곤호텔 401호실 침대에 누워 와선을 하고 있다. 그렇다 분명히 와선이다. 오늘은 메콩 델타를 둘러보았다. 아직까지도 그 생각이 절구를 괴롭히고 있었다.
누우니 또 그 생각이다.
입장료를 낸 걸로 치부해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지 속이 편하지.
*
잠이 오지 않는다.
절구는 반듯이 누워서 눈을 지그시 감고 와선을 한다.
나는 왜 인터넷에는 젬병일까?
절구는 인터넷 쇼핑으로 무엇을 살 줄 모르는 것이다. 간혹, 꼭 필요한 책이나 물건이 있으면 아들 녀석이나, 딸에게 전화로 부탁을 해서 산다.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서 검색까지는 하는데 아무리 결재를 하려고 해도 인증번호를 받고 뭘 하고 하는 게 여간 거북한 게 아니고, 그리고 할 때마다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노트북은 쓰고 있지만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조차도 노트북으로 옮길 줄을 모른다. 예전에 배워서 몇 번 해보았지만 그것조차도 자주 안하니 잊어버렸다. 말하자면 이 스마트한 시대에 장애자나 진배없다. 이곳에 와서는 휴대폰이 제 기능을 두고 카메라로 전락한 셈이다. 이젠 해보지도 않고 겁부터 먼저 내는 정도가 되었다.
이거 괜히 했다가 카드번호만 누출 되는 게 아닌가?
그렇게 편리하다는 인터넷 쇼핑을 누릴 줄을 모르는 것인데, 분명 연구심이 부족한 탓이리라. 무슨 여행 사이트에 들어가면 실시간 비어있는 호텔이 천지인데 그걸 망설이고, 또 가이드북을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두 시, 일찌감치 호찌민에 도착을 하니 거기서 가이드북을 보고 호텔을 찾겠다고 하니 여행도사인 선배는 가격도 비교하지 못하고 엄청 불편할 거라며 두드리라고 했다. 그런 문자는 미얀마에서 카톡으로 주고받았다.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사람이 가 본 길로만 어떻게 다니나? 안 가 본 길로도 가야지.
정답! 해보겠습니다.
절구는 그렇게 카톡을 날리고 호찌민의 호텔을 검색했다. 미얀마는 인터넷을 휴대폰의 모바일핫스팟으로 연결해서 쓰는데 요금이 엄청 비싸다. 조금 쓰면 선불제로 쓰는 휴대폰에 몇 메가바이트를 썼다고 문자가 날아오는데 금세, 금세 문자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하여, 마음이 급했다.
가격이 낮은 것부터 검색을 했는데 그것조차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여행도사 선배로부터 카톡으로 지령을 받고 뭘 치고,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하라는 명령 하에 뒤졌다. 그때는 미얀마에 있었으니 도와줄 사람이나, 부탁할 위인이 전무한 실정이었다. 오직 선배가 보내는 카톡에 의지해서 검색사이트에 들어간 것이었다. 시설과 가격이 만만한 호텔을 찾았다.
그 다음은?
급한 김에 뒷말은 잘라먹고 카톡을 날렸다.
지금 결재하기에 들어가면 결재내용이 뜬다고 했다. 그곳을 클릭하니 카드번호와 유효기간, 메일주소를 입력하는 곳이었다.
카드가 어디 있더라?
급하게 한국의 지갑을 찾아서 거기에 꽂힌 카드를 꺼내서 다 입력시켰다. 절구는 항상 지갑을 두 개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한국 지갑이고 하나는 미얀마에서 사용하는 지갑이다. 한 달은 한국, 한 달은 미얀마에서 생활하니 지갑을 두 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미얀마는 카드문화가 아직 정착하지 않았다. 다 현금이다. 고작해야 현금인출기를 사용하는 정도인데 그것도 극소수가 사용한다. 심지어 은행도 못 믿어 집에 금고를 두는 문화이니 아직 카드는 언감생심이다.
이거 또 카드번호만 누출 되는 게 아닌가? 그렇더라도 바가지 쓰는 것보다는 낫지?
다 입력시키고 여행도사 선배가 말한 대로 완료를 치니 바로 결재가 되는 것이었다. 결재가 되면 한국의 휴대폰에 카드사용 알림문자가 뜬다. 절구는 지갑뿐만이 아니라 휴대폰도 두 대다. 한국 휴대폰과 미얀마 휴대폰이 따로 있다. 지갑과 더불어 휴대폰도 두 대를 들고 다니는 게 훨씬 싸게 먹히고 편리하다.
미얀마 휴대폰은 가입하는데 있어서 여권을 제시한다든가, 기본요금이 없다. 한국에서 중고 단말기를 한 대 사가지고 가서 길거리에 있는 휴대폰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번호를 찍어서 유심을 사서 넣고, 선불제이니 얼마짜리 요금카드를 사가지고 일련번호를 입력시키면 그 요금만큼 쓸 수가 있다. 현지인들은 인터넷을 쓰지 않고 오는 전화만 받으면 이천 원어치를 충전시키면 일 년 내내 들고 다녀도 무방하다. 장기여행을 하는 외국인들은 자기나라 유심을 빼서 지갑에 넣고 현지 유심을 사서 쓰다가 돌아갈 때는 버리고 간단다. 그래도 무방하고 싸게 먹힌다.
일단 결재가 되었다.
어? 신기하고 희한하네!
선배에게 카톡을 날렸다.
야호! 성공!
선배는 메일을 검색하면 확인메일이 들어와 있을 거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는 메일을 검색하니 호텔에서 온 메일이 아니라 어느 사이트에 날아온 두 개의 메일에 영수증과 예약확인서가 날아와 있었다. 그걸 프린트해서 챙겼다. 한 장은 못 미더워 두 장이나 프린트를 했다. 가만히 보니 인쇄물에 주소가 너무 작은 글씨로 인쇄되어 오려다가 크게 확대해서 프린트를 해서 첨부했다. 택시기사에게 보여줄 것이니 글씨가 작으면 곤란하지.
준비 끝!
그게 나흘 전의 일이었다.
어제는 제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갔고 정확한 시간에 호찌민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졸다보니 호찌민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호찌민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왜 푸른색 군복 같은 복장을 하고 있을까? 제복의 색상이 얼마나 다양하게 많이 나오는데, 그게 외국여행객에게 얼마나 눈에 거슬리고 주눅이 드는지를 모르는 것일까? 거기다가 계급장이 달린 견장까지 차고 있으니 여권을 제출하고 입국허가를 받는 여행객 입장에서는 완전히 훈련소에 갓 들어간 훈련병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 아니다. 군대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훈련병의 심정을 모를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그것도 군에 가본 사람이라면 그 군복처럼 생겨먹는 제복이 주는 중압감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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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도 잠을 설쳤다.
하! 공항에서 나오는데 여행 안내소를 분명히 보았는데 거기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거나 택시 타는 곳을 알려달라고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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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는 호찌민이 두 번째다.
처음 왔을 때는, 그게 벌써 이십오 년이 넘었지 싶다.
베트남과 수교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지금은 인건비가 더 싼 나라로 다 옮겨갔지만 직물공장이 한창 베트남으로 건너오던 시절이었다. 그 옛날 주공아파트에 살던 이웃끼리 모은 계에서, 그것도 절구가 모은 게 아니라 아내가 모은 것이지만, 그 계원 중의 한 여편네의 남편이 베트남 현지의 직물공장 공장장으로 나와 있어서 그렇게 줄이 닿아 그 모임에서 부부동반으로 다녀갔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여행이 원활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메콩델타를 보고 절구는 반했다.
다음에 여유가 되면 혼자 꼭 와 보아야지. 역시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어. 마누라는 더 심하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여유가 없었는지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이번 여행도 호찌민을 최종목적지로 정하고 여행으로 출발한 게 아니다. 미얀마에 벌려놓은 일로 들락거리며 오 년이 넘게 베트남의 상공으로 지나다니다가 이때가 아니면 힘이 들겠다 싶어, 술자리에서 여행도사 선배에게 얘기했더니 그게 뭐 어렵냐고 시큰둥하게 내일 보자고 했다.
술좌석에서 한 얘기인데 다음날 잊지도 않고 미얀마로 가면서 하노이에서 이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호찌민에서 이틀간 스톱오버를 하는 티켓을 인터넷으로 끊어주었는데 희한하게도 직항보다 요금이 저렴했다. 미얀마로 들어가면서 하노이에서 이틀을 쉬며 하롱베이를 서양의 젊은 여성들과 어울려 기분 좋게 둘러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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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북에는 그렇게 기술되어 있었다. 공항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는 조심하라고. 하노이에서는 가이드북에 기술된 대로 지켰는데 호찌민에 도착해서는 멀건 대낮이었고, 절구가 설마하고 방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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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메콩델타를 둘러보며 혹시나 언짢은 기분이 같이 여행을 하는 무리들에게 보일까봐 굉장히 조심을 했다. 럭셔리 투어였고 고급 리무진 버스였는데 일행은 운전수까지 포함을 해서 열 명이었다. 운전수와 가이드를 빼면 여덟 명이 고작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단체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네. 쩝
일행은 금세 친해졌다.
프랑스에서 온 노신사가 하나 있었고, 독일에서 온 중늙은이가 혼자서 왔고 홍콩에서 왔다는 노부부, 그리고 타이완에서 왔다는 가족이 세 명, 나머지 하나가 절구였다. 움직이고 인원체크하기에 딱 좋은 인원이었다. 모두들 나이도 고만고만하고 최대한 천천히 움직여서 다니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옛날에 왔을 적에는 뭘 봤는지 정글의 좁은 수로에서 보트를 탄 기억밖에는 없는데 지금 다시 보니 엄청 큰 강 중간의 섬이었다.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마을에는 자연적으로 재래시장이 조성되어 있을 정도였다.
영어로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을 반은 알아듣고 반은 눈치로 감을 잡았다. 메콩강의 삼각주는 퇴적된 땅이라 토질이 비옥하고 작물이 잘 되는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메콩강 하류는 황톳물이었다. 그 물에 실린 황토가 또 어딘가에 가라앉아 섬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강에는 중간 중간에 모래 채취선이 모래를 건져 올리고 있었고 가이드는 강에서 채취되는 모래는 싱가포르까지 수출을 한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이니 모래가 당연히 생산되지 않을 것이다.
메콩강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서 절구는 내내 호찌민의 쥐를 생각했다.
가이드북에는 호찌민의 호텔은 거의가 여행 에이전트를 겸하고 있다고 기술했는데 절구가 선택한 알라곤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제 체크인을 하며 메콩델타 당일치기 여행을 호텔에서 예약했었다.
오늘 아침 일곱 시 반에 호텔로 픽업을 온다고 해서 일찍 아침을 먹고 내려가 담배를 피우며 호텔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가랑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던 아침이었다. 헌데, 한적한 도로가에 큼직한 쥐 한 마리가 드러누워 있었다. 무엇에 부딪혔는지 중상을 입은 쥐였는데 발을 꼼지락거리는 걸 보니 죽지는 않았다.
절구는 그 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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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제 그 놈은 바로 이 쥐였어!
돌이키니, 어제 얼핏 보았던 그 작자는 쥐, 서생원鼠生員, 얼굴 생김새가 쥐의 형상이었던 것 같다.
어제 그 놈은 바로 밤새 이 쥐로 변해서 이렇게 변을 당한 거야.
거,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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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시간에 여행사에서 호텔로 픽업을 왔었다. 절구가 타니 프랑스에서 왔다는 노신사가 혼자서 타고 있었다. 가면서 몇 군데 호텔을 들러 예약한 사람을 태우고 두 시간 남짓 달렸다.
그놈은 쥐였으니 지금쯤은 죽었겠지?
절구는 메콩강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 생각을 했다.
배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탔었다. 기관이 달린, 크지 않은 배였는데 강물의 너울에도 출렁거릴 정도였으니 작은 배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갑판에는 대나무로 만든 의자가 있었다. 절구는 거기서 일행들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고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했다. 섬을 세 군데 간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고 메콩강을 거넌 첫 번째로 도착한 섬에서 내려 밀림으로 들어가니 바로 열대과일을 식탁에 풍성하게 차려놓은 식당으로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식탁에 둘러앉으니 현지인들이 전통악기를 들고 나타났다. 연주를 하며 노래도 곁들였는데 노래를 부르는 아주머니를 보니 아랫니가 네 개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발음이 새지 않고 유창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과일 값이나 공연료를 따로 받는 게 아니라 팁을 받는 것이었다. 그 팁을 받는 통을 두 개나 식탁에 올려놓고 십 분 남짓 공연을 했는데 그 팁을 받는 종이박스가 한국의 박카스통이었다. 상표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영어로 Tip Box 조잡스럽게 사인펜으로 써서 붙여 놓은 걸 보니 전문으로 하는 프로는 아닌 것 같고 현지 주민인 듯했다. 마지막에는 그 재래식 악기를 가지고 독주를 했는데 우리나라의 스승의 노래와 가락이 비슷해서 절구의 귀에 익은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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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얀 와이셔츠를 번듯하게 차려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목걸이 명찰까지 달고 있었으니 공항 안내원이나 자원봉사자쯤으로 알고 따라갔던 것이다. 그게 불찰이었다. 아! 이거, 빨리 잊어야 될 텐데, 중간 중간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 거기서도 기어이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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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는 현지화폐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팁 박스에 얼마를 넣어야할지 모르고 있었는데 프랑스의 노신사가 만 동짜리를 넣기에 절구도 지갑에서 만 동을 찾아서 바카스통에 넣었다. 어쩐지 그래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현지의 만 동이면 한국시세로 환산하면 얼마인가? 그때까지 익숙하지가 않았다.
악기는 대나무에 말총으로 만든 악기였는데 상당히 여리면서 맑은 선율을 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를 치고는 홍콩의 노부부와 절구는 그 악기에 관심을 가졌다. 이름을 분명히 들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큰 대나무를 반쪽 쪼개서 피리구멍처럼 구멍을 뚫고 말총을 한 가닥 묶고 칠을 하가나 전혀 다듬지 않아 거칠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시골아이들의 장난감처럼 만들었는데 선율만은 장난이 아니었다. 공연이 끝나고 악기에 관심을 보이며 공연단인 현지인들과 한참을 떠들며 그 과일을 다 먹고 정글의 오솔길을 따라 이동을 했다. 다음에 들른 곳이 현지의 토종꿀 농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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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불찰이었어.
절구의 손가방을 친절하게 받아서 들고 앞장서서 가는 녀석을 따라가면서 아마도 택시가 아니라 자가용으로 영업하는 작자들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거기서 안 탄다고 하고는 가방을 빼앗아 영업용 택시를 타는 곳을 찾아야 마땅했는데 그러질 못했던 게 불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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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꿀 농장에서는 프랑스 노신사가 꿀에 대해 잘 안다면서 자랑을 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계시는데 매일 아침 꿀을 한 스푼 물에 타서 잡수신다고 하면서 수명을 늘리는 데는 그만이고 이곳은 겨울이 없으니 벌에게 설탕을 먹일 일이 없다면서 믿을 만 하다면서 다들 사라고 추천을 하면서 자기부터 한 병을 샀다. 가이드는 프랑스 노신사를 보고 자신이 설명할 것을 다 해버리면 자신은 뭘 설명하느냐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절구가 시음용으로 주는 꿀물을 마셔보니 확실히 맛이 진했다. 절구도 사고 싶었지만 그걸 사면 비행기를 탈 때에 기내에 가고 들어가지 못하고 수화물로 드는 가방을 부쳐야 한다. 수화물로 부치고 찾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서 사지 않았다.
토종꿀 농장을 둘러보고 나와 가이드는 다음은 길이 좀 멀다며 마차를 이용하자고 했다. 그것도 여행 상품 안에 포함된 내용인 모양이다. 한 마차에는 다 타지 못하고 절구와 프랑스 노신사, 독일의 아저씨와 셋이 타고, 그 다음 마차는 홍콩의 노부부와 가이드가 타고. 마지막에는 타이완에서 왔다는 가족이 탔다. 말은 조랑말이었는데 재래시장을 지나 한참을 갔다. 타고가면서 보니 분명히 꽃마차였다. 플라스틱으로 된 조화로 꽃을 치장이라고 했는데 좀 조잡스러워 보였지만 흥이 났는지 프랑스 노신사는 콧노래를 불렀다. 프랑스 노신사는 절구를 보고 한국노래를 하나 하라고 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딸랑딸랑, 방울을 목에 매단 조랑말은 빠른 걸음으로 수레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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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그 생각이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이었다. 틈만 나면 사유의 좌향, 그 나침반 바늘은 그쪽을 가리킨다. 빨리 잊어야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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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사이 좁은 수로로 다니는, 보트는 점심을 먹기 전에 탔었다.
가이드가 하늘을 보더니 비구름이 몰려온다면서 보트부터 타고 점심을 먹자고 해서 모두들 동의했다. 메콩델타의 여행 묘미는 그 정글에서 보트를 타는 것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정글의 보트에 노를 젓는 사공은 아오자이를 입은 처녀였다. 한 보트에 세 명씩 탔는데 마차를 탈 때와 동일하게 나뉘어서 탔다. 정글 사이 미로 같은 수로를 돌아다니며 사공 아가씨가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노래에 맞추어 프랑스 노신사가 박수로 장단을 맞추어주었다.
절구는 그 보트를 타고 정글의 수로를 돌면서 옛날 월남전의 참전용사들에게 들은 정글의 게릴라작전을 떠올렸다. 그때를 상상하니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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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가 아닌 자가용 영업이었다. 타자말자 돈부터 요구하면 바로 내렸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차에 타니 대시보드에 한글로 주차료와 톨게이트 요금은 선불이라는 글귀가 한글로 붙어 있었는데 예감이 좀 이상했다. 그때 내렸어도 늦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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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정글에서는 피아구분이 없었다고 했다. 어디가 적진이고 어디가 아군지역인지 모르고 총격전을 벌렸다고 했다. 정글에서 자고나면 적진이 되어 있고, 포위 되었나 싶으면 구조대가 왔다는 것이다. 정글의 수로를 돌아다니다보니 그 말이 실감이 갔다. 프랑스 노신사는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를 백 년이나 받았지만 그건 역사의 한 장일뿐이다. 사공아가씨는 그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노래는 계속되었고 프랑스 노신사는 박수로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노래는 우리가 탄 보트에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뒤에 따라오던 보트도 마찬가지였다.
보트를 한 바퀴 타고나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이라기보다는 농장이었다. 군데군데 갈대지붕으로 만든 홀이 있었고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농장이 얼마나 넓은지, 취사장이 어디에 붙었는지 가운을 입은 웨이터 녀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쟁반을 배달하고 있었던 게 인상적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프랑스 노신사와 절구는 그 유명하다는 사이공 맥주를 건배하고 마셨다. 호찌민 시티로 지명이 바뀌기 전에는 사이공이었다. 아직도 기차역이름은 사이공역으로 표기하고 있단다.
사이공 맥주는 조금 짠맛이 났다.
안주가 필요 없을 정도로 짭짤했다. 그게 프랑스 노신사의 입에 맞았던 모양이다. 하나를 더 시킨 프랑스 노신사가 극찬을 했다. 가만히 보니 프랑스 노신사는 즐길 줄을 아는 사람이었다.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 되는데 절구는 무엇을 좇으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홍콩의 노부부는 영어가 유창했다. 이 세기에 들어와서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영국령으로 살았던 도시이니 영어가 유창하겠지. 노부부의 말로는 중국 사람이면서도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했으며, 자기도 아직 중국어가 서툴다고 했다. 절구는 영어라면 제 하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하지 유창하지도 못할뿐더러 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하여, 무슨 내용인지 눈치로 때려잡을 뿐이다.
자야지.
내일은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가 오전 아홉 시에 있다. 늦어도 호텔에서 여섯 시에는 나가야 한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자야하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아마도 아침은 못 먹고 출발을 해야 될 것이다. 비행스케줄을 보고 이럴 줄 알고 미리 미얀마 슈퍼에서 한국의 컵라면을 사왔으니 저걸로 아침을 때우고 가야할 판인데 일찍 자자고 누웠더니 오히려 더 잠을 설치는 게 아닌가? 비행기만 제 시간에 타면 잠이야 비행기에서 자면 된다고 하지만 제 시간에 일어나야 할 텐데 와선이 길어지고 있다.
농장에서 점심은 느긋하게 먹었다.
절구만큼 빨리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먹는 것이고 서양인들은 먹기 위해 일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절구가 일찍 먹고 담배를 물고 농장에 있는 악어와 뱀, 고슴도치, 두꺼비를 구경하고 다시 올 때까지 점심자리는 이어졌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점심 이외에 추가되는 요금은 홍콩의 노부부가 기어이 냈다.
점심을 먹고 일행들과 천천히 농장을 한 바퀴 돌며 동물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어디서 점심을 때웠는지 가이드가 나타났다. 뱀을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뱀? 봤는데?
그게 아니란다. 농장을 걸어서 나와서 바로 옆에 있는 농장에 갔다. 그곳을 꽃을 재배하는 농장이었다. 얼른 보아도 몇 만평은 넘지 싶은 넓은 농장이었는데 전부가 형형색색의 꽃밭이었다. 그렇게 넓은 꽃밭은 아무래도 처음이지 싶었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절구도 그 꽃밭을 전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일테면, 아이들 말로 인증 샷이었던 것이다. 아름다웠다.
절구는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꽃에 질렸기 때문이다.
꽃이 뭐가 아름다워? 차라리 식물이 아름답지.
절구가 꽃에 질린 것은 초등학교에 다닐 적이었다.
절구의 부모님은 단명하셨지만 증조부모님은 오래 사셨다. 증조부님께선 절구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돌아가셨는데 당시에는 빈소를 차리고 삼년상을 치렀다. 초하루와 보름에는 면소재지에 따로 사시던 할아버지와 종조부께서 자전거를 타고 오셔서 삭망제를 지냈는데 그 날이 다가오면 빈소에 놓인 당시에는 귀한 플라스틱 조화를 청소하는 게 절구의 일이었다. 들고나가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야 했다. 그 조화는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일거리였다. 삼년상이 끝나고 나니 이번에는 증조모님이 돌아가셨다. 또 모양은 좀 다르지만 플라스틱 조화를 들여놓은 것이었다. 절구는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빈소에 놓인 플라스틱 조화를 청소했어야 했다. 만으로 사년을 그렇게 하고나니, 꽃모양에 대한 아름다움보다는 플라스틱 조화에 질리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 꽃을 보면 아름답기보다는 저걸 청소를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이 들었었는데 메콩델타의 비옥한 땅에 자란 꽃은 절구가 청소를 할 꽃도 아니고 물을 줄 꽃도 아니었다. 그냥 보고 즐기면 되는 꽃이었다.
그 생각을 하고 꽃을 보니 비로소 일거리가 아니라 꽃으로 보이는 것이다. 장미부터 시작해서 국화도 여러 종류, 그 다음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꽃이 그 넓은 땅에서 재배되고 있었다.
뱀은 어디 있어?
화훼농장을 지나서 다음 농장으로 건너가니 무슨 연고를 만드는 수공업의 가내공장이었다. 아마도 뱀의 기름으로 만드는 연고인 모양이었다. 뱀은 그 가내수공업 공장 뒤에 있었다. 젊은 가이드가 우리에 든 뱀을 꺼내는데 묵직하게 보였다. 구렁이였다. 길이가 사람 키보다는 길게 보였고 몸통이 굵직했다. 열대지방에 여행을 가면 흔히 뱀을 보는데 유독 컸다. 가이드는 그걸 목에 걸고 일행들을 보고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뱀 중간 부분을 어깨에 걸쳤는데도 뱀 꼬리가 땅바닥에 닿을 정도였으니 사람 키보다는 훨씬 큰 놈이었다. 절구도 그 광경을 사진에 담았다. 프랑스 노신사는 자기도 목에 걸쳐보겠다며 카메라를 가이드에게 건네주고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서 목에 걸치고 인증 샷을 찍었다. 프랑스 노신사는 절구를 보고 해보라고 했지만 절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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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로 둔갑한 자가용을 타니 거기에서 기다리던 녀석이 호텔 주소를 보자고 했다. 주소가 적힌 A4용지를 내밀었더니 스몰머니! 하면 잔돈을 요구했다. 절구가 지갑을 꺼내서 하노이에서 쓰고 남은 베트남 돈을 꺼내 얼마를 줄지 몰라 더듬거렸더니 운전석에 앉은 녀석이 지갑을 통째로 가로채고는 제가 돈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돈을 다시 지갑에 넣어 건네주면서, 코리아 스몰머니! 라고 외쳤다. 절구는 다른 지갑을 꺼냈다.
잔돈을 찾는데 이 자식이 또 지갑을 가로채고는 돈을 찾는 것이었다. 절구의 무릎에는 배낭이 얹혀있어 좀 불편했다.
그때 누군가 차창을 두드리고 절구가 앉아있는 좌석의 문을 열었다.
문을 잡고 선 녀석은 절구에게 호텔 이름을 묻는 것이었다.
절구는 외우고 있던 대로 알라곤호텔이라고 했다. 녀석은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렇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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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보고 왔던 길을 되짚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농장 뒤에 바로 수로가 연결되어 있었고 그 수로에서 기관이 달린 쪽배를 탔다. 쪽배에 일행이 다 타고 정글수로의 물길을 따라 빠져나왔다. 수로에는 물이 제법 불었다. 가이드 말로는 메콩강의 하류라 바닷물의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아 하루에 두 차례 물이 빠졌다가 들어온단다. 그 정글사이 좁은 수로의 물길을 거의 삼십 분 이상 달렸다. 절구는 그게 이번 여행의 절정이라는 걸 알고 그 기분을 만끽했다. 쪽배가 정글을 헤치고 닿은 곳에 일행이 메콩강을 건넜던 배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 배가 작다고 생각했지만 정글의 수로에 들어가기는 큰 배였던 모양이었다. 그 배로 옮겨 타고는 메콩강을 건너서 나왔다. 배에서 가이드는 오늘 일행들이 잘 따라주어서 여행이 사고없이 쉬웠다고 하면서 서비스로 가다가 파고다 한 군데를 들리겠다고 해서 일행들은 박수를 쳐 주었다.
배에서 내리니 우리가 타고 갔던 리무진 버스가 선착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파고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베트남에서는 부처를 보기가 힘 드는데 놀랍게도 파고다에는 달마가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조각되어 있었다. 하늘높이 우뚝 솟은 달마였는데 균형미가 절묘했다. 절구는 달마를 보면 항상 즐겁다. 호탕한 웃음과 불룩한 배. 어디에도 고뇌나 근심이 없어 보이는 상이라 늘 보면 마음이 푸근하다. 하여. 절구는 사무실 책상 위에 나무로 만든 달마의 형상을 하나 두고 있다.
이번 여행의 덤이다.
저렇게 웃어버리면 되는데 괜한 고민을 했군!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절구지만 그 달마는 여러 컷의 사진을 찍었다. 파고다는 공원처럼 꾸며 놓았다. 한산했고 주위의 나무도 분재처럼 꾸며 놓고 벤치를 중간, 중간에 배치해서 쉬기에 그만이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은 담배를 마음대로 피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파고다에서 일행은 뿔뿔이 흩어져 달마 뒤에 있는 와불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절구는 프랑스 노신사와 파트너가 되어 둘이 돌아다니며 같이 담배를 나눠 피우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산책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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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에 앉아서 돈을 주물럭거리던 녀석은 돈을 다시 절구의 지갑에 넣어주며 이것이면 택시비와 톨게이트 요금이 된다고 하며 돈을 흔들어 보였다. 한국 지폐와 베트남 돈이었는데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놈이 문을 또 열었다. 이 차는 그쪽 지리를 잘 모르니 저 차를 타야한다고 뒷좌석에 놓인 가방을 꺼내 옮겨 실으며 절구보고 옮겨 타라고 했다.
그런가?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옮겨 타니 바로 출발이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다가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뭔가 찜찜했는데 바로 그것이다. 달리는 차에서 한국지갑을 확인하니 빵빵했던 지갑이 헐렁했다. 이런? 다른 지갑을 또 확인했다. 분명히 베트남 지폐 중에서 오십만 동짜리가 여섯 장인가 일곱 장이 있었는데 두 장뿐이다. 허, 허! 얼마를 빼갔는지 정확한 금액을 알지 못한다. 지폐를 헤아려 놓지 않았기 때문인데 어림잡아도 이 나라 공무원의 한 달 평균급료는 훌쩍 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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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지!
억울하지는 않은데 그렇게 멍청하게 당한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그 화를 삭이느라 여태 와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녀석은 쥐였어.
아침에 호텔 앞에서 본 부상당한 쥐가 된 게 분명해.
그렇게 생각하자 절구는 비로소 그 녀석에서 연민이 느껴졌다.
-모든 걸 용서할게. 쥐야! 다음 생에는 쥐의 몸을 받지 말고 천사의 몸을 받아 빛을 발하도록 하길 빈다.
절구는 눈을 뜨고 천정을 바라보며 그렇게 속삭였다. 생각했던 말이 아니고 울컥 나온 말이었다.
이거, 이렇게 와선하다가 이대로 굳어서 와불이 되는 게 아닌가?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성불을 하는 거지! 성불이 따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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